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비오롱의 가락긴 흐느낌
가슴에 젖어들어
서러웁기만 하네
종소리 울려오면
가슴은 막혀
창백한 옛기억들
눈물 흘리네
아 나는,
휩쓸려가는 바람에
이리저리 나뒹구는
낙엽같아라
이 시는 베를렌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베를렌은 처녀 시집 '사튀르니앵 시집'에서부터 상징주의의 경향을 찾아 볼 수 있다. 상징주의자들은 시에서 음악성을 상당히 중요시했는데 이는 사물에 뚜렷한 이름을 붙이는 것이 시흥의 4분의 3을 말살하는 것이라고 말한데서 알 수 있다. 이러한 음악성은 '암시'를 통해서 발현되고 이 암시는 곧 상징을 말하는 것이다.
이 시도 가을날의 쓸쓸한 심정을 표현하는데 상당한 음악적 요소가 보이고 있다. 인간 심연의 바닥에 깔린 감성을 음악적인 상징으로써 이끌어 내고 있는데, "바이올린의 긴 흐느낌"은 화자 내면의 우울한 마음을 달래 주는 역할을 해내고 2연의 청명이 울리는 '종소리'는 옛날의 기억 속에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이와 같은 청각적 심상과 가을 이미지의 일치는 음악성을 통한 시적 효과를 충분히 느끼게 한다.
프랑스의 시인들 가운데 가장 순수한 서정시인의 한 사람인 베를렌은 근대 언어 음악의 선구자였고, 낭만주의에서 상징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대표한다. 그의 훌륭한 시들은 대부분의 선배 시인들한테서 볼 수 있는 과장된 수사법을 버리고, 지성을 무장해제함으로써 독자를 사로잡는 암시와 떨리는 듯한 막연함을 통하여 일상적인 상투어를 포함한 프랑스어가 인간 감정의 새로운 이면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는 낱말들이 단순히 그 소리만으로 사용되어 좀더 미묘한 음악, 즉 낱말의 일상적인 의미보다 훨씬 더 강력한 마법의 주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의 가장 훌륭한 작품에는 명쾌하고 지적인 또는 철학적인 내용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프랑스어의 내밀한 음악성을 발견한 것은 분명 본능적인 것이었지만, 가장 창조적이었던 시기에는 자신의 독특한 재능을 개발하고 프랑스 문학의 시적 표현을 '개혁'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의식있는 예술가이기도 했다.
가을의 노래
('악의 꽃' 중에서)
샤를 보들레르
1.
머지않아 우리는
차가운 어둠 속에 잠기리.
잘 가거라, 너무나 짧았던 여름의 눈부신 빛이여!
벌써 마당 돌바닥에
장작 부리는 소리가
음산한 충격으로 내게 들려온다.
겨울의 모든 것들이
내 안으로 다시 돌아오겠지.
분노, 증오, 전율, 두려움, 피할 수 없는 고역.
내 마음은
북극의 지옥에 갇힌 태양처럼
붉게 얼어붙은 덩어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귓전에 들리는
장작 던지는 소리 하나하나에
몸서리친다.
단두대를 세우는 소리도
이렇듯 음산하지 않으리.
내 정신은 육중한 망치를 얻어맞고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탑과 같구나.
저 단조로운 충격이 내 마음을 흔들어
어디선가 급하게 관에 못질하는 소리로 들린다.
누구를 위해서일까,
어제는 여름이었고 지금은가을인가!
떠날 때를 알리는 것처럼 들리는 야릇한 그 소리.
2.
나는 그대의 긴 눈동자에 어리는 푸르스름한 빛을 좋아해.
다정한 사람이여,
그러나 오늘은 모든 것이 씁쓸하네,
당신의 사랑, 아담한 방, 난로,
그 어느 것도
바다 위에 비치는 햇빛만은 못하지.
하지만 사랑해 다오.
다정한 그대여!
어머니로 있어 다오.
어머니가 되어 다오,
배은망덕한 자에게도,
건달에게도.
여인이든 누이든,
찬란한 가을이나 석양의
짧고 덧없는 순간의 행복이 되어 다오.
잠깐의 노고!
무덤이 기다리네, 게걸스레!
아! 그대의 무릎 위에
내 이마를 얹은 채,
정열의 하얀 여름을 그리워하며,
늦가을의 온화하고 노란 햇살을
맛보게 해 다오.
이 시는 '악의 꽃' 재판에 수록되어 있는데, '처녀와 같은 순진성'을 지닌 여배우 마리 부뤄노에게 바쳐진 작품이라고 한다. 초조하고 불안한 가을의 상념을 노래한 시이다. 1부는 닥쳐올 겨울의 음울함과 음향이 갖는 불길한 예감을 보여주고 2부에는 인생의 늦가을에 따뜻한 사랑의 정을 애원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제 2부에서 "낙조의 한 순간, 그 따스한 정을 베풀어주오"라고 노래한 대목은 그의 실연을 암시한 듯하다.
보들레르 (Baudelaire, Charles-Pierre) [1821.4.9~1867.8.31]
보들레르의 서정시는 다음 세대인 베를렌 ·랭보 ·말라르메 등 상징파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며, 죽은 지 10여 년이 지나서야 그의 문학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었다. 발레리는 “그보다 위대하고 재능이 풍부한 시인들은 있을지 모르지만, 그보다 중요한 시인은 없다”라고 절찬하였다. E.A.포의 지적 세계에 감동하여 낭만파 ·고답파의 구폐(舊弊)에서 벗어났으며 명석한 분석력과 논리와 상상력을 동원하여 인간심리의 심층을 탐구하고, 고도의 비평정신을 추상적인 관능과 음악성이 넘치는 시에 결부한 점에 그의 위대성이 있다.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