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노예가 해방된 다음에도,
노예제를 정당화했던 인종차별적 신화는 계속 유지되었다.
인종분리는 인종 차별적 입법과 사회적 관습에 의해 지속되었고,
그 결과 원인과 결과가 서로 강화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었다.
예를 들어 남북 전쟁 직후 미국 남부 주들을 떠올려보자,
노예제는 1865년 미국 헌법의 제13차 개정으로 이미 불법이 되었고,
제14차 개정에서는 인종을 근거로 시민권과 법에 의한 동등한 보호를 부인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2백 년 간 지속된 노예제의 결과,
대부분이 흑인 가정은 대부분의 백인 가정에 비해 훨씬 더 가난하고 교육수준이 낮았다.
따라서 1865년 앨라배머에서 태어난 흑인은
이웃의 백인에 비해 좋은 교육을 받고 월급을 많이 받는 직업을 가질 기회가 훨씬 적었다.
1880년대와 1890년대에 태어난 그 자녀들도 아버지와 꼭같은 불리함을 안고 삶을 시작햇다.
이들 역시 교육을 받지 못한 가난한 집안의 자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적 불이익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었다.
앨라배마는 잘사는 백인들이 누리던 기회를 갖지 못한 수많은 백인 가난뱅이들의 고향이기도 했다.
게다가 산업혁명과 이민의 물경은 미국을 극도로 유동적인 사회, 가난뱅이가 부자기 될 수도 있는 사회로 만들었다.
만일 문제가 되는 것이 오직 돈뿐이었다면 인종 간의 첨예한 분리는 빠르게 흐려졌을 것이고,
거기에는 인종간 결혼이 적잖은 개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1865년이 되자 백인들뿐 아니라 많은 흑인들도 흑인에 대한 편견을 사실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흑인은 백인에 비해 객관적으로 지능이 낮고 폭력성이 높고,
성적으로 문란하고 게으르며 개인적 청결에 관심이 적다고 말이다.
따라서 흑인은 폭력, 절도, 강간, 질병 ㅡ 다시 말해 오염 ㅡ 의 원인이었다.
만일 1895년 앨라배마의 어느 흑인이 좋은 교육을 받는 데 기적적으로 성공해
은행원 같은 어렷한 직업을 가지려고 지원서를 냈다고 하자.
그가 채용될 가능성은 그와 동등한 자격을 지닌 백인 후보에 비해 훨씬 더 적었다.
흑인에게 찍힌 낙인 ㅡ 천성적으로 신뢰할 수 없으며 게으르고 지능이 떨어진다는 ㅡ 이 악영향을 미친 탓이었다.
어쩌면 여러분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사람들도 이런 낙인은 신화아지 사실이 아니며,
흑인들도 백인 못지 않게 경쟁력 있고 법을 준수하며 청결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으리라 예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반대의 일이 일어났다. 편견은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굳어졌다.
좋은 직업은 모조리 백인들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흑인들이 실제로 열등하다고 믿기가 더 쉬워졌다.
평균적인 백인 시민은 이렇게 말한다,
"보라고 흑인이 해방된 지도 여러 세대가 지났어, 하지만 교수나 법률가나 의사가 된 흑인이 얼마나 되냐고,
심지어 은행 출납계원이 된 사람도 드물어, 이건 그들이 지능이 떨어지고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증거 아닐까?"
흑인들은 악순환에 빠졌다.
그들은 지능이 덜어진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이미 백인들이 차지해버린 직업을 구할 수 없었는데,
그들이 열등하다는 증거는 백인들이 차지한 직업을 가진 흑인이 드물다는 바로 그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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