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스더서(3장 9절)에서 아각 사람 하만이 유대인을 멸절하는 대가로 아하수에로 왕(크세르크세스 1세)에게 바치겠다고 제안한 **'은 만(10,000) 달란트'**는 현대인으로서는 상상하기 조차 힘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천문학적 가치를 지닌 액수입니다.
이 금액의 가치를 직관적으로 이해하실 수 있도록 세 가지 기준(실제 무게, 현대 노동자 품삯, 당대 국가 재정)으로 나누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1. 은의 실제 무게로 본 가치
고대 바빌론 및 페르시아에서 통용되던 은 1달란트의 무게는 대략 34kg 내외였습니다.
• 총 무게: 34\text{ kg} \times 10,000 = 340,000\text{ kg} (340톤)
• 현재 은 시세 기준 가치:
최근 은 시세(1g당 약 1,300원~1,500원 기준)로 단순 계산하더라도, 은 원자재 가치만 최소 4,500억 원에서 5,000억 원에 달합니다.
(※ 고대 사회에서 '은'이 가졌던 절대적인 희소성과 구매력은 지금의 단순 원자재 시세보다 훨씬 높았음을 감안해야 합니다.)
2. 현대 노동자의 일당(품삯) 기준으로 본 가치
성경 시대의 화폐 단위와 노동력 가치로 환산하면 그 규모가 더욱 체감됩니다.
• 1달란트 = 6,000데나리온 (1데나리온 = 성인 노동자의 하루 품삯)
• 따라서 10,000달란트 = 60,000,000(6천만) 데나리온
• 현대 가치 환산:
하루 일당을 매우 보수적으로 10만 원이라 가정해도 다음과 같은 계산이 나옵니다.
한 명의 노동자가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무려 16만 4천 년 동안 꼬박 일해서 모아야 하는 엄청난 금액입니다.
3. 당대 페르시아 제국의 1년 예산과 비교 (가장 정확한 역사적 가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Herodotus)의 기록인 《역사》에 따르면, 당시 대제국이었던 페르시아의 총 연간 세입(세금 수입)은 약 14,560 달란트였습니다.
• 하만이 제시한 10,000 달란트는 페르시아 제국 전체 일 년 총예산의 약 70%(3분의 2)에 육박하는 금액이었습니다.
• 만약 이를 오늘날 대한민국의 1년 예산(약 650조~670조 원) 비율로 대입해 본다면, 개인 한 명이 국가에 무려 450조 원이 넘는 돈을 헌납하겠다고 제안한 꼴입니다.
♤ 하만은 어떻게 이 엄청난 돈을 내놓을 수 있었을까?
개인 신하가 제국 예산의 70%에 달하는 돈을 선뜻 내놓겠다고 호언장담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역사학자들과 성경 학자들은 주로 두 가지로 분석합니다.
1. 유대인 재산 몰수 전제: 하만은 단순히 자기 주머니에서 이 돈을 다 꺼내려 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을 멸절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막대한 재산과 영토를 몰수·약탈하여 왕의 금고를 채워주겠다고 계산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2. 전쟁 직후의 왕을 겨냥한 로비: 당시 아하수에로 왕(크세르크세스)은 그리스 원정(살라미스 해전 등)에서 대패하여 국가 재정이 극도로 바닥나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하만은 이 점을 정확히 꿰뚫고, 유대인 학살이라는 무리한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왕이 거절하기 힘든 엄청난 재정적 유혹을 던진 것입니다.(에 3:9,13)
♧ 에스더서 후반부를 보면 유대인들은 왕의 허락 하에 자신들을 죽이려 했던 대적들을 물리쳤지만,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다" 라고 세 번이나 명시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에스더 9:10, 15, 16).
하만이 약속했던 은 만 달란트의 기부 계획이 하만의 죽음으로 날아갔고, 학살당한 대적들의 재산마저 몰수하지 않았으니, 그리스 원정 실패로 가뜩이나 쪼들리던 아하수에로 왕의 왕실 재정에는 아주 심각한 타격이 가해졌을 것입니다.
성경과 역사 기록은 왕이 이 극심한 재정적 가뭄과 타격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매우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합니다.
1. 에스더서가 전하는 해결책: 제국 전체에 대한 '새로운 세금' 부과
에스더서의 가장 마지막 장인 10장 1절은 느닷없이 왕의 '세금'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그의 본토와 바다 섬들로 하여금 조공(세금)을 바치게 하였더라" (에스더 10:1)
치열했던 유대인 구원 사건(부림절의 기원)이 끝나고 책을 마무리하는 에필로그에서, 성경은 뜬금없어 보이는 **'영토와 바다 섬들에 대한 새로운 세금 징수'**를 언급합니다. 이는 하만의 은 만 달란트 약속이 무산되고, 대적들의 재산 탈취도 포기하면서 발생한 왕실의 재정적 구멍을 메우기 위해 아하수에로 왕이 제국 전역에 전방위적인 세금 정책을 단행했음을 보여줍니다.
2. '모르드개'의 총리 등극과 재정 개혁
왕이 단순히 세금만 늘렸다면 제국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에스더 10장 2~3절은 왕의 권력과 함께 2인자(총리)가 된 모르드개의 위상을 나란히 기록합니다.
• 재정 전문가로서의 모르드개: 모르드개는 왕의 하수인 노릇을 하며 뇌물과 약탈로 연명하던 하만과 달랐습니다. 그는 정직하고 유능한 행정가로서 제국의 조세 제도를 정비하고 비리를 척결했습니다.
• 윈-윈(Win-Win)의 치세: 모르드개는 무리하게 백성들을 쥐어짜는 대신, 효율적인 세정 운영을 통해 왕의 재정적 타격(국고 가뭄)을 메워주면서 동시에 "자기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고 안위하는"(에10:3) 현명한 정치를 펼쳤습니다. 이 덕분에 아하수에로 왕은 재정 위기를 극복하고 강력한 왕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3. 역사적 배경(페르시아 기록)과의 일치
이 성경의 묘사는 실제 역사적 사실과도 놀랍도록 일치합니다.
페르시아의 고대 도시인 페르세폴리스(Persepolis) 에서 발견된 점토판 영수증과 보물창고 기록(XPh 비문 등)에 따르면, 아하수에로 왕(크세르크세스 1세) 시대에 그리스 원정 실패 이후 영토 곳곳(특히 에게해의 그리스계 섬들과 해안 지방)에 다시 징세령을 내려 은을 거두어들였다는 기록이 존재합니다.
전쟁으로 돈이 궁해진 왕이 하만의 감언이설(유대인 재산 몰수 및 은 헌납)에 귀가 솔깃했다가, 그것이 실패로 돌아가자 결국 모르드개라는 유능한 재무 총리를 기용해 제국 전역의 징세 체계를 재정비하여 재정 위기를 돌파한 것입니다.
♤ 요약하자면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의 돈을 받지 못해 생긴 재정적 타격을 ① 제국 본토와 영토의 섬들까지 넓힌 대대적인 세금 징수(에 10:1) 와, ② 청렴하고 능력 있는 유대인 총리 모르드개의 정직하고 효율적인 재정 개혁(에 10:3) 을 통해 성공적으로 극복해 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