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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상운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강인철목사
신발 한 켤레의 사랑
윤영준 지음
요단/2001년 9월/448쪽
▣ 저자 윤영준
1936년 수원에서 태어났다. 침례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3년간 목회를 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골든게이트 침례신학교를 졸업했으며, 1989년에는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로스앤젤레스에서 3년간 목회를 하였고, 샌프란시스코 한인 제일침례교회 담임 목사로 섬기다가 지금은 은퇴하여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코끼리 남편』을 비롯, 감동과 유머가 넘치는 3권의 예화집을 펴내 호평을 받았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적절하게 사용된 품위 있는 예화는 빛나는 보석처럼 설교나 성경 공부나 강연의 내용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며 설득력 있게 변화시켜 준다. 이 예화집에는 강단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머를 약 60개 정도 포함시켰다. 천하지 않으면서도 웃음을 자아내는 유머는, 답답한 마음, 지루했던 마음, 시름없던 마음들을 순식간에 모두 풀어주고 생기 있게 해준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설교에서 은혜로 감동받고, 웃음으로 마음이 밝아지는 성도는 행복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 차례
1. 마른 가슴을 적시는 촉촉한 이야기
2. 찡그린 얼굴에 환한 웃음으로 피어나는 이야기
3. 험한 인생의 바다에서 등대가 되는 이야기
4. 생각의 서랍에 접어둔 못다한 이야기
1. 마른 가슴을 적시는 촉촉한 이야기
그를 위해 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바클레이는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 정거장에서 기차를 탔다. 기차가 출발한 지 약 10분쯤 지났을 때, 맞은 편에 앉아 있던 한 청년이 경련을 일으키며 의자에서 기차 바닥으로 떨어지더니 마구 몸을 뒤틀며 무섭게 떨었다. 간질이었다. 그러자 그와 함께 앉아 있던 청년이 그를 의자 위로 들어 올려 눕히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며, 머리 밑에 베개를 받쳐주고, 담요를 덮어주는 것이었다.
그 청년은 바클레이를 향하여 말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 친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습니다. 보통 한 달에 한 번 정도 간질이 오는데, 바로 이틀 전에 있었거든요. 이렇게 빨리 또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청년은 계속 말을 이었다. "이 친구와 저는 월남전쟁에서 함께 싸운 전우입니다. 이 친구는 영국인이고, 저는 미국인입니다. 베트콩과의 전투에서 우리 둘은 모두 중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저의 한쪽 다리는 날아가 버렸죠." 이야기를 계속하며 바지 부리를 걷어올리는데 자세히 보니 의족이었다.
"그리고 이 친구는 바로 자기 옆에서 터진 수류탄으로 인해 한쪽 가슴이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를 구조하러 오던 헬리콥터는 베트콩의 포화를 맞고 추락해 버렸지요. 우리에게는 죽는 일밖에는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두 발로 일어섰습니다. 그러더니 내 군복을 움켜잡고 나를 끌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한 발자국을 디딜 때마다 가슴에 박힌 수류탄 파편 때문에 신음했습니다. 나는 결국 죽을 몸이니 그냥 놔두고 가라고 계속해서 말렸지만 그는 '네가 죽으면 나도 죽는다.'고 하면서 악착같이 나를 끌고 갔습니다. 자기 혼자 살 길을 찾기에도 필사적인 상황에, 그는 결국 나를 이끈 채 정글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출되었지요."
그는 잠시 멈추더니 말을 이었다. "3년 전 나는 이 친구에게 간질 증상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마침 독신이었기에, 미국의 집을 팔고, 은행의 돈을 찾아서 친구를 돌보기 위해 영국으로 왔습니다. 이 친구에게는 언제나 곁에서 돌봐주어야 할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나는 친구와 늘 이렇게 함께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껏 살아온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바클레이는 청년에게 말했다. "나에게 조금도 사과할 필요 없습니다. 두 분의 이야기는 내가 들은 이야기 중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청년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내 친구가 나를 위해 해 준 일을 생각한다면, 내가 그를 위해 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옷장 위에 붙어 있는 사진
에이즈(AIDS, 후천성 면역결핍증)로 죽어가는 한 여인을 목사가 방문했다. 목사가 따뜻한 말로 위로하려고 했으나 그녀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는 냉담한 태도로 말했다. "나는 버림받은 영혼입니다. 나는 내 자신의 일생뿐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의 행복까지 망쳐 놓은 사람이지요. 고통스럽지만 난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나 같은 건 아무런 희망도 없어요."
이 말을 듣고 있던 목사가 환자 옆에 있는 옷장 위에 아주 귀여운 여자아이의 사진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물었다. "저 아이는 누구죠?" 순간 여자의 표정이 밝아졌다. "내 딸이에요. 얼마나 귀여운지, 저 아이가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에요."
목사는 물었다. "만약 저 아이가 어려움에 빠진다면 당신은 도와줄 건가요? 실수를 한다면 용서해 줄 수 있습니까? 여전히 그 딸을 사랑해 줄 건가요?" "물론이죠! 나는 그 애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걸 왜 물어보시죠?"
목사가 대답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옷장 위에 당신의 사진이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잊지 못할 감동과 영감
미국 컨트리 송의 황제라고 불리는 가수 쟈니 캐쉬에게는 2살 위인 잭이라는 형이 있었는데, 형은 쟈니에게 영웅과 같은 존재였다. 1945년 5월, 잭은 일하던 공장의 전기톱 사고로 온 몸을 심하게 다쳤다. 급히 병원으로 옮겼으나 그는 일주일간이나 사경을 헤맸다.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잭에게 죽음이 가까운 것을 알 수 있었다. 식구들이 한 명씩 잭에게 이별의 말을 했다. 쟈니의 차례가 되었을 때, 그는 형의 뺨에다 자기의 뺨을 대고, "잘 가, 형!"이라는 말 외에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부모님은 기도를 하며 밤을 지새웠다. 새벽 6시가 되었을 때 잭이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쟈니, 모두들 울지 마세요. 저 강이 안 보이세요?" 어머니가 대답했다. "나는 안 보이는데."
잭은, "어머니, 나는 천국으로 가고 있어요. 저 천사들의 찬송 소리가 안 들리세요?" 하고 말했다. 어머니가 "나는 안 들리는구나" 하자, 그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흔들면서 말했다. "어머니, 저 아름다운 천사들의 찬송 소리를 들어보세요. 어머니, 저기에 아름다운 성이 보여요. 어머니, 나는 저기에 가는 거예요. 어머니, 저 찬송 소리를 들어보세요." 잭은 마지막 말을 마치고는 곧 숨을 거두었다.
쟈니 캐쉬는 "나의 형이 본 천국의 환상과 그의 죽음은, 나의 평생에 어느 누구도 나에게 줄 수 없는, 너무나 감동적이고 은혜로운 영감을 주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공산주의를 버리고 크리스천이 되다
니콜라이 버디에프는 공산주의자였다. 그러나 그는 공산주의를 버리고 크리스천이 되었다. 그는 자기가 크리스천이 된 이유는 역사나 신학의 영향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마리아라는 한 수녀의 거룩한 행동이 자기로 하여금 공산주의를 버리고 기독교를 택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버디에프는 나치 독일군이 유대인들을 독가스실에 넣어 학살하는 강제수용소에 있었다. 그때 가스실로 끌려가는 한 어머니가 어린 자식을 두고 떠나지 않으려고 울며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그 장면을 보고 있던 한 수녀가 독일군인들은 그저 학살하는 사람들의 숫자만을 세고 있음을 발견하고, 얼른 그 어머니를 줄에서 밀어내고 자기가 그 자리에 들어갔다. 이름이 마리아라고만 알고 있는 그 수녀의 거룩한 희생을 목격한 버디에프는 그리스도의 진실한 사랑과 대속의 죽음을 뜨겁게 실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미소지은 어머니의 얼굴
신문의 논설위원인 더그 후퍼(Doug Hooper)는 5백만 이상의 독자를 가진 책을 여러 권 저술한 크리스천 작가다. 후퍼는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폴섬 교도소에 자주 들러 수감자들을 면담해 주고 도와주는 일을 했는데, 거기서 만난 사람 중 폴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너무나도 큰 후회와 자책감에 빠져서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였다.
폴은 다음과 같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가 십대 소년일 때 아버지는 집을 나가 버렸고 그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어머니는 아주 훌륭한 분으로 무엇보다도 책 읽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해가 지날수록 시력이 약해져서 폴이 책을 읽어주기를 원하셨다. 하지만 그는 번번이 갱단의 패거리들과 어울려 다니느라 책을 읽어드릴 시간을 내지 못했다.
그러던 중 갱단 조직이 너무나 과격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드디어 폴은 조직을 떠나기로 작정하고 이제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책을 읽어드려야겠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의자에 앉아서 읽을 수 없는 책을 무릎에 펴놓으신 채 돌아가신 것이었다. 그날 밤의 충격으로 폴은 평생 잊지 못할 후회와 자책에 빠지게 되었고, 그 일은 머리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삶의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그는 드디어 교도소에까지 들어오게 된 것이다.
더그 후퍼는 무슨 말로 답변해주어야 할지 몰라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폴, 당신이 어머니에게 잘못한 일에 대해 그토록 속죄받기를 원하고 있으니까 아마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어떤 기회를 줄 것입니다."
이 일이 있은 지 몇 달 후 폴은 출감되어 나왔고, 후퍼는 그를 잊고 지냈다. 그런데 얼마 후 뉴욕에서 폴이 장거리 전화를 했다.
"후퍼 씨, 당신의 말이 맞았어요. 하나님은 나에게 속죄의 길을 열어 주셨어요. 몇 주일 전이었어요. 내가 어떤 마을로 운전해 들어가는데, 양로원 간판이 눈에 띄었어요. 들어가 보고 싶은 생각이 나서 차를 세우고 들어갔지요. 한 여자가 책상에 앉아 있기에, 혹시 내가 책을 읽어줄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어요. 그러자 그 여자는 마침 잘되었다고 하며, 한 할머니에게 나를 안내해 주었어요. 내가 그 할머니 방에 들어가자 할머니는 나를 기다리기나 한 것처럼 내게 책을 주며 읽어 달라는 것이었어요. 그 후 약 삼 주일간 나는 거의 매일 그 양로원을 방문하여 할머니에게 책을 읽어드렸지요. 그런데 며칠 전에 책을 읽으면서 이상한 느낌이 들어 할머니를 바라보니, 할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돌아가신 것이었어요. 순간 그 할머니의 얼굴이 바로 우리 어머니 얼굴로 보이더군요. 너무나 이상해서 눈을 씻고 보니, 그 할머니의 미소지은 얼굴이었어요. 그 순간 나를 그토록 괴롭히던 죄책감과 후회가 순간에 사라지는 걸 느꼈어요. 나는 당신이 했던 말이 생각났어요. '폴, 당신이 어머니에게 잘못한 일에 대해 그토록 속죄받기를 원하고 있으니까, 아마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어떤 기회를 줄 것입니다'."
2. 찡그린 얼굴에 환한 웃음으로 피어나는 이야기
1년 더 장수할 이유
텔레비젼 게임쇼에 결혼 60주년을 넘긴 노부부가 출전을 했다. 진행을 담당하는 아나운서가 남편에게 아내의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답하기를, "내 아내는 금년 나이가 87세인데, 나는 아내가 하나님의 축복으로 100세까지 살기를 원합니다."라고 했다.
"그러면, 당신의 나이는 얼마입니까?" 라고 이번에는 남편의 나이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대답하기를 "내 나이도, 동갑으로 87세입니다. 그런데, 나는 101세까지 살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궁금해진 아나운서가 왜 아내는 100세까지 살기를 바라고, 당신은 101살까지 살기를 원하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대답하기를, "솔직히 말해서, 다만 1년 동안이라도 평화로운 세월을 살아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천국에서 화를 낸 남편
결혼 60주년이 된 노부부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85세로 함께 죽었다. 이 부부는 고령의 85세의 나이였지만, 부인이 건강식에 전념하고 정규적인 운동생활을 고집한 덕분에 상당히 건강하게 살았다.
부부가 천국문 앞에 도착하자 사도 베드로가 반갑게 맞아주면서, 이 부부가 천국에서 영원히 살 집으로 안내해 주겠다며 앞장서서 가는 것이었다. 드디어 궁전 같은 집 앞에 오더니 하는 말이 그 집이 부부가 살 집이라고 했다. 집을 한번 돌아보니 얼마나 좋은지 기가 막힐 정도였다. 그래서 남편이 베드로에게 물어보기를, 이 집에서 살자면 도대체 집세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베드로는 말하기를, "물론 집세는 없어요, 무료입니다. 여기는 천국이니까요."라고 했다.
집 뒤로 돌아가는 베드로를 따라가 보니, 집 바로 뒤에 최고의 챔피언 골프장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그 사람은 다시 베드로에게 이 골프장을 쓰자면 사용료는 얼마를 내는 것이냐고 물어 보았더니 베드로의 대답은 여전히, 여기는 천국이니 골프를 얼마나 치든 간에 모두 무료라는 것이었다.
이번에 베드로가 안내해 간 곳은 큰 식당이었다. 세계 각국의 요리가 산해진미로 준비되어 있는데 먹고싶은 것을 자유롭게 마음대로 먹는 곳이라고 했다. 그래서 영감님은 다시 한번 베드로에게 묻기를, 이 식당에서 먹는 데는 얼마씩이냐고 했다. 그러자 베드로가 이제는 지친 듯한 표정으로 "여기는 천국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무료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베드로에게 건강식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은 어디에 있냐고 다시 물어보았다.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기를, 여기는 천국이기 때문에 어떤 음식을 먹든지 병이 생기거나 뚱뚱해지는 일은 없다고 했다.
베드로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 영감님은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이었다. 화가 나서 붉으락푸르락하여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서 땅에다 팽개치더니 그 모자를 발로 마구 짓밟는 것이었다. 그래서 베드로와 그의 부인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화를 내는지 진정하고 말 좀 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남편은 부인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소리를 쳤다. "여보, 모든 것이 당신 잘못이야! 당신 때문이라고! 매일 현미밥을 먹어라, 야채즙을 마셔라, 흑설탕을 써야 한다, 건강식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당신이 그렇게 야단법석을 피우는 바람에 벌써 10년 전에 이 좋은 곳에 왔을 것을 이제야 이렇게 늦게 오게 되지 않았어!"
3. 험한 인생의 바다에서 등대가 되는 이야기
만약 그 아이가 당신의 아이라면
미국의 의료선교사인 찰스 레버가 독일의 불구아동을 위한 병원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 상당한 부자로 알려진 큰 사업가 한 사람이 그 병원과 부속 시설을 시찰한 뒤 레버 선교사에게 물었다. "이 아이들의 치료율은 얼마나 되나요? 몇 명의 아이들이나 집으로 돌아가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됩니까?" "100명 중에서 한 명 정도 치료받고 나가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자 사업가가 말했다. "100명 중에서 한 명이요? 그러면 이 모든 수고가 가치가 없는 일이군요!" 선교사는 그 사람에게 대답했다. "만약 그 한 아이가 당신의 아이라면 어떨까요? 틀림없이 가치 있는 일일 것입니다!"
설교보다 친절과 사랑이
트라이스 목사가 루이지애나 주의 배튼루지라는 곳에서 목회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인근에 있는 루이지애나 주립대학교의 교수 한 사람이 그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트라이스 목사는 그 교수를 자기 교회의 교인으로 붙들기 위해, 지성인에게 맞는 최고의 설교를 준비하여 매주일 설교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렇게 여러 주가 지난 뒤, 교수는 그 교회에 정식으로 회원이 되기를 원한다는 가입신청을 했다.
그 후 목사와 교수는 좀더 친근한 사이가 되었다. 그래서 하루는 목사가 교수에게 은근히 물어보았다. "우리 교회의 교인이 되기로 작정할 때까지, 제 설교 중 어떤 것이 교수님의 결정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주었습니까?"
그러자 교수는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글쎄요,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늘 예배당 뒷자리에 앉으시는 키 작은 할머니 한 분이 제가 올 때마다 친절하게 대해주시고, 혹시 제가 오지 못한 그 다음 주일에는 기다렸다며 너무도 반갑게 맞아주셔서, 그 관심과 친절 때문에 이 교회의 교인이 되기로 작정했습니다."
보복의 편지를 찢어 버리고
조셉 쿠다는 자기 분야에서 꽤 성공한 헝가리 변호사였다. 그러나 1956년, 자유를 위한 투쟁이 벌어지자 그는 친구들과 함께 부다페스트 거리에서 소련군의 탱크를 대항해 싸웠다. 그러나 헝가리의 자유를 위한 투쟁이 실패로 끝나자, 쿠다는 자기의 조국을 떠나 피할 수밖에 없었다.
쿠다가 난민 신세로 미국에 도착했을 때, 그에게는 돈도, 직장도, 친구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영어를 비롯한 몇몇 나라의 말을 할 수 있는지라, 미국의 법률 사무소에서 일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취직을 하려고 노력해 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왜냐하면, 그는 미국 법률에 아직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채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자기가 몇 나라의 말을 할 수 있으니, 수출입 무역을 하는 회사에 직장을 구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 무역회사의 사장에게 편지를 보냈고, 두 주일 후에 답장이 왔다. 그런데 그 답장을 읽어 내려가던 쿠다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길이 없었다. 그 답장이 너무나 모욕적인 말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 회사에 사람이 필요해서 구할 경우라 해도 당신처럼 영어를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은 결코 채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분노로 가득 차 편지를 읽던 쿠다는 그 사장의 편지에서 문법적으로 잘못된 곳이 여러 군데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의심할 것도 없이 사장은 별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참을 수 없었던 쿠다는 앉아서 복수의 편지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는 그 사장의 자존심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편지를 썼다. 편지를 쓰면서 그의 속이 다 후련해지는 것만 같았다.
이제 쿠다는 다 쓴 편지를 처음부터 한번 읽어보기 시작했다. 자기가 쓴 편지를 다 읽었을 때 그는 마음속에 있던 분노가 거의 다 사라져 없어진 것을 느꼈다. 그때 다음과 같은 성경의 말씀이 떠올랐던 것이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잠언 15: 1)
쿠다는 그 편지를 보낼 수가 없었다. 아마 그 사장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그가 스스로 더 발전하도록 주어진 기회인지도 모른다. 쿠다는 다시 새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 분노에 찼던 편지를 쓴 일도 기록했다. 그리고 오히려 자기가 노력할 수 있는 결심을 하게 해준 것을 감사한다고 했다. 이 편지를 보낸 지 이틀 후, 뉴욕에 있는 그 무역회사에서 인터뷰를 하러 오라는 전화가 왔다. 결국 그는 그 회사에 채용되었고, 놀라운 일은 불과 몇 해가 지났을 때, 쿠다는 그 회사의 부사장이 되었으며, 앞으로 회사를 이어받을 사장 후보 제1순위에 올라 있다는 것이었다.
아픈 것에 감사
폴 브랜드 박사는 나병에 대한 권위자로서 상당히 이름이 난 사람이다. 그는 미국 루이지애나의 카빌에 있는 나병환자 재활원의 원장으로서, 다음과 같은 체험으로 대단히 놀란 일이 있다.
출장차 미국을 떠난 브랜드 박사는 비행기편으로 대서양을 건너 영국에 갔다. 그는 몇 군데에서 일을 본 후에 여러 시간의 기차여행 끝에 런던에 도착했다. 그날 밤 그는 호텔에서 잠자리에 들려고 신발을 벗고 양말 한 짝을 벗었는데, 발뒤꿈치에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런 일이 별 것 아니겠으나, 인도에서 수많은 나병환자를 수술한 경험이 있는 세계적인 권위의 나병전문가에게는 순간적으로 심각한 의심이 떠올랐던 것이다. 나병을 다루는 사람들은 누구나, 나병의 첫 증상 중 하나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 그는 기계적으로 일어나서 핀을 찾았다.
자리에 앉은 브랜드 박사는 핀으로 발의 복숭아 뼈 밑 부분을 찔렀다. 그런데 감각이 없었다! 그는 핀을 더 깊이 찔렀다. 찔린 부분에서 피가 솟아났지만 그래도 감각이 없었다. 자기가 나병에 감염이 된 것이었다! 그 밤이 새도록 브랜드 박사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앞으로 나병환자로 살아가야 할 자기의 두려운 인생을 머리에 그려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버림받은 자기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사랑하는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졌다.
이렇게 고통의 밤이 지나고 동이 트기 시작했다. 이 아침과 같은 희망이 이제 자기 인생에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손가락을 곧게 펴서 어제 핀으로 찔렀던 복숭아 뼈 밑 부분을 푹 눌러 쑤셨다. 순간 그는 기절할 듯이 아파서 고함을 쳤다! 그 아픔, 그 고통은 정말로 축복의 아픔이었다!
이제서야 그가 깨달은 것은, 어제 장시간의 기차 여행으로 앉아 있는 동안에, 신경의 한 부분이 눌려서 발이 마비상태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 후로 브랜드 박사는 실수로 손가락을 칼에 베었을 때도 그 고통에 감사를 했다고 한다. 발을 잘못 디뎌서 발목이 아파 펄쩍펄쩍 뛰면서도 그 아픔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를 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버섯을 잘못 먹고 온 몸을 뒤틀면서 토하는 심한 고통을 당할 때에도, 그는 "하나님, 나의 고통에 대하여 감사합니다!"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4. 생각의 서랍 속에 접어둔 못다한 이야기
새 생명의 십자가
알라바마 주의 수마탕가에는 청소년을 위한 캠프 수양관이 있다. 이 수양관 뒤에는 약간 높은 산이 있는데 그 산 정상에는 큰 십자가가 서 있으며, 밤이면 캠프장뿐만 아니라 먼 곳에서도 볼 수 있도록 밝은 불로 밝혀 놓았다. 이것은 물론 수양관에서 세워 놓은 것인데, 이 십자가는 수마탕가 캠프 수양관의 좋은 표식이 될 뿐만 아니라, 거기에 오는 청소년들의 신앙에도 많은 영감을 수는 것이었다.
어느 날 밤, 한 사람이 캠프장의 책임자인 데이브를 찾아와서는, 산 위 십자가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 밤중에 십자가가 있는 곳까지 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으나 그의 부탁이 너무도 진지하여, 데이브는 그를 자동차에 태우고 산 위 십자가를 향하여 출발했다. 함께 차를 타고 가던 그는 십자가에 가는 일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제 저녁에 그는 단발비행기를 조종하여 아틀란타에서 버밍햄으로 떠났다. 무슨 특별한 볼일이 있었다기보다는 자신의 뒤엉킨 현실에서 도피하여 자살이라도 해 버릴까 해서, 일기가 나쁘다고 했지만 그냥 떠난 것이었다. 비행기 안에서도 이런 생각을 하던 그는 갑자기 눈보라를 만나게 되었다. 눈보라는 대단히 크고 강한 것이었다. 위험에 빠진 그는 구조를 요청하는 무전을 쳤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 자신의 위치를 알려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짙은 눈보라 속에서 사방의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매우 위급한 상황이었다.
그때, 갑자기 그 앞에 환하게 빛나고 있는 십자가가 나타났다. 처음에 그는 자기가 환상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착각했다. 그래서 곧 무전으로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나 밝게 빛나는 십자가가 앞에 보인다고 했다. 그러자 상대방이 그의 위치를 파악하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작은 비행장으로 인도해 주어서 그가 비상 착륙을 할 수 있었다. 비행장의 사람들은 그에게 십자가 때문에 구조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데이브와 그가 드디어 십자가 앞에 도착하자, 그는 차에서 뛰어내려 십자가 앞에 가서 엎드렸다. 그리고는 울면서 어젯밤에 자기를 구원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기도를 끝내고 일어선 그는 데이브를 향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다시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발견했습니다. 다시는 되돌아서지 않을 것입니다."
상호관계에서 사는 존재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가리켜서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했는데, 그 의미는 사람은 혼자서 사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 협동하고 상호관계를 맺으면서 함께 어울려 사는 존재라는 뜻이다. 즉, 도움을 주고받고, 사랑을 주고받고, 교제를 나누며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말이다.
18세기 신성로마제국을 통치하던 프리드리히 황제가 어리석고 잔인한 실험을 한 일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언어 중에서 근원적인 언어가 무엇인가를 발견하려는 실험이었다. 즉, 원래 인간의 말이 히브리어인지, 헬라어인지, 라틴어인지를 구별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몇 명의 아기들을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의 말을 한 마디도 듣지 못한 상태로 격리시켜 실험을 했다. 이 아기들을 돌보는 간호사들은 절대로 한 마디의 말도 아기들 귀에 들리지 않도록 하겠다는 서약을 목숨을 걸고 해야만 했다. 물론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지만, 간호사들은 명령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몇 개월 안에, 그 아기들이, 하나씩, 하나씩, 모두 죽어버린 것이다. 물론 아기들은, 가장 적절한 영양을 공급받았고 위생적인 돌봄을 받았다. 그러나 말을 한 마디도 듣지 못하던 그 아기들은 결국 모두 죽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