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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가 루 살로메(1861~1937) 1861년 러시아의 페테르부르크, 유복한 가정에서 출생한 루 살로메는 21세 되던 해 어머니의 신병 요양 차 로마에 갔다가 니체의 친구 파울 레(당시 33세)를 만나 사랑하게 되었다. 파울은 니체(당시 38세)에게 조언이 필요하다는 그녀의 부탁에 따라 그녀를 니체에게 소개시켜주었다. 그녀를 본 니체는 한 눈에 반해버렸고, 잠시 동안 그녀와 함께 지내며 청혼을 하였으나 거절당했다. 그녀는 그 후 파울과 3년간의 동거에 들어갔으며 그동안 이 소설을 썼고 ,1885년(24세)에 발표했다. 원 제목은 <Im Kampf um Gott> 로서 <신을 얻기 위한 투쟁>이라는 뜻이다. 이 책은 20대 초반의 여인이 쓴 책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심리적 통찰과 “이성과 신앙” 에 대한 갈등을 묘사한 대담성으로 큰 호평을 받았다. 루 살로메는 이 책을 시작으로 유명 작가로서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그 후 루 살로메는 파울과 헤어졌으며, 버림받은 파울은 그녀와 함께 지냈던 바위의 절벽에 뛰어내려 자살하였다. 루는 26세 때 베르린의 문헌학자 프리드리히 칼 안드레아스 교수와 우정관계를 전제로 결혼했으며, 28세에는 극작가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과 사귀었다. 36세 때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당시 22세)의 애인이 되었으며 함께 러시아를 여행하며 톨스토이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39세 되던 해에 니체의 사망, 40세 때에는 한때의 애인이었던 파울의 자살 소식을 접했으며 릴케와도 헤어졌다. 1902년, 41세에는 마르틴 부버의 권고로 사랑의 운명적인 힘을 주제로 한 「엘로티크」를 집필하였다(1910년 출판). 1911년. 50세에는 프로이트와 만나 문하생으로 정신분석학을 연구하며 교분을 쌓았으며, 동료 문하생이었던 “타우스크” 박사(당시 35세) 와도 사귀었다. 1861년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의 유복한 가정에서 출생한 루는 탁월한 미모와 지성으로 수많은 남성 편력과 니체, 릴케, 프로이트와 같은 당대 최고의 유명 인사들과 교류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많은 책을 남겼으며 1937년. 76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1.어린 시절 거기에 도착하자 나는 어떤 내적인 충동에 사로잡혔고, 동경의 힘에 이끌리어 혼자서 꼭대기를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아무도 내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점심때가 되어서야 모두들 내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저녁때가 되도록 내가 돌아오지 앉자 그 작은 호텔의 손님들 사이에는 소란이 빚어졌다. 낮선 사람들까지 가담하여 나를 찾게 되었다. 이 못된 녀석, 거지같은 자식아, 이게 무슨 짓이냐! 가까스로 숨을 쉬게 될 수 있게 된 상인은 큰 소리로 나를 향해 외쳤다. 아버지는 이런 상태에서도 말없이 내 앞에 서 있을 따름이었다. 그것은 마치 그의 눈이 거기 서 있는 나를 꿰뚫고, 내가 아까까지 기도하느라고 꿇어 엎디었던 곳, 그때에는 이미 황혼의 그림자가 어려 있는 그 조그만 언덕을 보고 있는 듯 했다. 그의 얼굴에는 한없는 온화함이 감돌고 있었다. 무척 오랫동안 그는 말없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 뒤에 그는 표현하기 힘든 표정으로 손을 들어, 나를 축복하듯이 그 손을 내 머리 위에 얹었다. “너는 착한 아이야!” 그러나 바로 그 즈음에 내 아름다운 유년 시대가 만들어 낸 하나님에 대한 최초의 회의가 찾아오게 되었고, 그와 어울려 내게 새로운 인생의 막이 열리게 된 것이다. 나는 그날 저녁, 아버지가 마당의 정자에서 거리의 목사와 나누는 대화의 마지막 대목을 듣게 되었다. 내가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할 때, 나는 마치 벼락을 맞은 것처럼 갑자기 기독교의 이상에 깊은 감명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 순간부터 어떤 이론적인 고려와는 관계없이 나의 일생은 결정되고 말았지요. 약간의 이론적 경향만으로 이미 나는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 즉 불신자가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내 소년 시대의 하나님, 즉 전혀 내 자신이 만든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신성이란 것은 이론을 다 빼버리고 자기 자신의 본질과 의지로써 하나님을 만들어 낼 때에라야 비로소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이상할 만큼 분명히 내가 처음으로 기도하기 위해 손을 모으는 일을 하지 않은 날 밤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로부터 수년 안에 나의 내부에서 온갖 신앙심이 송두리째 잃어졌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용감히 투쟁했다. 즉 신학이 아니라 자연과학과 철학의 연구에 헌신하리라고 굳게 결신한 것이다. 이렇게 되자 남과 어긋난 내 사고 방식은 실제로 저주스러운 죄가 되었고, 우리 가족들의 눈으로 본다면 나는 죄인이었다. 그러나 나 자신은 죄의식에서 이미 해방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나 자신의 힘과 끈질김을 스스로 확인했던 것이다. 그것은 오랜 투장의 결과 나 자신과의 일치를 이겨낸 고요한 끈질김이었고, 자신의 의지와 필연성을 깨달은 데서 얻은 두려움을 모르는 힘이었다. 어머니는 언젠가 슬픈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지금 네 아버지가 너 때문에 슬퍼져 백발이 되었듯이, 언젠가 네가 네 아들로 해서 백발이 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구나." 아버지와 어머니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나를 회개시키기 위해서라면 아내의 행복 따위는 희생시켜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나를 가리켜 하나님에의 봉사를 버린 부끄러운 탈주자라고 불렀다. 그를 가장 괴롭히고 슬프게 한 것은 내가 온갖 종교적인 것, 온갖 기독교적인 것에 대하여 주저 없이 혐오의 정을 나타낸 사실이었다. 그런 의지적인 신앙 따위는 내게 거짓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아요. 하고 나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그것은 마치 어떤 과거의 감정에 충성을 맹세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미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생각지 않으면서, 겉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는체하는 것입니다. 참다운 감정의 뒷받침이 되는 것은 잃고 있는데, 그 찌꺼기를 계속 마음에 남겨 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일입니다. 아버지의 슬픔이나 눈물은 오직 도덕적인 가치 판단에서만 유래되는 것입니다. 내게는 마치 왕의 죽음에 즈음하여 흘리는 그 의무적인 왕궁 안 사람들의 슬픔의 눈물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끝내 그를 버리신 것이다. 라고 아버지는 그늘진 표정으로 말했다. 이리하여 마침내 나는 자유롭게 된 것이다. 아버지와 이러한 마지막 대화를 나눈 뒤 나는 흥분을 떨쳐버리려 퍽 오랜 산책을 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나는 침실에서 높은 기도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들었다. 나는 그 기도의 감동적인 가락에 이끌려 정원으로 통하는 그 나지막한 방을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늙은 부모가 함께 그 아들을 위하여 가슴 아파하며 서로 가까이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널찍하고 건장한 가슴에 기댄 채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 내 마음은 이상야릇하게 괴로워졌고 약해졌다. 나는 고향 마을의 포도덩굴에 뒤덮인 목사관에 시선을 던지고 내 유소년 시대에 이별을 고했다. 내가 떠나는 날 아침에 고향의 들과 집들을 흰 눈이 덮이고 있듯이, 내 소년 시대의 종교적 감상을 두꺼운 겨울이 뒤덮고 있었다. 그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그 아래서 잠들어 있게 되었다. 또한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종교적 감성은 그것을 강하게 억압하면 억압할수록 도리어 눈떠지는 것으로, 드디어 그것에 지고 말아 그것을 숭배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성질의 것인 것이다. 나는 노년에 접어든 뒤, 그날 아침 등진 고향 마을 어귀에 이따금 서곤 했다. 그제야 비로소 나는 이 소년시대의 아름다운 신앙세계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조그만 침대에서 어렸을 적부터 그렇듯 정성스럽게 속삭인 기도소리도 뒷날 우스운 노릇이었다고 생각해 본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파란에 찬 일생을 마친 노인의 손으로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는 것이다. 만일 그대에게 나와 마찬가지로 고향 마을이 있어, 낮은 지붕들 사이로 회색 종탑이 솟아 그 종을 울릴 때면, 그대의 소년시대의 마음에 생겨난 하나님은 향한 생각을 불러일으키도록 하라. 그것은 이상의 인도자가 되어, 어른이 되고 난 뒤의 실제적 이기적인 사고방식 위에 그 진지한 모습을 우뚝 서게 해 주리라. 교회의 종탑에 축복이 있을지어다. 만일 그대가 나와 마찬가지로 포도덩굴이 얽힌 목사관에서 그렇듯 충실하고 신앙심 깊은 부모와 더불어 하나님 앞에 한 시간만이라도 꿇어 엎드린 일이 있다면, 그대가 그 손녀시대를 축복하여라. 이윽고 세월이 흐르면 그대가 소년시대에 지녔던 커다란 감성은 더욱 발전할 것이다. 그 반면 마침내 그대는 소년시대의 지나친 두취를 냉정히 떨어뜨리어 비판하게 되고, 숭배하기 위해서는 또한 과대평가도 피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대에게 말해 두리라. “아무것이나 한 번도 숭배한 일이 없는 것보다는 무엇인가에 도취되었던 일이 있는 편이 훨씬 낫다.” 2. 금욕과 쾌락 사이 저것 봐, 저 우울한 금욕주의자가 낚은 것을 데리고 의기양양하게 걸어가고 있어.“ 하고 대학 건물 입구에서 서너 명의 힘찬 학생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함께 계단을 내려가고 있던 사람은 그 대학에 입학이 허가된 유일한 젊은 여자 의학생이었다. 당시 여자 학생은 아주 드물었다. 그녀의 이름은 마르케리타였다. 그녀는 다른 남학생이 접근하는 것을 모욕처럼 받아들였는데, 그것도 내 마음에 들었다. 내가 고향에 이르렀을 때 나를 맞아 준 것은 동생 루디 뿐이었다. 부모님은 형님 때문에 울고만 계셔요. 하고 그는 그 말만을 불쑥 던졌다. 나는 가슴에 큰 못이 박히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는 그늘진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고귀한 소질을 가진 자유로운 성격은 스스로 하나님을 향하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내 인생 최대의 돌이킬 수 없는 과오였다. 지금에 이르러서야 알게 되었는데, 인생의 시련에 들어설 무렵에는 사색의 위험 속에 빠지지 않도록 오히려 강제적인 교육이 필요했던 것이다.” 한편 아버지는 의무라든가 강제만으로는 그것이 뒷날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막기 위하여 동생에게 온갖 비이기적이고 섬세한 동정심을 키워, 인생에 대한 진지하면서도 고뇌적인 견해를 불어 넣으려 노력했던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충성심을 지키도록 해라, 그리고 악과 투쟁해야 한다. 마르게리타는 그녀의 방에서 내게 몸을 허락하였다. 그녀는 내가 아직 금욕주의자일 동안에 나를 사랑하였고. 내가 향락주의자가 되면서 내게 몸을 맡긴 셈이다. 내게서 도망치는 거야, 마르케리타. 내게서 도망가 줘. 나는 천하고 마음이 거칠며 불행한 사나이야. 나는 너와 만나지 않았던 편이 훨씬 더 좋을 뻔했어. 나는 너를 도와주기는 커녕 너를 타락하게 하고 말았을 뿐이야. 내가 그녀를 떠밀었기 때문에 그녀는 내게서 떨어져 빠른 걸음으로 사라져 갔다. 인생이 허무하면 허무할수록 그것을 고귀하게 만들 줄 아는 인간은 더욱 더 위대하다. 3, 우정과 애정 내 책상위에는 이 지방 가톨릭 신자들이 성상을 보관하는 데 잘 이용하는 목조 테두리 속에 넣어 둔 한 장의 사진이 놓여 있다. 그 사진은 야네 가 스물네 살 때 찍은 것이다. 그녀가 그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대학 졸업 뒤에 짧은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고향 마을에 잠시 돌아가 거기서 다시금 그녀를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야네 가 아버지의 뜻에 따라 그 젊은이와 결혼 한지 이미 여러 해가 지난 뒤였다. 그들은 영국에서 돌아온 이래 그녀의 아버지의 사업은 그 청년이 인계하였다. 그러나 이 젊은 부부의 행복한 밀월은 무척 짧았다. 내가 길을 떠나기 전날 오후, 나는 그녀에게 이별을 고하러 갔다. 그녀는 나를 별장 마당으로 안내하였고, 우리는 거기서 오랜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내게 계획한 여행을 중지하라고 말했다. 그 대신 가능한 한 오랫동안 마을에 머물며, 자유로운 시간은 모조리 그녀와 함께 지내도록 하라고 권고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당신의 오직 하나뿐인 친구가 아니었던가요.” 내 마음에는 그 당시 그녀의 조그만 금발의 머리가 지는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던 모습까지 떠올랐다. 그 당시에는 내가 유혹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녀가 유혹자가 되어 내 곁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녀가 자진해서 내 인생 속에 들어오기를 원하고 있고, 나를 유혹하고 있지 않는가. 나는 다시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그녀의 손 위에 내 손을 올려놓았다. 4. 야네의 죽음과 메르헨의 탄생 그날 밤 나는 여행 준비를 마치고 야네를 찾아갔다. 야네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뺨에 손을 댄 채 금발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반드시 이별의 인사를 하러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여행 차림으로 들어서자, 유령처럼 창백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당신은 끝내 가 버리고 마시는군요.” 나를 빼앗아요! 하고 그녀는 입술을 천천히 움직이며 말했다. 다음 순간 그녀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고, 그녀의 양팔은 내 목덜미를 얽었다. 내가 야네를 유혹한 것이 아니다. 그녀가 나를 유혹한 것이다. 그러나 어느 편이든 상관없다. 그런 뒤에야 너는 비로소 눈을 들어 멍청한 눈으로 주위를 두루 살펴보고, 자신이 내부 깊숙한 곳까지 찢겨 파편이 되어 거기 누워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너는 자기가 이제 타락한 천사가 되어 있음을 본 것이다. 내가 그녀를 소유하려고 했던 그 순간 나는 이미 그녀를 버린 듯 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악명 높은 범죄자처럼 불안한 마음으로 정처 없이 여러 곳을 전전하였다. “성묘 모독자”라는 말이 끊임없이 머릿속에 울리며, 나는 채찍을 맞듯이 오로지 알지 못하는 곳을 찾아 먼 곳으로 도망쳤던 것이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나는 가까스로 굳게 결심하여 용기를 불러 일으켜, 어느 대학에 정착하고 일정한 활동에 종사 할 수 있게 되었다. 일에 몰두하여 모든 것을 잊고 싶었다. 내 앞에는 지금 야네가 죽어 그 커다랗고 슬픈 어린 눈을 영원히 감고 만 뒤에야 내게 도착한 야네 자신의 필적에 의한 짧으면서도 귀중한 문장이 있다. 그것은 단편적인 여러 페이지의 일기다. 그 일기는 눈물 자국으로 거의 읽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그것은 내게 있어서 해가 갈수록 귀중한 소지품이 되고 있고, 나이를 먹음에 따라 나는 그 속에 씌어져 있는 야네의 정신생활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야네는 그 당시 즉시로 그 운명적인 사건을 자기 남편에게 고백하였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게도 그 비통스러운 고백이 부부간의 파탄을 불러일으키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그 사건이 부부 사이를 한층 더 맺어주기조차 한 듯 하기도 했다. 이리와, 귀여운 사람아. 그렇게 점잔을 빼고 있을 필요는 없잖아? 하고 수일 후 아내에게 말하며 그 뺨을 정답게 쓰다듬었다. 야네는 깜짝 놀라 그를 보았다. 다음해 여름이 끝나가면서 나뭇잎들이 붉게 물들 무렵 야네는 딸을 낳았다. 그러나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나큰 영혼의 고뇌와 내적 갈등으로 해서 감퇴된 그녀의 힘으로는 이미 해산 뒤의 재기가 불가능했다. 그녀 자신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그녀 또한 해산 뒤 며칠이 못되어 숨지고 만 것이다. 왜 너는 이렇게 갑자기 죽어야만 했니. 전혀 믿을 수조차 없구나. 하고 그는 이성을 잃고 외치며, 그녀의 움직이지 않게 된 창백한 얼굴에 진정 어린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야네가 죽은 지 4년 뒤에 그녀의 남편도 그녀의 뒤를 따랐을 때, 이 딸애가 무정한 두 올드미스들의 손에 맡겨졌다고 듣지는 못했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나는 내 아이가 예전 그들 자매의 가정부였던 여인에게 맡겨졌고, 그 때는 산 속의 어는 저택에 살고 있어 심술궂은 백모들과는 이제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통지를 받았던 것이다. 문 밖에는 삼월의 폭풍우가 불고 있어 내 방 앞의 보리수를 뒤흔들고 잇습니다. 그 바람의 살랑거림 속에는 이미 봄의 입김이 느껴지고, 마당에는 올 들어 처음 벚꽃을 피우는 봄의 부드러운 향기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나는 지금 내 모든 내부의 것들이 한없는 동경과 괴로운 속에 해소되는 듯 한 느낌이고 아울러 나 자신도 곧 이 괴로움을 지닌 채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 거라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어머니의 가슴에 안긴 채 죽어 가는 어린애와 같은 느낌을 맛보고 있습니다. 나를 우롱하고 채찍질하던 환상도 사라지고, 지금 나를 감싸고 있는 것은 온갖 불협화음이 사라지고 온갖 투쟁이 끝난 뒤의 깊숙하고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정적입니다. 가장 높으면서도 가장 선한 것 (하나님)에의 귀환이라는 사실을 우리들은 내적인 죽음의 괴로움 속에 처해 있으면서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말할 수 없는 정신의 고뇌 속에 처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역시 하나의 귀향인 것입니다. 이런 말로 야네의 일기는 끝맺어져 있었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은 뒤에 그녀의 삶은 끝난 것이었다. 그녀는 인간 정신에 부과된 가장 깊은 고뇌를 괴로워한 뒤에, 온갖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들에게 공통된 그 최고의 축복을 맛본 것이다. 크나큰 고통을 지니는 자에게만 또한 크나큰 축복이 내려지는 것이다. 5. 인생 그 자체를 사랑하는 법 서른 살 나이가 될 무렵, 나는 더욱 큰 대학의 교수직에 초빙되어, 어느 커다란 도시로 옮겨 가게 되었다. 바로 그 마을에서 내 동생 루돌프가 김나지움을 마칠 무렵이었다. “내가 기독교의 목사랍니다.” 하고 루돌프는 슬픈 어조로 말했다. “기독교적 분위기에 대하여 나만큼 반감을 지니고 있는 인간도 없을 텐데 말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진심으로 신앙을 지녔던 일이란 한 번도 없습니다. 말하자면 기독교란 내게 있어서 억지로 가르쳐진 사고 형식에 불과하기 때문에, 감각적으로 그것이 내게 어필해 온 일이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해서 내가 신앙을 버렸을 때에는, 형님의 경우처럼 내적 갈등에 괴로워한 일은 전혀 없었어요. 있는 것이란 오직 두 개의 사고 형식 사이의 순수한 이론적 투쟁뿐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님께서는 너야말로 목사에 가장 어울리는 천성의 소유자라고 기대하고 계셨던 듯한데.” 하고 나는 생각에 잠겨 말했다. “너는 언제나 사랑과 사색과 의무감으로 가득했고, 모두 네 이러한 소질을 키워 주려고 생각하고 계셨으니까.” “미안하게도 모두가 내 소질을 그런 식으로 키워 주려고 했기 때문에, 그것이 도리어 내게는 말 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이 되어 버려 나는 오직 한숨을 쉬어야 하게 된 거예요.”하고 루돌프는 씁쓰레하게 말했다.“ “종교적인 것을 내가 사랑하는 것은 거기에 따르는 온갖 희생을 위해서이고, 그것이 내 고통에 찬 내면생활의 변화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서야.”하고 내가 말했다. “사람에게 있어서 큰 희생을 치룬 것만큼 귀중한 것은 없게 마련이지요. 그러나 그러기에는 사람이 그 희생을 존경의 념念(속에 품은 마음)으로 자진하여 제공한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내 경우는 나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데, 타의에 의해 강요된 희생이었던 것입니다. 젊음의 기쁨도, 즐거움도, 밝은 소녀시대도, 햇빛 비치는 인생도, 전부 내게서 빼앗아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것을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습니까?” 이 고백으로도 알 수 있듯이 루돌프의 불신앙은 신앙에 대한 일종의 적의라고 할 수 있는 냉소주의와 뒤섞여 있기 때문에 그는 이 거센 비꼼을 자기 자신의 원래 온순한 천성으로 향하고 있는 듯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종류의 냉소주의는 때로는 경박스러운 인상까지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면서부터의 경박스러움이라기보다 오히려 그 자신의 감수성이 지나치게 섬세하다는 것, 바꾸어 말해서 그의 신중함이 뒤집혀져 나타나 있기 때문에 그는 냉소주의에 의한 자신의 이러한 천성을 숨기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의도와는 반대로 루돌프의 천성적인 부드러운 감성은 불신앙의 사색과 투쟁하기에는 그리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그것은 거꾸로 작용했기 때문에 그의 내부에 신앙의 평안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자기 자신에 대한 고치기 어려운 불만을 키워 버리고 만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전혀 알 수가 없군요. 형님은 그렇듯 사색이란 것에 대해 냉철해지셨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에 이르러 소년시대의 하나님에 대했던 것처럼 정열적인 태도를 학문에 대해 지닐 수 있게 된 것은 대체 어떻게 된 이유입니까?“ ”이러한 학문이라는 정신적인 목적에 대해서는 그 무렵 조금도 눈이 떠지지 않았다는 것뿐이야.“ “그때에 비해서 지금은 내 온 인격이 학문에 끌려 있고, 내 온갖 거동도 오로지 하나의 목적 - 학문이라는 것에 통일되어 있는 것이다. 내 재능만으로는 여기까지 다다를 수 없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어떤 생명력이 필요했었다. 거기에 대해서는 나는 지금에 이르러서야 이따금 아버지의 그 기도소리를 생각해 낸다. ” 저 아이에게 인생의 고통과 절망을 주옵소서. 그러나 당신의 아들로서 그를 나에게 다시 돌려 주옵소서“ 하시던 그 말씀을, 아버지가 믿는 하나님을 나는 두 번 다시 찾아볼 수는 없었지만, 우리들을 보다 완전하고 보다 위대한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신적인 것에 대한 감성을 나는 다시금 찾을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루돌프는 웃었다. “무신론 교수님께서 마치 설교단 위의 목사님처럼 이렇게 열변을 토하시다니, 아무도 상상조차 못한 일이군요. 나는 백작을 통해서 그녀와 알게 되었어요. 그는 동양으로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나 있는 곳에 여러 번 찾아와, 형님과 야네의 관계를 여러 가지 물었지요. 그런 뒤에 그는 마르게리타를 버려 두고 여행을 떠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행복하지 못하단 말이냐? 지금도 백작을 생각하며 슬픔에 잠겼니? 형님, 그녀(마르게리타)를 한번 찾아주시지 않겠어요? 형님한테 실연을 당하고 죽을 만큼은 아니었지만요. 이제부터라도 형님의 좋은 아내가 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형님을 사랑하고 있어요. 온갖 사랑이란 원래가 비극적이게 마련입니다. 오직 행복한 사람들은 행복에 겨워죽고, 불행한 사람들은 사랑에 굶주려 죽는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사랑에 꿂주려 죽는 편이 훨씬 더 괴롭겠지요. 이런 이유로 해서 나는 섣달 그믐날에 마르게리타를 방문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의 방문이었는데, 정작 서너 시간 동안이나 그녀의 집에 머무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 역시 생각이 탁 트여서 과거의 일에는 조금도 집착하지 않았고, 내 방문을 별로 어색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마르게리타는 천천히 말하였다. “그러나 저는 인생에서 일시적인 놀이 이상의 어떤 의미를 찾아내지 못하면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이지요.” 6.아버지의 유언 그는 교회에 모인 신앙 깊은 적은 수의 교인들을 향해 설교대에서 설교를 하고 있을 때, 교회 바로 뒤에서 산사태가 나 많은 바윗돌이 마을로 쏟아져 내려온 것이다. 그로 인해 그 작은 교회의 판자 지붕도 산산이 부서져 버렸고. 때마침 교인들에게 축복기도를 드리려던 아버지는 설교단과 함께 들보와 돌 밑에 묻혀 버리고 만 것이다. 너는 우리 하나님의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 알았어요, 아버지. 나는 신학을 공부하여 아버지의 사업을 계승하겠어요. 나는 지금에서야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하늘에 계신 하나님에의 신앙을 주려고 얼마나 눈물겨운 노력을 하셨는지 잘 알게 되었어요. 아버지는 아무리 조그마한 즐거움이나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모두 하나님의 사랑의 영원한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계셨던 거예요. 아무 부담 없이 내 말을 들어줘. 너는 지금과 같은 사치스러운 생활을 버리고 고요한 시골로 가서, 나를 위해 평범한 아내가 되어 줄 생각은 조금도 없니? 호의는 고맙게 받아들이겠어요. 그렇지만 나는 당신을 따라 갈 수 없어요. 당신이 굳이 이유를 아셔야 하겠다면 말씀드리지요. 나는 이 호화로운 생활을 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의 나는 무절제한 생활의 노예가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내가 여행길에 나선 다음날 밤, 마르게리타는 독을 마시고 죽었다. 그런 일이 있은 얼마 뒤였다. 야네의 남편의 친척과 우연히 알게 된 내 친구 한 명이, 야네와 나 사이에 생겨난 아이가 벌써 일곱해 전부터 어느 산속의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7. 숨겨진 아이 메르헨 이제 더 이상 오래 수고를 끼치지는 않겠습니다. 그 아이 어머니의 한없이 친한 친구로서, 나는 이제부터 그 아이를 위해 여기에 살 생각입니다. 나는 심장이 고동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삐걱거리는 계단을 올라갔다. 그 마지막 모퉁이의 벽이 약간 움푹 파진 곳에 조그만 모습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 소녀는 거미줄투성이의 낮고 작은 창가에 앉아, 저물어가는 숲 속 어둠 저쪽을 뚫어질 듯이 보고 있었다. 내가 그 소녀 앞에 서자 그녀는 깜짝 놀라며 겁에 질린 짐승처럼 도망칠 채비를 했다. 반쯤 옷을 벗고 드러난 작은 팔을 약간 들어 올려 기도하듯이 두 손을 마주잡고, 그녀는 커다랗고 신앙심 깊은 어린애의 눈을 그 사진에게 쏟고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아무 말도 못하고 반쯤 열린 문 앞에 서 있었다. 8. 밝혀지는 비밀 형님은 나보다 마르헨이 더 좋은 모양이군요. 그런 경황 속에서도 메르헨의 생일은 용서 없이 찾아왔다. 마침내 그녀와 둘이서 내 서재에 파묻혀, 그녀에게 부모에 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내 마음은 결코 평온하지 못했다 점점 더 내 기분은 침착성을 잃어 비참한 것이 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 즉 야네를 파멸시킨 사나이의 이름만은 마지막 순간까지 질질 끌면서 말하기를 주저했다. 그 문제에 관해서만은 가만히 계세요. 나는 당신을 이 세상 누구보다도 좋아합니다. 흥분하기 쉬운 마르헨의 거센 성격에 대해서도, 루돌프의 성격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진정적 효과를 끼쳤다. 그녀는 루돌프와의 교섭을 통하여 고집스러움을 점차 고쳤고, 더욱더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해갔다. 9. 나는 고독하다 내가 부재중인 동안 마르헨은 병든 마르타 부인의 간호와 가사의 바쁜 일들로 해서 시간에 쫓기는 몸이었기 때문에, 루돌프는 거의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겨를이 없었다. 내가 그 사람의 아내로서 따라갈 수 있다면! 하고 그녀는 작은 소리로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그녀 자신이 깜짝 놀라 화다닥 뛰었고, 겁에 질린 듯 한 고함을 질렀다. 이 애 좀 봐! 그리고 난 뒤 그녀의 일그러진 입술로부터는 가까스로 다음과 같은 말만이 새어 나왔다. “예수님, 이것이 죄에 대한 심판입니다.” 그와 거의 동시에 창백함이 그녀의 얼굴 전체에 퍼지더니 그녀는 가래를 컬럭컬럭하며 뒤로 쓰러졌다. 마침 그때 달려온 루돌프의 팔에 겨우 안기기는 했으나, 늙은 부인은 이미 숨이 끊어진 뒤였다. 내게 그 한마디 말만 해다오. 네가 나를 정말 용서해 준다면 나에게 “아버지”라고 말해 다오! 한 줄기 바람이 놀란 듯이 불어와 샘과 사과나무를 흔들었고, 메르헨의 머리와 옷을 향기로운 하얀 꽃으로 덮었다. 작은 물그릇이 그녀의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지며, 돌바닥 위에 매서운 소리를 내며 깨졌다. 내 앞에 서 있는 소녀는 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달빛을 받고 아릿하게 비치는 그녀의 작은 얼굴을 내 편에 돌리게 하고, 불안스럽고 무엇을 찾는 듯 한 눈으로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내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창백한 이마 위에는 닫힌 눈의 검은 눈썹이 뻗쳐 있었고, 입술만 약간 떨리고 있었다. 깊숙한 놀라움이 나의 영혼을 뒤흔들었다. 내 자식의 돌과 같은 침묵에 접하여 말할 수 없는 불안으로 해서, 내 내부에 자리한 긍지나 이기적인 위엄 등은 모두 날아가 버린 것이다. 그녀의 침묵은 최후 심판의 나팔소리처럼 내 온몸에 퍼졌다. “메르헨, 제발 내게 한 마디 말만 해 다오. 너는 아직 나를 사랑할 수 있는지 말해 다오. 부탁이야, 대답해 다오. 이렇게 꿇어앉아 부탁한다. 나를 용서해 다오! 나는 나를 잊고 외쳤다. 있던 그녀의 손발이 흠칫하더니, 그녀는 마치 성난 듯이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입술을 강하게 움직여 무슨 말인지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갑자기 그녀는 양손으로 경련하고 있는 얼굴을 감쌌다. 그 귀여운 가슴은 괴로운 듯이 아래위로 물결치고 있었다.”아버지! “ 감동적인 외침소리가 그녀의 가슴에서 터져 나왔다.”사랑하고 사랑하는 아버지! “ 그리고 내 팔이 그녀를 부축할 겨를도 없이, 그녀는 의식을 잃고 내 발밑에 무너지듯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10.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에게로 호숫가, 그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 곳에 새로이 무덤이 생겼고, 수많은 꽃들이 그 무덤을 뒤덮고 있었다. 버드나무는 갓 핀 장미꽃 위에 가지를 늘이고 있었고, 등나무의 짙은 초록색 잎은 금방 파헤친 대지 위로 바위를 기어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 자리에는 사랑과 슬픔의 추억이 될 아름답고 고귀한 기념비를 세우기로 했다. 호수 물결은 속삭이듯이 바위 끝을 씻으며 무덤 아래에 입 맞추고 있었다. 결국 마르헨은 어렸을 적부터 정답게 지내면서 그것과 하나가 되기를 바라던 그 자연으로 돌아간 것이다. 나는 그 고요한 장소로부터 허리를 일으켜 천천히 집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걸음걸음마다 발길이 무거워지는 듯했다. 나도 이미 노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내가 문을 열자 루돌프는 우리들 침실의 침대 위에 환상을 보는 듯 한 자세로 꼼짝 않고 누워있었다. 그 두려운 사건이 있은 며칠 뒤에 루돌프는 돌아왔다. 그제야 비로소 나는 그의 이야기와 그의 편지로 미루어 마르헨이 왜 죽음을 택해야만 했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루돌프가 메르헨을 통하여 내게 전하려 했던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당신이 돌아오시기 전에 내가 잠시 동안 산 속으로 여행 따나는 일을 용서해 주십시오. 당신은 처음 며칠 동안을 반드시 당신의 신부와 함께 둘이서만 지내시기를 원하실 테니까요. 루돌프.” 나보다 일찍부터 루돌프는 날카롭게 모든 것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타오르는 듯 한 질투로 해서, 그는 내 자식의 마음을 나보다 정확히 읽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그는 점점 더 내가 메르헨의 사랑을 그에게서 빼앗아 버리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그의 존재가 메르헨에게 있어서는 그저 남매와 같은 감정의 대상밖에는 되지 못했고 그녀의 참다운 사랑의 대상이 나라고 하는 사실이 그에게는 분명해졌던 것이었다. 이 사건을 알게 된 직후에 루돌프는 얼마 동안 전혀 말이 없는 무감동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뒤이어 이번에는 열이 치솟아 오르며 일주일 동안이나 의식을 잃고 말았다. 그런데도 루돌프는 여름 한 계절을 더 살았다. 그런 뒤에 그는 촛불이 꺼지듯이 숨이 꺼졌다. 그는 그 자신의 크나큰 동정심으로 해서 죽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언젠가 그는 내 손을 위로하듯이 쓰다듬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던 적이 있었다. “내 죽음이란 당연히 하나의 귀향이라고 해도 괜찮을 거예요.” 어느 날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겨 다음과 같이 말한 일이 있었다. “나는 죽음을 본질적으로는 하나의 구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파멸시키는 r아제적인 것이라고 느껴 두려워하지만 죽음이란 것이, 내게 있어서만은 더할 나위 없이 나 자신이 진지하게 바라고 있는 정적과 안식의 장소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약간 역설적인 말이 됩니다만 죽음에 의해 이미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게 된다는 것, 그것을 나는 정말로 뜻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가 젊었을 때 소박한 신앙의 길에 들어설 것인지, 또는 그것 이외의 행동을 취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를 가지면서도, 사실상 한 번도 결코 자유를 느꼈던 일은 없었습니다. 나는 이 외견상의 자유를 오히려 하나의 참기 어려운 숙명이라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내게 내 본래의 희구와는 모순되는 여러 가지 동기에 귀를 기울이도록 강제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그 사람의 자립적 정신이 왕성하면 할수록 선택의 자유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무거운 짐으로 느껴지게 마련인 것입니다. 원래가 그런 거야, 적어도 그 인과이론적인 자유문제는 별도로 치고, 그 외 무엇인가 자유 감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우리 내부에 있는 것은 분명해. 우리는 그것을 자신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대신할 수 없는 인격, 바로 그것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필연성으로부터 생겨난 것인지 하는 문제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우리 자신이 충분한 힘에 넘쳐 있을 때 외부로부터 강제된다는 느낌은 제거 되고, 그때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참다운 자유의 느낌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 그렇다면 자유라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여러 가지 개념을 가지고는 있지만, 상황으로서 본다면 언제나 오직 하나의 것, 자기의 성분 속에 있는 것을 뜻하는 군요.” 루돌프는 기운 없는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자유란 것은 각 사람이 제각기의 방법으로 가장 행복하게 느끼고 가장 귀중하게 생각되는 정신 상태란 것이 되는군요. 거기에 모순되는 것은 모두 강제적으로 느껴지지요. 그와 반대로 이 정신 상태를 가져 오는 것이라면 그것에 어떤 곤란이 따른다고 할지라도 자유로 받아들여지지요. 왜냐하면 이런 의미에서의 개인적 욕구의 달성에 의해서만 정신의 완전한 평화 - 말하자면 그 개인에 있어서의 천국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루돌프는 계속하여 나지막한 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나는 이런 종류의 자유를 무척이나 즐겨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없을지라도 저 크나큰 열반(涅槃) 속에야 말로 나의 축복의 자유의 때가 나를 기다리고 있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에 중요한 것은 그런 자유의 감정이 인간 개성의 강함과 힘과 깊이와 더불어 증대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나는 아직 통일된 자아를 획득하지는 못했고, 오직 제어하기 어려운 충동만을 지니고 있던 청년시대의 내적 갈등에 있어서 나는 이 자유의 정신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 무렵에는 강한 충동적 감정으로써 자기 기분이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있었을 뿐으로, 그런 의미로서의 참다운 자아 감정도 정신의 자유나 평안도 없었다. 내 정신의 참다운 해방은 그 속에서 내가 나 자신을 비롯하여 완전한 것으로 느껴 그것에 헌신 할 수 있는 하나의 의도적인 인상을 발견해 내었을 때 비롯된 것이다.” 나는 그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털어 버리려 애쓰면서도 말했다. 루돌프는 나를 바라보면서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형님은 강한 사람입니다. 형님이 그렇게 하여 긍정적인 면에 도달한 것에, 나는 부정적인 체념과 온갖 생명력의 소모라는 방법으로 도달하는 것입니다. 형님이 의지와 노력으로 수많은 일을, 나는 이 세상 피곤한 것들에 남겨져 있는 크나큰 무(無)에의 귀환이라는 방법으로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형님의 경우라고 할지라도 최고의 자유로운 감정은 자기 자신이 의지한 속박 속에 있게 마련이지요. 진정한 자유는 온갖 가능성 중에서 참다운 자기의 필연성을 선택하여 그것에 따른다는 것, 그러한 크나큰 자기 긍정 속에 있지요.” “물론이지” 하고 나는 말했다. “자유는 제멋대로의 행동에 있는 것은 아니다. 자유는 우리 인생의 최고 순간에 우리에게 구원으로 열려지는 것으로서, 그때의 우리 본심은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상태의 것은 아니지, 그저 여기에 나는 있다는 것, 그리고 여기서 나는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다는 것 - 그런 상태의 것이다. 결국 인간에게 있어서 참다운 자유라는 것은 진정으로 자기가 바라고 있는 것에 따른다는 것이지. 인간이 자유로우면 자유로울수록 그런 의미로서의 운명에의 귀환의 뜻이 강해지는 것이다.” 루돌프는 따뜻한 담요에 파묻혀 창가에 자리 잡고, 문 밖에 눈 내리는 모습을 생각에 잠겨 바라보고 있었다. 눈은 소리도 없이 내렸다. 마치 요정들의 손길이 닿은 듯 모든 산마다 눈부신 하얀 수의를 입히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조용한 일요일 오후였다. 마을로부터는 종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지금 저 조그만 예배당에서는 모두들 기도를 드리고 있겠지요.” 루돌프는 말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이 내리시는 것이라는 이유로 해서, 도덕과 종교라는 명분 아래 온갖 고통을 이겨내는 길을 배우고 있어요. 실제 문제로서 도덕적인 입장에서든 또는 종교적인 입장에서든 간에, 그것으로써 고통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그리고 우리들은 마음 내부에서의 투쟁에 끊임없이 상처를 입으면서도, 도덕과 종교를 가짐으로써 여러 가지 도달할 수 없었던 찢어진 희망과 욕망의 잔해 - 그것을 슬픈 마음으로써가 아니라 오히려 승리자의 마음으로 밟고 건널 수가 있는 것입니다. “ “그것만이 종교적인 힘의 가장 큰 승리라고 할 수 있을 거다.” 나는 말했다. “그것에 의해서만 한 인간의 모든 생애는 하나의 최고 목적을 향한 수단이 될 수 있는 거다. 종교적인 힘에 의해서만 우리는 고통을 달게 받고, 고통을 긍정하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고통에 대하여 친구로서 손을 내밀 수가 있는 것이다 체험을 통해서만 피할 수 없는 고뇌가 도리어 스스로 의지된 고뇌에로 향상되는 것이다. 인간이 자기 스스로 고통을 차지한다는 것, 이것이 말하자면 동물적인 괴로움을 인간의 긍지 높은 괴로움으로 바꾸어 주는 것이다.” 나의 이 말에 대하여 루돌프는 그때 그저 기운 없이 미소 짓기만 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내가 다시금 그의 방안에 들어가자, 그는 손을 모으고 종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말했다. “형님, 저 종소리처럼 마음 깊숙한 곳까지 평정(平靜)이 와서, 거기에서는 온갖 감각도 의지도 침묵해 버리는 듯 한 안식의 장소, 거기에 나의 종교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거기에 내 인생의 추억 모두를 던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게 있어서 죽음이란 것은 단순한 소멸에 불과합니다. 어느 인간도 자기 무덤을 눈앞에 놓고서만 참다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나도 생각하게 됩니다. 생전에 그를 붙들고 있던 온갖 공포와 희망, 온갖 행복에의 희구, 고통에 대한 불만 들이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나는 깊은 감동을 받고 루돌프의 명상에 잡긴 듯한 표정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무덤이 모든 것의 끝이 될 수는 없는 거다.”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인간이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것과 온갖 이기적인 모든 행복의 희망을 관 속에 봉해 버리는 무덤 - 그 무덤 위에 비로소 완전한 강한 힘이 다시금 눈뜨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라야만 오로지 자기의 최고 목적을 향해 매진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만이 바로 나의 종교이다.” “그렇다면 형님의 종교 역시 그 나름대로의 정적주의(靜寂主義 . ※그리스도교에서 인간의 자발적 ·능동적인 의지를 최대로 억제하고, 초인적인 신의 힘에 전적으로 의지하려는 수동적 사상.) 라 할 수 있겠군요.” 하고 루돌프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렇지, 그러나 그것은 무력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생명력에 넘친 정신의 고양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하고 나는 대답했다. 그로부터 사흘째 되던 날 밤, 따사로운 산들바람이 산을 달리며, 마지막 마른 잎사귀를 떨어뜨릴 때 - 루돌프는 아무 괴로움 없이 편안하게 숨졌다. “기분이 무척 좋군요.” 이것이 그의 마지막 속삭임 소리였다. 어머니가 자기 자식을 품에 안듯이 죽음은 그를 부드럽게 그 팔에 안은 것이다. 그는 내 앞에 마치 소년처럼 아름답게 누워 있었다. 금색의 머리카락이 그의 흰 이마를 덮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 맴돌고 있는 정신성 넘치는 빈정거리는 듯한 표정은 죽음에 의해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죽음의 고요한 위엄 속에서, 그것은 삶을 향해 미소 짓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했다. 온천 가운데는 그 속에 잠긴 꽃이나 잎사귀가 단단한 석회 껍질로 영원히 덮이고 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있다. 내 생애는 흡사 그런 온천과 비슷했다고 할 수 있다. 내 인생은 그 불타는 백열 속에서 온갖 개인적인 희망과 동경, 공포와 기대를 내 내부에 화석이 되게 하여 묻어버렸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눈 속에 묻히고, 여름에는 초록색 꿈에 뒤덮이는 나의 은서지 - 그것 자체가 내게 있어서는 그러한 석회 껍질과 같은 것으로 비유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 바깥쪽과 내 머리 위와 둘레에 인생의 폭풍우와 인생의 햇빛은 계속 지나갔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내게 이미 기쁨이나 슬픔을 주는 일이 없었고. 또한 다시는 내 내부까지 침입해 오는 일도 결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고요한 물 밑에 잠겨 있는 꽃이 자기 위에 흐르고 있는 샘물의 속삭임을 들을 때마다 지난날 햇빛 아래서 꽃을 피우던 아름다운 날들을 생각해 내듯이, 나도 또한 외부에 인생의 소란스러움을 느낄 때마다 언제나 빠짐없이 과거의 속삭임 소리를 - 내 생애의 투쟁이 사라져 버린 노랫소리를 듣는 것이다. 산그늘에 해가 느릿느릿 잠겨 가고 골짜기에 황혼이 날개를 펼 무렵, 그리고 초록색 호수 위에 흰 안개가 드리울 때면 흡사 그 수면에 어리는 온갖 안개 모양처럼, 내 지나가 버린 인생 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내 마음 속에 떠오르는 것이다. 나는 노년기의 평안을 조금도 얻을 수가 없었다. 내게는 오히려 창조적 정신이 강한 고통에 찬 불안이 잇을 따름이었다. 말하자면 나는 인생을 길게 살았던 것이고, 이렇게 길게 산 자에게만이 창조와 연구와 사색 속에 영원히 살도록 허락되는 것이다. 나는 고독하다. 어떤 인간 소리라도 이미 내게는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 오직 저녁 해가 빛나면서 산허리에 질 무렵, 그것만이 내게 빛나는 인사를 보내 주는 정도 이다. 그러나 이 산봉우리들이 하나의 거대한 신정의 기둥들처럼 내 머리 위에 솟아 있는 한, 석양의 빛이 그 정상에 입 맞추고 내게 인사를 보내며 사라져 가는 한, 정신이 그 날갯짓을 잃지 않고 빛을 향해 헤아릴 수 없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 한, 적어도 그 사이에 나는 고독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인생의 투쟁의 노래가 끝났다고 한번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내 인생의 노래는 모이고 모여 하나의 대신 부를 수 없는 찬가가 되었고, 어디 한 군데 불협화음을 지니지 않은 지극히 순수한 기도의 음악이 된 것이다. 일찍이 하나님의 품에 기도하고 또한 꿈꾸고 있던 소년의 마음속에도 마찬가지 승리에 넘친 천국의 울림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또한 그와 마찬가지 울림이 이 노인의 가슴에 들려오는 것이다. 한 인간이 인생의 투쟁에 깊숙하고 심하게 괴로워하면 괴로워할수록, 그의 정신이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또한 참다운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괴롭게 투쟁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욱 더 온갖 좌절과 모든 뿌리 깊은 분열을 넘어서 그 인간의 인생은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에게의 변신(變身)이 되는 것이다. [에필로그]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에로의 여로旅路였던 것이다. [Review] 저자인 “루 살로메”는 작가로서의 명성보다는 니체가 열렬히 사모했던 여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니체는 학문의 완숙기인 38세 때에 철학자 친구인 파울의 소개로 21세의 “루 살로메”를 만났다. 그녀 스스로 “니체”로부터 학문적 도움을 받기 위해 자청한 일이었지만 “니체”는 그녀에게 한눈에 반했고, 그녀는 “니체”의 간절한 청혼을 거절했다. 그 후 “루 살로메”는 “파울”과 3년간의 결혼생활 중에 이 소설을 썼다. 1885년(그녀의 나이 24살)에 이 책이 출판되자 큰 호평을 받았고 유명작가에 들어서는 출발이 되었다. 이성과 종교의 갈등을 묘사한 이 작품을 이십대 초반에 쓸 수 있었던 것은 니체와 파울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 했을 것이라는 평가와 함께 이 책은 니체의 책이라고 불리 울만큼 니체의 사상이 들어 있다고 본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쿠노”라는 주인공이 어린 시절에 기독교적인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청년시대에 온갖 사랑과 고뇌에 찬 인생경험을 겪은 뒤에, 노년에 이르러 다시 하나님을 찾게 된다는 줄거리이다. 그러나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 아닌 “이성으로 아는 하나님” 즉, 인간이 만들어 낸 신(하나님)이다. “나는 내 소년 시대의 하나님, 즉 전혀 내 자신이 만든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책의 원 제목이 <Im Kampf um Gott 신을 얻기 위한 투쟁>이라는 것에서 저자는 아마도 절대자로서의 하나님, 이성을 초월한 존재로서의 하나님을 찾고자 했을 것이다. 그래서 니체를 만나러 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는 니체로부터 니체가 말하는 신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목사의 아들이었지만 엄격한 신앙적 가르침에 저항한 니체는 청년기에 이성으로 참다운 자유를 찾으려고 신앙의 길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그의 생은 유명 작가로서의 명성만큼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한 여인과의 진정한 사랑을 얻지도 못했고, 말년에는 정신 착란을 일으켜 십여 년 가까이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지내다가 생을 마감하였다.
신약성서의 대부분을 기록한 사도 바울은 당대의 헬라철학과 지식을 소유했지만 하나님을 만난 후에는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버렸다고 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를 재판하는 자리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바울을 향해 해롯의 왕 아그립바는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고 소리쳤다. 그런 점에서 니체의 하나님은 아그립바의 하나님과 같다. 진정한 하나님은 인간이 지식으로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지식을 버려야 찾을 수 있다는 바울과는 반대된다.
책 속에서 주인공 “쿠노”는 니체의 모습이다. 그는 속박에서 벗어난 참 자유를 얻기 위해 신앙을 버리고 세상으로 떠났지만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노후에 이르러 그는 유년시절의 순박한 신앙심을 그리워하며, 부모님의 기도소리, 교회의 종소리를 들 회상할 때마다 그것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신은 죽었다”는 말로 기독교를 부정하던 니체도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이렇게 찾아오는 하나님을 저항 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수많은 책들을 저술했지만 정작 그녀의 소설이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것은 이 책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책은 어떤 점에서 흡사 여고생의 글처럼 순수함이 보이는가하면 심오한 철학의 세계를 넘나 들 때는 이십대 초반의 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1861년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의 유복한 가정에서 출생한 “루 살로메”는 탁월한 미모와 지성으로 니체뿐 아니라 릴케, 프로이트, 마르틴 부버, 톨스토이와 같은 당대 최고의 지성들과 교류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1937년. 76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나는 지금까지 진심으로 신앙을 지녔던 일이란 한 번도 없습니다. 말하자면 기독교란 내게 있어서 억지로 가르쳐진 사고 형식에 불과하기 때문에, 감각적으로 그것이 내게 어필해 온 일이란 한 번도 없습니다.” “나는 내 소년 시대의 하나님, 즉 전혀 내 자신이 만든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신성이란 것은 이론을 다 빼버리고 자기 자신의 본질과 의지로써 하나님을 만들어 낼 때에라야 비로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 의지적인 신앙 따위는 내게 거짓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아요. 하고 나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그것은 마치 어떤 과거의 감정에 충성을 맹세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미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생각지 않으면서, 겉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는체하는 것입니다.” “나는 노년에 접어든 뒤, 그날 아침 등진 고향 마을 어귀에 이따금 서곤 했다. 그제야 비로소 나는 이 소년시대의 아름다운 신앙세계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 만일 그대에게 나와 마찬가지로 고향 마을이 있어, 낮은 지붕들 사이로 회색 종탑이 솟아 그 종을 울릴 때면, 그대의 소년시대의 마음에 생겨난 하나님은 향한 생각을 불러일으키도록 하라. 그것은 이상의 인도자가 되어, 어른이 되고 난 뒤의 실제적 이기적인 사고방식 위에 그 진지한 모습을 우뚝 서게 해 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