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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이 산에 도착하다 : 탈출 19,1-2
계약 체결을 약속하시다 : 탈출 19,3-8
지난시간에 18장까지 읽으셨는데요, 모세오경을 전체를 6개로 나누는데
▶ 모세오경의 맥락 1) 1장~6장 / 하느님과 파라오의 갈등
모세오경 전체의 맥락에서 본다면은 첫번째에서 1장부터 6장까지 이스라엘이 이집트로 간 이야기, 가서 그들이 요셉의 시대에는 잘 있었지만 억압받게 되는 이야기, 또 그들이 부르짖자 하느님께서 그들을 기억하는 이야기, 그리고 모세의 탄생이야기 그리고 모세가 미디안까지 갔다가 하느님의 하느님을 다시 만나고 이집트로 다시 돌아와서 파라오를 만나서 '내가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나가겠습니다.' 라고 하니까 파라오가 다시 억압을 가중하는 이야기, 그러면서 조장들이 파라오에게 항의하고 모세에게 불평하는 이야기
따라서 첫번째 파트는 갈등의 여지를 남기고 탈출 1,1-6장까지가 마무리가 됩니다.그리고 두번째 파트로 넘어가서 하느님과 파라오가 대결하는 대목에서,
▶모세오경의 맥락 2) 7장~ 13장 / 하느님과 파라오의 대결: 10가지 재앙
우리가 알고 있는 10가지 재앙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열번째에서 맏배와 맏이를 죽이는 재앙과 함께 이야기가 마무리되는데 마지막 열번째 재앙은 하느님께서 그들을 구해내셨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 이집트를 탈출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 축제와 연결이 되는데
이집트 탈출 기념 축제; ① 파스카 ②무교절 ③맏배와 맏이를 바치는 봉헌
그와 같은 것들에서 예를 들어 파스카 같은 경우에는 유목민들의 전통과 관련이 되어 있을 것이고 무교절 같은 경우에는 농경민들의 전통과 관련이 되어 있을 것이고 맏배와 맏이의 경우에는 첫번째 아들을 낳을 수 있는 여인, 새끼를 밸수 있는 암컷 동물들에 대한 신에게 감사하는 것들이 남아 있었는데 그 모든 것들이 여기에서 한번은 하느님의 역사 안으로 수렴되어 들어오는 그렇게 신학화되는 작용들과 함께 첫번째 탈출의 사건은 축제와 그들의 전통을 통해서 기억되는 틀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이 이집트에서 나오는데 첫번째 단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이
광야로 나옵니다. 지리적으로는 이집트의 영토는 벗어나지만 아직까지 이집트 세력안에 있는, 피라오가 갈대 바다까지 그들을 쫓아오는데 결국 파라오와 야훼의 대결에서 야훼가 이집트의 군대를 모두 몰살시키는 그런 갈대 바다의 사건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사히 그 바다를 건넜다는 이야기들, 그러함에도 아직까지 장소적으로는 이집트에서 나와서 시나이까지는 못갔습니다.
이집트에서 시나이 그 사이에 광야가 있는데
이스라엘의 탈출 여정
이집트 ⇒ 광야 ⇒ 시나이 ⇒ 광야 ⇒ 약속의 땅
중간 중간에 광야가 있는데 그 광야라는 지역에서 마라의 쓴 물, 신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 그리고 르피딤에서 마싸와 므리바, 르피딤에서 아말렉과의 전쟁, 야훼 니씨, 그리고 마지막 18장에서 이트로의 방문과 같은 이야기들을 우리가 읽게 됩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시니,
탈출 15,22-27 모세가 마라에서 쓴물을 단 물로 바꾸다 탈출 16,1-36 만나와 메추라기 탈출 17,1-7 마싸와 므리바의 물 | 탈출17,8-16 아말렉족과 싸워이기다 탈출 18,1-12 이트로가 사위 모세를 찾아오다 탈출 18,13-27이트로의 충고에 따라 재판관들을 세우다 |
왜냐하면 앞선 내용들을 조금들여다 보니까 아말렉족과 전쟁과 이트로와의 만남은 같은 맥락에 비슷한 어휘들이 공존합니다.
1)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왔다 ㅡ 이트로도 이스라엘에게 왔다
그런데 대조되는 것은
2) 아말렉은 싸우러 왔고 / 이트로는 모세에게 안부를 물었다
안부도 샬롬인데 아말렉은 전쟁을 위해서 이트로는 샬롬(평화) 를 위해서
그러면서 이스라엘은 전쟁을 하기위해서 군대들을 뽑습니다.
이트로가 모세에게 왔을때도 모세가 누군가를 뽑습니다. 작은일들을 재판할 사람들을 뽑기 위해서,
아말렉과 전쟁을 할때도 모세의 손이(탈출 17,12) 해가 질때까지 쳐지지 않았다. 양쪽에서 아론과 후르가 모세의 팔을 잡아줘서
이트로의 이야기에서 (탈출 18,13)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가 재판을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백성들이 서 있었다.
아말렉과의 이야기에도 똑같은 동사인데 탈출17,12 모세의 손이 무거워지자,
이트로의 이야기 안에서도 탈출 18,18 "이 일은 자네에게 너무나 힘겨워"
둘다 같은 동사입니다. 무거웠다,힘겨웠다.
그리고 마지막 탈출 17,16에서 전체적으로 마무리가 되면서 모세가 이렇게 얘기합니다.
"손 하나가 주님의 어좌를 거슬러 들리리니, 주님과 아말렉 사이에 대대로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반대로 이트로의 대목에서는 탈출 18,23
"자네가 이렇게 일을 하고, 하느님께서도 그렇게 명령하시면,
자네도 버티어 나갈 수 있고, 이 백성도 평화롭게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네."
따라서 비슷한 어휘를 얘기하면서 전쟁으로부터 평화로,
탈출 17,8-16 이스라엘과 다른 민족 간의 갈등
탈출 18,13-27 이스라엘의 내적 갈등의
문제를 모세가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 지금이 우리나라를 보더라도 국가의 정치가들이 해야할 일들이 두가지가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관계를 통해서 어떻게 하면 이 나라의 평화를 유지하는가? 그리고 우리나라가 내적으로 잘 통치돼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3번째까지 왔으니까 지금 우리는 탈출기의 반을 읽은 셈입니다.
그리고 오늘 네번째 파트
▶모세오경의 맥락 4) 시나이 계약의 체결
탈출 19,1-24,11 /탈출기 중심이자 구약 성경의 전체 성격을 가늠함
구약이라고 하는 것은 시나이 계약을 중심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나이 계약이 어떻게 맺어지는 가를 이제부터 보게됩니다.
그 첫번째는 시나이 산에 도착하는 장면인데,
탈출 19,1 직역
셋째 달에 이스라엘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그날에 그들은 시나이 광야로 왔다.
여기서 셋째달이라는 것은 정확히 얘기하면 세번째로 새로운 달이 떴을 때를 의미합니다. 그러면 첫째달에는 파스카가 있었습니다.
둘째달에는 만나와 메추라기 사건이 있었습니다.
탈출16,1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는 엘림을 떠나, 엘림과 시나이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렀다. 그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뒤, 둘째 달 보름이 되는 날이었다.
▶ 따라서 첫째달 보름에는 이집트에서 탈출하고 둘째달 보름에는 만나와 메추라기 사건.
그리고 이제 셋째달인데, 셋째달 보름이라고 생각하면 딱 한달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셋째달 이라는 표현만 보면 세번째 달이 떳을 때, 셋째달 초하루니까 앞서 만나와 메추라기 사건이 있은 후 2주일 정도가 지나고, 라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나오는 단어가 문제가 됩니다.
탈출 19,1 에서 그들은 그날에 시나이 광야로 왔다.에서 그날에
에서 15일을 얘기하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면서 주석가들의 의견이 둘로 나뉩니다.
셋째달 (주석학자들의 해석) ① 셋째달 첫날을 의미하는 것 ② 셋째달 15일을 의미하는 것
신부님은 이것을 싸울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시고, 첫날이 됐든 15일이 됐든 19장을 쭉 읽어보시니 큰 문제가 없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초승달이건 보름달이건 큰 문제가 없고, 우리식의 생각으로 생각한다면 이스라엘에서 첫째달은 춘분이 낀달(3월정도)이고, 4월 정도에 만나와 메추라기 사건이 있었을 테고, 이제 5월이 되면서 시나이 계약이 맺어지고 그정도의 시간적인 관념을 가지면 되겠습니다.
탈출 19,2 직역
그리고 그들은 떠났다.
르피딤으로부터
앞선 18장의 내용과는 충돌이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17장까지의 내용은 르피딤이었는데 (아말렉과의 전쟁을 한 곳은), 18장에서 하느님의 산이야기가 나오고 (하느님의 산이라서 시나이 산으로 추측)
그렇다면 하느님의 산에 있다가 르피딤으로 돌아간 것인가? 혼란함이 그 안에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진행경로를 보자면
갈대 바다 ⇒ 르피딤 ⇒ 그 다음에 시나이산
시나이 광야와 시나이 산을 잘 보아야 합니다. 같은 지역에서 시나이 광야와 시나이 산이 있음. 이 부분이 중요한 이 이유는? 광야에서 산으로 넘어가는 그 경계가 있는데 그 경계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절대로 광야에 있고 산으로 넘어오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전에 오재미 놀이할 때 처럼 금 밟으면 죽는다, 이런 개념입니다.
여기서 얘기하는 건, 시나이 광야
탈출 19,2 직역
그리고 그들은 진을 쳤다. 그 광야에
그리고 거기에 진을 쳤다. 이스라엘 그 산 앞에
이 부분에 얘기하는 것은 시나이 광야에 왔다. 그리고 광야에 진을 쳤다. 진을 쳤고 광야인데 그 산 앞에 있는 장소까지 왔다. 목적지를 코 앞에 둔겁니다.
탈출 19,3 직역
그리고 모세는 올라갔다. 엘로힘에게
그리고 그를 향해 야훼늘 불렀다
산으로부터 다음과 같이 말하며
"이렇게 전하여라. 야곱의 집안에
그리고 전하여라.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중복됩니다. 엘로힘과 야훼로
탈출 19,3 직역
"이렇게 전하여라. 야곱의 집안에
그리고 전하여라.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엘로힘, 야훼, 야곱의 집안, 이스라엘 자손, 계속해서 비슷한 개념과 이름들이 중복되서 사용되었다는 것을 3절에서 볼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논리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이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탈출 19,3
그를 향해 야훼는 불렀다.
그리하여 모세는 엘로힘에게 올라갔다.
순서가 바꿔진것으로 모세가 사실은 올라가면 안되는 겁니다. 그런데 모세가 올라가고 있는데 올라가는 중에 야훼가 그를 부르는 조금은 논리적으로 보면 3절의 첫째줄과 두번째 줄이 바꼈으면 좋았을 텐데.
이해하기가 더 편했을 텐데, 아무튼 모세가 올라가니까 야훼가 그를 황급하게 부르는 그런식의 이야기의 흐름이 조금 부자연스럽게 여기에서 발견됩니다.
아무튼 그가 이스라엘 집안에 전해야할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탈출 19,4 직역
"(참으로!) 너희는 보았다."
⇒ 이스라엘 문장은 주어를 사용하지 않음, 동사 자체가 1인칭인지 3인칭인지 구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어를 일부로 쓴다면은 그것은 강조하는 의미입니다.
내가 미츠라임(이집트)에게 한것을
내가 너희를 독수리들의 날개들 위에 실은 것을
내가 너희를 나에게 오게 한 것을'
따라서 그들이 본것은 세가지 내용입니다.
▶ 이스라엘의 체험
① 내가 이집트에서 한 것을⇒ 10가지 재앙
② 내가 너희를 독수리들이 날개들 위에 실은것을⇒ 뭔지 모르겠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몇번에 걸쳐서 야훼 하느님에 대한 은유로서 독수리가 등장하는 경우는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등장하는 것은 독수리 단수가 아니라 분명히 독수리들입니다. 뭔가 당신의 천사들을 보내서? 이스라엘 백성을 옮겨왔다는 표현인가?
반지의 제왕에서 새들이 나타나서 사람들 구해주는 모습인가?
그리고 여기까지 이스라엘이 오는 동안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순조로운 것처럼 표현되었습니다. 독수리들 날개 타고 오는 것처럼 어감이 실려있습니다.
③ 내가 너희를 나에게 오게 한 것을 ⇒ 나에게 왔다는 것은 시나이산(야훼의 거처)에 옴
지금까지 야훼는 자신의 거처를 떠나서 자신의 천사들을 보내서 이집트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기에게 까지 오게 한 그와 같은 그림입니다.
내가 너희를 독수리들의 날개들 위에 실은 것을
⇒라고 표현한 것을 이스라엘의 여정을 낭만적으로 묘사함(갈대 바다를 건너는 사건 혹은 그 이후의 사건들을)으로 볼수 있는데 실제로 비슷한 표현들이 신명기에 문학적인 표현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광야에서 있었던 사건들을 신명기 저자들은 긍정적으로 묘사할 때가 있습니다. '야, 우리가 그때 참 고생 많이했지?' 가 아니라 '이스라엘아 들어라! 광야에서 우리가 얼마나 복된 날들을 보냈느냐?" 그 광야에 있을 때 우리는 목마른 적도 없었고 배고픈 적도 없었고 그리고 알고 있는 텍스트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우리가 광야에 있을 때 우리의 옷이나 신발이 해진 적이 없었다. 이런식의 표현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들 안에서도 일어나는 그와 같은 일들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참 힘든 시간이었는데 그 힘든 시간을 넘어갔을 때 아주 기쁜, 예를들어 운동경기를 했을 때도 이기기 쉬운 팀이랑 했을 때는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말 우리가 이길수 있을까? 했던 팀들이랑 시합해서 이긴 것은 기억에 남습니다.
반대로 너무 쉬운 상대에게 진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신부님이 이태리에서 1990년도에 로마에서 공부하실 때 숱한 이태리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중에서 60년대에 월드컵에서 이태리가 북한에게 진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북한 선수였던 이가 한 골을 넣는데 이태리 사람들중에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그 북한 선수의 이름을 기억하는 겁니다. 박두희? 인가?
그 다음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또 이겼고 그 다음해에 이태리에 가셨는데 한국사람이냐고 물으면서 싫어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이냐고 물으시면 아시아 사람이라고 하셨다고 ^^
그 광야의 사건이 쉽지 안았던 기억인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때 하느님을 만났고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셨다고 기억할 겁니다.
신부님도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었을 때가 친구들과 고3때 짬을 내서 2시간 씩 놀았던 기억들과 그때의 친구들을 만나면은 그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신다고 합니다.
5절 계약 체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단계입니다.
이스라엘은 야훼가 한 것을 보았으니 이제는 야훼가 누군이지 아는 겁니다. 본다, 안다의 단어가 중복되었고, 야훼가 누군인지 알았으니까 그와 계약을 맺을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세월호 사건을 겪은 우리가 놀란 것은 뭡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적어도 이렇다고 생각했는데 생경하게 느껴지는 겁니다. 우리가 이렇게 야만의 삶을 살고 있었나?? 우리가 이토록 부폐한 삶을 살고 있었나? 우리가 적어도 우리 다음 세대 만큼은 지켜주는 세상을 만들었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렇지도 못했던 건가? 그러한 생소함 앞에서 우리들이 굉장히 많이 놀라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단지 개인과 개인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우리와 사회, 우리와 세상과의 문제 안에서도, 하지만 여기서 그들은 이제 야훼가 누구인지 체험했고 알게 되었고 계약을 맺을 준비가 된겁니다.
그리고 나서 야훼가 그들에게 조건을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이 부분이 히브리말 문법적으로 굉장히 애매합니다.
여러가지 번역의 가능성이 있는데 몇가지 추려서,
1) 조건절과 주절이 나오는데 조건절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습니다.일단 첫번째는 조건절이 분명합니다.
탈출 19,5 직역
'이제 너희가 나의 목소리에
참으로 귀 기울이고
나의 계약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소유가 될 것이다.'
다시한번 '참으로' 가 나오는데 동사의 문법적인 형태도 귀기울인다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4절~6절까지 계속 참으로가 등장합니다.
반면에 여기까지도 조건절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5절과 6절을 한문장으로 엮으면은,
탈출 19,5-6 직역
'이제 너희가 나의 목소리에
참으로 귀 기울이고
나의 계약을 지키고 그리하여
너희가 나의 소유가 된다면
너희는 나에게 사제들의 왕국과
거룩한 나라가 될 것이다.'
▶ 신부님은 여기서 전체적인 계약 체결과 관계가 되기 때문에
'너희가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나에 계약을 지키면 너희가 나에게 소유가 될 것이다.' 너희가 내 소유가 될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 조금더 계약 체결의 문맥에 맞지 않나? 라고 생각하는 것이 신부님의 입장입니다.
그리고 나서
탈출 19,5 직역
모든 민족들로부터
⇒ 세상의 많은 민족 중에서
특별히 하느님의 소유가 됨
그러면 다른 민족들은 하느님의 소유입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다신적인 신관에 의하면 다른 민족은 다른 신의 소유고 너희는 내 소유야. 라고 생각하겠지만 유일신적인 신관에서 생각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민족중에 하느님이 창조하지 않은 민족은 없습니다. 다 하느님이 소유인데 '너희는 특별히 내 소유가 될 것이다.'라고 이야기 할 수있기 때문에 다신적인 신관으로 보느냐? 유일신적인 신관으로 보느냐?에 관해서 이 문장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그래서인지 여기서 한 짧은 문장이 겹쳐지는데, 왜냐하면 온 땅이 나에게 있기에 ㅡ 문법적으로 보면 이렇게 해석해야 되지만 실질적인 의미를 신부님의 생각은?
탈출 19,5 직역
'온 땅이 나에게 있다고 할지라도'
⇒ 양보의 의미 가 있다고 생각하십니다.
즉 온 땅,온 소유의 민족이 나의 소유이지만, 너희가 특별히 나의 소유가 될 것이다.
라는 뜻으로 이 문장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런데 그런 뜻에 부합하게 실제로 히브리식 표현 중에서 종에게 '너는 나의 소유이다.' 라는 이야기를 할 때, 그때 어떤일이 벌어지냐면 그 종에게 신분상승이 일어납니다. 여기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내 종일 때 특별히 '너는 내 소유야.' 라고 주인이 얘기할 때 그 종은 다른 종들의 관리하는 종이 됩니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6절에서 더 밝혀 집니다.
탈출 19,6 직역
참으로 너희는 나에게 사제들의 왕국과
거룩한 나라가 될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사제들의 왕국, 거룩한 나라라는 이 표현이 구약 성경에서 여기에서만 등장합니다.
자주 나왔으면 도대체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다른 문맥에서도 도움을 받아서 한꺼번에 도움을 받았을 텐데, 여기만 등장합니다.
▶ 사제들의 왕국, 거룩한 나라,?( 주석학자들의 해석)
여기에 대한 주석가들의 의견은?
① 신앙적 신학적으로 이해해 보자. 그들이 경건한 그와 같은 민족으로서 경건한 나라를 꾸밀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종교적인 국가를 건설
② 이것은 조금더 사회적 정치적으로 알아 듣자. 사제들의 왕국, 거룩한 나라 라는 것은 신정국가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냐? 즉 임금이 통치하는 나라가 아니라 사제들이 통치하는 나라 그리고 이것은 실제로 유배를 가 있던 제관계들의 이상이었습니다. 유배후 신정국가에서 잘 살았을까요? 잘 안됐습니다. 이스라엘은 굉장히 절망하게 됩니다.
우리도 역시 민주주의 라는 이상을 지킨다면 모든 국민들이 성숙해져서 그 상황에서 성숙한 국민들, 성숙한 통치체제가 되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닐까? 라는 그런 생각들을 함께 꿈꿀수 있는 것 같습니다.
신부님께서도 신학생 때부터 세상뿐만 아니라 교회도 민주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셨고, 그래서 본당 신부를 하면 민주화를 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셨습니다. 본당신부를 하면서 본당 신부가 가졌던 권력들을 많이 신자들에게 나누어 줬는데 결과가 신부님이 생각했던 결과와 달랐습니다.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권력을 나눠주면 이상한 사람들이 권력을 갖게 된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돈을 통해 이웃을 도울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것이 돈이 됐건 권력이 됐건 무엇이 됐건,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가 성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안에 신앙이 성장하고 그런것들이 성장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교회의 정신, 복음의 빛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그 상황에서 그런 교회의 민주화가 이루어 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셨다고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제들의 왕국, 거룩하 나라, 라는 것은 사제들이 다스릴 수도 있다.는 생각과 함께 모세 오경에서의 제관계 문헌의 정치적 이상이기도 했다. 라는 정도로 두번째 이론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번째가 중요합니다. 신부님도 이 의견에 따르기 때문에,
③ 이세상에 많은 나라들이 있는데 그 중에 이스라엘이 사제들의 왕국역할을 하게됨, 이집트에서도 하느님께서 맏배를 치시면서 이스라엘은 나의 맏아들인데 파라오가 나의 맏아들을 억압했기 때문에 나는 이 맏배들을 친다. 라는 신학적인 논리를 얘기합니다.
따라서 그 논리대로라면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맏아들이고, 다른 모든 민족들은 하느님의 다른 아들들입니다. 그리고 고대 사회에서 장자가 왜 중요하냐면? 가족 단위의 작은 공동체에서는 장자가 사제의 역할을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장자가 제사를 모십니다. 같은 원리입니다. 따라서 맏아들이 사제의 역할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장자로서 사제들의 국가와 거룩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알아들을 수가 있겠습니다.
단 조건은?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 지킨다면 너희는 나에게 특별한 소유가 될 것이고 너희들은 나에게 이런 사제들의 왕국이 될 것이다. 라는 뜻으로 이 구절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탈출 19,6-7 직역
'이것들이 말씀들이다
네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씀할'
그리고 모세는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백성의 원로들을 향해 불렀다.
그리고 그는 두었다. 그들의 면전에
이 모든 말씀을 야훼가 그에게 명령한
따라서 앞선 이트로와의 만남이 있었기때문에 모세가 백성들을 다 모아놓고 (탈출기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수 60만명) 원로들에게 얘기하고 원로들이 백성들에게 얘기하는, 그러자 그들이 지파들이 전하는 각각의 목소리를 듣고나서 함께 대답합니다(한 목소리로 대답).
탈출 19,8 직역
'야훼가 말씀한 모든 것을
우리는 행할 것입니다."
계약에 '예' 라고 응답한 것입니다. 계약이 이제는 체결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계약이 한번만 구두 계약은 법적으로 유효하지 않는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보게 되겠지만 백성의 응답이 세번 등장합니다.
백성의 응답
19,8
YHWH 가 말씀한 모든 것을 우리는 행할 것입니다.
24,3
YHWH 가 말씀한 모든 것을 우리는 행할 것입니다.
24,7
YHWH 가 말씀한 모든 것을 우리는 행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귀기울일 것입니다.
세번 얘기 했으니까 이제는 법적으로 그 계약이 묶이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장황한데 반해 이스라엘의 대답은 짧습니다. 짧아서 더 강한 어조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화려하게 기도하지 마라.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해라. 그걸로 충분하다.
사실 이 계약을 위해서 이 대답을 위해서 하느님은 백성을 시험해 왔습니다. 정말 그들이 이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에 따라 잘 살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백성들은 야훼가 정말로 이런 계약과 함께 우리를 지켜주고 보호해 주고 우리가 배고플때 먹여주고 우리가 목마를 때 마시게 해 줄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가진 신인가? 를 시험하는 야훼에 대한 어떤 시험의 단계도 우리는 앞에서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탈출 19,8A 로 19장의 첫번째 단락이 마무리 됩니다.
두번째 단락인 8B
탈출 19,8B
그리고 모세는 돌아갑니다.
"이 백성들의 응답과 함께 야훼에게"
▶문학적 구조가
① 모세가 하느님께 올라감 ② 모세가 하느님께 말씀을 들음 ③ 모세가 백성들에게 내려옴 ④ 모세가 백성에 말함
감사합니다💓🙏
첫댓글 아멘~!! 고맙습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