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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과 무기 鄭 木 日수필가 (한국문협 부이사장.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 터키 여행 중에 톱카프 궁전의 보물관을 관람하였다. 톱카프 궁전은 오스만제국 25명의 술탄(황제)이 생활하던 곳이다. 흑해를 넘어 아라비아반도, 아프리카 대륙까지 영향력을 미쳤던 오스만 왕국의 심장이다. 이 곳의 보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보물을 소장하고 있는 곳 가운데 하나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물방울 다이아몬드도 소장하고 있다. 보물관을 관람하는 여인들의 눈에선 광채가 돌고 경탄하며 시간을 끌지만, 남자들은 대개 덤덤하게 자리에 머물지 않고 지나치고 만다. 아내나 애인에게 보석을 사 줄 형편이 되지 않은 남자들이 더 많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다이아몬드를 비롯하여 에메랄드, 사파이어, 루비, 산호, 진주, 오팔, 터키석, 토파즈…. 보석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가 있음을 알았다. 특수 유리로 된 진열장 안에 제 각각의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는 보석들…. 현혹되거나 전율이 느껴지지 않는다. 혹시 미(美)에 대한 불감증이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 본다. 희귀한 보석들이 많고, 보석들이 제 각기 아름다움의 경연을 펼치고 있기에 오히려 무감각해지는 게 아닐까 싶다. 보석들이 천하제일인 양 제 모양을 뽐내고 있으나, 모두 아름답다면 눈에 잘 띄지도 않는 법이다. 정직하게 말한다면 평생에 소유해 보지도 않았기에 보석에 대한 무식의 소치일 수 있다. 톱카프 궁전의 보물관에 진열된 보석들에서 터키의 영광과 힘을 본다. 저 보석들은 무기의 힘으로 번쩍거리고 전쟁의 노획품과 상납품으로 놓여있다. 강대국의 힘에 의한 예물일 수도 있다. 보석들엔 아름다움만이 아닌, 피와 살육의 냄새도 깃들어 있다. 유리 진열장 속에 들어있는 호화찬란한 보석들은 왕족이나 황실의 귀족들에게 권위와 명예를 돋보이게 하는 최상의 장식물이었다. 여성 관람자들은 자신이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걸고 사파이어 반지를 끼고서 무도장에 나타난 모습을 상상하면서 황홀감에 잠기는 모습을 그려보고 있지 아닐까. 보석이 귀중하고 가치로운 것은 아름다움의 영구성이다. 인간은 늙어가도 보석의 미는 영원하다. 보석들은 세공사(細工士)의 솜씨에 따라 모양과 아름다움이 다르겠으나 공통적으로 태양이나 꽃의 모습을 띠고 있다. 태양이나 꽃은 미의 원천이며 완성이랄 수 있다. 무 생명체인 보석은 영원성을 가졌으나, 생명체인 인간은 유한성을 지녔을 뿐이다. 보물관의 보석들에선 피와 화약 냄새가 난다. 무력과 음모와 술수의 눈빛이 있다. 아름다움이란 부강과 권세의 한 순간에 잠시 핀 꽃이 아닌가. 진열장 속의 보석들은 이미 아름다운 시· 공간의 존재와 가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풀꽃 반지를 애인에게 끼워주고 포옹할 때처럼 지금 이 순간의 교감이 있어야 한다. 톱카프 궁전엔 무기관도 있어 대조를 보였다. 무기 진열장을 관람했다. 칼, 활, 창, 총, 방패 등이다. 무기 진열관에서 자못 놀란 것은 사람의 생명을 끊기 위해 만든 무기들이 아름답다는 데 있다. 무기란 보는 것만으로도 살기(殺氣)와 공포를 안겨주어 떨게 만들어야 제격이다. 무기들이 아름다운 형상으로 보여서 이상야릇하기만 했다. 칼의 매끈하게 뻗은 선과 첨예하게 날카로운 칼날에 공포는커녕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데에 놀람이 뒤따랐다. 칼이나 창은 생명을 앗아가는 냉혹감과 전율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생명을 빼앗아야 하는 무기들의 미끈한 선(線)과 날렵한 형태에서 순간적으로 저런 아름다운 칼날이나 창끝에 생명을 잃게 될지라도, 병사는 후회가 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무기에 대한 공포심이나 증오감 대신에 어째서 칼, 창, 방퍠 등에 미적인 감각을 부여하고 치장하여 마치 무기가 최상의 장식물처럼 느껴지게 한 것일까. 칼과 창, 방패 등에 최대한의 미적인 요소를 살리고 있다. 보석으로 장식한 무기들도 있었다. 무기에 보석을 박아놓은 것은 황제용이거나 황실의 귀족과 장군들이 쓰던 것임을 말해 준다. 전쟁터에 나가는 일은 곧 생사가 달린 일생일대의 모험을 건 일이기에 전사(戰士)에게 무기는 곧 생명이요, 보석 이상의 의미가 있다. 생명을 지키고 보존케 하는 최상의 무기이자 장식품이었을 것이다. 전시관에 진열된 무기들에선 생명을 걸고 싸워야 했던 인류의 삶과 역사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생명을 거두어야 하고, 영역을 넓히기 위해 전쟁을 수행해야 했던 생존경쟁의 먹이사슬이 보인다. 살벌한 무기에 미의식을 부여한 것은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심리가 반영된 게 아닐까. 톱카프 궁전의 보물관과 무기관을 관람하고 역사와 문화를 생각한다. 인간이 추구하는 목표점엔 평화와 아름다움이 있다. 이를 위해 영역과 부(富)를 확보하려는 전쟁이 도사리고 있다. 전쟁 없는 평화와 아름다움을 어떻게 찾고 유지할 것인가. 보석과 무기는 이런 질문을 관람자들에게 던지고 있다. |
첫댓글 선생님, 안녕하시지요?
작년처럼
새해에도 이렇게 빛나는 작품을 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
올해도 건강하시기를 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저는 보석을 탐내본 적이 없습니다. 탐내면 안 되는 것 중 하나라고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나 봅니다. 선생님 글을 보니 더더욱 탐낼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새해 더욱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감동입니다. 이사장님께서 이렇게 까페에 글을 주시니 후배들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