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토박이인 콘도는 어릴때 부터 가수, 연기, 합창단 등 음악활동을 하며 자랐고 본격적인 음악공부는 버클리대학 키토(에콰도르의 수도)분교에서 배웠다. 2007년 첫 앨범 Shukshimi, warankashimi(음성, 천의 목소리)로 데뷰했으며 2013년에는 두번째 일범 VENGO A VER 을
현재는 맥시코의 베토 고메즈, 아르헨티나의 후안 튀 테로와 함께한 세번째 앨범 Pinceladas를 준비중이다 그녀는 얼마안되는 기간동안 정부의 문화 훈장도 받았으며 국영방송에서의 국민노래?상도 받았다. 이런 그녀의 좋은 행보는 첫째 기본적인 음악성이 있었고 그 음악의 모티브와 테마가 모두 서구의 것이 아닌 자신의 정체성인 에콰도르 민속음악이였기 때문이다. 정체성이 없거나 희미한 음악은 반짝음악일뿐인것을 그녀는 어린시절 부터 해온 음악 생활로 부터 깨달았을 것이다. 젊은세대답게 sns 등을 많이 활용하여 폭넗게 어필하고는 있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그녀의 존재조차 모른다..(참고로 나는 그녀의 팔로워이다..)
equator(에콰도르)는 왜 에콰도르인가...스페인어로 에콰도르는 적도란 뜻인데...이 나라 역사가 왠지 눈에 선하다..
사전의 에콰도르 (자연)
에콰도르는 안데스산맥이 동부산계와 서부산계로 갈라져 국토의 중앙부를 남북으로 뻗어 있다. 따라서 지형은 서부의 해안지대, 중앙산지 및 그 사이의 고원분지군과 동부의 아마존강 상류 저지대로 나누어진다. 기후는 안데스산맥과 중앙아메리카난류, 훔볼트(페루)한류의 영향을 받아 지역적 변화가 심하다. 중심지는 쿠엥카, 알라우시, 암바토, 이바라 등의 고원분지에 있으며 해발고도는 2,000∼3,000m로서 남쪽으로 갈수록 낮아진다.
기후는 저온과우(低溫寡雨)인데다 기온의 연교차도 작기 때문에 인간 거주의 최적지가 되어 수도 키토(해발고도 2,850m)를 비롯한 대도시가 고원분지에 모여 있다. 에콰도르는 지진의 나라로 알려져 있어 에콰도르안데스는 전체 안데스 산맥 중에서 화산이 가장 많은데, 동부산계에 있는 세계 최고의 활화산 코토팍시산(5,897m)과 카얌베산(5,790m), 서부산계에 있는 에콰도르 최고봉 침보라소산(6,267m) 등 5,000m급의 화산이 8개나 있다.
설선은 5,000m이며 6,000m 이상은 곡빙하(谷氷河)를 이룬다. 이 중앙산지에서 발원하는 남아메리카 태평양 연안 최대의 항행가능 하천인 과야스강(江)은 해안지대 남부에 과야스 저지라고 하는 기름진 삼각주를 형성하고 있다. 이 저지부터 해안선까지는 해발고도 200∼300m의 제3기 구릉지대이다. 해안지대의 북부는 무덥고 많은 비가 내려 열대우림이 발달해 있으나, 남쪽으로 갈수록 우량이 줄어들어 사바나에서 사막으로 바뀐다.
아마존 상류의 저지대(오리엔테 지방)에는 나포강(江)을 비롯하여 고원분지에서 발원하는 긴 강이 많아 동쪽으로 흐른 다음 안데스강과 합류한다. 이 지대는 고온다습하여 연강수량이 2,000∼3,000mm나 되며, 대부분이 밀림에 뒤덮여 있고 인구도 희박하다. 태평양에 있는 갈라파고스제도(국방부에서 관할)는 해류관계로 동식물의 보고(寶庫)가 되어 있으며, C.R.다윈의 진화론에 중요한 재료를 제공하였다. 전국토 중 경지가 11%, 초원 18%이며 숲과 산림지대가 56%나 차지한다.
사전의 에콰도르 (역사)
에콰도르에는 옛날에는 8개의 인디오 국가가 분립해 있었는데, 15세기 전반에 키토 왕국의 지배가 확립되었으며, 이 나라는 1460년 잉카제국에 정복당할 때까지 존립하였다. 그러나 잉카제국도 1532년에 에스파냐의 정복자 F.피사로의 손에 멸망하였으며, 그 이듬해에 정식으로 에스파냐의 식민지가 되었다.
처음에는 페루 부왕령(副王領)에 속해 있었으나 1717년부터 누에바 그라나다 부왕령의 관할하에 들어갔다. 그러나 풍습의 차이와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1563년부터 독자적인 아우디엔시아(상위의 사법, 입법, 행정기관)를 형성하였으며, 이 관할구가 오늘날 영토의 기반이 되었다. 독립운동은 1809년 및 1810년의 반란에서 비롯되었는데, 에스파냐의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 S.볼리바르의 부하인 장군 수크레가 산마르틴의 원조로 키토 해방에 성공한 것은 1822년의 일이었다.
그후 에콰도르는 그란(大)콜롬비아 공화국의 일원이 되었으나, 1830년 분리 독립하여 J.J.플로레스가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그러나 독립 후 상공업 경영자 중심의 과야킬과 반봉건 지주층을 중심으로 한 키토와의 지역적 대립, 이를 기반으로 한 자유당과 보수당의 분쟁 및 내란, 페루 및 콜롬비아와의 국경분쟁 등이 국가발전을 저해해왔다. 그런 속에서도 약간의 발전을 본 것은 독립 직후의 플로레스, 19세기 후반의 가르시아 모레노, 20세기 초의 알파로에 의한 3대 독재시대였다.
정치정세의 안정과 근대국가로의 발전이 시작된 것은 1940년대 후반부터였다. 1944년 5월 공산당, 사회당, 사회주의혁명전위당(前衛黨) 등으로 구성된 민주연맹이 반란을 일으켜 아로요 델 리오의 독재정권을 타도하였으며, 그해 7월의 대통령선거에서는 민주연맹이 지지하는 벨라스코 이바라가 당선되었다. 그는 1960년 선거에서도 토지개혁 등 진보적 정책을 내걸어 당선되었으나, 취임 후 독재적 경향이 심해지고 증세(增稅), 평가절하, 반정부운동 탄압 등을 자행하였기 때문에 1961년 11월 일어난 학생, 군부의 반란으로 망명하고 말았다. 부통령에서 승격한 대통령 훌리오 아로세메나는 누진소득세, 농지개혁 등 진보적 정책을 실행하였으며, 1962년 1월의 OAS(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미주기구) 외상회의 때는 쿠바 제재 결의에서 기권하였다.
그후 국내 우익세력과 미국의 압력으로 1962년 3월 대(對)쿠바 단교(斷交)조치를 취하게 되자 쿠바지원운동, 반정부운동, 농민들의 토지점거운동이 격화되었다. 1963년 7월, 용공적 경향에 불만을 품은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헌법정지, 의회해산, 공산당의 비합법화를 단행하였으며, 대령 라몬 카스트로 히혼을 위원장으로 하는 군부정치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이 군사정권은 경제, 사회 발전 10개년 계획 등의 경제개발정책을 입안하여 추진하였으나,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정치가와 학생의 저항에 경제정세마저 악화되었기 때문에 민정이양을 결의하고, 1966년 3월 정부를 상원의원 이에로비 인다브로에게 이양하였다.
입헌제의 조기 복귀를 지향한 임시정부는 그해 10월에 제헌의회 선거를 시행하였고, 여당인 사회그리스도교운동당의 아로세메스가 임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정치상황의 불안과 경제 위기는 가시지 않았으며, 1968년 7월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벨라스코 이바라가 다시 대통령이 되었다. 산지의 인디오 농민이 벌이는 토지요구운동과 학생·노동자의 반정부운동 속에서 벨라스코 정권은 군부의 협력을 얻어 좌파에 대항하였으며, 에콰도르를 ‘협동조합’ 국가로 재편성하는 구상을 발표하고는 의회해산과 헌법정지를 단행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좌파의 반발을 자극하는 결과가 되었으며, 1971년에는 10만 명의 노동자가 참가한 대규모 파업이 일어났다.
1972년 2월 군부는 마침내 대통령 벨라스코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무혈 쿠데타를 통해 그를 아르헨티나로 추방하였으며, 통합참모장 로드리게스 라라 자신이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그러나 1976년 1월 그 역시 퇴진하고, 육·해·공 3군 최고사령관으로 구성된 집정평의회가 성립되어 해군중장 포베이다가 집권, 민정 이양 준비를 시행했다. 1978년 1월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국회의 단원제, 문맹자에 대한 선거권 부여, 대통령 재선 금지 등을 규정한 신헌법을 채택하였다.
그후 1979년 4월의 총선거에서 인민무력연맹(PCPF)의 롤도스 아길레라가 대통령에 당선, 민정복귀가 실현되었다. 1981년 5월 대통령 롤도스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자, 부통령 우르타도가 의회의 인준을 받아 대통령이 되었다. 1984년 1월의 대통령선거에서는 기독교사회당의 코르데르가 승리하였고, 1988년 선거에서는 보르하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8월에 취임하였으며, 1992년 7월의 총선에서는 공화연맹당(POUR)의 바벤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우리나라와의 관계
에콰도르는 한국 단독수교국이다. 에콰도르 정부는 1949년 10월 4일 한국을 승인하였으며, 1962년 10월 5일에는 양국간의 외교관계가 정식으로 수립되었다. 1974년 3월 상주공관을 설치하였다. 1983년 경제기술협력, 사증면제협정, 1984년 어업협정, 1985년 문화협정, 2001년 외교부간 태평양연안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하여 상호 협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975년부터 한국의 건설업체가 에콰도르에 진출하여 1977년에는 정유공장의 배관공사와 키토시의 도로포장공사에 참가하였다. 또한 원양어선이 에콰도르에 어로기술을 제공하는 등 합작투자 형식의 어로협력이 이루어져 왔다.
주요 수입품은 자동차, 가전제품, 의류, 자동차 부품, 타이어 등이고 수출품은 원유, 바나나, 어류, 목제품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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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에콰도르 이민을 생각하는 한국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그런데 그에 대한 조언들을 보면 다들 가지 말란다. 일단 환율이 비싸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막상 수입은 적고 우리 교민이 가장 많이하는 부동산임대업도 수익률이 너무 낮고... 최근 한류바람으로 한국식당운영은 좀 괜찮다고 하는데 그게 아무나 하는 일인가? 개발도상국이기 때문에 질좋은 교육기관이 없어 외국계 학교를 보내는데 그 비용이 오히려 주변 국가들에 비해 오히려 더 비싼 편... 뭐 내가 쓸데없는 걱정을 한것 같다..갈것도 아닌데... 사나이사 사는 곳을 보니 좋아보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