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 보니 네 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일어나 준비하자고 해 놓고 화장실 갔는데 시원치 못하다. 방안에서 뒹글고 무쟈게 먹어댓으니 그럴 수밖에
주섬 주섬 챙기고 햄버거와 요구르트로 아침을 대신한다. 배가 든든해야 먼 길을 운행하는데 지장이 없을거라 생각하며 속에서 받아주지 않았지만 억지로 넘겨야 했다.
배낭메고 숙소 밖에서 하늘 쳐다보며 날씨 걱정하는데 예약해두었던 택시가 도착하여 육십령으로 향했다.
기사 양반도 나와 같은 과인지 통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운전만 하신다. 어쩌구 저쩌구 떠들며 동네 자랑도 하고 어떤 사연인지도 물어도 보고 하는게 보통 타지에서 온 사람을 대하는 게 맞는게 아닌지 모르겠다. 손님을 태우고 다니며 홍보대사 역할도 해줘야 한다고 하는 나만의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이십여분 후 육십령에 도착하여 등산화 끈 고쳐메고 출발 준비하는데 하늘엔 먹구름이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다.
망설이다 그냥 운행하기로 했다.
옛날에 재가 너무 험준하고 도적때가 들긇어서 재를 넘나드는 사람들이 재물을 뺏기거나 목숨을 잃기가 일쑤였다 한다. 육십령이란 이름은 육십명 이상이 모여서 넘어야 안전하게 넘을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경남 함양과 전북 장수군 장계면 사이에 있다.
험하지 않지만 완만하지도 않은 능선길을 씩씩대며 오르다 정상 부근에서 로프타고 오르락 내리락 스릴도있고 재미도 있다고 생각할 무렵 할미봉 정상에 도착했다.
간식먹고 운행해서 얼마 지나니 대포바위 갈림길이 나오고 안내판이 서있는데 조금은 웃습게 설명을 해놨다.
임진란 당시에 진주성을 함락시킨 왜군이 전주성을 치기위하여 육십령 재를 넘어와 할미봉 중턱을 보니 엄청나게 큰 대포가 있어 도망나는 바람에 장계지역이 화를 면했다고 한다.
가까이서 보면 남자의 성기와 비슷해 남근석 혹은 좆바위라 부르는데 옛날부터 아이를 갖지못한 여인들이 바위에 절하고 치마를 걷어올려 소원을 빌면 사내아이를 얻는다는 전설이 내려온다고...
교육원 삼거리를 지나서 서봉을 오를 무렵부터 바람이 심하게 불기 시작하고 깜깜해 진다.
다행히 등산로가 뚜렷이 나있어 길을 찾아 헤메는 일은 없겠구나 하면서도 초행길이라 그런지 혹시나 하고 내심 걱정도 된다. 가파른 길을 올라 정상석에서 사진 찍는데 저 쪽에 정상석이 하나 더 세워져있다. 예전부터 있던 거와 근래에 세웠다는 것을 바람의 흔적 사람의 흔적으로 짐작게 한다. 바람 땜에 제대로 서 있지 못하고 구석진 곳을 찾아 오돌 오돌 떨며 간식을 먹었다. 지금껏 영양갱과 초코렛 그리고 사탕을 이렇게 많이 먹어보긴 처음이다.
언제였던가 한라산 정상을 올랐는데 비 바람땜에 고개 한번 제대로 못들어보고 하산 한 적이있는데 그예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우리 셋 말고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으니 살벌한 느낌은 그때와 다르지 않다.
내가 이 길을 가야만 하는가 뭘 위해 이 짓을 하는가 허무하기도 하고 대간 선배님이 덕유산 구간에 들어서면 펄펄 날아다니니 걱정 말라고 했는데 체력이 안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추위와 싸우며 서봉을 내려서니 그나마 날씨가 좀 풀린다. 바람도 덜하고 구름도 많이 걷힌다. 그래도 어느 길 하나 쉽게 넘어감이 없으니...
남덕유산 정상 코 앞으로 대간길은 나 있고 성산형과 난 다녀온 곳 이라하여 앉아서 간식 먹고 경현인 초행이라 배낭두고 스틱만 의지하여 정상으로 올라가더니 5분만에 내려왔다.
월성재에 도착할 무렵 비가 많이 내리기 시작하여 오버트라우져를 꺼내 입고 빵으로 점심을 대신하는데 처량하기 그지없다. 라면이라도 끓여 먹어야 하는데 비 바람이 허락하지 않으니 사서 생고생하는 우리의 신세여...
지도상으로 월성재에서 삿갓 대피서까지 3키로가 채 되지않는데 마음이 급해서 그런지 멀게만 느껴지고 내리는 비가 밉게만 느껴지고 혼자만의 생각이겠지.
대피소에 도착하니 산장지기(오정훈이라 기억한다)만 있을뿐 아무도 없다. 제주에서 오셨냐며 반갑게 맞이해준다. 불사초님이 예약해 두었던 터라 그냥 들어가서 짐 풀고 취사장으로 내려가 개죽에 꽁치찌게, 전날 식당에서 얻어온 김치에 쇠주 몇잔 걸치니 오전의 고생은 눈 녹듯이 사라진다.
산장에 드러누우니 비는 하염없이 내리지 고향 생각 식구들 생각 무쟈게 나지 술은 바닥났지, 봄비가 운치도 있으련만...
일기예보를 몇 번씩 확인하는데 계속 비가 내린다 하니 내일과 모레까지는 운행하기 힘들겠구나 싶고 격려의 문자들을 다시 들여다 보며 웃음도 지어보고 눈물도 흘려보다 잠이든다.
한 시간여 잠들었을까 전화벨이 울려 받으니 서귀포 백록 산악회 동생이며 한라산 국립공원에 근무하는 치우가 내일 오전중에 산장으로 올라오겠다하여 소주와 쌀을 부탁했다.
잡지를 읽고 있는데 서울에서 왔다는 사람들이 들어와 어찌나 시끄럽게 굴든지 주위에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성질같아선 그냥
그 와중에도 광주에서 왔다는 부부는 집에 전화해 애들이랑 안부 물어가며 열심히 통화하고 있다.
시끄럽게 굴던 이들이 취사장으로 내려가니 성산 형과 경현이가 커피 들고 내려가자고 한다. 그들이 쇠주나 마시면 얻어 마실 요량으로, 내가 생각하기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인간들이라 나눠 줄 것 같지가 않은데, 혹 얻게되면 전화 달라고 하고 백두대간에 관한 기사가 있는 잡지를 계속 읽었다.
결과는 꽝, 투덜대며 올라온다. 잘 먹지도 않는 커피를 끓이며 기웃거렸는데 한잔 마시라는 소리없이 지들끼리만 떠들며 마신다고...
지도 꺼내놓고 다음 코스의 거리와 난이도를 얘기하고 또 일기예보를 확인한다.
계속 비가 내린다 하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잠을 청하는데 아내에게서 장문의 문자가 들어와 읽으니 한마디로 개과천선해서 돌아오라는 내용이다. 이십여년 가까이 살면서 고생만 시켰으니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광주에서 왔다는 양반이 소등 하자마자 대피소 천정이 날아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코를 골아대니 오늘 밤은 글렀다.
첫댓글 특히, 산에서의 예절이 아쉽네요ㅎㅎ 힘든 산행또한 이렇듯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눈이 호강합니다~~~ 대장님의 후기 잘보안요..
지키려고 노력해도 안되는게 있는가 봅니다. 저 또한 열심히 코골이 하는데요 ㅎ
오정훈이아니고 이정훈이맞을끼다
그렇구나 알콜성 치맨가부다.
ㅎㅎ 영화를 보는 것 같다. 대피소에서 코고는 소리 나두 알지. 지가 골때는 모르고 남이 골면 잠 못자고... ㅎㅎ
경험해보지 않고는 모르지요 ㅎ~~
대간길 인생길 고통의길임을 느껴봅니다^~^
같이 함에 감사드립니다.
장소 이기도 하고 사람마다 가지각색 으로
잠자는 모습이 션
갈 길은 멀고 해는 지는데...후기 연속 드라마
육지 산행 계획하면서 백두대간을 구간별로 한번씩 다녀오는것도 좋을듯 싶네요 접근과 탈출이 좀 애매하지만 육지 산악회에선 밤에 출발해서 차량 이동중에 자고 새벽 산행후 돌아오는걸로 알고있습니다.
그래요 윗세대장님 ! 저희도 이번 10 윌에 설악능선을 무박 2 일로 진행합니다. 지리산은 네 차례 나누에 했구요 ~~ 나누어서 구간별로 장기적인 계획 세우셔서 대간 정복도 좋을것 같습니다~~^^
행복한 한가위 되세요~~^♥^
책한편 내시죠~그좋은 산행길을 뭔없이 다녔을 빙대장님
백두대간 가려고 맘잡은 시초에 그설레임부터 고난의 길 여정을
덧대지않고 솔직 담백한 글솜씨가 감동입니다...
책이라뇨? 누굴 거덜내려 그러십니까? 솔직히 감동 받을만한 글은 아니지요.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이리 생생하게 쓰시는걸 보니~~ 머리가 얼마나 뛰어나신 겝니까? 잼있게 읽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스탈만 하려구, 고마워요.
산행을 하다보면 백두대간이란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 자연스레 대장님의 백두대간 얘기가 나오게 되고ㅎㅎ지난주에도 동해 청옥산 ,두타산을 다녀왔는데 그길도 백두대간 길이더군요..
조잘조잘 자연스레 제주얘기로 ...많이 그립고... 많이 보고싶고... 가고싶고 ... 넘 오랫동안 기다렀네요... 아리고 ... 아름답고...소중하고...엇진 인생의 한 페이지 ...큰 박수 보냅니다~~^♥^
댓재에서 출발하셨나요? 하늘 산악회 표지기가 곳곳에 나부끼고 있을텐데 비바람에 다 날이갔나 봅니다. 멀리서의 응원 항상 감사드립니다.
무릉계곡 출발 청옥산 찍고 이어 두타산으로 두타산에서 원점 회기 무릉계곡으로 내려와 약간 틀어 쌍폭포 용두? 폭포 구경하고 무릉계곡으로 ㅎㅎㅎ
기다리다 기린 될뻔한 ㅎ.대간기~ 다큐처럼 전해오네요 .그날의 생각, 맘가지들 함께 느껴보며 대간의 희열과 고통이 대장님의 시간에, 삶속에 찬란하고 빛나게 투영되어 멋진 나날 되시길 소원합니다. 항상 좋은 일만 가득하세요.^☆^
대간을 간절히 원했기에 그 길을 걸으며 포기하고 싶다가도 끝까지 종주 할 수 있었던건 정말 희열이 있었기에 그리고 고통 또한 즐겼기에 가능했던 것 같아, 늘 고마운 댓글에 감사하며...
저는 이런 경험이 없으니 짐작키는 어렵네요 ,
다만 새로운 사람이 되서 돌아오라는 문자 메세지가 오래도록 들리는것 같습니다 .
새로운 사람(조금 늙어서)이 되어 돌아왔네요 ㅎㅎ
잘읽고감니다~~^^
고맙군^^
감동 그자체이군요, 글쓰시는데 일가견이 있고하니...작가의 길로...ㅋㅋㅋ..
멋있는 글 잘 읽고 갑니다...나도 하고프다...백두대간 종주를....
함 해봐라 백씨는 상종 하고픈 맘이 사라질꺼야 ㅎㅎ, 인사할때 백골님이 젤 무서버
사내 대장부로서의 할일을 끝까지 마무리 했다는게 쉬운 일은 아니지요. 백두대간 말은 쉽고 듣기도 좋은 말이겠지요. 그러나 며칠 계속되는 산행에 지쳐버린 몸... 끝까지 완주하겠다는 의지의 사나이들... 고생 끝에 낙이 있다듯이 이제 글을 쓰면서 옛 일을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그땐 그랬섰구만..... 하는 추억..... 생전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 아니 삶을 살아가는데 오랜 세월을 멋진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다는 또한 먼 훗날의 아름다운 추억의 한 장면으로 행복감을 가질수 있다는 추억으로 영원하시기를... 산에서의 나눔정신 기억합니다... 대단하십니다. 보람된 고생 많으셨습니다. 수고했습니다. 다음 장르를 기대하면서...
과찬이십니다. 그저 포기하지 못한다는 오기로 종주했을 뿐인데...암튼 영원한 추억은 맞는것 같습니다. 관심 감사드립니다.
바르나바,성산님 소주도못얻어맛시고ㅎㅎ웃음이~~산에서 인심야박하기는
회원,주변인들,소량이라도구매의사있으는지보면서 훗날 책발간해야지 아깝다.
좋습니다
책? 내가 안친해 안친한 놈과 놀기 싫어.
기억력 짱! 알콜성치매아님ㅎㅎ
저거 다 구라야 몰랐니?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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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찾을만큼 재미가 없는 글인데, 반갑고 고맙구나.
멋지고 잼난글 표현이 안되네 말솜씨가없어
암턴 짱 화이팅 잠도암안와서 너무나 제미나게
보고갑니다 짱짱
잼나게 읽어주셔서 넘 감사해요.
백두대간을 같이걷는듯 합니다. 뿌연황사.. 개죽..무릅보호대..돌팔이도사..군산친구..아프리카토인..환타..막걸리..이슬비..장조림..논개..버럭홍어..카네션..어머니..아내..큰딸..그리고 회원님들의 깨알같은 댓글들은 세분의 산행을 넘어 하늘산악회가 백두대간 종주를 하는듯 합니다 사랑과우정.. 코믹.. 우리들의이야기.. 하루일지를 한달을 담금질하여 써내려가는 감동!! 당신은 자랑스런 우리들의 보물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그게 더 감동이네요. 소중한 사람들~~
빙그레님 대간일기 읽으니 남자들의 속마음도 여자맘이랑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에세이집 한권 내세요
늑대와 여우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