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야나 집단에서 능력이나 기술이 매우 뛰어난 사람'. 국어사전의 풀이다. 살을 더 붙인다면 일정한 경지에 오른 사람이라는 뜻도 된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고수는 각 분야의 수만큼이나 많을 수 있다. 다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고수는 철저하게 만들어진다. 최고의 반열에 오르기 위한 길은 타고난 재능만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본지가 강호의 고수들을 찾아 나섰다. 그 곳은 첩첩산중일 수도 있고, 도심의 번화가일 수도 있다. 널리 알려진 또는 초야에 묻힌 평범한 사람일 지도 모른다. 다만 장삼이사들은 한 수 배우기를 청할 뿐이다.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하늘에 태양이 하나이듯, 무림에는 두 명의 고수가 존재할 수 없는 법…." "가소로운 놈. 네 놈이 나의 독룡신검을 삼 초식만 피하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크앗, 우르르 쾅쾅 우르르."
활갯짓 한 번에 사람 키 서너배를 뛰어오르고, 섬광같은 장풍으로 내장을 망가뜨려 죽게 하는 초절정 고수들. 무림의 세계를 어지럽히는 사파를 깨부수는 소림사 무당파….
택견고수를 만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는 길. 문득 학창시절에 읽었던 무협소설이 떠올랐다. 정말 공중으로 붕붕 날아다니는 사람이 아닐까. 째려보는 눈빛 한 번에 인터뷰고 뭐고 그냥 혼비백산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기자의 이런 걱정은 말 그대로 기우였다. 세계택견본부 총사이자 대한택견협회 상임부회장인 이용복(59) 택견 9단은 온화한 인상의 노신사. 썩 괜찮은 기업의 최고경영자라고 해도 속아 넘어갈 정도다. 오랜 단련으로 굳은살이 박인 주먹의 정권이 무술가임을 언뜻 내비칠 따름이었다.
# 고수 찾아 산천 주유
혹시 몇 년 전에 방송된 드라마 '파랑새는 있다'의 차력사 병달이를 기억하시는지. 이 총사는 자신의 젊은 시절이 병달의 이야기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었다고 언급한다. 이 총사 역시 울릉도 성인봉, 계룡산 등 전국의 산을 누비고 다녔다. 고수가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불원천리하고 찾아갔다. 무협소설의 무림 고수처럼 초인적인 힘을 얻고 싶었던 까닭이다. 힘을 시험하기 위해 싸움도 많이 했다.
"애꿎은 사람을 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니 상대는 만만한 게 불량배였습니다. 남포동 주점 등을 배회하다 손님들에게 괜히 시비를 거는 사람을 만나면 흠씬 두들겨줬죠. 부산역이나 사창가 근처에 살던 불량배, 동네 건달들도 심심찮게 도장을 찾아와 위협을 했습니다. 지면 도장 문을 닫아야 하니 자존심 차원에서 대결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아직까지 한 번도 져 본 적은 없습니다."
한 때 사람 키 높이 이상 뛰어 올라 기왓장을 깨기도 했다는 이 총사. 지금 실력은 어느 정도냐는 멋쩍은 질문을 던져봤다. "젊은이들이 하는 만큼 민첩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빈틈이 보이기 때문에 웃을 수 있는 여유는 가진다"는 달관한듯한 답이 돌아왔다.
절대고수라는 파랑새를 좇던 이 총사가 그 꿈을 접은 것은 범어사와 부석사에서 불교무술에 통달한 스님들을 만나고부터다.
"1970년대 초 일겁니다. 범어사 청련암의 양익스님이라는 분이 거의 날아 다닌다라는 취지의 기사가 신문에 실렸습니다. 그 때 같이 운동을 하던 친구 등 4명이 이 기사를 보고 흥분해 양익스님을 찾아갔습니다. 젊은 혈기에 그 기사가 사실인지 확인해보고 싶었고, 누가 죽든 한번 겨뤄보자는 생각에 살기등등했습니다."
하지만 이 총사는 양익스님과 일합을 겨루지는 못했다. 인품에 반하기도 했지만 수도를 하는 사람이 왜 다른 사람들과 다투겠느냐는 스님의 말에 딱히 대응할 말이 없었던 까닭이다. 대신 양익스님은 부석사의 한 스님을 소개해줬다. 1956년 호주 맬버른 올림픽때 복싱선수로 출전했다가 탈락한 뒤 불교에 귀의한 이 스님은 당시 불교무술의 최고수로 알려졌던 인물. 이 총사는 여기서도 그토록 염원하던 고수의 비법은 전수받지 못한 채 하산한다. "중은 절에서, 태권사범은 도장에서 무량한 힘을 찾아야 하거늘 왜 산속을 헤매느냐"는 스님의 말 때문이었다. 비로소 이 총사는 미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택견은 민족무술
이 총사가 택견으로 길을 바꾼 것은, 부산역 인근에 한국전통택견연구회를 세운 1984년이다. 이는 1991년 발족한 대한택견협회의 전신이다.
이 총사가 보는 택견의 매력은 '상대를 죽이지 않고 누가 더 강한가를 가리는 지혜가 숨어 있는 무술'이라는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의 무술은 마치 인체를 도구 대신 사용할 수 있는 착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예컨대 누군가 칼을 들고 있어도 무술로 능히 이길 수 있다는 식입니다. 반면 택견에는 맨몸 무술의 진실이 발견됩니다. 옛날 중국에서는 맨몸 무술을 각력(角力)이라고 했습니다. 사슴들은 뿔싸움을 하지만 상대를 죽이지는 않습니다. 종족보존의 지혜죠. 택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 경쟁을 하는 상생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택견에 빠진 이 총사는 1991년 도장을 서울로 옮긴다. 택견을 알리기에는 아무래도 서울이 낫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즈음 택견 인구는 600여 명. 지금은 100만 명에 이른다. 20여년 사이에 비약적인 성장을 한 셈이다. 택견보급에 나선 자신의 노력이 주효했겠지만 1980, 1990년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들불처럼 번진 '우리 것 찾기' 열풍도 한 몫 했음을 이 총사는 부인하지 않았다.
# 절대고수는 없다
이 총사가 산천 주유를 포기하면서 내린 결론은 하나다. 하늘을 붕붕 날아다니는 절대고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른바 신비주의 무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리다.
"격파를 예로 들어 봅시다. 붉은 벽돌 한 장은 300㎏ 이상의 외부 하중을 견뎌야 KS 인증을 받습니다. 수십년간 단련을 한다면 가능이야 하겠지만 이것을 맨 손으로 깰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무술시범의 격파용 벽돌은 이 보다 작은 하중에 깨지도록 생산됩니다. 따라서 한 장만 제대로 깨도 고수라 할 수 있죠. 더 중요한 것은 초등학생만 돼도 벽돌은 해머로 깨면 쉽다는 것을 압니다. 근데 사람들이 애써 손으로 두들겨 벽돌을 깰 필요가 있을까요. 게다가 싸움이라는 것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것 아닙니까."
이 총사가 보건대 결국 이런 것들이 무술을 신비한 그 무엇으로 만들었고, 이에 현혹된 수많은 무술 수련자들이 무한한 힘을 가진 절대고수를 찾는 어리석음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이 총사는 지금도 오른손이 완전히 구부러지지 않는다. 젊은 시절 심한 주먹단련의 결과로 뼈가 변형되어 버린 까닭이다.
그럼 무림 고수는 진정 없는 것일까.
"무술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고수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안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흔히들 사람이 하지 못하는 일은 없다고들 말을 하나 인간은 한계를 가진 유한한 생명체 아닙니까. 고수는 예의도 중요시합니다. 자신의 약점을 알 때 공포감을 느끼게 되고, 비로소 그 때 사람들은 예의를 지키게 되는 법입니다."
# 택견의 명예회복
- 지난달 대한체육회 정식 가입
- 일제강점기 명맥 위협받기도
대한체육회는 지난달 26일 열린 2007년도 정기 대의원총회에서 대한택견연맹을 산하 정식 가맹경기단체로 승인했다. 대한택견협회가 지난 1991년 가맹신청을 한지 16년 만의 일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전국체전에서도 택견을 볼 수 있게 됐다. 이번에 승인된 대한택견연맹은 대한택견협회와 한국전통택견협회가 대한체육회 가맹을 위해 협조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택견이 언제부터 존재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일부에서는 고려사에 나오는 수벽치기가 택견과 동일한 것이라는 주장도 내놓았으나 아직 정확한 고증이 이뤄지지는 않았다. 이런 이유로 택견은 좀 더 학문적 분석이 필요한 무술이다.
택견은 일제시대때 거의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고 송덕기 옹과 그의 제자 신한승(1928~1987) 씨에 의해 간신히 명맥이 이어졌고 우리 전통 무예를 찾고자 하는 바람에 힘입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현재의 택견은 송덕기 옹에서부터 비롯되나 전수자에 따라 다른 모습을 띤다. 이용복 씨가 이끄는 대한택견협회가 가장 큰 단체이고 택견원형보존회 한국전통택견협회 결련택견협회 등이 있다. 택견이라는 큰 틀에는 차이점이 없으나 기술적인 면에서 약간씩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