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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 범죄, SF | 미국 | 145 분 | 15세 관람가 | 2002.07.26
영화평 - 김영민(성균관대 심리학과)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며 -완벽한 예측을 통한 범죄 예방의 구현, Minority Report(2002)
“you still have a choice."
여러 차례 공상과학적 세계관에 대한 안내를 해온 스티븐 스필버그의 2002년의 선택은 ‘마이너리티 리포트’였다. 이 영화가 제시한 패러다 임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범죄 행동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해볼 수 있다. 최근 미국 드라마가 국내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가장 꾸준히 사랑을 받는 작품 중의 하나가 바로 CSI(Crime Scene Investigation) 과학수사대일 것이다. 범죄 현장에서의 얻는 단서를 토대로, 철저한 과학적 분석방법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드라마 속 CSI의 모습은 단 순한 재미를 넘어, 일반인들에게도 범죄심리학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범죄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 우리가 가질 수 있 는 가장 이상적인 비전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어떤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지 파악하여, 모든 범죄 행동을 완벽하게 예측하고 예 방하여 결과적으로 범죄가 없어지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실제로 심리학을 필두로 한 행동과학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인간행동의 예측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행동을 과학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앞서 밝힌 이상대로 사회 질서에 반하는 범죄 행동을 예측하고 예방하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특히 범죄 중에 가장 중죄라고 할 수 있는 살인, 만약 예측을 통해 살인 행동을 사전에 예측할 수 있다면 사회는 엄격한 질서 위에 진정한 평화를 달성하게 될지도 모른다. 현대인이 그러한 이상으로 향해 갈 구상을 채 마치기도 전에,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는 ‘살인이 없는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미리 맛보여주고 있다.
서기 2054년, 미국의 워싱턴 DC에서는 살인 사건이 일어날 수가 없게 된다. 사전에 계획된 살인이든지, 충동적으로 나타나는 우발적 살인 이든지, 누가 언제 저지를지 사전에 파악한 ‘범죄예방국(Precrime Department)’의 수사관들이 어느새 살인 현장에 도달하여 살인을 행하 려던, 아니 행하게 되어 있던 혐의자를 체포한다. 누구도 죽지 않고, 살인 현장은 한 명의 살인미수자를 교도소로 보내며 정리된다. 그런데, 수사관들이 도착할 당시 혐의자는 대부분 흉기를 들고 있는 상태로 범죄예방국의 정밀한 예측에 감탄하게 만든다. 하지만 한 편으로 생각 해 보면 칼을 든 사람이 그 칼을 사람의 몸으로 향하지도 않았는데, 그가 체포된다는 건 그가 무슨 죄를 지었기 때문일까? 아무리 살인을 막는다곤 하지만, 범죄예방국의 예방과 처벌 방식은 논란을 피할 수는 없어 보인다.
거의 완벽한 예측과 현장(?) 검거를 통한 도시 내 살인사건 0건을 만들어낸 범죄예방국의 예측 시스템은 약물중독자의 자녀로 태어나 유전 자 변이로 예언이 가능하게 된 3명의 예언자들의 예언을 토대로 한다. 예언자들은 꿈에서 항상 ‘미래의 살인 현장’을 보기에, 그들의 꿈을 영상화하여, 해당 영상을 토대로 어떤 사람이 언제 범행을 저지를지 미리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시스템을 구현한 것이다. 이것은 물론 앞 서 밝힌 행동과학적인 토대를 두고 있다고 보긴 어려울 것이다. 예언자는 그저 미래의 피의자와 피해자를 그리고 범행 시각만을 말해줄 뿐 이다. 그들에게 왜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인지는 그들의 소관이 아니다. 시스템에 회의를 느껴 조사를 나온 법무부 사람에게 수사관은 이 시 스템은 ‘행동만 예측할 뿐, 의도는 예측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람을 왜 죽이려고 했는지, 실제로 죽이려고 한건지, 죽이는 척만 하려다 말건지는 관심 밖이라는 것이다.
과학적인 논리에 근거하지 않는데도, 이런 예언자들의 예측이 정확하다는 범죄예방국의 논리는 실제로 살인 범죄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하 지만 그들의 논리는 한 가지 면밖에 보지 못한 것이다. 심리학에서도 통계적 자료를 근거로 예측을 할 때는 흔히 2가지 방향의 오류의 가능 성을 감안한다. 그 중 하나가 실제로 (범죄자인데) 아니라고 예측하는 false negative, 반면에 실제로는 (범죄자가) 아닌데도 맞다고 할 false positive가 있을 수 있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르면, 피고가 유죄인데 무죄라는 영가설을 잘못 유지하는 2종 오류가 전자, 피고가 무 죄인데 영가설을 기각하여 유죄 판정을 내리는 1종 오류가 후자로 대응될 수 있을 것이다. 범죄예방시스템이 살인 사건이 씨가 마르게 한 건, 시스템이 범죄자인데 일반인으로 잘못 예측하는 false negative의 오류는 범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반면, 일반인인데 범죄자 로 잘못 판명되어 교도소로 보내진 다른 오류의 가능성은? 당연히 남는다. 결국, 영화 속에서도 주인공 역시 중간 이후로는 자신이 억울한 사람을 잡아넣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반성하고, 시스템에 대한 회의를 갖는다.
실제로 시스템은 절차상으로도 false positive의 가능성을 포함한다. 예언자 3인의 영상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간혹 2명은 해당 사람의 살인을 예언해도, 1명의 예언자는 그 사람이 살인하지 않을 것으로 예언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 다수의 예측과 차이를 보이는 1명의 예측 을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라고 하게 된다. 세상에 시스템에 오류 가능성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한 범죄예방국장은 그러한 마이 너리티 리포트는 실제로 보고되진 않고, 하나의 백업만 남기고 자동 삭제되도록 하고 있었다. 그간 ‘미래의 살인자’를 잡아보기만 했던, 주 인공 존 앤더튼은 곧 있을 살인 사건에서 자신이 피의자로 예측되자, 이것은 누명이라 생각하고 스스로의 억울함을 풀고자 이 마이너리포 트를 찾기 시작한다.
타인을 처벌하기만 하는 장면에서는 한번도 시스템의 의심을 품지 않던 앤더튼 반장은, 자신은 ‘살인을 할 사람’이 아니라며, 그제서야 시 스템의 오류가능성을 탐색한다. 그 말을 달리하면 그간 체포한 피의자들은 그 특성상 다 살인을 할만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의심없이 교 도소로 보낼 수 있었던 것일까?(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가기에 교도소의 풍경은 어둡고 냉혹하기만 하다.) 존 앤더튼 반장은 은연 중 에 다른 이들의 범죄는 모두 그들 내면의 범죄 인자에 근거할 것이라고 내부 귀인하고, 자신은 내면의 그런 인자가 없기 때문에 살인 하지 않는다는 기본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를 범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앤더튼은 이 후 상황적인 부분에 이끌려 실제 로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이런 잘못된 근거로 체포된 ‘살인미수자’들은 살해 동기나 교화가능성을 떠나서 처벌만을 위해 교도소에 수감된 다. 불륜을 저지른 부인을 살해하려던 남편이 살해직전 멈췄다면 남편이 감옥에 가지 않고도, 부부는 다른 선택지를 가질 수 있지 않았을 까?
살인자는 모두 악한가? 원론적인 이 질문 속에 우리는 범죄 행동이라는 것은 비단 개인 스스로의 특성이나 동기 뿐 아니라 상황적인 요소 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자기 아들을 죽인 원수를 보자마자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그 아버지의 마음을 사악하다고 할 것인가? 범죄 행동이 여느 행동과 다름없이 개인 내적인 부분과 외적인 부분이 함께하는 함수라는 것은 그만큼 범죄 예측을 어렵게 만드는 부분이겠지만, 한편으론 역시 어떤 사람이 죄를 범했다고 무조건 악인으로 매도하고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일 것이다.
출처:한국심리학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