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바쁜백조(은화)|작성시간04.09.15
|조회수44목록댓글 3
고추를 다듬었습니다.
혼자한게 아니라 어른들과 함께.
곧 다가올 추석 김치에도 써야 하고 겨우살이랑 일년동안 먹을 양념거리 하나가 해결된게지요.
며칠전 부터 여기저기 고추에 대한 정보를 입수 하시고 요모조모 따지고 하시더니 일요일 저녁식사를 하시며
"낼모래 고추사러 강화에 간다"하시더군요.
"예? 낼모래 화요일에요?"
"아니지~ 25일에."
잘 새겨 들어야 합니다. 어른들은 한달 이내는 낼모래입니다.
(다행이다...)화요일에 친정에 가려고 맘 먹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어제저녁 갑자기 예정이 바뀌어서 집근처 시장에 고추가 좋다며 사셨는데
사정상 저녁에 배달을 못해주고 아침 일찍 갖다 주겠다고 하더니
아침 일곱시에 배달해 주는게 아니겠어요? 어디 가야해서 일찍 왔노라며...
부지런히 빨래 해 놓고 친정가려 했더니 다 틀려 버렸습니다.
20근이 넘는 고추를 어른들 두분이 다듬으시는데 친정 간다고 쏙 빠져 나갈수도 없고...
뭐 그렇다고 딱히 중요한 일이 있어서 간다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없이 같이 고추를 다듬었습니다.
(왜 하필 오늘 올게 뭐람?
그리고, 아니 고추 사는게 뭐 그리 급하시다고 이리 서두르시는지...
그렇다고 고추값이 더 오르지도 않더구먼...)
속으로만 궁시렁 궁시렁 ....
어머니는 허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하시면서도
얼른 씨를 털어 누구에게 시키지도 않고 당신이 직접 고추를 빻아 오셨습니다.
"여보세요? 엄마?"
"응? 어디가니?"
"아니~ 콩나물국 끓일려고 콩나물 사러 왔다가 전화 한거예요~"
"오늘 엄마 한테 가려고 했는데 고추 다듬느라고 못 갔어요~"
"으응~ 엄마도 지금 아빠랑 고추 빻러 방앗간 갔다 왔다. 고추 사 놓고 나니 마음이 놓인다."
"아니~ 근데... 어른들은 중요하게 여기는게 난 왜 안 중요하단 생각이 안들어? 왜 꼭 지금 사야되냐 말야~?
그리고 그냥 시장에서 좋은거 나오면 사면 되지 꼭 충청도다 어디다,어디다 찾아가며 사야되?"
"그게 젊은 사람들하고 나이먹은 사람들 하고 차이다.
처음 딴 고추를 사야 맛도 좋고 빛깔도 좋고 살도 많은게다.
그러니까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사지~. 젊은 사람들이야 그냥 먹을 만큼씩만 사면 되는걸 뭘 그리 많이 사냐고 해도 그게 아니다. 그래도 그렇게 해야 한 해 동안 좋은 고추 먹지~.걱정하나 줄었쟎냐~"
(......친정엄마 맞아?)
내 볼멘 소리에 아랑곳 없이 엄마는 불만을 더 얘기 할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하긴~ 그 덕에 겨우살이 준비 하나는 해결했으니까~
우리 애들도 이담에 나 한테 그러겠지? 엄마는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그렇지~"
"아무래도 난 사이비 주부 인가봐~"
그저 편들어서 달래주길 바랬다가,아니 뻔히 엄마의 반응이 그럴줄 알면서도 전화 했다가
내 흉만 잡힌 꼴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무튼
하루를 몸은 집에 마음은 친정에 있으면서 속으로 궁시렁궁시렁(언제 부터인지 나도 모르게)...
보나마나 입이 댓발은 나와 있었을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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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리스트
작성자이계원 | 작성시간04.09.15
딸을 챙기시는 친정엄마의 마음이 따뜻하네요
작성자성우는 詩 모이 | 작성시간04.09.15
막내딸 직장다닌다는 이유로 매년 고추가루를 보내오시는 장모님께...이 자리를 빌어 감사하다는 말씀 전합니다......근데요..시골서 고추말리는 기계 살적에 작은동서랑 저랑 돈 모아서 샀지 뭐여유 ㅋㅋ..그 기계값이 평생 먹을 고추가루 값?? 맞나..ㅋㅋ..고추야그하니까 장모님 보고잡다요.ㅋㅋㅋ..^^*
작성자한은주 | 작성시간04.09.16
그런 고추가 진짜 고추지...나도 고추 일로 궁시렁댈 수 있으면 좋겠네요. 빛깔부터 다르던데, 정성이 들어가서 더 그런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