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유식론 제9권
15.1. 통달위(1), 얻는 바가 없다
다음 통달위(通達位)의 양상은 어떠한가?124)
[얻는 바가 없다]
게송(『삼십송』의 제28)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느 때에125) 인식대상126)에 대해서
지혜127)가 전혀 얻는 바가 없게 된다.128)
그때에 유식의 성품에 안주하니, 129)
2취(取)의 양상을 떠났기 때문이다.130)
논하여 말한다.
어느 때[若時]131)에 보살이 인식대상[所緣境]에 무분별 지혜가 전혀 얻는 바가 없다. 갖가지 희론의 양상을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에 참으로 유식의 참다운 승의의 성품에 안주한다고 이름한다.
곧 진여를 증득한 지혜와 진여가 평등하고 평등해서132) 모두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의 양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의 양상은 모두 분별이다. 얻는 바가 있는 마음에만 희론이 현현하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133)
이 지혜134)에는 두 가지 심분[二分]이 모두 없다. 인식대상과 인식주체의 양상이 없다고 말하기135)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136)
이 지혜에는 상분과 견분이 모두 있다. 그것의 모습을 띠고 일어나는 것137)을, 그것을 반연한다고 이름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의 모습은 없어도 그것을 반연하는 것으로 이름한다고 말하면, 색경(色境)을 반연하는 지혜 등은 마땅히 소리 등을 반연하는 지혜로 이름해야 한다.138)
만약 견분이 없다면, 능히 반연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진여를 반연하는 지혜로 삼을 수 있겠는가?
진여의 성품 또한 능히 반연하는 것으로 이름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여기에는 반드시 견분도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139)
이 지혜에는 견분은 있고 상분은 없다. 상분이 없이 취하고 상분을 취하지 않는다고 말하기140) 때문이다.
견분은 있지만 무분별이므로 능취(能取)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지, 취하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상분은 없지만 이것141)이 진여의 모습을 띠고 일어난다고 말할 수 있다.142) 진여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자증분이 견분을 반연할 때에 변현하지 않고서 반연하는 것처럼, 이것도 역시 그러해야 한다.
변현해서 반연한다면 문득 직접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후득지처럼 분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에는 견분만 있고 상분은 없다고 인정해야 한다.
124)
다음에 5위(位) 중 제3위인 통달위(通達位), 즉 견도(見道)에 관하여 해설한다.
125)
근본무분별지가 발할 때, 즉 지(智)가 이(理)를 관조할 때를 가리킨다.
126)
여기서는 유식성 진여를 가리킨다.
127)
진여를 증오(證悟)하는 무분별지ㆍ근본지를 의미한다.
128)
진여를 증오(證悟)할 때 이지명합(理智冥合)해서 소득상(所得相)이 전혀 없음을 말한다.
129)
능관지(能觀智)가 소관리(所觀理)에 명합(冥合)하는 경지이다.
130)
능취집(能取執)과 소취상(所取相)을 여의는 것을 말한다.
131)
보살의 무루지혜가 진여를 반연함에 있어서, 후득지(後得智)는 상분(相分)을 세워서 관하므로 유소득관(有所得觀:相見道)이라고 한다. 지금 그것을 가려내어[簡] 진견도(眞見道)의 근본무루지혜가 진여를 반연하는 경우를 말하므로 ‘어느 때[若時]’라고 한 것이다.
132)
마음과 대상이 서로 칭합(稱合)하고, 진여와 지혜가 명합(冥合)해서, 모두 인식의 주체[能取]와 인식대상[所取]의 구별을 떠나고, 모든 희론(戱論)을 끊었기 때문에 평등하고 평등하다고 이름한다.
133)
본 게송을 네 가지 부문으로 자세히 해설한다. 첫째로 바른 지혜를 자세히 해설한다. 먼저 제1사(第一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그에 의하면 근본무분별지혜에는 상분과 견분이 모두 없다고 한다.
134)
근본무분별지혜를 말한다.
135)
무성(無性), 『섭대승론석』 제26권(『고려대장경』 17, p.219中:『대정장』 31, p.418下).
136)
제2사(第二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그에 의하면 근본무분별지혜에는 상분과 견분이 모두 없다고 한다.
137)
인식대상[所緣緣]은 반드시 모습을 띠고 일어나는 데 의거한다.
138)
만약 대상에 사현(似現)한 모습이 없어도 그것을 반연하는 것으로 이름한다고 말하면, 색경(色境)을 반연하는 지혜[色智]는 소리[聲]의 양상이 없어도 소리를 반연하는 것으로 이름해야 한다고 비판한다.
139)
호법의 정의이다.
140)
『유가사지론』 제73권(『고려대장경』 15, p.1147中:『대정장』 30, p.701上).
141)
무분별지혜를 말한다.
142)
진여를 반연하는 지혜는 진여의 체상(體相)을 띠고 일어나기 때문에 인식대상[所緣]으로 이름한다. 그것의 상분인 영상을 띠고 일어나기 때문에 진여를 반연한다고 이름하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