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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사랑스럽다. 아니 좀 더 보태자면 유럽은 어디나 사랑이 넘치고 황홀할만큼 아름답다. 모든것들이 다 그러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이순간만큼은 여행자의 눈에 보이고 가슴에 와닿는 느낌들이 모두 그렇다.
골목길 뿐만이 아니라 오가는 사람들도 모두 매력이 넘치고 골목어귀 광장에서 만나는 분수들도 어찌나 아름답던지, 허락될 수 있다면 그냥 여기 어디 골목귀퉁이에 옥탑방이라도 얻어서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일거리만 있으면 언제까지고 여기 이대로 머물고싶다는 생각이 절로 생겨난다.
그렇게 좀 더 걷다보면 어디서든 만나게 되는 도심을 가로지르는 테베강과 그 강물위에 걸쳐진 많은 다리들....... 왜 유럽의 다리는 모두 그렇게 아름다운것인지.......
그런데 왜?
여행이 즐겁고 행복하면 행복할수록 골목길을 걸으면서, 또는 다리 난간에 걸터 앉아서, 흘러가는 테베강물을 보노라면 무엇인가 속마음이 아스라해지는것이...... 갑자기 슬픈 음악이 듣고 싶어진다. 마냥 즐겁고 기쁘다 싶으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이 마음은 또 무엇일까?
동유럽의 불가리아. 체코. 헝가리의 다리를 떠올리면 항상 '마리자 강변의 추억' 이라는 (실비 바르탕)의 노래가 먼저 떠오른다. 언제고 내가 카를교 난간에서 이 노래를 듣게 된다면, 그때 나는...... 정말로 한웅큼의 눈물을 왈칵 쏟아버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실비아의 어린시절 비극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직접 만들었다는 이 노래를 나는 온마음으로 사무치도록 깊게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렌체를 간다면 사람들은 우선적으로 베키오 다리를 찾겠지만, 나는 다르게 베키오에서 하류로 바로 아래쪽에 있는 산타트리티니 다리 위에서 (조용필)의 노래를 들을 것이다. '슬픈 베아트리체"를. 그리고 아마도 오랫동안 흠모하던 (단테)를 만나게 되겠지......
그리고 지금은........ 로마의 다리 위에서 (밀바)의 노래를 듣고 있다. '눈물속에 피는 꽃'
나는 믿어요
지금 흘러내리는 나의 눈물 눈물마다 언젠가는
새로운 꽃들이 활짝 피어나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 꽃잎 위에 나비가 찾아 오리라는 것을
나는 믿어요
영원속에서도 나를 생각해 주고
나를 잊지않아줄 그 누군가가 있다는것을
그래요
언젠가는 나도 찾게 되겠지요
결코 나의 인생이 혼자이지는 않을거예요
나는 알아요
비록 보잘것 없겠지만 그래도 영원속에는
나를 위한 하나의 사랑이 있을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아요
이 하늘 보다 더 높고 넓은 영원속 어딘가에
나를 향한 작은 마음이 살아있다는 것을
너무 기쁠때 뜬금없이 슬픈 음악을 찾게 되는것은....... 이마도 이번 여행기 마지막에 이스탄불의 피에로 로티 언덕을 이야기 할때 다시 꺼내게 될것 같다.
로티는 공동묘지 위에 있는 카페를 자주 찾았다. 지금은 그냥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지만........ 산 자가 늘 죽은 자를 가까이 하고 산다는 것....... 죽음은 마상 두려운 것이지만, 늘 곁에 두고서 익숙해지다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죽음조차도 두려움이 아닌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또 이 순간 살아있다는 것은...... 앞서 죽어간 사람보다는 승리자인 셈이라는것....... 단편으로 생각해 보면 생존이 곧 승리이니까. 또 내가 잘쓰는 말인......... '지금 내가 가진 오늘은 죽어간 그 누군가가 그렇게 애태게 원하던 내일 이었다는 것을.......'
밀바의 노래를 듣다보니 차분함을 넘어서 심신이 모두 축 처지는 느낌을 떨칠수가 없다.
가까운 어디라도 가서 맥주라도....... 아님 부드러운 카푸치노라도 한 잔 마시고 나서 다시 즐거운 도심여행을 시작해야만 할것같다.
참, 로마에서는 아무 가게에서나 맥주를 팔지 않는다. 함께 파는 곳도 더러 있기는 하지만, 술이 허락되는 곳은 바이고, 스넥이나 작은 카페등에선 술을 팔지 않는다. 더하여..... 로마에서 생맥주를 마시려면 발품 좀 팔거나, 아님 좀 잘나간다 싶은 커더란 카페나 바에 들르면 된다. 갑자기 생맥주가 마시고 싶다.
유유히 흘러가는 아름다운 강물과 다리 난간위에서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과, 어딘가 모르게 좀 바빠 보이는 여행자들, 도로를 가득 메우며 빠르게 오가는 소형차들이며 오토바이의 굉음소리..... 포근한 1월의 햇살아래 환하게 웃고있는 유모차를 탄 꼬맹이들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띈다.
'우리 태리도 여기 함께 있었으면........'
강변길 따라 들어선 벼룩시장도 있고 어디서나 잠깐 선채로 커피 한잔을 즐길수 있는 가판대도 무척이나 많다. 또 어느 골목이나 들아서다 보면 구덩이 처럼 파헤쳐진 곳에 흔하디 흔하게 고대 로마의 잔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발굴을 제대로 하고나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사방으로 너무 흔하니까 아예 무심해지고 이젠 관심들도 없나보다. 나뒹굴고 있는 부러진 대리석 기둥 받침대 하나만 가져가도 제법 돈이 되겠는데 말이다. ㅎㅎㅎㅎ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은..... 이 도심은 과거 번영의 극치을 달리던 로마제국의 위대한 유산이다. 로마는 이 거대한 제국의 번영을 '팍스 로마나' 즉 '로마의 평화'라고 불렀다. 그런데 좀 더 진진하게 속내막을 살펴보자면 여기서의 '평화'는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는 그런 '평화'와는 본질부터가 다른 '평화'였다.
(로마의 평화)는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수많은 전쟁을 치루어 승리한 결과이고, 승자의 전리품으로 무자비하게 약탈을 해서 공수해다 시민들을 배불리게 하고, 확장된 영토만큼 식민지로 부터 끊임없이 공물을 계속 받아내고, 강력한 군사력 때문에 주변의 어느 누구하나도 찝적대지 않는......... '힘에 의한 자기들만의 평화' 였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제국주의 이고........ 현재에 있어서는 꼭 미국이나 중국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더라도......... '트럼프'가 하는 짓이 바로 이런 (Pax) 흉내내기가 아닌가 싶다.
뭐 어찌보면야...... '국가(통치자)란 일단 제 백성 배부르고 따습게 해주는것이 우선적인 기본 도리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지만.......
혹, 이런 이야기 자꾸 꺼내다 보면 훗날........ 아예 바티칸이랑 미국 입국 거부당하는것 아닐까 모르겠다.
그건 그대가봐서 생각할 문제고......... 또 설령 그렇게 된다해도 걱정 없고, 나는 또 가던 길을 마저 간다.
세상은 넓고 갈데는 넘치니까........
Travel Tip>
'여행은 아는만큼만 보인다'
이말은 적어도 여행에 관한한은 참명제요 진리이다. 여행은 어떤 방법으로든 사전에 미리 공부하고 준비하는 만큼만 풍요로움과 즐거움을 선사해 준다.
물론 이 부분을 패키지여행의 가이드가 채워준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전과나 학습지를 통해 정답만 적어낸 시험답안지로는 그것이 온전한 자신의 지식이 되어 줄 수 없음이요, 그 지식이 경험으로 진화하리라는 기대를 아예 접는것이 좋을것 같다.
사전에 공부를 통한 지식이 현지에서 여행과 만났을때, 그것은 경이로운 경험이며 곧바로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막연히 여행을 다녀온 후에 어떤 기회로 문득 다녀온 여행에 대한 지식을 마주치게 되면 아주 잠깐 어떤 짜릿한 전율은 있으지 모르나, 특별한 감동까지나 다음의 단계로 이어지리라는 기대는 하지않는것이 좋을듯 싶다.
이 사전의 공부나 준비에 있어서 대개의 여행자들이 교본처럼 여기는 각종 여행 가이드북을 절대가치 처럼 받들어 모시는데...... 나는 좀 다르게 '책(소설)' 이나 '영화'를 권하고 싶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는 당연히 (단테)이다. 이 대목에서 '가장' 이라는 단어를 꼭 써야 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되물어 보면서 말이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는 당연히 (니코스 카잔챠키스)다.
내가 가장 닮고 싶은 작가는 (최인호. 김주영) 이다. 생을 마치기 전에 그분들 작품 같은 소설을 꼭 한번은 탈고해 보고 싶다.
내가 가장 손에 자주 집어드는 소설의 작가는 (톰 클랜시. 댄 브라운) 이다.
그분들 중에 아주아주 매혹이 넘치는 아주 이색적인 매력으로 나를 흥분시키는 분이 바로 (댄 브라운)이다. 누구나 아는 '다빈치 코드'의 작가이다.
거두절미하고....... 이분의 작품 중에 3편이 영화화 되었다.
'로버트 랭던(톰 행크스)'이라는 인문학과 미술사에 정통한 기호학 교수를 등장시켜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의 수수께끼 같은 미스테리를 풀어 나간다.
프랑스와 영국을 여행하려는 여행자라면 가이드 북 대신 '다빈치 코드'라는 영화를 두 번만 출발전에 미리 보고 떠나라. 영화에서 나오는 인물이나 사건, 그리고 건축과 회화가 궁굼하거들랑 인터넷 검색이나 사전을 뒤져서 조금만 더 공부하고 가라. 황홀한 여행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로마를 찾아가려는 여행자라면 2편 격인 "천사와 악마'를 꼭 2번 이상 보고 떠나라. 역시 마찬가지로 궁금한 인물이나 건축이나 회화와 역사에 대해서 부수적으로 공부하고 간다면..... 로마는 온통 황홀하리만치 풍요로운 추억과 경험으로 당신을 맞이할 것이다. '찬사와 악마'에는 대부분의 모든 로마의 명소와 중세 암흑기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영화 감상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로마의 명소 대부분을 다녀본 것이 될것이다.
피렌체와 이스탄불(터키)를 가려는 사람은 3편 격인 '인페르노'를 세번정도 꼭 보고 가시라. 비잔틴과 르네상스가 그 영화속에 있다.
가이드 북에 밑줄을 그어대고 있는니.........
편안한 자세로 인터넷을 통해 영화를 감상하기로 하자.
2016년.
이스탄불에서 귀국한지 약 보름후에 '인페르노'가 개봉하였기에 영화관에 가서 보았다. 후반부의 이스탄불 장면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 감동이란......... 로버트 랭던이 살아서 내 가슴속에 있었다. ' 이스탄불은 나에게 있어서 언제나 영원한 로망이다.'
2편인 '천사와 악마'의 클라이 막스에 가까운 장면에 인질로 납치된 4명의 추기경중 3명이 이미 살해당하고 4번째 추기경이 기적적으로 구출되는 장면에 등장하는 장소가 바로 이제부터 되돌아갈 본래의 여행기에 등장하는 장소인, 윗글의 마지막 사진이 바로 (나보나 광장) 이다. 그럼 다시 여행으로 돌아가 보자.
<나보나 광장>
도미티아누수 황제가 AD. 86년에 만든 대전차 경기장이 있던 자리이다. 한가운데의 오벨리스크는 물론 이집트에서 뺏어온 약탈물이다.
로마의 황제들이 이집트를 보면서 생각한 것이, 자신의 전쟁 기념이나 업적을 길이길이 자랑하는 방법으로, 이집트 왕들이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려 세운 오벨리스크 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승리자의 자격으로 눈에 보이는 오벨리스크란 오벨리스크는 싹쓸이 하다시피 분해하여 일단 로마로 옮겨다 놓았다. 어디에 쓸지는 나중에 차차 생각해 볼 문제였다. 결국 원자리인 이집트에는 오벨리스크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로마에 가장 많고 파리에 런던에..... 심지어 미국 워싱턴에까지 가 있다. 모두가 약탈된 이집트의 소중한 문화재들이다.
17세기 인노켄티우스 10세 교황이 낡고 허물어진 대전차경기장을 광장으로 새롭게 만들었다. 경기장의 터는 오벨리스크를 중심으로 3개의 분수를 만들면서 그대로 반원형을 유지했고, 광장의 주변으로 성당과 건물들을 지으면서 현재의 광장 모습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나보나 광장은 365일 내내 마치 무슨 축제를 계속하는 것처럼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주변으로 수많은 꽃집과 분위기 짱나는 카페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이 광장이 모든이에게 이토록 크게 사랑받으며 항상 붐비는데에는 광장 한가운데 있는 세개의 분수와 광장의 중간쯤 밖으로 우뚝 솟아있는 한 교회에 대한 수많은 가십거리와 추측성 이야기들로 인하여 더욱 유명해 졌다.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트레비 분수와 스페인 광장에 있는 난파선 분수와 여기 나보나 광장의 3개 분수는 모두 같은 고대수로(수도교)를 통해 오늘까지도 같은 물을 공급받고 있다. 고대 로마인들의 지혜와 토목기술에 한없는 존경과 갈채를 보낼 수 밖에. 오늘에도 여전히 힘차게 물줄기가 솟아 오르고 있다.
물은 여기 나보나 광장의 물줄기가 가장 세다. 여기보다 지대가 높은 스페인 광장의 난파선 분수는 물줄기가 많이 약한 모습이다. 그런 문제점을 안고 시작한 트레비 분수는 수압때문에 처음부터 아예 지대를 낮게 파서 평지 보다 낮은 저지대에 분수를 설치한 놀라운 로마인들의 지혜를 유감없이 그대로 증명해 보여준다.
이제 여기서 나보나 광장에 얽힌 오해를 풀어 그 진실들을 분명하게 밝혀 보고자 한다.
나보나 광장에는 세개의 분수가 있는데, 가장 북쪽의 분수를 넵튠 분수(Fontana di Nettuno)라 부른다. 얼마 전까진 (Fontana di Calderari) 라고 불렸었기에 일부 여행가이드북이나 여행자들이 속된말로 '칼데라리'가 넵튠 분수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는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거짓말까지는 아니겠지만 확실한 오보다. 나보나 광장의 가장 북쪽 끝에 설치된 이 분수는 바로 건너편 건물이 대장간이었고, 이 분수를 만드는 작업자들이 그 대장간을 작업실로 함께 이용했었기에 오랜 세월동안 '대장장이 분수'로 불리어졌으며, 여기에서의 칼데라리는 바로 대장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럼 누가 만들었느냐?
시작은 반대쪽인 광장의 가장 남쪽에 있는 (무어인의 분수)를 70% 정도 완성한 조각가 '자코모 델라 포르타'가 분수의 기본 몸체를 만들었고 물을 끌어왔다. 그러니까 수영장까지는 델라 포르타가 만든것이다. 나의 생각으로는 아마도 델라 포르타가 여기 넵튠 분수와 무어인의 분수를 동시에 함께 시작했었지 싶다. 그러면서 중간 작업으로 무어인의 분수를 먼저 시작했는데......... 어떤 사정이 생겨서........ 베르니니와 마찰이 생겨서 일 수도 있고........
암튼 풀장으로만 만들어진 분수를 후에 '그레고리오 차팔라' 라는 조각가가 신화을 배경으로 물에서 솟아오르는 아주인상적인 모습의 말조각상 등 대부분의 조각상을 만들어 세웠고.......
마지막으로 '안토니오 델라 비타'가 바로 문어와 싸우는 넵튠의 조각상을 만들어 그 위에 세우면서 (넵튠 분수)는 완성되었다.(이렇게 고증에 의해서 정확하고도 분명하게 써있는 가이드 북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음으로 가장 남쪽의 무어인 분수(Fontana di Moro)를 살펴보자.
앞서 말한 바 처럼 '자코모 델라 포르타'가 이 분수를 만들었다. 하지만 완성 까지는 아니었다.
델라 포르타는 돌고래와 4명의 반인반어(半人半魚)와 해신 트라이톤의 조각상을 완성했다. 어찌보면 여기까지만으로도 하나의 훌륭한 분수가 되고도 남았을 터인데........ 가운데의 파우미 분수를 만든 베르니니가 무어인 조각상을 만들어서 델라 포르타의 조각들 위에 얹으면서 분수를 완성 시켰다.
만약에 델라 포르타가 광장의 양쪽으로 두 개의 분수를 동시에 시작하였고, 기초대는 함께 완성했고 남쪽의 분수를 먼저 거의 완성해 가는중에, 갑자기 엉뚱하게 베르니니가 욕심이 생겨서 발주처인 교황에게 어쩌구저쩌구 해서 자신의 조각상을 널룸 델라 포르타의 완성되어가는 분수대에 얹어 버렸다면......... 자존심으로 먹고 사는 예술가 입장에서 델라 포르타는 더러워서라도 손을 털고 떠날 수 밖에.......... 나는 조심스레 그런 짐작을 유추해 보곤 했다.
다른 하나로는...... '자코모 델라 포르타'가 누군인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능력있는 조각가요 건축가 였다.
델라 포르타는 '미켈란젤로'의 제자라 하기에도 좀 그렇고, 파트너라 하기에도 좀 그렇고...... 암튼 미켈란젤로와 아주 막역한 사이였다.
당대 최고의 건축가였진만 유독 미켈란젤로를 미워했던 '브라만테'가 종국에 (성 베드로 성당)을 완성 시키지 못하였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돔을 비롯한 성당의 후반부 작업을 정적이었던 미켈란젤로가 이어 받게 된다. 그래서 후반부 작업의 상당부분을 아예 기초 설계에서 부터 뜯어 고치고, 돔의 건축은 아예 브라만테의 구상과 정반대로 작업이 이루어 진다. 이때, 함께 설계를 변경하고...... 끝내는 돔의 마지막 작업을 하면서 성당을 완성시킨 사람이 바로 델라 포르타 였다. 유명한 캄피돌리아 광장과 계단 역시 미켈란젤로의 설계와 작업이었지만 종국엔........ 말년의 미켈란젤로는 갑자기 건축을 비롯한 모든 일에 대하여 실증을 느끼게 되고 거의 은둔에 가까운 생활에 접어들게 된다. 조각실에 들어앉은 미켈란젤로는 유작인 (론다니니의 피에타)에 열중하였는데...... '지상 최고 조각의 신(神)'인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거나 믿을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나서야 새로운 해석과 새로운 가치가 더하여 졌다. 실제 보면서 '이것이 미켈란젤로가........' 라고 생각해 보면 누구나 엄청난 충격을 받게된다. 더욱이 미완성인 채로 지만....... 작업중에 본인인 미켈란젤로가 스스로 망치로 내려쳐 부서진 부분도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하니, 과연 무슨 일이....... 왜 그랬을까?
암튼 그런 이유로 캄피돌리아 광장의 최종 마무리 공사도 델라 포르타가 맡아서 했다.
그런측면에서 보자면....... 나보나 광장의 분수대 작업 중에 미켈란젤로의 부탁을 맏았거나, 아님 심각한 미켈란젤로의 상태를 확인하고 달려갔거나........
--- 넵튠 분수대(대장장이 분수)
무어인 분수대에서 바라보는 나보나 광장과 왼편의 성녀 아그네스 성당.
--- 베르니니의 파우미 분수와 오벨리스크.
뭐니뭐니 해도 나보나 광장의 명물은 여기 파우미 분수(Fontana di Fiumi) 이다. 당시 또 한명의 가장 위대한 조각가이자 건축가였던 지안 로렌초 베르니니의 작품이다. 당시의 교황이었던 이노센트 10세와 베르니니는 어린시절부터 막역한 친구였다. 이는 지상최고의 막강한 후원자를 옆에 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보나 광장의 분수대가 교황에 의해서 발주되었을 때, 베르니니가 교황의 조카를 유혹하면서까지 이 분수대 작업을 집요하게 끝까지 수주한 일화는 두고두고 베르니니에게 쓰리고 아픈 상처로 계속 따라다니게 된다. 그런 좋지않은 방법을 동원하며서 겨우 따낸 수주였기 때문이었을까? 인생의 절반 이상을 철천지 원수로 지낸 비운의 천재 '보로미니'와 떡하니 여기 나보나 광장에서 또 다시 마주치게되고 또 경쟁을 치르기에 이른다.
두사람의 정쟁 관계는 자신들이 만든 건축과 조각상에게 까지 일련의 얼룩진 이야기(설)들을 낳게 되는데 여행과 함께 잠깐 살펴보고 가야겠다.
마치 오벨리스크를 떠받들고 있는 형상의 크고 장엄한 파우미 분수는 4개의 대륙의 거대한 강을 상징하는 4명의 거인들이 각각 이색적인 포즈로 역동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근육질의 남성미를 한껏 뽐내고 있다. 북미의 갠지즈강. 남미 볼리비아와 아르헨티나 국경의 라플라타강. 유럽의 젓줄 도나우강. 그리고 이집트의 나일강이다.
회자되는 첫 이야기는 라플라타강의 거인이 오벨리스크를 올려다보며 손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 탑이 언젠가는 무너질거야' 해서 막아보려는 포즈라는 풍문인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바라보면 영락없는 그 모양새다. 하지만 베르니니가 뭐라고 설명을 남겨 놓지를 않아서........
다음은 나일강을 상징하는 거인이 자신의 얼굴을 천으로 가리고 있는 모습에서이다. 하필이면 그 조각상의 바로 코 앞에 평생의 정적이던 '보르미니'가 세운 (성녀 아그네스 성당)과 영락없이 뻔히 마주보고 있는 형국이다. 하여 '보르미니의 꼴을 발꿈치라도 보기 싫어서 아예 얼굴을 천으로 가려버렸다'는 웃기는 일화가 생겨났는데...... 이것은 결코 아니다. 파우미 분수가 완전하게 완성된 후에야 성당의 신축이 시작되어졌으니 그런 우연적인 이야기는 맞지가 않다.
베르니니가 말하기를....... 나일강의 근원이 당시까지 밝혀지지 않아서 그런 의미로 나일의 거인 얼굴을 가렸다고 설명했기 때문이다.
'성녀 아그네스 성당'은 처녀 아그네스가 로마 귀족의 청혼을 거절한 죄로 (당시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의 시대) 알몸으로 전차경기장의 대중들 앞에 내던져 젔는데, 순식간에 그녀의 머리카락이 자라나서 나신을 가릴 수 있었다는 기적 같은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끝내 기독교 신앙을 지키려 몸부림 치던 그녀는 처녀의 몸으로 감옥에서 순교 하였고, 성인으로 추대 되었다.
이 같은 이야기는 뒤에 시칠리아로 건너가서 또 다른 성녀들의 이야기때 다시 거론하도록 하겠다.
--- (성녀 아그네스 성당)을 마주보고 있는 나일의 거인상.
--- 무너짐을 예고하는 라플라타강의 거인상.
르네상스뿐만이 아니라 인류 역사를 가만히 살펴보면 애증의 관계나 선의의 라이벌을 넘어서 정적내지는 영원한 원수의 관계를 많이 보게된다.
특히 영웅이나 천재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참으로 특이한 형상이다.
짓꿋은 신의 장난일까?
오죽하면 죽어가는 주유가 '하늘은 어찌하여 나 주유를 보냈으면서 또 공명을 내보냈단 말입니까?' 하고 통탄하면서 피를 쏟고 죽었을까?
여기 나보나 광장에서 마주친 두명의 걸출한 천재들, 베르니니와 보르미니의 경우도 그랬다.
왜 그랬을까?
태어나면서 부터 태생적으로 시작되는 원수 관계는 주로 우리나라 사색당파 싸움에서나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나?
나는 감히 그 원인을 베르니니가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베르니니는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훌륭한 예술가 반열에는 이름을 올렸지만, 파우니 분수를 수주하는데서 보였듯이 그와 비슷한 파렴치한 일들이 끊이질않고 뒤를 졸졸 따라다니게 했던......... 훌륭한 예술가의 반열에 오른 이름만큼 인간적인 품성에서....... 품격이 많이 뒤쳐진......... 인성이 결코 예술혼에 미치지 못한........ 약간 저질의 인간이었다고 나는 짐작한다.
이에 비해 보르미니는 우울한 비운의 천재였다.
보르미니의 건축은 너무도 개성이 강했다. 하지만 남들의 이해를 구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조금도 양보해 본적이 없다. 그냥 제 멋대로 였다. 그러다 두 사람이 함께 작업을 하게 되었고, 사건이 생겨 났고 서로 반목하게 되었고, 그일로 부터 서로 원수가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보르미니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는 세상과 타협하기를 끝내 거부했다. 안타까운 비운의 천재였다.
당대를 풍미하던 최고의 건축가 (브라만테)가 베드로 성당의 예배당 건설을 마무리하면서 본격적으로 돔(쿠풀라) 작업에 전념하고자 했을 때, 브라만테에게는 새로운 고민이 크게 생겨났다.
이 냉랭하면서도 광대한, 엄청난 크기의 성당 내부를 자신이 직접 꾸밀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브라만테는 교황의 친구이던 (지안 로렌초 베르니니)에게 베드로 성당의 내부 공사를 맡기기로 아주 탁원한 선택을 하게 되었다. 신의 한 수라고 해도 될 그런 선택이었다. 베르니니는 직접 나서서 자신이 조각을 하면서, 천장의 프레스코화는 제자였던 (지오반니 바티스나 가울리)에게 맡기고, 같은 제자 (안토니오 랏자)에게 벽면의 치장 부조 조각을 맡겼다. 모두가 재능에 찬 젊은 예술가들이었다.
그렇게 그렇게 베드로 성당은 위엄과 장식미가 돋보이는 아름다운 성당의 모습을 하나 둘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다음단계로서 새롭게 작업을 시작학 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발다키노(교황의 제단) 이었다. 이 제단에는 오로지 교황만이 오를 수 있고, 교황만이 이곳에서 미사를 집전할 수 있다.
높이 29m에 이르는 네개의 화려한 나선형의 청동 기둥 위에는 4명의 천사가 금방이라도 이 발다키노를 하늘로 날아오르게 만들듯한 극적인 디자인으로 아주 유명하다. 힘차게 감아도는 소용돌이 장식은 이교도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승리를 나타내며 캐노피 위로 승리의 상징인 십자가를 황금보주위에 우뚝 솟아오르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만큼 잘 만들어졌다. 교황 우르바누스 8세는 이 발다카노를 극구 찬양해 마지않았고, 동시에 이 발다키노는 곧 베르니니의 대표작이 되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베르니니에게는 그 같이 행동할 권리가 없었다.
이 발다카노를 베르니니가 설계한 것은 맞지만, 그에게는 이 감아올린듯한 네개의 기둥에 살아서 꿈틀대는 역동성을 가미할만한 능력이 부족했다. 하여 베르니니는 한 살 아래의 건축 조각가 보르미니를 끌어 들였다. 보르미니는 베르니니의 설계도면 위에 자신의 예술혼을 불어넣어서 새로운 생명채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발다카노는 보르미니의 섬세하면서도 창의적인 조각건축술에 의해서 탄생한 걸작이었다. 합작이라기 보다 발다카노는 온전히 처음부터 보르미니의 작품이었다. 당시의 설계라는 것이 요즈음 같은 세분화된 정묘한 3D 수준의 설계도면이 아니라, 스케치나 데생 수준의 밑그림이 설계도면 이었다면, 그것은 곧 베르니니의 주장이 설득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마는 결과를 낳게된다.
보르미니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베르니니는 몰래 발다카노의 귀퉁이에 자신의 가문 문장인 꿀벌을 새겨 넣었다. 그리고는 교황을 모시고 와서 완성된 발디카노를 선보였다. 동시에 발주자인 교황에 의해서 발다카노는 베르니니의 작품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작품을 도난당한 보르미니의 분노는 매우 컸다.
꿀벌을 새겨 넣기 전에 단 한마디라도 자신의 속내를 , 비록 치사한 욕심이나 야심을 일부만이라도 사전에 내비추기라도 했으면 분노가 그렇게 크지는 않았으리라.
그 시점부터 베르니니와 보르미니는 철천지 원수지간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성 베드로 성당의 (발디카노)는 엄연히 '보르미니'의 작품이다. 콩크루에 접수하는 과정에서 질투와 허영과 욕심에 눈 먼 '베르니니'가 은근슬쩍 자신의 이름을 몰래 적어 넣고 접수했는데, 아뿔싸........ 그만 대상에 입상해 버린 것이라고.........
당시에 미투(Me Too)운동이 펼쳐졌더라면......... 베르니니는 1번으로 날라가지 않았을까...........?
천재성과 품성(인품)이 자주 엇박자가 나는것도 신 (神)의 심술일까?
무어인의 분수가 바라보이는 골목의 노천 의자에 앉아서 비운의 천재 보르미니를 추억하면서 맥주를 마시는데........ 맛이 쓰다.
베르니니가 싫어지다 보니 갑자기 무어인의 분수를 만들다 그만 둔 자코모 델라 포르타도 베르니니의 파렴치한 만행에 쫓겨났다는 생각에 까지 미치자 부아가 치밀어 맥주를 한 병 더 시켰는데...... 역시 쓰다.
아 참.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무어인의 분수는 통째로 가짜다. 흔히들 '플라스크'라고 부르는 모조품이다. 진품은 이탈리아 국립미술관인 로마 인근의 보르게세 공원에 가면 진짜 진품을 만나 볼 수 있다. 기가막히게 이 사람들은 이렇게 어마무시한 분수도 통째로 옮기는 사람들이다.
팔레르모에 가면 피렌체에서 통째로 옯겨온 분수가 또 있다. 그때 다시 설명 하기로 하고.......
한참을 더 그렇게 넋놓고 앉아 있다가 다시 골목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그러다가 얼마 걷지않아서 나는 또다시 맞이하게되는 놀라운 경이로움에 저절로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로마 하면 떠올리는 것이 코로세오라 하지만.......
내가 로마하면 떠올리는 첫번째........ 로마에 가서 꼭 보고 싶었던 그 위대한 건축물이 쨘 하고 내 시야에 가득 모습을 드러냈다.
와!!!!!!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페부 깊숙히 마구마구 파고드는 이 절대적인 감정과 가슴을 짖누르는 느낌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와!!!!!!
나는 왔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와!!!!!!!
어떻게 로마를 사랑하지 않고 견뎌 낼 수가 있단 말인가?
----- 다음 이야기에서 이어서......... 감사합니다.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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