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 가면 꼭 한그릇은 먹고 와야 속이 풀리는 것이 있다. 이른바 남부시장식 콩나물국밥이다. 전주의 콩나물국밥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뚝배기를 불에 올려놓고 펄펄 끓여내오는 것과 식은 밥을 뜨거운 육수에 넣고 국자로 잘방잘방 밥을 풀은 다음에 갖은 양념을 그위에 얹어 내오는 것, 그렇게 두가지가 있는데 나는 뜨거운 것을 잘 먹지 못하므로 식은 밥을 말아주는 국밥을 더 좋아한다. 내가 자주 가는 곳은 이라는 조금은 괴상한 이름을 갖고 있는 콩나물국밥집이다. 그 집에 드나들던 인연은 근 20여년이 되었다. 그런데 이 주인 아주머니는 아직도 내게 콩나물국밥값을 받지 않는다. 어찌어찌 내가 시를 쓴다는 것을 알고 혼자사는 가난한 시인이 무슨 돈이 있겠냐며 밥값을 끝내 고사하시는 것이다. 꽤오래동안 밥값을 받지 않는 장뻘에 혼자 갈 수 없었다. 장뻘의 콩나물국밥을 먹고 싶어도 다른 동행이 없으면 먹을 수 없는 기막힌 사연, 국밥값이 있어도 혼자서는 갈 수 없는... 한번은 그집 콩나물국밥이 너무 먹고 싶어서 혼자 용기를 내어 들어갔다. 왜 이렇게 오랫만이냐며 반가운 내색을 하신다. 어서 먹으라고 국밥을 말아주신다. 나는 그릇밑에 돈을 감춰두고 잘 먹었다며 서둘러 인사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집을 나서는데 삼춘~ 하고 누가부른다. 뒤돌아보니 그 주인아주머니 돈을 들고 손짓을 한다. 이러면 안되야~ 마구 손짓을 하며 걸어오신다. 나는 후다닥 뛰어 도망을 가고 그 아주머니 헐떡거리며 쫒아오고 나는 건널목으로 뛰어들어 큰길을 건너고 삼춘 거시기 이러면 안되야~ 다음에 그 집에 갔을 때 주인아주머니 왈 내가 예술가한테 콩나물국밥 한그릇 못주겠냐고 당장은 고생이 되더라도 거 뭐시냐 예술가는 한우물을 열심히 파다보면 언젠가는 빛 볼날이 있을 거라고 꼭 성공하라고 ... 우리집에 드나들던 누구도 그랬고 누구도 이제는 성공했다. 내가 그때 삼춘 돈 돌려줄려고 뛰어가느라 얼마나 숨이 목구멍까지 꽉찼는디 다시는 그런 고생시키지 말라고 당부를 하신다. 성공할 때까지 내게 국밥값을 안받겠다고 하신다. 그런 일이 있는 지도 벌써 십오년이 넘었다. 또 언젠가 그랬다. 아이고 삼춘 신문이랑 테래비를 봉게 삼춘 나오더만, 하고 반갑게 맞이하신다. 내가 그랬다. 예, 이제 성공했으니까 국밥값받으셔요. 그랬더니 아직 멀었단다. 장가도 못가고 자동차도 없는 것 봉게 아직 성공 더 해야것다고 지금은 전주 중화산동으로 이사를 간 장뻘콩나물국밥집에는 또 하나 별미가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