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화단 가꾸기
작은 화단 디자인부터 시작해보자
정원 전체를 적절한 안배와 비율 그리고 식물을 이해하며 디자인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는 식물에 대한 지식은 물론이고 구도와 배치를 이해할 수 있는 미술적인 감각까지 요구되기 때문에, 그것을 익히는 데에 상당한 시일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정원 전체를 스스로 디자인하는 일에 엄두가 나지 않는 초보 정원사 혹은 디자이너라면, 우선 작은 화단부터 시작해서 점점 그 크기를 넓히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프랑스 쇼몽에서 매년 열리는 ‘Chaumont International Garden Festival’ 2011년의 화단 조성. 화려한 색채의 화단으로, 보라색 계열의 꽃으로 화단을 장식했다. 화려한 꽃 화단의 조성은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eye catching)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것으로, 주로 정원의 입구나 중심부에 조성해 하이라이트 역할을 한다.
화단의 형태와 종류
일단 화단이란 무엇이란 무엇이고 어떤 형태가 있을까? '화단(花壇)'은 우리말로 풀이하면 ‘꽃을 심기 위해 구획된 단’이다. 우리의 경우 화단 문화가 특별히 발달하지 않아서인지 화단을 특별한 모양과 형태로 구별하지 않지만, 서양에서는 화단의 형태를 크게 ‘bed’와 ‘border’로 구별한다.
1) bed: 뒷배경이 없이 독립적으로 만들어져 사방에서 볼 수 있는 화단
2) border: 담장이나 생울타리 등의 배경을 두고 있는 것으로, 한 방향에서 바라보는 화단
결론적으로 이 화단의 구별이 중요한 이유는 사방에서 볼 수 있는 ‘베드’인가, 아니면 한쪽 면에서만 바라보는 ‘보더’인가에 따라서 식물의 디자인이 매우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방에서 바라볼 수 있는 ‘베드’의 경우는 키가 큰 식물을 가운데 심고 키가 작은 식물을 사방에 둘러서 어느 쪽에서 보더라도 비슷한 모양이 되도록 구성한다. 반면 뒤에 담장이나 생울타리를 배경으로 두고 있는 ‘보더’의 경우 키가 큰 식물을 뒤로, 키가 작은 식물을 앞으로 배치시키는 방식을 많이 택한다.
뒤에 담장이나 생울타리를 배경으로 두고 있는 ‘Border’ 형식의 화단. 보더 화단의 경우는 앞쪽에서 뒤를 바라보기 때문에 키가 큰 식물을 뒷쪽으로 배치하고 키가 작은 식물을 화단 앞으로 위치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방에서 화단을 관람할 수 있는 형태는 흔히 ‘Bed’형 화단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는 원형, 사각형의 형태인데 섬처럼 떠있다는 뜻에서 ‘아일랜드 플라워 베드’라고도 부른다.
화단의 위치
정원 전체를 화단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럴 이유도 없다. 화단은 일종의 하이라이트 혹은 포인트의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작은 크기의 화려한 식물을 심어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화단은 정원의 포인트가 되는 부분, 예를 들면 정원의 중심부나 정원의 입구, 창문 밑, 대문 앞 등에 위치하곤 한다.
화단의 위치는 들어오는 입구 혹은 동선을 유도하는 식으로 정원의 하이라이트 효과를 낼 수 있는 곳이 좋다. 더불어 화단의 마감선을 보통은 회양목 등을 이용해 뚜렷하게 경계를 두기도 하는데 화단 안으로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효과와 더불어 미학적으로도 깔끔한 처리가 된다.
식물에 맞는 화단을 선택하자
화단의 모양은 매우 다양하게 구성이 가능하다. 특히 서양 화단의 경우에는 자유로운 곡선의 불규칙한 형태보다 직사각형, 원형, 삼각형 등 기하학적 문양이 많이 사용되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좀 더 복잡한 기하학적 모양이나 매듭이 엮이듯 겹쳐지고 꼬여진 형태 등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이럴 경우 전통적으로 유럽에서는 회양목Boxus sempervirens이나 주목Taxus baccata 등의 상록수를 이용해 형태를 잡는다. 이런 화단 구성의 가장 큰 장점은 꽃이 사라지고 난 이후에도 화단 자체로 안정적인 아름다움을 주기 때문에 화단의 구성이 단조롭지 않아 사계절을 (겨울까지도)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화단의 구성에도 시대별 유행이 있기 마련이어서 최근의 경향은 마치 대평원의 야생화 초원을 연상시키는 ‘프레리 양식(prairie style)’이 유행을 타고 있다. 대표적인 가든 디자이너로는 네덜란드 출신의 피에트 우돌프(Piet Oudolf) 스타일이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화단의 식물 디자인 경향은 인위적이지 않게 내추럴한 구성으로 일년생 재배식물을 배제하고 야생화 위주의 식물군을 많이 이용한다. 색감에 있어서도 선명하고 화려한 원색의 조합에서 파스텔톤까지, 마치 캔버스에 화가가 그림을 그린 듯한 색감을 연출한다.
쉽게 따라할 수 있는 화단 디자인 노하우
1. 어떤 식물을 기를 수 있는지 파악하자
화단을 구성하고 싶은 장소를 정했다면, 장소의 특징을 잘 살펴봐야 한다. 하루 종일 햇볕이 쨍쨍 내려쬐는 곳이라면 건조하고 따뜻함을 좋아하는 식물을 심어야겠지만, 반그늘의 장소라면 당연히 그늘에서 잘 커주는 식물을 선택해야 한다. 아무리 심고 싶은 식물이 정해져 있다고 해도 장소의 특징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포기할 수밖에 없다.
2. 화단의 질감과 색채를 결정하자
화단이 조성될 장소에 적합한 식물군을 골랐다면 이번에는 어떤 식으로 식물을 구성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예를 들면 꽃의 색감을 파스텔톤 혹은 원색 등으로 맞출 수도 있지만, 초록의 잎이 지니고 있는 질감이나 문양을 살려 식물을 선정할 수도 있다. 어떤 테마로 화단을 구성할지를 선택한 뒤 거기에 맞는 식물의 리스트를 뽑아내자.
3. 식물의 형태와 높이를 고려하자
색상이나 질감을 고려해 식물을 골랐다고 해도 식물마다 그 크기와 형태는 매우 다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화단이 사방에서 관람이 가능한 ‘베드’ 형태라면 키가 큰 식물을 가운데로 키가 작은 식물을 가장자리로 보내는 것이 좋다. 그러나 뒷배경이 막혀 있는 ‘보더’의 경우에는 키가 큰 식물을 뒤로 작은 식물을 앞으로 보낸다. 만약 키가 큰 식물을 앞에 배치했을 경우에는 뒤에 위치한 키 작은 식물이 보이지 않거나 혹은 키 큰 식물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해 성장하지 못하고 죽을 가능성이 높다.
4. 사계절을 안배하자
식물을 고를 때 또 하나의 중요한 기준은 사계절을 안배하는 것이다. 식물의 경우는 잎과 꽃에만 색상이나 질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의 줄기에도 색감이 나타난다. 잎이 모두 진 겨울철에도 아름다운 색감의 나무 줄기로 아름다운 겨울정원의 연출이 가능하다. 더불어 드물기는 하지만 스노우드롭galanthus이나 다프네와 같이 겨울에 꽃을 피우는 식물도 있다. 상록수와 더불어 사용한다면 아름다운 겨울의 정원이 가능하다.
5. 소규모 그룹을 만들고 반복시키자
작은 화단이라도 해도 수많은 꽃을 낱낱으로 늘어놓는 타입은 아름다운 디자인을 만들기에 어려움이 많다. 미술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원에 심어야 하는 식물들도 그 구도와 배치가 매우 중요하다. 식물 디자인의 경우는 식물들을 작은 그룹으로 먼저 구성하고, 그 그룹을 반복해서 연출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6. 밑그림을 반드시 그려라
그림이라고 하면 겁부터 먹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머리 속으로만 구상한 뒤 식물부터 구입하는 것은 실패로 가는 지름길이다. 어설프지만 종이 위에 화단 구성을 미리 그려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선 화단의 크기를 정확하게 자로 잰 뒤 축적을 이용해 종이 위에 화단을 그리자. 그리고 그 위에 필요한 식물을 얹어보면서 색감, 형태, 사계절의 안배 등을 생각해보자. 실패한 종이가 쌓일수록 실질적인 시공상의 실패가 줄어들게 된다. 종이 위에서 마음껏 연습한 뒤에 실행으로 옮기는 여유를 갖자.
7. 아무리 작은 화단도 한 해에 완성되지 않는다
봄에 조성한 화단에는 당연히 봄에 꽃을 피우는 식물이 많아지게 되고, 여름에 조성한 화단에는 여름 식물이 가득하다. 때문에 아무리 작은 화단이라고 하더라도 사계절을 즐길 수 있는 풍성한 화단을 만들려면 적어도 2,3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만들어서 행복하고 보기 좋은 화단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 더욱 풍성하고 아름다워지는 화단을 만들자. 정원은 기다림을 배우는 곳이기도 하다.
8. 구조물, 미술품을 이용하자
감각적인 벤치나 화분, 조각이나 구조물과 같은 미술품들은 식물을 더욱 빛나게 만드는 액세서리가 될 수 있다.
정원은 식물이 주는 아름다움과 감동으로 가득한 공간이다. 그러나 식물만으로 구성된 정원은 반짝이는 액세서리가 빠진 것처럼 조금은 지루할 수 있다. 이럴 때 감각적인 벤치나 화분, 혹은 조각물, 구조물들은 식물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더욱 빛나게 해주는 요소가 된다. '화룡점정'이라는 말처럼, 식물로 가득한 정원에 뭔가 하나 점을 찍을 수 있는 예술품을 넣어보자.
9. 다년생 식물이 자랄 수 있는 시간 동안, 빈 공간에 일년생 식물을 채우자
다년생 식물은 성장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충분히 자랄 수 있도록 공간을 확보해주는 것이 필수적이다. 때문에 화단을 조성한 첫 해는 엉성한 화단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게 보기 싫어서 처음부터 촘촘히 식물을 심게 되면 훗날 식물들끼리 경쟁이 심해져 모두 빈약하게 자라는 현상을 겪게 된다.
이럴 때는 두 가지의 해결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촘촘히 심어서 첫해부터 보기 좋은 식물을 본 뒤, 다음 해부터 지나치게 촘촘한 부분의 식물을 캐내주는 방식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방법은 충분히 공간을 확보해주고 빈자리에 대신 일년생 식물을 넣어주는 방법이다. 겨울이 되면 1년생 식물은 생명을 다하기 때문에 다음 해에는 다년생 식물에게 자리를 양보해줄 수 있게 된다.
10. 심는 것보다 관리가 더 중요하다
화단을 디자인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관리이다.
이 모든 과정을 다 거쳐 정성스럽게 화단을 구성했다고 해도 관리가 소홀해지면 화단은 곧 잡초밭으로 변하거나 죽은 화초들로 가득차고 말 것이다. 가장 좋은 관리 요령은 심기 전에 미리 흙을 잘 만들어주는 것이고, 잘 심어주는 과정 그리고 심은 뒤에는 필요하다면 영양분을 공급해주거나 잡초가 올라오지 못하도록 두텁게 멀칭을 해주어 흙과 뿌리를 보호해주는 것이다.
Tip point 1 다년생 식물의 심기 간격
해를 거듭할수록 몸집이 커지는 다년생 식물은 심기 간격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되는 부분.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정원사마다 모두 다르다.
다년생 식물은 첫 해에는 어리고 그 크기도 작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몸집이 커진다. 문제는 조성할 때에 이를 짐작하기가 쉽지 않아 그 간격을 얼마나 띄워야 할지 늘 고민이 된다. 그런데 이런 노하우는 특별히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정원사마다 그 방식이 다르고 그 효과도 다르다. 일반적으로는 식물의 크기가 작으면 떼어주는 간격도 작아지고, 식물이 크면 식물 간의 간격도 넓어진다. 그래서 패랭이꽃의 경우는 사방 1미터 공간에 9개, 키가 크고 벌어지는 각시꽃Crambe이나 아칸투스Acanthus는 2개 정도를 심는 것이 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거름을 많이 필요로 하고 서로의 간섭을 싫어하는 장미는 사방 1미터 공간에 4개 정도가 적당하고 같은 종의 경우는 그 간격이 500mm 정도, 수종이 다른 경우에는 1미터 정도 떨어뜨리라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식물원의 꽃 화단을 떠올려보자. 이런 곳의 꽃 화단은 기존의 상식을 깨고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식물들이 촘촘히 심어져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정보를 따라야 할까? 결론적으로 이 두 가지 방식에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우선 전자처럼 간격을 충분히 확보해줬을 경우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식물이 건강하게 잘 자라서 3, 4년 후 쯤에는 화단이 원하는 만큼 풍성해진다. 그러나 이런 풍경이 만들어질 때까지의 긴 시간 동안 화단은 엉성하고 그 사이 잡초가 번지게 되면 화단 전체가 망가질 수도 있다.
반면 후자의 경우처럼 촘촘하게 식물을 심게 되면 식물은 경쟁이 심해져 우선 빨리 키를 키우려고 노력하면서 웃자라게 된다. 그래서 자연상태라면 2, 3년이 걸려야 다 자랄 수 있는 식물이 1년 안에 그 키를 다 키운다. 하지만 식물들끼리 물과 영양분을 치열하게 나누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식물들의 상태가 비실거리며 건강하지 않고 꽃도 잘 맺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두 방식 모두가 안고 있는 단점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안책이 필요한데, 만약 전자의 방식을 택했다면 간격 사이에 1년생 식물을 심어서 그 빈자리를 메워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고, 만약 후자의 방식으로 촘촘히 심었다면 1,2 년이 지난 뒤에 일부 식물을 빼내서 자리를 다시 확보시켜주는 것이 좋다.
화단 식물 심기의 노하우
1) 화분 식물을 화단에 심어주는 요령
1. 땅 위에 화분을 이용해 눌러서 크기를 표시한다.
2. 한 손으로 식물을 받치고 나머지 한 손으로 화분을 기울여 식물을 빼낸다.
3. 화분 크기의 두 배가 되도록 구멍을 만든다.
4. 흙을 메꾸어 준다.
5. 신발 끝으로 부풀어오른 흙을 눌러 준다.
6. 호스를 이용해 물주기를 듬뿍 한다.
2) 화분에 직접 씨 뿌리는 요령
1. 갈고리를 이용해 흙을 정리한다. 자갈이나 잡초가 나오면 모두 제거한다.
2. 잘 정리된 흙 위에 대나무 막대를 이용해 줄을 표시해주고, 그 줄을 따라 씨를 심어준다.
3. 손바닥에 씨앗을 놓고 다른 손으로 톡톡 건드려 씨가 한곳에 너무 많이 뿌려지지 않고 골고루 뿌려지도록 한다.
4. 다시 갈고리를 이용해 너무 깊지 않게 살짝 흙을 덮어 준다.
5. 가는 물줄기가 나오는 물조리개를 사용해 물을 뿌려 준다. 거친 물줄기에 씨앗이 흘러내려 갈 수 있기 때문에 호스를 이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
실패를 통해 배우는 정원
아무리 유능한 정원사라고 해도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실제로 정원사의 격언에는 "유능한 정원사는 실패의 경험과 비례한다"는 말도 있다. 살아있는 식물들은 주어진 환경 속에 적응을 하려고 최대한 노력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많은 이유들로 죽게도 된다. 그래서 내 집 정원의 노하우는 첫 해의 실패 경험이 두 번째 해를 만들고, 두 번째 해의 실패가 세 번째의 풍로움을 만든다고들 한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으니 천천히 정원을 관찰하고 기다리는 마음으로 식물을 바라봐주는 시간도 분명 필요하다. 그래서 정원은 천천히 가는 길을 배우는 장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