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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時祭)
시제에 참관했다. 조상들의 위패를 모신 재실(齋室)에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종친들이 연어가 회귀하듯 모여 들었다. 세월이 고여 있는 산골 오지 마지막 동네이고 전형적인 씨족 마을에서 태어난 혈족들이다. 예전에는 조상의 묘역에서 시제를 올리다가 종중이 주관해서 합동으로 치르고 있다. 300여 년 전, 고향에 처음으로 터를 잡으신 9대조 할아버지를 비롯해서 증조부 대에 이르는 조상들의 넋을 후손들이 기리는 행사이다. 시제에 참석한 사람들은 부자부터 가장 먼 친척이 18촌 지간이다. 모두가 할아버지, 아저씨, 형님과 아우 그리고 조카와 손자이다. 한 뿌리에서 나온 나무에서 뻗은 가지들이다. 피는 물보다 진해서일까. 오랜만에 만나는 데도 지난 시절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엊그제 본 것처럼 낯이 익다. 어릴 적 이웃집에 살다가 몇 십 년 만에 만나는 동년배의 얼굴에 깊은 골이 패여서 세월의 무게를 짐작하게 한다.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얼마나 많이 달라지고 있는지 활동사진을 보는 듯하다. 살아온 과정을 소문으로 들어서 아는 것이 아니고 삶의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터이다. 지난 시절에 부자로 소문난 집안은 가세가 기운데 비해서 부잣집 머슴처럼 가난에 매어 있던 집안 후손 들이 번성한 일가를 이뤄서 의젓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모두가 세상이 변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증인들이다. 참여한 일족들 중에 특별히 세상에 이름을 떨치는 고위 층 인사는 없지만 나름대로 삶의 방편을 갖고 있는 미더운 버팀목들이다. 대학에서 학문을 전수하거나 교직의 수장으로 봉직한 일족도 있다. 전문직을 갖고 있는 젊은 층도 있다. 흙수저로 태어나서 금수저까지는 못되어도 은수저가 된 종친들이 대견스러워 보인다. 그 중에 나보다 한 살 위인 아저씨처럼 유별난 사람도 있다. 그는 오막살이 초가집에서 육남매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훨훨 단신으로 객지로 떠난 유랑인이었다. 얼마 전까지도 막 노동꾼이었다. 그런데 내 아우뻘이고 아저씨의 아들이 텔레비전 화면에 자주 등장한다. 요즘 한창 유행하는 스타 가수로 이름을 떨치면서 육씨 성을 홍보 하고 있다. 아저씨의 겉모습은 여전히 남루하지만 어느 유명인사 못지않게 늠름하다. 소박하고 성실하게 살았던 조상으로부터 유덕을 받은 듯하다.
위패에 있는 생전의 조상들도 세상에 태어나서 둘도 없는 귀한 아들과 딸로 애지중지 보호를 받았을 것이다. 그분들이 다시 부모가 되어 자식을 낳고, 자식을 위해서 희생한 결과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차례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기독교의식을 지키고 있어 절은 하지 않았지만 주최자의 진행에 따라 두 손을 모으고 얼굴을 뵌 적이 없는 조상들께 경건하게 예를 올렸다. 하얀 한 복 차람의 조상들이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는 듯 환영을 느꼈다. 흔히 한 사람의 삶을 결정하는 요인이 여러 가지 있지만 그 중에 가장 큰 영향은 조상의 행실이라고 한다. 부모님과 조부모님, 증조부모님, 그리고 고조부모님에 이르는 조상들이 어떻게 살았느냐에 의해서 후손들의 삶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지금의 나도 그렇고 후손도 내 삶에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을 알게 하는 것이 시제를 지내게 만든 조상들의 뜻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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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렇게 조상을모시고 단합하고 보기좋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헤어지는 무렵에 제가 제안해서 찍은 사진이지요.
멋집니다.
유서깊은 가문이신가 봅니다.
갈수록, 집안 내력을 보는 것이 왜 그런 건지 알 것만 같습니다.^^
전형적인 흙수저 집안이지만 전통은 만들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집안 어르신들이 한자리에 모였네요. 육중완 가수의 아버님도 저기 있을 거 같은데요^^*
와, 강회장님 천리안을 갖고 계시네요.
중완이 아버지와 둘이서도 찍었걸랑요^^*
@육상구 ㅎㅎㅎ 언젠가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육 가수의 아버님 편안해 보이시네요^^*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조상님을 잘 모시는 집안이 후손들도 잘 되고, 바르게 삽니다.
자녀들에게도 큰 가르침입니다. 훌륭한 가문이십니다.
참석하신 어르신 모두 표정이 육 회장님처럼 온화해 보입니다.
윤회장님 감사드려요.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 가마골, 시골 마지막 동네에서 태어나 성공과 거리가 멀지만 이나마 살 수 있는 것도 조상님 덕이라는 생각도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