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로 산다는 것'
저는 결혼한지 1년이 조금 넘었고 돌 된 아이가 있습니다.
남편과 저는 여행에서 만나, 서로를 충분히 사귀지 않은 채 결혼했습니다.
저의 고통은 남편이 너무나 자주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상처주는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지금 일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이가 태어나 산후조리원에 있을때 직장을 그만두었어요. 저는 프리랜서로 일하기 때문에 하루에 4~5시간 정도 집을 비우곤 합니다. 그 시간에 남편이 아이를 봐주고, 또 살림도 요리도 청소도 아주 다 잘합니다. 남편의 원래 직업은 요리사였고 어느 주부보다 살림을 잘합니다. 반면 저는 결혼 전까지 엄마와 살았고 따로 살림을 해본 적이 없어 서툽니다.
남편이 화를 내는 공식적인 이유는 전부 저 때문이라고 합니다.
제가 하는 게 다 마음에 안 들고 더럽고 멍청하고 또라이고 아이 엄마로서 자격도 없고 등등.. 화를 내는 것은 잘못됐지만 그 원인은 전부 저라는 거지요.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제 분야에서 꽤 인정도 받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강의도 하고 학생도 가르치지요.
요컨대 저는 사회생활을 하는 엄마입니다.
반면 남편은 지금 전업주부의 상태이며 저를 내조하고 집을 돌보고 있습니다.
남편이 직장을 그만둔 다음부터 생활비는 반반씩 내는데, 남편은 전에 벌어놓은 돈에서 잘라서 쓰고 있고 저는 제가 버는 돈으로 내고 있습니다.
모든 살림은 남편이 틀어쥐고 있기 때문에 저는 내놓으라는대로 내놓습니다.
남편은 아주 철저하고 절약합니다.
남편이 완전히 갑이고 저는 을입니다.
남편이 이거해라 저거해라 온갖 규칙을 만드는데 그대로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화를 내고 다투게 되니까요.
아무리 제가 비위를 맞춰보려 해도 단 하루도 남편이 화를 내지 않고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없습니다. 저는 이 사람이 정말 놀라운 게 화를 참는 법이 전혀 없습니다. 화가 나면 반드시 폭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잔소리로 들들들 볶습니다. 저는 뭔가를 하는 동안에도 내가 왜 지금 이걸 하는지 남편에게 설명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심성 나쁘고 잔소리 심한 시어머니와 사는 느낌입니다.
그동안 가장 비참했던 것은 저에게 'XX'라는 욕을 쓴 것입니다.
XX라는 소리를 하도 들으니까 제가 정말 자존감이 떨어집니다. 남편말대로 XX니까 이러고 살고 있지 라는 생각도 들고요.
작년에 시부모님께 울면서 이 사실을 알렸고 (나에게 욕을 하는 것과 엄마로서 존중해주지 않는 것) 그때문에 집안에 한바탕 난리가 났었습니다.
시어머님과 친하게 지내기 때문에, 어머님에게 남편이 너무 자주 화를 내는 것과 심한 말을 하는 것을 전화로 말씀드렸어요.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저만 집안에서 풍파 일으킨 사람이라고 남편이 다 제탓으로 돌렸고요. 시아버지가 남편을 야단쳤고 남편은 안그러겠다고 했지만 고쳐지지 않고 저에게 더 화만 났습니다.
그래도 작년보다는 현재가 나아진 상태입니다.
제가 무조건 남편에게 맞춰보고 최대한 갈등 없이 살아보기로 마음먹었으니까요.
' 저 사람은 사랑을 부족하게 받았다' 라는 생각이 들어
더 열심히 사랑해보자고 생각했고 고맙다 사랑한다는 표현도 자주 하려 노력했습니다. 정말로 고맙기도 합니다. 남편이 집안일이며 아이며 잘 봐주고 있어서 제가 제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경제적으로 걱정이 되지만 아이가 돌이 될때까지는 이렇게 지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싸우지만 않고 지낼 수 있으면요.
하지만 견딜수 없는 순간이 오면 저는 히스테릭하게 폭발하게 되고
너무 괴롭고 미칠것 같아서 제가 제 뺨을 때리고 가슴을 쾅쾅 치고 울부짖고 집을 뛰쳐나가 공원을 미친듯이 걷고 완전히 소진해버리는 시간도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이 정도까지 가지 않더라도, 남편이 쏟아놓는 분노 감정에 감염되어
마음에 멍이 들어있는 것 같고 우울합니다.
제가 해야 할 일들, 써야 할 글과 가르칠 학생들과 기타 당장 해야 할 일들도 늘 압박감을 받고 있는데 귀하게 얻은 하루 몇 시간의 작업순간마저 제대로 집중하지 못할때가 많습니다. 집에 있으면 언제 남편의 잔소리와 고함이 들려올지 몰라 불안정 합니다.
저에게는 자유가 없습니다. 정말 작은 자유, 물을 크게 틀고 작게 틀고 같은 것조차도요. 그럴 수 있긴 하겠지만 그러면 남편의 폭포수같은 잔소리가 쏟아집니다.
제가 살림을 못배워서 그렇다면서, 너희 집(친정)도 더럽다고 비난합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저희 엄마는 살림하는 여자가 아니라 정년퇴직하지 일하는 엄마였습니다.
당연히 전업주부이며 정말로 깔끔하고 요리도 잘하시는 시어미니와는 비교할 수 없겠지요. 그렇지만 엄마는 아빠의 몫까지 하며 저를 키워오셨는데, 엄마까지 은근히 비난하고 깔보는 남편의 말을 들으면 피가 거꾸로 솟고 엄마에게 죄송합니다. 사실 친정에 가서 아이를 데리고 단 하루도 자고 온 적이 없습니다.
남편이 싫어해서요. 반면 시댁에서는 보름씩, 일주일씩 머문 날도 많습니다.
남편은 정말 심할 때는 사과를 합니다.
그러나 저의 마음은 다 부서진 다음이고 남편의 심한 말들이 마음에서 가시지 않습니다. 서세원-서정희 사건이 났을때 남편이 저에게 '서정희처럼 되고 싶어?'라고 한 적도 있었고 '쥐도새도 모르게 죽여버린다'고 한 적도 있습니다.
출판사가 제게 보내온 와인을 수도에 콸콸 따라 버린 적도 있지요.
그 모든 지옥이 여전히 제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물론 저희 사이가 늘 이렇게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잘 지내다가도 돌연 화를 내고 화를 내고 나면 멀쩡하게 또 딴소리를 하고
매일매일 시어머니와 통화하면서 아이 애기만 하고(정말 주부가 친정엄마와 애기하듯. 시어머니는 그 이후 별로 관여하지 않으십니다. 오로지 손녀만 귀여워하십니다) 하루하루 지냅니다. 저는 늘 불안하고 긴장된 상태입니다.
남편은 집안 살림 일체를 도맡아 하지만 남편은 자기 할 일 끝내면 쉬기도 하고 영화도 보고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지만 저는 아이를 보다가 나와서 제 일을 하고, 집에 들어가 다시 아이를 보기 때문에 쉬는 시간이 없습니다.
제가 집에 있으면 아이를 보는 것은 전적으로 제 일이니까요. 남편이 제가 일하는 동안 봐주는 것이 미안하기 때문에 집에 있는 순간에는 아이를 줄곧 제가 봅니다.
그런데도 남편은 너처럼 편하게 사는 엄마가 어디있느냐, 너가 왜 시간이 없냐 게을러서 그렇지, 라고 말을 합니다.
남편의 말이 심할때는 자꾸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듭니다.
내가 뛰어내려서 다치기라도 하면, 남편이 내가 이렇게 괴롭다는 것을 알까 싶어서요. 정말 많이 울었고, 이야기했지만 남편은 제 말을 길게 들어주지도 않고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남편의 끔찍한 말들을 듣지 않으려고 때때로 이어플러그(귀마개)를 하고 지냅니다.
부부상담 말을 꺼내본 적이 있는데 그렇게까지 하며 살고 싶진 않다고 합니다.
이혼이란 말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입니다.
'너 없어도 우린(자기와 딸) 잘 살 수 있어' '그렇게 싫으면 너희 친정으로 가'
이게 일년간 가장 많이 들은 말 중의 하나니까요.
이 모든 것을 견디는 이유는 당연히 제 딸 때문입니다.
엄마 아빠 모두 가까이 있는 행복한 아기지만
그 대신 싸우는 부모를 지속적으로 보고 있기도 합니다.
제가 딸아이 앞에서만이라도 싸우지 말자고 했지만 당연히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저의 가장 큰 질문은 이것입니다. 폭언도 가정폭력에 해당이 되나요?
이렇게 화를 내는 사람에게는 대체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저도 같이 화 내보고, 울어보고, 참아보고, 부모에게 알려도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대로라면 저도 문제지만 저희 딸은 화내는 아빠와 우는 엄마,
아빠의 말에 계속 울고 당하는 엄마를 바라보며 자라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 가장 끔찍합니다.
남편을 제가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화를 낼때 같이 내지 않으려 무진 애를 쓰고 있지만, 정말로 심할때는 저도 참을 수가 없어지고 결국 큰 소리로 싸우고 울게 되는데 이게 너무 힘이 듭니다. 아이한테도 너무너무 미안하고요.
또 같이 화를 내지 꾹 참고 있으려니까 계속 눈물이 나고 우울해서
당장 해야 할 일들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부모님은 이정도까지인줄은 모르시는데(그 사건 이후 괜찮게 지내는 줄 아세요)
시부모님께 알려야 하나요?
그런데 너무 마음 아프실 것 같고 알리지 않자니 이 고통을 아무도 모르고 저 혼자 감당하는 고립감이 너무 괴롭습니다.
시부모님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잘 지내고 있다고 지금처럼 그렇게 거짓말을 해야 할까요?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 사람은 대체 왜 그런 걸까요?
계속 참자니 너무 심하게 눈물이 나고 우울해지고 맞서 싸우자니 아이가 걸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 옆에 살면서 어떻게 제가 제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