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홍도 이야기 1
집안에서 TV를 치운 지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애들은 주말 개그프로그램을 보지 못해서 친구들과 대화가 안 된다고 불평했고
나 역시 꼭 보고 싶은 스포츠 중계방송이 있는 날이면 몹시 그리웠는데,
몇 개월 지나니 네 식구가 모두 적응하여 지금까지도 구매 필요성을 못 느낀다.
퇴근하면 나는 주로 뉴스를 검색하거나 음악을 들으며 가끔 책을 뒤적거린다.
유튜브로 옛날 영화를 복습하기도 하고 다큐멘터리를 찾기도 하는데,
퇴직 후 귀농이나 귀어에 뜻이 두고 있으니 농어촌 프로그램은 더욱 진지하게 본다.
우리 부부가 연홍도의 잉꼬부부를 만난 것도 즐겨보던 어촌 프로그램이 맺어준 인연이다.
그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는 어부이야기는 연출된 느낌이 없이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가난해서 배우지 못한 전라도 남자와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할 경상도 여자가
결혼하여 살아가는데 착한 탓에 가까운 사람에게 사기당하고 또 IMF 여파로
실직하고 낙향하지만, 고향 사람들의 온정 덕분에 부창부수로 살아간다는 이야기이다.
연속해서 서너 번을 봐도 똑같은 감동으로 여운이 오래 남았다.
그분들께 편지를 쓰고자 자막 내용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주소를 만들어 냈다.
50가구 70여 명이 사는 작은 섬이라는데 번지수가 없어도 부부 이름 여섯 자만 정확히 쓰면
우체부가 배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몇 자 써서 전화번호도 넣어 보냈다.
꽃을 좋아한다는 아내를 위해 화단을 일구는 장면을 보고는
선물로 화분이 좋겠다 싶어 꽃수명이 비교적 긴 서양란을 보내기로 했다.
편지보다 꽃이 먼저 배달되리라는 나의 계산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연홍도가 도서지역이라서 배달서비스가 전혀 되지 않았다.
우체국 택배도 안 된다고 하여 낙심하고 있던 참에 묘책이 떠올랐다.
그렇다. 두 분은 어부였다. 활어를 경매하는 곳은 섬이라도 연육교가 있다.
수협으로 전화를 걸어 이 사람 아냐고 물으니 안다고 해서 이름 좀 빌리자고 부탁하니
친절하게도 자기는 거리가 있다며 위판장에 딸린 지점과 전화번호와 수령인을 안내해 주었다.
(유튜브에서 캡쳐. 남편이 일군 밭에 아내가 꽃을 심고 있다)
크고 화려한 핑크 호접란에 리본은 [행복이 가득한 집]으로 하였다.
주문 넣은 다음 날에 편지를 받았다는 문자가 왔다. 반가워서 전화를 드렸다.
김이철님은 몇 마디 말하고는 귀가 안 들린다며 바로 아내를 바꿔 주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안 들리는 것이 아니라 쑥스러워서 그런 것이다. 그만큼 순진하셨다.
이미경님의 목소리에서 한마디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그려졌다.
뇌성마비인데 세상을 이렇게도 힘들게 살아가시나 싶어 가슴이 메었다.
두 분의 삶에 깊은 감동을 받았고, 멀리 서울에서도 응원하겠다는 말과 함께
화분을 받으시라며 통화를 마쳤다. 한 박자 늦게 “감사합니다.”라는 힘겨운 말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