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26일 중국 방문을 마치고 27일 북한으로 돌아갔다. 지난해 5월과 8월에 이은 세 번째 방중으로 그 배경과 결과에 대해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방중 일정 마지막 날인 26일 저녁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김정일 위원장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25일 정상회담 소식을 포함해 김 위원장의 방중에 대해 본격 보도를 내놓았다.
북 통신, 북중친선과 ‘계승’에 방점
북측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의 방중 첫 보도에서 10회 이상 ‘조(북)중친선’을 강조했으며, 김정은 후계체제를 염두에 둔 듯 북중친선의 ‘계승’에 방점을 찍었다.
북 통신은 “최고령도자들께서는 60여년의 자랑스러운 역사적 노정을 걸어왔으며 새로운 높은 단계에 올라선 조중친선협조관계를 대를 이어 계승하고 공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남이 대신할 수 없는 공동의 성스러운 책임과 확고부동한 입장이라는 데 대하여 견해를 같이 하시였다”며 후 주석이 “두 나라 노세대혁명가들의 고귀한 넋이 어려있는 전통적인 중조친선의 바통을 굳건히 이어가는데서 역사적 책임을 다해갈 것이라고 지적하시였다”고 전했다
또한 후 주석이 “역사적인 조선노동당대표자회 정신을 높이 받들고 김일성주석 탄생 100돌이 되는 2012년에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기 위하여 힘찬 투쟁을 벌리고 있는 전체 조선인민에게 친절한 인사를 전하시였다”고 전해 지난해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등장한 9.28당대표자회를 후 주석이 언급한 점을 드러냈다.
중국측 <신화통신>도 ‘중북우의’를 여러 차례 강조했으며, “김정일 총비서도 중북 관계의 발전을 매우 중시하고 있으며 지난해 이후 3차례 방중하였고 차세대도 중북 우의를 잘 계승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든가 김 위원장은 “중북 양국 국민간 우의를 매우 소중한 것으로 우리가 이를 대대손손 전하는 것이 우리의 중대한 역사적 사명이며...”라고 보도해 주로 ‘북측의 계승 의지’를 전하는 형식을 취했다.
후 주석은 김 위원장에게 5가지 희망사항을 전하면서 “중북 우의가 세대를 거쳐 이어져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언급했으며, “북한 지도자가 중국을 방문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밝혀 김정은 부위원장의 방중이 연내에 실현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후 주석은 김 위원장의 방북 초청도 흔쾌히 수용했다.
후 주석이 제기한 5가지 희망사항은 △고위층 교류 강화 △경험 교류, 각자의 경제 및 사회발전을 촉진 △호혜협력을 확대, 양국 국민 행복하게 하기 △중북우의 세대를 거쳐 계승 △소통강화 협조유지, 지역평화와 안정 공동수호 등이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이번 방중 기간 중 중국 공산당 상무위원 9명 가운데 외유 중인 우방궈 전인대 상무위원장을 제외한 8명의 상무위원 전원과 만나는 등 각별한 대우를 받아 같은 기간 열린 한중일 정상회담에서의 이명박-원자바오 회담의 빛을 바래게 하는 등 북중친선 관계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혁명전통과 북중친선 과시, 장쩌민 만났나?
이번 김정일 위원장의 6박 7일 일정의 방중은 북한의 혁명전통과 북중친선을 과시하는 행보로 이어졌다.
북 통신은 김 위원장의 중국 동북지역과 화동지역 비공식 방문에 관한 27일자 별도 기사에서 동북지역 방문에 대해 “목단강시에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동녕현성전투, 노흑산의 전설, 남호두회의 등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항일혁명투쟁사가 뜨겁게 깃들어 있다”거나 “경박호는... 경박호반전투를 진행한 것으로 해서 더욱 유명해진 뜻깊은 항일혁명전구”, “장춘시는 1964년 9월 중국 동북지역을 방문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은래 총리와 뜻깊은 상봉을”했다는 점 등을 상기시켰다.
화동지역 방문에 대해서도 “양주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1991년 10월 마지막 중국방문시 강택민주석의 안내를 받으시며 돌아보신 뜻깊은 도시”, “남경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1975년 4월에는 등소평동지와 함께, 1991년 10월에는 강택민동지와 함께 돌아보시면서 조중친선 역사에 불멸의 자욱을 남기신 추억깊은 도시”, “남경판다과학기술공사의 전신은 김정일동지께서 1983년 6월 역사적인 첫 중국방문의 나날에 참관하시였던 남경약전기구공장”이라고 오랜 친선관계를 되새겼다.
특히 원자바오 총리와의 회담에서 원 총리가 “이번 방문길이 20년전 김일성주석동지께서 다녀가신 노정과 같다고 말하였다”며 “온가보동지는 1991년 10월 김일성주석동지의 강소성방문시 그이를 동행하던 일들이 눈앞에 삼삼하다고 말하였다”고 전했다.
1994년 급서한 고 김일성 주석이 한중수교(1992.8) 직전인 1991년 10월 생애 마지막으로 중국을 방문해 장쩌민 전 주석을 만났던 역사적 사실을 떠올린 점은 의미심장하다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양저우(양주)를 찾아 장쩌민 전 주석을 만났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이 건강이 좋지 않은 장 전 주석을 병문안 하는 형식을 취해 자연스러운 만남을 가졌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김 위원장이 30시간의 열차여행을 무릅쓰고 중요 도시들도 들리지 않은 채 양저우로 향한 정황이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와 관련 한 대북 전문가는 “김 위원장이 장쩌민을 만나 장쩌민-시진핑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황태자당’ 또는 ‘상하이방’ 라인과의 협력 체계를 강화함으로써 북중경협에 속도를 내고 북중친선을 대를 이어 계승하는 상징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했다.
김 위원장의 지난해 5,8월 두 차례의 방중에도 불구하고 북중경협이 생각만큼 속도가 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공청단’계열인 후진타오 주석이나 경제원리를 중시하는 원자바오 총리보다는 장쩌민 전 주석의 도움이 더 절실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또한 차기 지도자로 내정된 시진핑 부주석이 장쩌민의 상하이방 계열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중국 공산당 지도부 내에서 황태자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시진핑 시대에 후계자 김정은 부위원장과의 대를 이은 북중친선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것이다.
실제로 시진핑 부주석은 이번 김 위원장과 후 주석과의 정상회담과 만찬연회에 배석했다. 그러나 시진핑 부주석과 나란히 차세대 쌍두마차로 불리는 공청단계로 알려진 리커창 부총리도 26일 김 위원장과 함께 베이징 인근 산업시설을 시찰하고 오찬까지 마련하는 등 각별한 행보를 보였다.
“중국 개혁.개방 정책은 올바른 선택”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은 2012년 강성대국 진입을 목전에 두고 지난해 5,8월에 이어 다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북중경협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인지에 눈길이 쏠렸다.
김 위원장은 중국 동북지역과 화동지역은 물론 베이징에서까지 빠듯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산업시설 시찰을 강행했다.
북 통신은 북중 정상회담에서 “최고령도자들께서는 지난해 장춘에서의 상봉이후 두 당, 두 나라 영도자들이 이룩한 합의에 따라 그 문제들을 집행하기 위하여 두 나라 정부와 인민이 각 부문에서 노력하였다고 인정하였다”고 전해 지난해 8월 북중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경제협력도 큰틀에서 추진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북 통신은 “김정일동지께서는 방문기간 경제와 문화, 첨단과학기술분야를 비롯하여 드넓은 중국대륙에서 이룩되고 있는 성과들에서 급속히 변모되고 있는 중화대지의 약동하는 발전상에 대해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고 말씀하시였다”거나 “호금도동지께서는... 부강조국건설위업 실현을 위한 총비서동지의 중대한 사업에서 보다 큰 성과가 이룩되기를 축원하시였다”고 전했다.
특히 <신화통신>은 후 주석이 “북한이 민생개선을 가장 큰 과제이자 최고의 목표로 삼고, 당과 국가의 역량을 모아 흔들림 없이 경제건설을 가속화하고, 인민 생활수준을 제고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게 되어 매우 기쁘며...”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또한 원자바오 총리와의 회담을 전하면서 원 총리가 “근래 중북 고위층의 밀접한 왕래는 전략 소통을 강화시키는 동시에 경제.무역 등의 영역에서 구체적인 협력을 추동했으며, 양국 경제 건설과 민생 개선을 촉진하였다”며 “중국은 또한 북한과 함께 각 업무기제의 효과를 발휘하고, 각 지방과 기업의 적극성을 가일층 제고시키고, 계획과 조정을 강화하여 앞으로 호혜협력을 더 높은 수준으로 제고시키기를 희망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이에 비해 북 통신은 원 총리와의 회담 내용에서는 경제문제를 전혀 보도하지 않아 강조점을 달리했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김-원 회담에서 경제문제가 거론됐지만 북측으로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원 총리가 “지방과 기업”을 언급한 대목은 중국 중앙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바라고 있는 북측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 수행자 중에 경제전문가들 보다는 당 고위직 인사들이 주로 포진한 것을 두고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 목적은 직접 중국측의 경제협력을 이끌어내는 것 보다는 북중친선과 혁명전통의 계승이라는 더 큰 구도를 강화시킴으로써 장기적이고 전폭적인 경제협력을 이끌어내려는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또한 <신화통신>은 김 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중국 공산당의 개혁개방정책은 올바른 선택이었으며, 과학발전 노선이 생명력이 있다고 평가하면서 북한 인민들도 이에 고무되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해 주목된다. 북 통신은 ‘개혁개방’이라는 단어는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다.
원자바오 총리가 지난 22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김정일 위원장을 초청한데 대해 “중국의 발전상황을 이해하고 이를 자신들의 발전에 활용하기 위한 기회를 주기 위한 목적으로 초청한 것”이라고 설명한 점도 이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다른 대북 전문가는 “북한은 한국과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당분간 어렵고, 중국이 G2로 등장한 새로운 조건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하고 “중국의 대규모 경제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중국이 권유하고 있는 개혁.개방을 일정 수준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해 주목된다.
정상회담 북측 배석자, 외교.북핵 전문가 일색
남북관계가 단절돼 있고, 6자회담 재개가 오리무중인 상황에서 이번 북중회담은 한반도 평화와 북핵 문제에 있어서 새로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인지에도 관심이 쏠렸다.
북 통신은 “쌍방은 전조선반도의 비핵화목표를 견지하고 6자회담의 재개 등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추구하며 장애적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이 동북아시아지역의 전반적 이익에 부합된다고 인정하면서 이를 위해 의사소통과 조율을 잘해나가자는데 대해 의견을 같이하였다”고 간단히 전했다.
<신화통신>은 후 주석은 “중국은 북한이 한반도 정세 완화와 외부환경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음을 높이 평가하고 당사국들이 한반도 평화와 안정 그리고 비핵화의 기치를 높이 들고 냉정과 자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융통성을 발휘함으로써 장애 요소를 제거하고 상호관계를 개선하며, 한반도 평화와 안정 그리고 발전에 적극 노력해 줄 것을 당부”했고, 김 위원장은 “북한은 현재 모든 힘을 경제건설 추진에 집중하고 있는 데 이에 안정적인 주변환경이 매우 필요한 바, 우리는 한반도 정세완화를 희망하고 한반도 비핵화 목표를 견지하고, 조속한 시일 내 6자회담 재개를 주장하며,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서도 줄곧 성의를 가져왔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다소의 어감 차이는 있지만 한반도 비핵화와 6자회담 재개, ‘장애 요소’ 제거에 양 정상이 합의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다만 중국측이 “냉정과 자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융통성 발휘”라든지 “안정적인 주변환경이 매우 필요”, “조속한 시일 내 6자회담 재개”,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서도 줄곧 성의를 가져왔다” 등 보다 현실감이 묻어나는 어법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6자회담 (조속한 시일 내) 재개’ 언급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주장하고 중국도 수용한 것으로 알려진 ‘남북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 ->북.미대화 ->6자회담 재개’라는 3단계 방안에 대한 북측의 의중을 파악하긴 역시 힘들다.
북중 정상회담 북측 배석자는 강석주 내각 부총리, 김영일 당 국제담당 비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으로 모두 외교.북핵문제 담당자들이다. 북측 입장에서의 정상회담 주요의제를 외교.북핵 문제로 삼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의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연평도 사과와 선 비핵화 조치를 요구하며 미국의 뒷다리까지 잡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은 중국과 6자회담 공조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시급한 사안이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번 김 위원장 방중 수행단에는 중국통인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나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이 포함되지 않아 남북문제나 군사문제가 북측 입장에서는 중심의제가 아니었음을 간접 확인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영춘 부장의 경우 건강상의 이유를 꼽고 있지만 다른 군부 인사들도 역시 수행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난해 9.28당대표자회 이후 노동당의 기능이 정상화 돼 당 인사들 위주로 수행단이 구성됐다는 분석도 있다. 장성택 당 행정부장이 근접 수행했고, 지난해 9.28당대회 이후 급부상한 문경덕 평양시당 책임비서도 포함됐다.
방중 배경과 결과 모호.. "좀더 지켜 봐야"
전체적으로 이번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과 북중 정상회담은 겉으로만 봐서는 그 배경과 결과가 뚜렷하게 드러나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정부도 27일 통일부 대변인을 통해 “정부는 김정일 위원장의 이번 중국 방문이 향후 남북관계와 북한의 태도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관심 있게 지켜볼 것”이라고 유보적 입장을 내놓았다.
그러나 실제 정부 내부의 시각은 김 위원장이 중국으로부터 대폭적인 경제협력을 이끌어내거나 북핵문제에 대한 진전된 실행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번 방북의 성과가 크지 않다는 평가가 우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적인 대북제재가 가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대규모 대북 경제지원에 나서기는 여의치 않을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는 판단이다.
한 대북 전문가는 “김정은 부위원장이 방북했다는 오보를 낼 정도 수준의 우리 당국의 분석에 무게를 두기는 힘들다”며 “이번 방중 보도에서 드러나고 확인된 것도 있지만 드러나지 않은 중요한 사실들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좀더 지켜보아야 할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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