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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지구촌 온난화로 이 땅에 겨울답지 않는 겨울이 이어졌다. 포근한 날씨로 대기 중 미세먼지 농도가 커지고, 패딩과 같은 방한복이 잘 팔리지 않는다는 뉴스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올겨울은 유난히 추위가 맹위를 떨치며, 눈이 많이 내린 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한반도 기후의 특징으로 우리가 배웠던 삼한사온은, 지구온난화의 가속화와 함께 실종된 지 오래다. 겨울철, 신의 축복인양 하늘에서 풀풀 내리는 눈은, 대도시에서 이내 녹아버리고 질컥거린다. 공원을 한가로이 산책하는 연인들에겐 눈이 하늘의 축복이겠지만, 다수의 서민들에겐 애물단지가 된다. 눈은 거대한 도시의 빌딩과 도로에 내려 쌓이며, 소통을 방해해서 인간의 사랑은 커녕 불편함과 스트레스만을 선사한다. 오늘은 절기상 입춘이지만, 여전히 동장군이 기승을 부린다. 근대기 이후, 우리 사회는 서양력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농사나 생활 속에서 음력을 중시하는 문화이다. 일년 365일의 카렌다에는 양력과 함께 어김없이 음력이 표시되고 있다. 음력은 오랜 농경사회의 산물이다. 중국의 양자강(장강)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종종 실제 우리의 날씨와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삭막한 도시에 살면서, 이따금 삶이 허전해질 때면 동화의 세계처럼 흰눈이 덮인 겨울산을 떠올리곤 했다. 단풍이 한창이던 지난 가을 산행한 후, 미루던 겨울산행을 단행하였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백두대간의 태백산(1567m)은 이제껏 여러 번 산행해서 내게 친근한 산이다. 태백산은 풍수지리상 기가 유난히 세다는 산이다. 덕유산, 선자령, 오대산, 소백산, 계방산과 함께 우리나라 한겨울 눈꽃산행을 대표한다. 그간 도립공원이었다가 2년 전에 국립공원으로 승격하었다. 파노라마처럼 굽이지는 거대한 산능선을 보며, 속세의 스트레스를 한껏 날려버렸던 하루였다. 하루 전엔 새벽에 눈이 내려 쌓여서, 어제는 멋진 설경을 연출했다지만, 유난히 파란 하늘이 돋보인 오늘은, 흰눈이 많이 사라져버려서 조금은 아쉬웠던 산행이었다. 태백산은 여러 산행 코스가 있지만, 화방재를 지나 유일사쪽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매표소의 고도가 900m로 정상까지는 약 4.0km로 길지 않다.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코스이다. 해발 1000m 이상 고지대에 서식하는 주목 군락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시원스레 쭉 뻗은 낙엽송 숲길이 완만하게 이어지다가 유일사 쉼터에 도달하였다. 북쪽으로 태백산보다 조금 더 높은 함백산(1572m)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이 산의 정상에는 KBS태백송신소가 있고, 정상 아래까지 도로가 개설되어 있어 차로 쉽게 오를 수 있다. 유일사 쉼터를 지나 산행을 이어간 지 얼마 후부터 숲속에 주목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가지에도 눈덮인 겨울풍경을 연상했는데, 땅위에만 눈이 쌓여 있다. 허허로운 활엽수 사이에서 상록수인 금강소나무, 전나무, 주목들은 푸르름을 자랑하며 눈길을 끈다. 태백산에는 세 개의 제단이 있고, 이를 통틀어 천제단이라 한다. 가장 북쪽에 있는 장군봉의 장군단, 영봉의 천왕단과 서편의 부쇠봉을 가는 길목에 있는 하단이 그것이다. 매년 개천절에 천왕단에서 천제가 열린다고 한다. 산의 최정상인 장군봉을 지나 서쪽으로 10여 분을 가면 영봉 천제단(중요 민속자료 제228호)이 있다. 천원지방(天圓地方) 구조로, 위는 원형이고 하부는 사각형이며 자연석으로 쌓았다. 먼 삼국시대부터 선조들이 하늘에 제사지내며 복을 기원한 천제단 주변은 신령스러운 기운이 감돈다. 이 곳에 전국의 샤먼(shaman)들이 끊임없이 찾아와 신령에게 제례를 지낸다고 한다. 그 천제단에서 멀지 않은 서편 산록에는, 지난 1980년대 초 전두환 정권 시절, 조성된 미공군사격훈련장이 상채기처럼 보인다. 숲을 훼손하고 비행장 활주로처럼 조성한 사격장의 규모는 실로 엄청난 크기이다. 한국의 국립공원 내에 "군사격장"이라니! 도대체 이 무슨 아이러니(irony)인가? 군사구역임으로 출입을 금지한다는 경고 표지판 - 천제단 능선 조금 아래편에 서 있는 - 을 보고, 새삼 조국 분단의 비극과 아픔을 온몸으로 느낀다. 태백산이 자랑하는 주목 군락... 천연기념물인 주목은, 흔히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을 간다는 하지 않던가... 정상의 주목 군락지에서 멋진 사진을 몇 장 찍겠다고 베냥속에 넣어 가지고 간 DSLR카메라. 사진을 찍으려고 꺼내 보니, 앗뿔사! 독일제 필터가 바싹 깨져버렸다. 얼마나 아쉽고 마음이 아팠는지... 간밤에 산행준비를 하면서, 카메라에 가해지는 충격을 막으려고 타올과 면천으로 여러 겹 싸고 베냥 속에 넣었다. 산행 시 카메라 가방은 무겁고 장애물이 되기 때문에 일부러 피했던 게 화근이었다. 오늘 산행하면서 다른 것과 부딪힌 기억도 없는데, 어찌된 영문일까? 할 수 없이 새로 산 스마트폰((삼성 노트8)으로 찍었다. 이 글에 첨부한 이미지들은 모두 스마트폰 사진이다. 겨울철의 1500m대 고산지대인데도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지 않아서인지 생각보다는 춥지 않다. 그렇지만 체감온도는 영하 20℃전후로 느껴졌다. 천제단 주변에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몇 장을 찍자, 이내 버튼이 작동되지 않았으며 내 손은 얼어붙었다. 아마 차가운 날씨탓으로 전자시스템인 스마트폰이 마비되었나 보다. 거위털 파카 깊숙이 넣어두었다가 하산해 당골에서 꺼내니 다시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정성들여 돌로 축조한 천제단을 찾은 후, 한동안 끝없이 사방으로 이어진 백두대간의 능선을 조망하였다. 태백산이 길손에게 주는 무상의 선물이다. 바라보는 마음은 더없이 상쾌하고 가볍다. 가슴 벅찬 이 순간을 행복이라는 한 단어로 치환할 수 있을까. 순간은 아주 짧은 시간이므로 더욱 값지다. 저 멀리 서남쪽 능선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문수봉으로, 천제단에서 3.0km 거리이다. 하산길은 남쪽의 가파른 길로 단종비각을 거쳐 망경사를 찾았다. 망경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찰로서, 특히 연말연시 해돋이를 보러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다. 하늘에 제례를 지낼 때 사용하는 물이자, 등산객들의 목을 시원하게 적셔주던 용정수는 꽁꽁 얼어붙어 있다.
언젠가 태백산을 찾았을 때, 하룻밤을 편안하게 잤던 추억이 있는 망경사가 서서히 시야에서 멀어져 간다. 저 멀리 솟아있는 문수봉을 거쳐 당골로 빠지면 조망이 아주 좋다. 하지만 시간을 많이 지체했기 때문에 반재 삼거리를 거쳐 당골로 하산하였다. 이 곳에는 단군성전과 석탄박물관, 눈썰매장이 있다. 당골광장(해발 870m)에서는 25회째 "태백산눈축제"가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삿뽀로 눈축제장처럼 얼음조각상 사이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보이며, 여러 행사가 펼쳐지고 있었다. 마침 눈축제 마당 입구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다. 경찰이 길 양편에 도열해 있는 가운데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봉송 주자가 멋진 유니폼을 입고 출발 직전에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막연히 뉴스로만 접했던 올림픽의 열기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지난 10월 올림픽 발상지 그리스에서 채화한 성화가 11월 1일 한국의 인천에 도착 후, 전국을 돌아서 이 곳에 왔구나. 다시 삼척, 강릉을 거쳐 평창까지 이어 가리라. 화합과 평화를 기원하는 글로벌 축제인 평창 동계올림픽은, 2월 9일부터 25일까지 열린다. 15종목에 92개국이 참가한다.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열리는 평창 동계올림픽에는, 그동안 교류가 단절되었던 북한이 참가한다. 한 민족으로서 한반도 깃발 아래 남북한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이 경기를 치루며, 북한예술단 공연과 태권도시범단, 응원단이 참여한다. 지난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 이후 금강산관광이 중단되었고, 남북간 대화는 단절되었다. 2010년 3월과 11월의 천안함 침몰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이 일어났으며, 개성공단 철수, 연이은 핵실험 강행과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에 전쟁위기감이 고조되었다. 작년 12월 유엔 안보리가 새 대북제재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면서, 미국 주도로 북한을 향한 제재와 압력이 한층 강화되고 있다. 최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향한 "화염과 분노"라는 위협적 발언과 함께 선제적 공격 소리도 들려온다. 자칫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할 경우, 휴전선과 가까운 서울은 불바다가 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갈 것이다. 그것은 상상만 해도 소름끼치고 끔찍한 일이다. 남북 군사분계선이 지나는 판문점에서 서울까지는 48km에 불과하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로 한반도에 새로운 대화국면이 조성되고 해빙의 변화가 일어날 지 자못 궁금하다. 우리 사회에 남북대화와 통일을 결코 원치 않는 일부 보수세력의 반발도 보인다. 동계올림픽 개최를 보며 정치와 이념을 초월하는 순수한 스포츠 정신이야말로 진정한 평화의 전도사임을 느꼈다. 태백의 성화봉송 장면을 응시하면서, 나는 마음 속으로 간절히 염원하였다. 부디 성공적인 동계올림픽 개최 속에 화합의 장으로 얼어붙은 남북관계가 개선되기를 빈다. 이제 제2의 6.15 시대와 함께 남북 이산가족 상봉과 한반도 비핵화가 실현되며 평화가 정착되기를 기원한다. 나아가 지난 날 찾았던 북녘 금강산을 다시 볼 수 있기를.... |
첫댓글 깨지고 부서지고 가슴을 치면서
배우는 것 같아요.
국어 선생님이라 역시 문장이 사진과 거의
맘 먹는 비중을 차지하네요.
샘! 오로라여행 시진을 보면서 마치 저도 동참한 듯., 좋았습니다.
감사^*^
열정으로 똘똘 뭉진 작가정신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