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2월 31일, 새해 첫 날은 태국에서 맞이하게 되었다.
아침 일찍 체크아웃하고 호텔 맞은편으로 건너가서 우리가 예약한 여행사를 찾아 서성거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처음보는 사람이 나타나서 우리에게 행선지를 묻고는 티켓을 건네주면서 아까부터 서 있던 뚝뚝을 타라고 알려준다.
터미널에 가서 훼이싸이행 버스를 찾아서 일단 지붕 위에 배낭을 싣고 자리를 잡으려는데 빈자리가 없다. 사람이 앉아있거나 가방따위 물건으로 선점을 해 놓은 것. 운전기사에게 티켓를 보여주며 왜 자리가 없느냐고 했더니 티켓을 받아서 들여다보고 차 안쪽을 들여다보고 하더니 들어가 앉으라는 앉으라는 제스처를 한다. 막 앉아도 될까? 어영부영 의자에 놓인 짐을 비켜 놓으며 엉덩이를 걸치다가 무심코 우리 티켓을 들여다보니 웬일인가? 좌석 번호가 적혀있다. 그것도 지금 엉거주춤 앉아있는 바로 이 자리, 로얄석^^. 이 허름한 버스에 좌석표가 있었다니, 마치 횡재한 기분이다. 당당하게 의자에 놓인 물건들을 복도로 내려놓고 편하게 앉았다. 중간에 버스가 고장이 나서 30분 정도 쉬었다가 가는 불상사가 있기는 했지만 루앙파방 부근에 비하면 비교적 무난한 길이었다.
(차를 고치는 동안 아이들이 그네타는 걸 구경하기도)
5시간을 달려 훼이싸이에 도착했는데, 많은 여행기에서 혹은 여행정보 사이트에서 읽고 외워 두었던 선착장 따위는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있었다. 선착장이야 물론 없어지지 않았겠지만 메콩강 위에 다리가 개통이 되어서 국경을 넘기 위해서 배를 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12월 중순부터 새 국경이 열렸다고 하는데 다리가 놓인 곳은 이전의 씨앙콩-훼이싸이 국경보다 남쪽으로 많이 떨어진 곳이다. 덕분에(?) 훼이싸이 시내는 들어가지 않고 터미널에서 바로 국경으로 이동했는데 썽태우 기사의 횡포가 가관이었다. 마침(혹은 담합 때문에?) 터미널에는 썽태우가 한 대뿐이었는데 물어보니 국경까지 일인당 120밧을 달라는 것이다. 이건 너무 비싸잖아? 흥정을 시작하려는데 이미 안에 타고 있던 현지인들(혹은 태국인?)이 큰 소리로 항의하니 60밧으로 내려간다. 단번에 절반으로 ㅋㅋㅋ. 우리는 바트가 없어서 5만낍짜리를 주었는데 잔돈 없다며 어디론가 다녀와서 3만 얼마를 거슬러 준다. 2인분 120밧이면 3만낍인데...... 산수를 잘못했는지 한 사람으로 착각을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애초에 바가지를 씌우려 한 게 얄미워서 모른척 다 받아 넣었다.
새 건물에서 출국 수속을 밟고 셔틀을 타고 다리를 건너 태국으로 가니 거기도 물론 새 건물이다. 입국 심사대가 세 군데 있고 내국인용 아세안용 등으로 구분이 되어 있어서 "우린 어디로 가는 거야?" 하며 두리번 거리는데 "아무데나 가셔도 되요" 한국말이 들린다. 치앙콩에 살면서 훼이싸이 호텔에서 일한다는 한국 사람이다. 의례적인 인사를 나누고 각자 입국 수속을 마쳤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어디 가서 차를 타야하나 둘러보는데 아까 그 한국 사람이 나타나서 어디로 갈거냐고 묻더니 치앙콩 터미널까지 태워 주겠단다. 보니 바로 앞에 승용차가 대기중이다. 부인이 승용차를 몰고 마중을 나온 것. 우리를 기다린 눈치다. 동포를 만난 덕분에 치앙라이행 버스가 출발하는 터미널까지 공짜로 잘 타고 갔다.
치앙콩에서 치앙마이까지 가는 버스 요금은 단돈 65밧, 태국의 대중교통 요금은 정말 저렴하다. 두 시간 반 정도 버스를 타는데 2,000원 정도. (나중에 치앙라이에서 화이트템플까지 20밧, 도이뚱까지 30밧, 아유타야에서 방콕까지 기차요금은 15밧이다.) 버스에 가방을 실어 놓고 출발 시간을 기다리며 시장에서 군것질도 하고, 쓰다 남은 라오스 돈을 태국 돈으로 환전도 하고.
그런데 치앙라이에 도착해서 생각하니 준비를 안 해도 너무 안 했다. 출발하기 전에는 치앙라이가 여행 경로에 없었으니 그렇다고 쳐도 왜 어제 오늘 사이에라도 정보를 찾아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한달째 여행을 하다보니 긴장도가 많이 떨어진 모양이다. 터미널에 내려서 삐끼가 안 나타나나 기다리는 지경이 되었다. 역시 뚝뚝기사 하나가 달라붙었다. 그래 정보가 좀 있겠지. 좋은 게스트하우스가 있단다. 일단 가보자. 숙소가 맘에 안 들면 60밧을 주기로 하고 뚝뚝에 올라탔는데 시내를 가로질러 어딘가 사원 근처 골목길로 들어간다. 정원이 아담해 보이는 게스트하우스였지만 그리고 매우 저렴했지만(250밧) 화장실이 없는 허름한 방이다. 안 되겠다 싶어서 근처에 다른 게스트하우스가 있냐고 물으니 주인이나 뚝뚝기사나 모르쇠다. 오늘 대목이라 방이 없을 거라는......
이때라도 검색을 해볼 걸 그랬을까? 배낭을 메고 걷기 시작했는데 오는 중에 여행사 간판과 서양인 관광객들이 보이던 길쪽으로 방향을 잡았으나 여행사도 숙소도 나타나지 않았다. 중심가로 짐작되는 방향으로 가다가 꽃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수언뚱(뚱 정원이란 뜻의 공원인데 정식명칭은 길다.)도 보고 그 옆에 야시장(여기가 치앙라이 야시장인가 보다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이곳은 토요시장이었다. 이날은 토요일이 아닌데도 시장이 열렸던 것은 아마도 12월 31일이기 때문에?)도 보았는데, 애석하게도 방향을 잘못 잡았다. 시계탑 쪽으로 갔어야 했는데 반대 방향으로 간 것, 한참을 걷다가 경찰서 뒤편 어딘가에서 숙소를 발견하고 들어갔더니 너무도 허름한 방을 보여주며 1000밧을 부른다. 정말 오늘 대목이라 방이 없는겨? 이제서야 지도를 검색해서 샛강 방향으로 숙소를 찾아가다가 길가에 호텔 간판을 보고 들어갔다. (이 동네는 간판에 영어가 인색하다. 관광도시라고 들었는데, 아닌가? 나중에 보니 웬만한 중소도시들은 사정이 비슷하다. 애국심인지, 관광인프라가 부족한 것인지. 타나팟이라는 이름의 이 호텔도 간판엔 태국 글자만 적혀있다. 옆지기님이 침대 그림을 못 봤으면 지나칠 뻔했다.) 힘들고 지쳤으니 웬만하면 자야지, 했는데 웬만한 수준이 못 된다. 허름한 콘크리트 창고에 대충 방을 들인 듯한 모습. 그러나 결국은 지친 다리와 배낭의 무게가 이겼다. 내일은 좋은 숙소로 옮기기로 하고 아까 보아두었던 야시장으로 발길을 서둘렀다. 다행히도 야시장 음식은 값싸고 맛있다.
그리고 수언뚱에서 꽃 감상.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예상 밖의 보너스다. 무슨 꽃 축제인지 박람회인지, 이곳과 강변 두 군데서 열리고 있다고.
첫댓글 넘 좋와 보이네요....그렇게 재미있게 ,현실이와 같이 보네세요....부러우네요 ^^
네, 재미있게 지내고 있어요. 이번에는 캄보디아를 또 갔거든요, 누님 생각도 얘기도 많이 했어요.
엣날이 그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