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피사경(剝皮寫經)
<2000. 5. 11 성륜사 부처님 오신 날 봉축법회>
[1]
녹음방초 이 좋은 계절에
부처님 탄신(誕辰)의 축제가 있는 것을
여러 불자님과 더불어 봉축(奉祝)을 드립니다.
부처님 오신 날은
위없는 최상의 진리의 날입니다.
또한 동시에 부처님 오신 날은 영생해탈(永生解脫)의,
우리 인간들은 누구나가 다
번뇌의 굴레 속에 얽매여있습니다.
이러한 굴레를 벗어나서
영생으로 영원히 해탈할 수 있는
영원히 참다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그러한 해탈의 날입니다.
또한 동시에 부처님 오신 날은
우리 중생이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의 날이기도 합니다.
왜 부처님 가르침이
참다운 위없는 진리(眞理)일 것인가?
이것은 대체로 우리가 알고는 있습니다만
그 참뜻은 잘 모르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만 하더라도
참다운 진리를 믿지 않는 외도 가르침이
96종외도(九十六種外道)라,
아흔여섯 가지 정도의 여러 가지 학설
또 주의주장 이런 것을 내세우는
잘못된 견해가 있었습니다.
오늘날은 96종이 아니라
몇 백종, 몇 천종의 주의 주장과
여러 가지 갈래의 사상계통이 있겠지요.
우리 인간은
어느 누구나가 다 정말로 영원히 행복하고 싶고
또는 죽지도 않고 싶고 다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모르는 한에는
할 수 없이 인과(因果)의 굴레에 얽매여서 죽고 살고
또는 죽음과 동시에
삼계육도(三界六度)라 하는 한계 상황에서
부질없이 헤매고 마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헌데 부처님 가르침은
우리가 윤회(輪廻)한다고 하는,
업(業)을 짓고 조금 잘 지으면 좋은데 태어나고
또는 잘못 지으면 엉뚱한 악도(惡道)에가 태어나는
뱅뱅 도는 개미 쳇바퀴 모양으로
뱅뱅 도는 인생고해(人生苦海)를 떠나지 못하는 것이
우리 중생(衆生)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부처님 가르침은
그런 고해(苦海)를 떠나서 정말로 죽지 않는,
죽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잘 감이 안 잡히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이것은 우리 육체적인 죽음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 생명존재(生命存在),
생명자체가 죽음이 없다는 그런 뜻이 되는 것입니다.
왜 생명이 죽지 않는고 하면은
사실은 우리 중생들은
상대유한적인 세계 밖에는 보지를 못 합니다.
그러나 진리는 상대유한적인 세계뿐만 아니라
이른바 형이상학적인 세계,
우리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그런 세계 까지도
부처님 가르침은 포괄해 있습니다.
따라서 부처님 가르침이 나오기 전에는
우리 인간들이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 것인가?
우리 생명존재 자체는 또 뭣일 것인가?
또는 우리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은 어떠한 것인가?
다른 동물과 또는 식물과 우리 인간의 관계는 어떠한 것인가?
이런 것을 확실히 몰랐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으로 해서
비로소 이러한 모든 존재,
모든 상황에 대해서 확실히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행복은
뭣인가 얽매여 있으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런 구속도 없고
어느 누구한테나
또는 어느 무엇에나 얽매임이 없어야
참다운 자유가 될 것인데
그런 자유를 어디서 얻을 것인가.
이것도 역시 참다운 자유와 행복이라는 것은
진리를 떠나서는 얻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위없는 진리가 있으면
그때는 필연적으로 참다운 행복은
거기에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우리 불자님들,
우리는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금 받들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스스로도
어떻게 하면은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 것인가,
어떻게 하면은 부처님 가르침이 우리한테 제시한 바와 같이
참다운 영생(永生)의 길,
참다운 해탈(解脫)의 길,
참다운 자유(自由)의 길을 얻을 것인가 하는 것을
오늘 부처님 오신 날을 기해서
우리는 재삼 자기 성찰(省察)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는
소승(小乘)과 대승(大乘)이 있습니다.
소승(小乘) 이것은 차원 낮은 사람들을 위해서
인생이나 우주의 근원적인 도리를
아직은 탐구도 못하고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가르친 가르침이
소승적인 가르침인 것이고
대승적인 가르침은
우리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인간은 대체로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 것인가?
이른바 생사관(生死觀) 문제라든가
또는 모든 존재의 근원적인 근본바탕,
근본자리가 무엇인가?
이런 문제를 밝히는 가르침은 대승적인 가르침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 사회는
소승적인 가르침으로 해서는
우리의 모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꼭 대승적인 가르침을 가져야
오늘날 우리가 봉착한
우리를 고해중생(苦海衆生)으로 몰아넣고 있는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은 대승적인 가르침의 가장 골수가 무엇인가?
대승적인 가르침은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조금 차원높은 그런 가르침이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을 깊이 골똘히 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대승적인 가르침은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
우리 인간이 대체로 이 존재가 무엇인가?
내 생명은 대체로 본바탕이 무엇이며
죽은 다음에는 내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것에 대한 가르침이 대승적(大乘的)인 가르침입니다.
사실 우리가 생각할 때에
금생의 생활도 그래저래 바쁘고 또는 각박한데
어떻게 내생문제까지 생각할 것인가.
그러나 내생문제 이것은
우리가 받아 놓고 있는 긴급적인 문제입니다.
우리 생명이 과연 얼마 나 살 것인가?
정말로 사람의 생명이라 하는 것은
바람 앞에 등불이나 똑같습니다.
오늘 꺼질지 내일 꺼질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죽은 다음에는
어디로 갈지 망망한 길입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생각할 수 있는 동물이라는 것인데,
정말로 파스칼 말마따나
우리는 ‘생각하는 갈대’입니다.
이래저래 생각을 많이 합니다.
생각을 많이 한다는 것은
한편은 좋은데
한편은 우리 마음고생을 무던히 가져다줍니다.
따라서 그런 저런 복잡한 생각,
복잡한 생각 하다 보면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죽도록까지 해도 끝나지가 않습니다.
다행히 이런 때 부처님께서 나오셔서
우리 생각을 다 정리를 하셨단 말입니다.
사람이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것은
데카르트의 말마따나
생각함으로 해서 비로소 내가 있다고
그렇게 확인이 되는 것입니다.
정말 생각하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할 때 자기는 무엇인가,
또 자기는 어디서 왔을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생각함으로 해서,
사유(思惟)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인간 존재를 스스로 확인할 수가 있는 것인데
즉 그렇다 하더라도 다만 생각만 하고 있어서는
우리 인생의 복잡한 문제,
가지가지의 고뇌(苦惱)나 그런 문제를
해결할 아무런 가망이 없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을 위시해서 모든 성자의 가르침은
우리 인간의 여러 가지 고뇌(苦惱),
인생의 생활고(生活苦)도 중요하지만은
또는 인간의 사상고(思想苦)문제,
우리 인간의 가지가지의 마음의 고생을 다 풀어 주는 것이
석가모니를 위시한 무수한 철인이나
또는 성인들 가르침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다른 성인들 가르침도 훌륭하지만은
그런 가르침은 소승적(小乘的)인 분야에서는
상당히 효험 있는 가르침이나
아까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근원적(根源的)인 가르침,
인간존재가 대체로 무엇인가?
내 생명의 근본뿌리는 무엇인가? 이런 문제는
확실히 시원스러운 해답이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대승적인 가르침 가운데
가장 중요한 문제로 하면은
그 모든 인간 잘나고 못나고
여러 가지 종류의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문제를 풀이한 가르침인데
그것은 우리 인간이 알고 모르고 상관이 없이
우주에는 항시 진리가 충만해 있단 말입니다.
훌륭한 학자라 하더라도
진리를 부정한 분도 있습니다.
더러 물질적인, 우리 경험적인 그런 것을 치중한 사람들은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내내야 물질의 하나가 아닌가,
물질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죽어지면 다시 물질은 다 흩어지고 마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장래도 허망한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한 사람도 있고
더러는 석가모니부처님이 그때 태어나실 당시 인도 상황은
모든 사람들은 다 바라문신이 창조한 것이다,
사람도 그렇고 다른 것도 모두가 다
바라문신이 창조했기 때문에
우리가 바라문신한테 제사를 모시고 지성을 들이면
우리가 행복스럽지 않겠는가.
얼핏 보면은 지금 기독교와 좀 흡사한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예수님 가르침도
훌륭한 가르침이기 때문에
우리가 비난조로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런 바라문교 하고
흡사한 점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릴 뿐입니다.
아무튼 그런저런 사상과
잘못된 생각이 많은 가운데서
부처님 생각은 정말로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참다운 자유를 우리한테 보장한 가르침이고
동시에 영원한 영생할 수 있는 가르침을 주셨단 말입니다.
☞ 출처 : 본정 김영동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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