|
출처: 豊 柳 마 을 원문보기 글쓴이: 李翰邦(松河)
amrW6cPaA00&dataid=3&fenc=uW6oH1GVPac0&docid=CDc8X7RC
500년 명문가에서 배우는 경영 26 - 약봉 서성 어머니의 ‘승부수’ | |
새로운 터전에 집지어 ‘부흥’ 발판 마련 | |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열심히 일하면 집 세 채 정도를 짓고 간다고 한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있는 삼성 이건희 회장의 집은 규모나 가격(85억 원) 면에서 단연 으뜸이다. 1000평이 넘는 이 회장의 집은 농심 신춘호 회장의 집과 조망권 때문에 소송까지 가기도 했다. 1972년부터 한남동 저택에 살던 이 회장은 32년 만인 2005년 5월 이곳으로 이사를 했다. 이렇게 보면 이 회장도 세 번째 집을 지은 것은 아닐까.
앞서 살펴본 약봉 서성의 어머니인 고성 이씨 부인이 자녀 교육을 위해 서울에 온 후 제일 먼저 착수한 것이 다름 아닌 집짓기였다. 그런데 이씨 부인은 서울의 약현(지금의 중림동)에 터를 잡고 일반 사가(私家)의 규모를 뛰어넘는 무려 28칸짜리 집을 지었다. 가족이라고 해봐야 아들인 약봉과 어머니 단 둘에 불과했다. 그래서 친지들이 “식구도 적은 사가집이 대청 열두 칸이면 모두 28칸이나 되는데 너무 굉장한 규모이니 줄여서 짓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이씨 부인은 “그 집이 지금은 사가로서는 너무 크다고 하시겠으나 몇 십 년 가지 아니하여 그 집이 클 것이 없고 이후에 이 미망인이 죽은 후 삼년상에는 그 대청이 좁을 형편이고 만약 손자 대를 내려가면 미망인의 제삿날은 오히려 그 대청이 부족하여 다시 그 마루 앞으로 딴 마루를 늘려야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씨 부인의 예측대로 한 세대가 지나자 명절 때에는 그의 증손자들까지 수십 명에 달하는 등 집이 좁아 보일 지경이었다. 이씨 부인은 칠순 때 53세의 약봉 이외에 중견 문신으로 활동한 37세의 경우와 국왕인 선조의 사위인 31세의 경주 등 4명의 손자와 손부 그리고 증손자 8명, 증손녀 1명 등 슬하에 19명의 자손을 두었다. 후손들에 이르러 정승이 8명에, 판서가 34명에 달했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터전의 집을 짓는데서 시작된 것이다. 이씨 부인이 큰집을 짓게 된 것은 친정인 임청각의 영향을 들 수 있다. 고성 이씨가 안동에 처음으로 터전을 마련한 사람이 이씨 부인의 할아버지(이증)이고 임청각을 지은 이가 큰아버지인 이명(이증의 셋째 아들)이다. 이명과 그 형제들, 그 아들들이 임청각과 강학과 풍류의 장소인 귀래정과 반구정을 지으면서 500년 ‘은둔형’ 명가의 터전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씨 부인의 아버지 무금정 이고(이증의 다섯째 아들)는 무남독녀인 딸을 약봉의 아버지인 함재 서해에게 시집을 보내면서 안동면 일직면 소호리에 팔작지붕의 기와집과 사랑채(소호헌)를 지어주었다. 자신이 못다 이룬 가문의 번성을 사위가 이루어주기를 기원했을 것이다. 약봉 가문은 크게 보면 안동의 소호리에서 처음 집을 짓고, 이어 서울 약현에 두 번째 집을 지었다. 그리고 세 번째 집은 100여 년 전 포천 설운리로 옮겨지었다. 어쩌면 400년을 이어온 가문의 역사는 세 번의 집짓기에 축약적으로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누구보다 집짓기에 욕심이 많은 것 같다. 그는 국론의 양분에도 불구하고 행정도시를 강행했다. 행정도시는 국가적인 새집 짓기에 해당한다. 노 대통령은 또 퇴임 이후 살기 위해 고향인 김해에 새집을 짓고 있다. 아마도 그의 마지막 집짓기가 아닐까. 개인이 집을 짓는 것과 국가가 행정수도를 새로 정하고 건축하는 것은 모두 같은 동기와 목적의식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출발과 함께 미래에 대한 열망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궁예에게서 보듯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개인이나 국가나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카자흐스탄의 구리 채광 업체인 카작무스 차용규 대표가 평가 재산 13억 달러로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부호 순위 754위에 올라 화제다. 자신이 일하던 삼성물산이 이 사업에서 손을 떼자 인수했다고 한다. 그는 삼성물산에서 인생의 첫 집을 지었고, 카자흐스탄에서는 두 번째 큰 집을 지었다고 볼 수 있다. 열심히 살면 다시 한 번 기회가 있는 셈이다. 당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새로운 집을 짓는 것일 게다. 약봉의 어머니가 지은 집은 그야말로 결단과 도전의 의미를 담은 그런 집이다. 단순히 재테크를 위한 집이 아닌, 인생의 의미를 되새김하고 새로운 도전을 위한 그런 집을 짓자. 그리고 누구든 열심히 살면
세 번의 집을 지을 수 있지 않을까…. 최효찬·자녀경영연구소장(비교문학 박사) | |
입력일시 : 2007년 3월 28일 10시 53분 53초
z4mPRPVStiz4QamrW6cPaA00&dataid=137&fenc=HPETdgIQCTc0&docid=CDe9
4mPRPVStiz4QamrW6cPaA00&dataid=51&fenc=bEvzZ13QtVk0&docid=CDaA2wzN FA8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