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짝사랑을 아시나요?
1차 방정식보다 사랑 방정식을 먼저 배웠다. 중학생 때 열심히 훔쳐본 강철수 만화 ‘사랑의 落書(낙서)’ 덕분이다. 큰형이 사 들고 오는데 배길 수가 있나. 숱한 이야기 가운데 희미하나마 새겨진 한 토막이 있다. 친구들과 내기 걸고 한 여인을 꾀려다 퇴짜 맞은 남자. 그날로 상사병(相思病) 걸려 허구한 날 치근덕거리지만 헛물만 켠다. 애처로운 짝사랑이 깊어지는데….
‘과거엔 직장인 루틴이 외모와 관련된 것이었다면 이제 점점 내면 관리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습관, 일상(日常), 일과(日課), 규칙적 행동…. 굳이 ‘루틴(routine)’ 아니어도 알맞은 우리말이 얼마든지 있건만, 낯선 외국어를 더 애틋이 여긴다. 자신만 시들게 하는 짝사랑 아닌가.
“그에 대한 ‘리스펙트’를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침 이슬’ 발표 50주년을 맞은 김민기를 기리는 뜻을 ‘리스펙트(respect)’라 표현했다. ‘존경심’ ‘경의(敬意)’ 정도로는 마음 충분히 담기 어려웠을까. 훌륭한 예술인 대하듯 우리말도 좀 받들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
시들까 걱정인 말이 이뿐인가. ‘백팩을 멘 그는 국회 본청 주변 따릉이 주차장에 자전거를 두고….’ 안성맞춤 ‘배낭(背囊)’ 대신 기어이 영어를 써야 기사가 되나 보다. ‘(기획) 상품, 기념품’도 ‘굿즈(goods)’에 자꾸만 자리를 뺏긴다. 멀쩡한 게 그득한데 한사코 외식(外食)하면 내 집 음식이며 살림은 어쩌려고. 언택트(→비대면), 패싱(→따돌림, 배제) 같은 콩글리시는 말할 것도 없다.
‘외래어·외국어 남용으로 우리 스스로 가치를 잊은 우리말과 글의 위상을 되찾는 일.’ 조선일보가 ‘다시 쓰는 우리말 사전’ 펴내며 쓴 이 말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참, 노상 쫓아다니던 그 친구, 어느 날 결단한다. 일부러 사라져버린 것이다. 날이 갈수록 그리움에 사무치는 여인…. 그렇게 짝을 얻은 만화 주인공한테 들어보자.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