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수업 : 텍스트 3장
IX. 창조 대 자아상
1
모든 사고체계에는
반드시 출발점이 있다.
각 사고체계는
<만들기> 혹은 <창조하기>로
시작하는데,
그 차이에
대해서는 이미 논했다.
이 둘의 유사성은, 둘 다
강력한 기반이라는 것이다.
이 둘의 차이는
그 위에 무엇이
얹혀 있느냐에 있다.
둘 다 사람이
그에 따라 살아가는
신념체계의 초석이다.
거짓말에 근거한
사고체계가 약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신의 자녀가 만든 것 중에
힘이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것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이 수업을 하는 데
왜 그렇게
큰 어려움을 겪는지
이해할 수 없으며,
너희 스스로 만든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2
너희는
너희 자신의 <마음의 힘>을
평가절하함으로써
권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대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를 해칠 것이니,
그대는 <마음의 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또한 그대가
<신>을 약화시킬 수 없듯이,
<마음의 힘> 역시
약화시킬 수 없음을 안다.
‘악마’라는 개념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것이
지극히 강력하고
활동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악마는,
신께서 창조하신
영들의 소유권을 놓고
신과 싸우고 있는, 신과
전쟁 중인 힘이라고 지각된다.
악마는 거짓말로 속이며,
자기 자신의 왕국들을 세우는데,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신과 대립하고 있다.
그렇지만
악마는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매혹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이 인식하기에
아무런 가치도 없는
선물들을 얻기 위해,
자신의 영을
기꺼이 악마에게 ‘팔아넘길’
마음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3
이것은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전체 그림은, 사람이
스스로 자기 파괴적임을
알고 있는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교정하려고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그 원인이
자기 통제 밖에 있다고
지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이미
타락, 즉 분리에 대해
논했지만,
그 의미는
상징들 없이 분명하게
이해되어야 한다.
분리는
상징적이지 않다.
분리는
영원 안에서는 아니지만,
시간 안에서는
충분히 실재라고 할 만한
사고체계이다.
모든 믿음은,
그것들을 믿는 자에게
실재적이다.
4
사람의
상징적인 동산에서
오직
한 나무의 열매만이
그에게 ‘금지’되었다.
그러나 신께서 그것을
금지하셨을 리가 없으니,
금하셨다면, 그들은
먹지 못했을 것이다.
신께서
당신의 아이들을
아신다면,
- 나는 그것을 장담한다 -
신께서, 그들이 스스로를
파괴할 수 있는 위치에
그들을 두셨겠는가?
금지된 그 나무는
‘지식(knowledge, 앎)의 나무’
라고 불린다.
그렇지만 신께서는
앎(knowledge)을
창조하시어
당신의 창조물들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주셨다.
이 상징에는
많은 해석이 주어졌지만,
신, 혹은
그분의 창조물들이
그들 자신의 목적을
파괴할 수 있다고 보는
어떤 해석도
잘못임을 확신해도 좋다.
5
지식의 나무
열매를 먹는 것은
자아(self, 에고) 안에,
자기를
창조하는 능력을
결합시키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오직
이런 의미에서만,
신과 그분의 영들은
공동창조자가 아니다.
그들이
공동창조자라는
믿음은
‘자아 개념’에
내포되어 있다.
이 개념은,
이제 그 약함 때문에
받아들일 만하게 되었으며,
자신의 이미지를
창조하려는 자아(self)의
경향에 의해 설명된다.
자아의
두려움의 측면은
종종
‘아버지 같은 인물’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 탓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아무도 그 용어를
육체적인 아버지를 가리키는 데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특히 기이한 아이디어이다.
그것은
자아상에 관련된
아버지의 이미지를
나타낼 뿐이다.
6
이미지는
알아지는 것이 아니라,
지각되는 것이다.
앎은 속일 수 없으나,
지각은 속일 수 있다.
사람이 스스로를
자기 창조적이라고
(self-creating)
지각할 수는 있지만,
단지 그렇게 믿는 것
이상은 할 수 없다.
사람은 그것을
사실로 만들 수는 없다.
그리고
우리가 전에 말했듯이,
그대가 마침내
바르게 지각하게 되면,
그대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에
오직
기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그대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이
그대의 사고체계에서
핵심적인 초석이며,
그대의
모든 방어 수단은
그 믿음을 빛으로
가져갈 수도 있는 아이디어를,
공격하는 데 사용된다.
그대는 여전히
그대가 만든 이미지를
그대라고 믿는다.
이 점에서 그대의 마음은
그대의 영과 갈라져 있고,
그대가 그야말로
상상도 할 수 없는
그 한 가지를
믿는 한, 해결책은 없다.
바로 이것이 그대가
창조할 수 없으며,
그대가
만든 것을 그렇게도
두려워하는 이유이다.
7
마음은
<분리에 대한 믿음>을
아주 실재적이고
아주 무서운 것으로
만들 수 있는데,
이 믿음이
바로 ‘악마’이다.
이 믿음은 강력하고
활동적이며, 파괴적이고,
명백히 신과 대립하는데,
이 믿음은 말 그대로
신의 부성(Fatherhood)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부정의 힘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말라.
그대의
삶을 들여다보고,
악마가
무엇을 만들었는지 보라.
그러나
이런 악마의 작품은
진리의 빛으로 분명히
사라질 것임을 알라.
왜냐하면,
그것의 토대는
거짓이기 때문이다.
8
신에 의한
그대의 창조는
빛이 그 안에 있기에
흔들릴 수 없는
유일한 토대이다.
그대의 출발점은 진리이다.
그리고 그대는
반드시 이 시작점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 이후로
많은 것이
지각되었지만,
다른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바로 이것이
비록 너희 마음들은
갈등하고 있을지라도,
너희 영들은
여전히 평화롭게
있는 까닭이다.
그대는
아직 충분히 멀리
되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그대가그렇게도
두려워하는 까닭이다.
<시작점>에 다가가면서,
그대의 사고체계가
파괴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함을 느끼는데,
그것을
마치 죽음에 대한
두려움처럼 느낀다.
죽음은 정녕 없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믿음은
정녕 있다.
9
성서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잘려나가
시들어버린다고 말한다.
기뻐하라!
생명의 참된 토대로부터
<빛>이 반드시 빛날 것이며,
따라서
그대 자신의 사고체계는
반드시 바로 설 것이다.
그대의 사고체계는
다른 식으로는 서 있을 수 없다.
구원을
두려워하는 그대는
죽음을 선택하고 있다.
생명과 죽음,
빛과 어둠,
앎과 지각은,
양립할 수 없다.
그것들이
양립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신과 사람이
양립할 수 없다고
믿는 것이다.
오직
앎의 하나된 상태만이
갈등에서 자유롭다.
그대의 왕국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 세상 너머>로부터
주어졌기 때문이다.
오직
이 세상 안에서만,
권위 문제라는
아이디어가 의미 있다.
죽음에
의해서가 아니라,
진리에 의해
이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창조된 왕국을
기다리는 모든 이들은
정녕 진리를 알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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