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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고대사 원문보기 글쓴이: 白山사람
[밝은 앞날 되시기를][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영원히 살 것처럼 계획하고, 하루 살다 죽을 것처럼 실천하라.] [ 이상 없는 현실은 무의미하고 현실 없는 이상은 존재할 수 없다.] ------------------------------------------ |
먼저 면의 생산을 고대한국에서 먼저 했다는
박선희 상명대 교수의 주장을 대강 보면 다음과 같다. (언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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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점 이전에도 한국에 목화 있었다.
[동아일보 2003-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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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면직물이 생산된 것은 고려 공민왕 때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들여온 이후가 아닙니다.
한반도에서는 적어도 삼국시대 이전부터 면직물을 생산했습니다.
문익점이 들여온 것과 품종이 달랐을 뿐 입니다.”
상명대 사학과 박선희(朴仙姬·50) 교수는 고대 한국에서도 면직물을 생산했다 고 주장한다.
그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양서(梁書) 등 고문서를 보면 ‘백첩포(白疊布)’라는 면이 있었다 는 기록이 나온다”고 근거를 들었다.
박 교수는 최근 펴낸 ‘한국 고대복식, 그 원형과 정체’(지식산업사)에서
한국 고대복식의 기본 재료를 분석하고
바지 치마 관모 갑옷 등 고대복식의 기원을 밝혔다.
이 책은 학계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왔던 고대복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난 5년간 복식사 연구에만 매달렸다는 박 교수는 이 책을 통해
한국이 모, 마, 면직물 등을 가공하고 직조하기 시작한 연대가 중국과 비슷하거나 앞선다고 주장한다.
고조선이 뼈와 가죽, 청동 등을 재료로 동아시아에서 가장 빨리 갑옷을 만들었다는 주장도 덧붙인다.
“한민족의 고대복식 문화가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잘못된 통설’입니다.
복식뿐 아니라 생활 문화 전반에서 고대 한국은 나름대로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
박 교수는 “그 동안 한국 고대복식사 연구는 1947년 출간된 이여성(李如星)의 ‘조선복식고’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전개해 왔다”고 지적했다.
복식사 연구 초기 단계에 쓰여졌던 ‘조선복식고’는 한국의 복식 문화가 중국이나 북방 민족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바탕에 깔고 있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중국과 한국의 고문헌 유물을 조사, 정리한 내용을 제시 했다.
그는 “ 복식을 매개로 삼아 고대 한국이 중국보다 앞선 문화를 영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 할 수 있을 것 ”이라고 강조했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017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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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박선희 교수는 한국이 모, 마, 면직물 등을 가공하고 직조하기 시작한 연대가
중국과 비슷하거나 앞선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삼국사기(三國史記), 양서(梁書) 등에 나오는 ‘백첩포(白疊布)’ 이야기를 한다.
백첩포(白疊布)
고대중국에서는 고대한국을 백국(白國) 또는 백민국(白民國)이라고도 불렀다.
한국이 [백의민족]이라 칭해졌던 것도 단지 하얀 옷을 즐겨 입었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산해경(山海經)의 대황동경(大荒東經)]편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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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荒中有山 名曰明星 日月所出 有白民之國
帝俊生帝鴻 帝鴻生白民 白民銷姓 ]
(산해경 - http://khaan.net/history/chinadata/sanhaekye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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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대황(大荒)의 중심(中)에 산(山)이 있는데
이름이 명성(明星)이다. 해와 달이 뜨는 곳이다.
거기에 백민(白民)의 나라가 있는데
준(俊)임금이 홍(鴻)임금을 낳았고 홍(鴻)임금이 백민(白民)을 낳았다.
백민(白民)은 무쇠(금속)을 만드는 사람들(겨레 : 姓)이다. (白民銷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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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경(山海經)의 대황동경(大荒東經)]편은 대황의 동쪽
즉 북한과 만주에 대한 이야기.
그런데 이를 또한 [대황(大荒)의 중심(中)]이라 한 것은
문명의 시작이 동방 즉 한반도 만주에서 시작했다는 얘기.
위에 나오는 [대황(大荒)의 중심(中)]은 압록강변 [집안]을 중심으로 한
고대한국 제3차 중심지에 대한 이야기로 본다.
현존하는 중국 최고(古)의 책이라는 [산해경]은
[백민(白民)의 나라]가 거기에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白(백) - 갑골문]
[출처- http://www.internationalscientific.org/CharacterASP/]
위에서 보이듯이 [白(백)]자의 고대형은
1. 日 즉 태양과
2.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은 모습과
3. 목화솜에서 실을 뽑아내는 모양을
복합적으로 (함축적으로) 그리고 있다 하겠다.
이는 [백민(白民)]이 해뜨는 동방에 살고
중국보다 먼저 목화솜에서 실을 뽑고
중국보다 먼저 누에를 길러서 비단을 만들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겠다.
[白(백) - 전서]
위 글자들을 보아도 [白(백)]자가
1. 태양(日)
2. 실타래
3. 목화솜,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내는 모양을
동시에 그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위 그림에서 [태극]의 모습도 볼 수 있다 하겠다.
한민족은 스스로를 [백성(白姓)]이라는 말을 많이 써왔는데
이는 [백(白) 겨레(姓)]라는 말.
성(姓)은 본래 성씨를 뜻하기 이전에 민족, 겨레를 뜻하는 한자.
후대에 [백성(白姓)]의 [백성(百姓)]으로도 바꿔 썼지만
원래는 [백성(白姓)]
한민족은 스스로를 [백(白) 사람들]이라 불러왔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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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acter: 白
Preclassic Old Chinese: brāk
Classic Old Chinese: brāk
[출처 - http://starling.rinet.ru/cgi-bin/query.cgi?basename=\data\china\bigchina&root=config&morpho=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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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보이듯이 [白(백)]은 고대에 [브락(brāk)] 즉 [블악]이라 읽혔다.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마을을 [부락(불악)]이라 한다.
그리고 [브락(brāk)] 즉 [ㅂ락]을 한음절로 압축시킨 말이 [밝]이라 하겠다.
고대 동방(東方)에 백민(白民)이 살았다. <- 관련글
목화는 한자로 [면(綿)] 또는 [면(棉)]이라 하는데
공통점이 [帛]
이는 [백민(白民)이 만들던 巾 (수건 건, 헝겊 건)]이라는 의미로 본다.
그리고 [帛]는 지금 [비단 백]으로 통용되는 글자인데
비단 역시 [백민(白民)] 즉 고대한국인이 먼저 만들던 것으로 본다.
고대한국은 솟대와 비단의 나라 <- 관련글
즉 비단이나 면이나 다 고대한국에서 시작됐다고 보는데
삼국유사에 환웅(桓雄)임금께서 여셨다는 [신시(神市)]
신시(神市)의 [시(市)]는 [帛]와 상통한다 하겠다.
[帛(비단 백)]은 [白의 巾]
즉 [백민(白民)이 만들던 巾 (건)]
[巾(건)]은 지금 [수건, 헝겊]의 의미로 쓰인다.
즉 직물(천, 옷감)을 뜻한다.
[巾(건)]의 원형은 기둥에다가 천을 달았던 것인데
지금도 한국의 성황당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성황당
[출처 - http://www.idaegu.co.kr/gisa.html?uid=153434&verysmall=1&letters=1]
원래 한국에는 마을마다 [성황당(聖皇堂)]이 있었다.
동네의 [성황당]은 고대한국 중심지의 거대한 [원조 성황당]에 비하면
아주 작고 조금 흉내낸 것에 불과하다.
고대한국 중심지의 [원조 성황당(聖皇堂)]은 대단히 크고 훌륭하다.
성황당(聖皇堂)의 원조는 고대한국 피라미드 <- 관련글
하지만 [동네 성황당]에서 고대한국 중심지의 [원조 성황당]의 모습의 흔적을 일부 볼 수 있다 하겠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위 사진 처럼 깃발을 단다는 것.
즉 색색의 천들을 단다는 것.
신시(神市)의 [시(市)]에도 [巾]이 나오는데
이는 천으로 된 깃발이 고대한국 중심지의 상징 중 하나였다는 것인데
이는 천(옷감) 만드는 기술을 알리는 면도 있었을 것이고
염색기술을 알리는 면도 있었을 것이고
각 색깔이 가진 의미를 공표하는 면도 있었을 것이다.
▲청양군민화합한마당 잔치인 제47회 군민의날 기념 체육대회에서 남양면민들이 입장을 하고 있다.
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780263
청양군민축제에서도 [巾(건)]의 흔적이 나온다.
위 사진들에서 보이듯이 고대한국의 주요색은 파랑 빨강 노랑 하양
위에서 보이듯이 한국 전통 북 색깔도
파랑 빨강 노랑 하양
+ 녹색
북 가운데 [삼태극]이 파랑 빨강 노랑 의 전형이고
북면에 색이 칠해져 있지 않은 부분(가죽 : 누르스름해 보인다)는 하양
색이 안칠해져 있으므로 하양 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한국 전통북 중에는 그 부분을 하얀색으로 칠한 북도 많다.
고대한국의 전통은 [색동옷]에도 이어내려왔다 하겠는데
색동옷은 주로 명절 등 중요한 날에 입는다.
위에서 보이듯이 색동옷의 주요색도
파랑 빨강 노랑 하양
+ 녹색
신성한 고대한국 중심지에 형형색색 원색의 천(깃발)들이
휘날리고 있었다는 것을 추정 할 수 있다 하겠다.
고대한국의 전통은 단청에도 이어졌다 하겠는데
단청의 주요색도 파랑 빨강 노랑 하양
+ 녹색
미국 맨하탄 브로드웨이의 한국 농악대 행진
한국 농악대는 검정 옷도 입는다.
파랑 빨강 노랑 하양
+ 녹색 + 검은색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634761
서울 경복궁 근정전에서 열린 '2007 훈민정음 반포 재현'행사에서
세종의 광화문에서 숭례문 방향 어가행렬을 재현하고 있다.
역시
파랑 빨강 노랑 하양
+ 녹색 + 검은색
고종·명성황후 가례재현 행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2333112
위 사진을 봐도 역시
파랑 빨강 노랑 하양
+ 녹색 + 검은색
[검다]의 [검]은 [단군왕검(壇君王儉)]의 [검(儉)]과 상통한다 하겠는데
[검(儉)]은 [僉(다 첨)의 사람]이라는 뜻으로
[ 정신, 물질 양면에서 모두 다 가지고 있는 고대한국 중심지의 사람]을 뜻한다.
(보강) 도대체 僉은 무엇인가 <- 관련글
모든 색을 다 섞으면 [검은색]이 된다.
그래서 [검은 색]은 많은 종류의 색깔의 물감을 만들 수 있다는 증거가 된다.
많은 종류의 색깔을 섞을수록 완벽한 검은 색 이 되므로.
그래서 검은 색은 한국인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색깔 중 하나가 되었다.
모든 색깔의 빛을 다 섞으면 흰색 빛이 된다.
그래서 흰색은 한국인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색깔 중 하나가 되었다.
태양이 떠오를 때는 붉지만
다 떠오르면 하얀색이 된다.
모든 색깔의 빛을 다 모으면 하얀색 빛이 된다.
학교에서 과학시간 수업내용에도 나오듯이
파랑빨강 노랑 은 색의 3원색
파랑 빨강 녹색 은 빛의 3원색
파랑 빨강 노랑 을 섞으면 [모든 종류의 색]을 만들어 낼 수 있고
파랑 빨강 녹색 빛을 섞으면 [모든 종류의 색깔의 빛]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위 사진들에서 본 한국 전통의 대표적 색깔들
즉
파랑 빨강 노랑 녹색 하양 검은색
이 6가지 색들은
1. 색의 3원색
2. 빛의 3원색
3. 모든 색의 물감을 다 석으면 나오는 색 - 검은색
4. 모든 색의 빛을 다 모으면 나오는 색 - 하양
이렇게 빛과 물감의 색의 근본을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물감과 빛의 색의 근본
즉
세상 모든 색들의 근본을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태극기는 노랑과 녹색은 빠졌지만
최대한 간략하게 세상 모든 색들의 근본을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 5~6천년전 지구기온이 높아서 바다물이 들이찼을 때 지형도를 대강 그려본 것.]
당시 [한반도-만주]는 [섬]이었다.
[간도(間島)]라는 말은 원래 저 [섬]
즉 [한반도-만주] 전체를 이야기 하는 말.
이 섬(한국)을 [간(間)] 또는 [도(島)]라 불렀는데
[도(島)]라는 것은 원래 아무 섬이나 말하는 것이 아니라
[山 즉 고대한국 중심 3연성 피라미드]가 있고
[봉황(鳥)]이 사는 곳을 이야기한다.
간도(間島)의 비밀 - 山 은 고대한국 3연성 피라미드 <- 관련글
1만 수천년전부터 지구기온이 차차 올라가기 시작하여
5~6천년전에 최고조에 달했다가
차차 내려가서 현재에 이른다.
5~6천년전에는 지금보다 기온이 높아서
고대한국 중심지가 북상하여 압록강변에 존재한다.
장군총, 태왕릉은 고구려보다 훨씬 전 작품 <- 관련글
고대한국에서는 적어도 5~6천년전에는 목화가 재배되어 면이 생산되고 있었다고 보는데
지구기온이 현재보다 높아서 한반도 북부, 만주의 기온이
대강 현 한반도 중남부 정도 되었을 것이므로
목화를 생산하기에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또는 지금의 중국남부처럼 따뜻했던 당시의 한반도 중남부에서 생산된 목화를 가져다가
면으로 만들었을 (가공했을) 수 있다.
물론 [한반도]에서도 계속 면을 생산했겠지만
5~6천년전부터 기온이 추워지면서 기를 수 있는 목화의 종류도 달라지는 등
대량생산에 어려움을 겼었을 것으로 본다.
후에 문익점이 중국남부 목화를 다시 들여와서
한반도에서도 대량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볼 수 있다 하겠다.
크게보면 지구기온 변화에 따른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한 문익점의 노력이었고
많은 사람들을 생각했던 문익점의 그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한국에서 만들었던 면을 [백첩포(白疊布)]라 불렀다는 것도
고대한국 즉 [백민(白民)]이 최초로 길렀던 면에 대한 자부심이 배어 있을 것이고
한국의 선조분들이 비록 지구기온 변화에 따른 어려움으로 많은 고생을 하셨을 것이나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국 중국으로 전파되었던 대량 생산 가능 목화를 다시 역수입하여
그것을 추워진 한반도에서도 기를 수 있는 기술을 다시 개발하여
고대한국처럼 풍성한 종류의 목화를 생산하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보고
비록 역수입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는 전통의 계승과 발전이라 하겠다.
한자 역시 마찬가지 경우라 하겠다.
'중국글자'로만 알았던 한자
은나라 갑골문이 최초인 것으로 여겨졌던 한자가
그보다 천년 더 앞선 골각문자들이 발견되고 이에 대해서 언론에 까지 나왔다.
중국 동해안, 만주에서 은나라 갑골문보다 더 빠른 한자들이 이미 많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학계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하겠고
이번에 중국학자들이 그 일부를 발표한 것.
갑골문자보다 천년 앞선 동이(한민족) 골각문자 발표 <- 관련글
백두산공정이니 뭐니 하면서 압록강변 고대사 훔쳐가기에 그토록 광분하는 중국당국의 처사는
다 그들이 그런 어이없는 짓을 감행하는 이유가 있다 하겠다.
북경대 등 저명하다는 중국사학자들이 '동북꽁정의 무모함'을 경고하기도 하는데도 불구하고
욕심에 눈이 어두운 중국 일부 인사들의 대중속이기는 이제 그만 중단되어야한다.
누가 아무리 역사왜곡에 광분해도
역사적 진실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역사적 사실은 영원히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
과거의 사실이 어떻게 바뀔 수 있겠는가.
사람은 단지 겸허하게 역사의 교훈을 받아들일 수 있을 뿐.
그리고 역사의 진면목을 계승, 발전시켜야 하는 것일 뿐.
지나친 탐욕은 영혼을 피폐하게 한다.
[밝은 앞날 되시기를][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