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철 목사, 존경할만한 분이기에 소개합니다.
한국교회가 이 정도 수준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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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리더③ 100주년 기념교회 이재철 목사
소유, 지위, 지식에 의존하지 않는 게 가난한 마음
이재철(59·사진) 목사는 ‘양화진 묘지기’다. 서울 합정동의 양화진은 한국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한 6개국의 외국인 선교사 143명이 안장된 공동묘지다. 연세대 설립자인 언더우드 일가, 대한매일신문을 창간한 베델, 이화여대 설립자인 스크랜턴 부인, 배재학당과 정동교회 창립자인 아펜젤러, 한국의 백정(白丁)을 해방시킨 무어, 독립유공자인 헐버트 박사가 묻혀 있다. 한국 교계는 2005년 양화진에 ‘한국 기독교선교 100주년 기념교회’를 설립해 이 목사에게 맡겼다.
이재철은 ‘좁은 길’을 걷는 목사다. 그는 목회자로 나서면서 세 가지 약속을 했다. ①예배당을 소유하지 않는다. ②한 교회에서 목회 활동은 10년을 넘기지 않는다. ③헌금의 50%는 구제에 쓴다. 1988년 52명의 교인과 함께 서울 강남 YMCA 건물을 빌려 ‘주님의 교회’를 세웠다. 신도가 3000여 명으로 늘어나자 이 목사는 잠실동 정신여고에 무상으로 학교 강당을 지어 주고 주일에만 예배 장소로 빌렸다. 10년 임기가 닥치자 하루도 넘기지 않고 훌쩍 자기가 개척한 교회를 떠났다. 그런 뒤 스위스 제네바로 날아가 작은 한인교회를 인도하고, 귀국한 뒤 100주년 기념교회를 맡기까지 중·고등학생 성경 교육에만 전념한 것도 주님과 함께 좁은 길을 걷겠다는 세 가지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탈런트 고은아집사가 그의 누나다.
이 목사는 토요일 하루는 일절 외부와 접촉을 끊고 오로지 기도와 설교 준비에 바친다. 자기 이름의 부동산이나 통장 하나 없다. 자기 이익을 구하는 신앙이 판치는 종교편의주의 시대에 이 목사를 만난 것은 깊은 산 속 옹달샘 같은 경험이었다. 다음은 5일과 12일, 두 차례에 걸쳐 그리스도의 평화에 대해 이 목사가 설교한 요지.
성경과 찬송가에는 평안·평강·평화·화평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평화만큼 찾기 힘든 것도 없습니다.
최근 유명 연예인들이 자살했습니다. 겉으로는 화려했으나 마음속에는 절대 고독과 절망·초조함·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었나 봅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로 전 세계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멜라민 파문, 해적의 출몰, 폭탄 테러, 정부군과 반군 간의 교전, 페스트, 압사 사고, 국경 분쟁, 태풍, 지진….
사도행전 10장 34~43절에서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하신 구원의 복음을 ‘평화의 복음’이라 정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을 보내셨는데,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평화를 전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이 일은, 요한의 세례 활동이 끝난 뒤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 지방에서 이루어졌습니다.”(사도행전 10:36-37)
이 말씀은 그리스도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한 지점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사역이 시작된 지점은 갈릴리였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가난한 갈릴리가 선택된 이유
일반적으로 한 시대를 이끌어 가는 힘은 대도시에서 나옵니다. 정치·경제·교육·문화적인 힘이 주로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갈릴리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낙후되고, 가장 가난한 빈민이 모여 사는 곳이었습니다. 왜 예수님은 하필이면 갈릴리를 사역의 출발점으로 삼으셨을까요?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 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그러나 누가복음 6장 20절에는 약간 다르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마태복음에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기록돼 있는 반면, 누가복음에는 ‘심령’이란 단어가 빠진 채 그냥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수신자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장 3절에 따르면 누가복음의 수신자는 ‘데오빌로 각하’로 불리는 유력한 사람이었습니다. 누가는 지체 높은 데오빌로에게 단순히 ‘가난한 자’라고만 말함으로써 예수님의 진의를 더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했습니다. 누가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이런 의미였습니다. “데오빌로 각하여, 당신은 지식도 많고 직책도 높고 소유도 많지요? 당신은 자기를 믿는 구석이 많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의지하려는 마음은 상대적으로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믿을 구석이 없기에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얻는 복된 사람이 됩니다.”
반면 마태복음의 수신자는 가난한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마태는 그들에게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증언했습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물질을 저절로 초월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더욱 심한 물질의 노예가 될 수 있습니다.
마태의 증언은 다음과 같은 의미였습니다. “여러분이 가난하다고 해서 복된 것은 아닙니다. 마음이 가난해져야만 합니다. 마음이 가난해지지 않으면, 경제적 빈곤함이 여러분을 얼마든지 완악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마음은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경제적 빈부에 상관없이 더 이상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소유물에 의지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가난한 마음은 철저한 자기 절망에서 비롯됩니다. 더 이상 자신에게 의지하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께 매달리게 됩니다.
신앙은 철저한 자기 절망에서 싹터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역시 잘나고 가진 것 많은 예루살렘 사람들이 아니라 무식하고 비천한 갈릴리 사람들이었던 이유 역시 여기에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예루살렘 사람들처럼 스스로 지켜야 할 것이 많았다면 그들은 자신을 온전히 버리고 주님만 좇는 주님의 제자가 되려 하지도, 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가난하고 무식하고 비천해야만 주님을 온전히 좇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히브리어로 갈릴리는 ‘고리’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 속에서든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님을 신뢰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주님께 매다는 고리가 되는 사람은 누구든 ‘갈릴리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세계적 경제위기 속에서 세상살이가 날로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혹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아니면 어떤 면에서든 무엇인가 부족함으로 인해 삶의 고통을 겪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그 고통으로 인해 더 이상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 가난한 심령을 지닐 때입니다. 그 부족함으로 인해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고리로 거는 갈릴리 사람이 될 때입니다.
이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루살렘 사람으로 방치해 두시지 않고 갈릴리로 이끌어 내셨습니다. 이 은혜를 깨닫고 우리가 가난한 심령을 지닌 갈릴리 사람으로 살아가는 순간부터 우리의 삶을 통해 평화의 복음이 살아 역사할 것입니다.
이재철 목사 연락처
한국 기독교선교 100주년 기념교회 02-332-9177
교회 홈페이지 100church.org
첫댓글 이재철 목사님 설교 들으면서 많이 깨집니다.
많은 깨우침을 얻습니다. 이 시대에 살아있는
외침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님 설교에 귀 기울여 보세요.
사도행전 속으로 ........이재철 목사님 설교집입니다.
꼭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