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화. 위험한 잠입
신성한 매실 758
다음날 최림은 형사팀으로 출근했다.
너무도 다급한 사건이라 직원들과 인사를 나눌 겨를없이 회의에 참석했다.
탁자 위에 김유리의 인적 사항이 적힌 자료들이 놓여 있었다.
최림은 자료를 읽는 척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새 형사팀에는 새로운 인물이 몇 보였다.
조 팀장이 발언하였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어제 여의도에서 사건을 저지른 김유리는 이곳 형사팀 소속이었다.”
“…….”
“매우 일 잘하고 유능한 여형사였다.”
휴우~.
“그런 그녀가 왜 저런 사건을 저질렀는지 묻고 싶다.”
조 팀장의 눈매가 매서웠다.
옆에 있던 박 형사는 난감하다는 듯 한숨만 푹, 쉬고 있었다.
“박 형사님! 대답 한번 해 보시죠.”
그제야 박 형사는 최림의 눈치를 보더니 겨우 입을 열었다.
“그때 함께 근무할 때는 저런 낌새는 전혀 없었습니다. 김유리 형사가 제 입으로 666의 신자라고 발설하지 않는 이상,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었습니다.”
조 팀장은 이번엔 최림에게 물었다.
“최 형사는 알고 있었습니까?”
뜬금없는 그의 질문에 최림은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첫 대면부터 기죽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어제 TV를 보고서야 김유리 형사가 당시 그럴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뭐죠?”
“그녀의 부모는 사이비 교주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때문에 김유리는 자주 부모님을 죽인 자들에 관한 복수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조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현직 경찰에 있으면서 전두태가 이끄는 ‘666의 신자’가 된 거네요?”
“그전에 들어갔는지, 아니면 그만두고 들어갔는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음…….”
조 팀장은 뭔가 말하려 하다, 갑자기 최림을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참! 여러분께 여기, 최 형사님을 소개합니다. 예전 원지 둔치 방화·살인 사건 때부터 천왕봉에서 전두태와 민채원이 죽을 때까지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유능한 형사입니다.”
난데없는 그의 칭찬에 회의실의 형사들이 환호했다.
하지만 박 형사는 별 감흥이 없는지 계속 머리를 밑으로 박고 있었다.
“잘 부탁합니다.”
최림은 짧은 인사말로 전입신고를 대신했다.
그가 자리에 앉자 맨 끝에 있던 형사 한 명이 조 팀장에게 질문했다.
“말씀하신 여자는 이미 경찰 신분도 아닌데, 이곳에 잠깐 근무했다는 이유로 이 사건을 우리가 처리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모두 궁금했던 질문이었다.
최림은 조 팀장의 답변이 어떻게 나오는지 알고 싶었다.
“물론, 김유리는 민간인 신분이고 그녀의 관할은 서울지방경찰청이 당연하다. 하지만 다들 TV에서 봤듯이 모두 죽은 줄 알았던 전두태가 멀쩡하게 살아있다는 사실 때문에 이렇게 회의하는 것이다.”
그러자 회의실은 잠시 소란스러웠다.
최림은 조 팀장이 제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 팀장의 답변에 또 누군가 질문했다.
“전두태가 살아있다는 걸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원지 둔치 사건처럼 뿌려진 인쇄물에 남아 있는 전두태의 서명이 그 증거지.”
“에이. 그야 그야 아니더라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요즘처럼 대필이 흔한 시대에 서명쯤이야 몇 번만 연습하면 되거든요?”
“맞아. 서명 위조는 요즈음 잡범들도 다 한다니까.”
최림은 이 반박에 조 팀장이 이번에 어떻게 대답할까, 하고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다음에 나온 그의 말은 과히 충격적이었다.
“오늘 새벽, 체포된 김유리 일당이 유치장에서 탈출했다. 일단의 무리가 경찰서에 불을 지른 사이, 그녀 일당은 유유히 탈출에 성공했어. 서울 한복판 경찰서에 그런 과감한 일을 기획하고 벌이는 자는 …….”
최림은 숨이 넘어갈 뻔했다.
“전두태 밖에 없어.”
하긴 그때 산음 경찰서 방화·살인도 전두태가 기획하고 실행한 사건이었다.
그러니 조 팀장이 그걸 떠올리며 말했다고 최림은 생각했다.
“아마 조만간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공조 수사 차 내려올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전두태와 김유리에 관한 모든 자료를 준비하기를 바란다. 이상!”
최림은 복귀 첫날부터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조민태 팀장이 잠시 나가서 이야기하자는 투로 그에게 눈짓했다.
둘은 옥상에서 담배를 피웠다.
“사실은 나도 그날 천왕봉에서 전두태와 민채원이 떨어져 죽었다고 했을 때, 솔직히 난 믿지 않았어. ”
“어째서입니까?”
“내 나름대로 조사하고 연구한 결과, 놈은 이 짓거리를 절대 중단하지 않으리라고 봤지. 제3차, 4차, 5차 등 놈이 바라는 세상이 올 때까지 그는 계속할 건 자명한 일이야.”
예전과 달리 조 팀장은 매우 주도면밀했다.
그제야 최림은 전두태가 ‘합동수사본부’와 나아가‘악령퇴치반’을 해체할 목적으로 그날, 천왕봉에서 위장 자살을 감행했다고 생각했다.
주도면밀한 자는 바로 전두태였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왜 민채원은 죽게 했을까.’
‘처음부터 전두태는 혼자 살 생각을 했을까?’
‘혹 둘 사이에 어떤 문제나 갈등이 발생하였을까.’
등등이었다.
최림은 추후 이 문제도 밝히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날 민채원이 언니에게 전해달라는 목걸이와 편지를 아직 전해주지 못한 까닭이었다.
“이봐, 최림 무슨 생각해?”
조 팀장의 말에 최림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군요. 지금 당장 제가 할 일이?”
그때 조 팀장이 두툼한 서류 하나를 건넸다.
“이게 무슨?”
“김유리 인사 파일이야. 자체 조사한 세밀한 내용도 많으니 검토해 봐.”
최림은 첫 장을 펼치다가 깜짝 놀랐다.
김유리의 본적이 바로 그 공동체 마을이었다.
이건 최림도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조 팀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부모님은 죽었지만, 언니가 아직 그곳에 있어.”
“합수부에서 일전에 압수 수색하면서 아예 마을을 해체한 걸로 아는데.”
“아냐. 주민 마을은 그대로 뒀어. 아마 언니가 그 마을에 있을 거야.”
“그렇다면?”
“내가 보기엔 김유리는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니 그녀의 행방을 쫓아 봐. 쫓다 보면 전두태도 걸릴 거야. 어때? 할 수 있지?”
“그걸 어떻게 단정하죠?”
“서울지방청에서 CCTV를 확인했어. 그 차량이 경부고속도로를 탔다 하네.”
여기서 최림은 궁금한 게 있었다.
“혹시, 차량 내부의 인원도 찍혔나요?”
“그래, 희미하지만 여자 한 명, 젊은 남자 두 명, 중년 남자 한 명이었어.”
최림은 직감적으로 그 젊은 남자 두 명이 원지 둔치 살인 용의자라고 추정했다.
중년 남자는 앞서 말한 대로 민채원의 수행원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최림이 대답했다.
“그렇게 하죠.”
“좋아. 당장 출발해. 서울지방경찰청에서 내려올 때까지 최소한의 단서나 증거를 찾아주면 좋겠어.”
조 팀장의 눈매가 매우 서늘했다.
경찰서를 나오자마자 최림은 미오에게 전화했다.
“누나, 접니다. TV 봤어요?”
미오도 잘 아는 것 같았다.
“그래, 그러지 않아도 내가 전화하려 했어. 넌 어떻게 생각해?”
“뭘요?”
“전두태가 정말 살아있는지, 아니면 페이크인지.”
최림은 잠시 침묵하다가 소신껏 말했다.
“살아있다고 봅니다. 그날, 천왕봉에서 추락한 건 위장이었어요.”
미오도 한숨을 쉬었다.
“그렇겠지? 하긴, 나도 그때 전두태가 이리 쉽게 죽을 놈이 아닌데, 하고 의심했어.”
“네, 불행히도. 그래도 아직 확실하지 않으니 제가 한 번 더 확인할게요.”
“그래, 참! 여의도 방화·살인 사건 용의자들이 탈출했다며?”
“네, 그래서 그중 핵심 인물을 찾기 위해 제가 그곳으로 잠입합니다.”
“그게 누군데?”
“김유리라고, 예전 저와 같은 형사팀에 있었어요.”
“아니 경찰이라고? 하긴 전두태가 포섭한 인간들이 한두 명이겠어?”
“뭔가 나오면 바로 연락할게요.”
“그래, 도움이 필요하면. 수고해.”
다시 찾은 공동체 마을은 황량했다.
그때 찾은 마을회관은 폐쇄되었고, 오직 주민들이 사는 마을만 존재했다.
최림은 행여 자신을 알아볼 사람이 있을까 싶어 변장했다.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쓰고, 수염도 덕지덕지 붙였다.
결정적으로 가을 지리산을 탐방하는 등산객으로 위장했다.
마침, 마을 안에 게스트하우스엔 등산객이 제법 있었다.
최림은 이곳에 방을 하나 구했다.
그리곤 은밀하게 누가 김유리의 언니인가도 알아내었다.
그때부터 최림은 그녀를 예의주시하였다.
그러다 그녀가 이틀에 한 번 무거운 짐을 들고 산 쪽으로 가는 걸 발견했다.
최림은 이때다 싶어 그녀를 미행했다.
‘어디로 가는 거지?’
뒤따라가면서도 최림은 그게 궁금했다.
한참을 올라가더니 여자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곳은 놀랍게도 지리산 솔봉이었다.
최림은 멀리서나마 여자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그런 후 휴대폰 갤러리에서 잘 찍혔나, 하고 확인하였다.
그런데 최림이 방심한 사이에 순간적으로 여자가 사라졌다.
‘뭐야?’
마침 해가 지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최림은 그만 내려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