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제 1204편
* 불교(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祖師))
오도송(悟道頌) 및
선시(禪詩)
오도송(悟道頌)이란 무엇인가 ?
불교(佛敎)를
공부(功夫)하는
수행자(修行者)가
자신의 깨달음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가운데(中) 하나를
오도송(悟道頌)
이라고 한다.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게송(偈頌)의 하나로써
구체적으로
비교해서 설명하면
고승(高僧)이
자신만의 깨달음(覺)을
노래(歌, 句)한 것이
바로
오도송(悟道頌)이며
고승(高僧)이
자신의 임종(臨終) 전에
남겨놓고 가는 노래(歌, 句)를
열반송(涅槃訟)이라고
한다.
게송(偈頌)이란
불교의 가르침(敎義)을
함축(含縮 집약)하여
표현(表現)하는
운문체(韻文體)의
짧은 시구(詩句 문자)를
말하는데
곧 선시(禪詩) 내지
또는 선어(禪語 문장)를
이르는 말이다.
본래(本來)
게(偈)와 송(頌)은
같은 의미로
《게(偈)》
라는 글자(字)는
산스크리트어(梵語)
《가타(gatha)》의
음을 빌려와(音借) 따서
만든 말이고
《송(頌)》
이라는 글자(字)는
《가타(gatha)》를
한문(漢文)으로 번역한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깨달음(正等覺)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게송(偈頌)
즉,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오랫동안
수련과정(修練過程)을
통해 함축된 의미로
세속(사바세계)의
사람(大衆)들에게
무엇인가를 전(傳)하고
말(說法 이야기)하고저
하는 것이며
후세(후학)들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역사적(歷史的)
문헌 기록상(文獻記錄上)
오도송(悟道頌)을
가장 먼저 남긴 이(僧侶)는
조동종을 일으킨
동산 양개(洞山良价,
807∼869) 선사(禪師)
이다.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구분이 부질없는 일임에야
사람들은
태어남을 기뻐하고
헤어짐은 슬퍼한다.
오랜 세월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선사(禪師) 스님들의
깨달음의 길(佛道行)이
매우 힘들고 어려우며
지난(至難)하듯이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남겨진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깨달음의 노래는
다시 한번
자신(수행자)의 삶(人生)을
돌이켜보게 하고
느슨해졌던 마음을
추스리게 한다.
여기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을
올려놓으니
행간(行間)의
곳곳(處處)에 숨겨져 있는
깊고 깊은 심오(深奧)한 뜻을
함께 발견(發見)하고
공부(功夫)하며
오늘을 사는
지혜(반야 보리 광명 智慧)를
찾아보시기 바램해 본다.
본론(本論)
불교(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 祖師)
선시(禪詩)와
임종게(臨終偈) 및
오도송(悟道頌) 설해(說解)
"
그대가 고향에서
왔다하니(君自故鄕來)
왕유(詩佛, 王維) 선사
군자고향래 君自故鄕來
응지고향사 應知故鄕事
래일기창전 來日綺窓前
한매착화미 寒梅着花未
그대가 고향에서 왔다니
응당 고향의 일을 알겠군요.
오던 날 우리 집 비단 창가에
매화 꽃 핀 것을 보았는지요 ?
"
위(上記)의
시(詩, 게송, 禪詩)는
시불(詩佛,
시를 짓는 부처님)이라고
불리웠던
왕유(王維, 701~761)의
작품(作品)이다
이 시(詩文)를
천천히 음미(吟味)하고
읽어가다가 보면
봄 햇살 같은
온화(溫和)함 속에
고향(故鄕)의 따사로움이
느껴진다.
고향을 떠나
멀리 먼 곳 타관 객지에서
살던 사람이
어느 날
그리운 고향에서 온 사람을
우연히 만났다.
고향 소식이
많이도 궁금하여
이 것 저 것 물어 볼 것도
많았으리라.
그러나
이 시(詩, 게송, 禪詩)에서는
자기가 살던
고향(故鄕)의 집(宅)
비단 커튼을
쳐 놓은 창가에서 있던
매화(梅花) 나무 가지에
꽃이 피었던가 ? 하고
묻기만 했다.
사실
이 것이 고향(故鄕)에 대한
모든 것을 전부 다 담아서
물어 본 것이다.
선가(禪家)에서
수도자(修道者 수행자)들은
고향(故鄕)의 의미를
깨달음의 세계로 전향시킨다.
깨달음의
경계에 들어선 것을
고향 길을 밟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람에게는
3가지 고향이 있다.
보통
우리가 태어난 마을을
고향(故鄕)이라고 한다.
“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
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고향의 그리움은
내가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살던 곳으로 향한다.
이러한
고향(故鄕)은
부모(父母)가 있었기에
정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부모》를
《고향(故鄕)》이라 한다.
또 하나의 고향이 있다.
이 것은
시간과 공간(時空)을
초월해 있는 자기 자신의
마음자리이다.
문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영혼의 고향(靈魂鄕)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佛)의 세계가 우리에게
바로 영혼의 고향인
것이다.
※
왕유(王維, 699~759)는
당(唐) 나라
전성기(全盛期)의
대시인(문장가, 詩人)이요
그림을 그리는
이름(명망)있는 화가(畵家)였던
사람(人物)이다.
이백(李白,
이태백, 701~762,
당나라 시대 시인(大詩人)
자(字)는 태백(太白)
호(號)는 청련거사(靑蓮居士)
도연명(陶渊明,
365~427, 중국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詩人)의
한 사람으로
은둔자(隱遁者)
전원시인(田園詩人)의
최고로 꼽히는 인물))
등(etc)에게
많은 영향을 받고
소동파(蘇東坡,
본명 소식(蘇軾) 1037~1101,
중국 북송 시대
시인(大詩人)이자 문장가
학자(學者), 정치가로
자(字)는 자첨(子瞻)
호(號)는 동파거사(東坡居士)
송시(宋詩)의
성격을 확립하는 데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한
시인(大詩人)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문장가(大文章家)였고
중국(中國)
문학사(文學史)에서
처음으로
호방사(豪放詞)를 개척한
호방파를 대표하는 인물(人物)
등(etc)에게 많은 영향을 줌))
그리고
두보(杜甫, 712~ 770,
당나라 중기 관리이자
문인(文人)으로
중국 역사상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받는
위대한 시인(大詩人))와
더불어
당시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인물(人物)로
불교(佛敎)에
깊이 심취(深聚)하여
많은 시(詩, 게송, 禪詩)를
썼기 때문에
시불(詩佛,
시를 짓는 부처님)이라고
사람(사바대중)들에게
불려지기도 했다.
또한
자연시(自然親和的 詩)의
제1인자로 손 꼽혔으며
그(왕유(王維)의
시(詩, 게송, 禪詩)를 좋아했던
대종(唐, 代宗)으로 부터
천하(天下)의
문종(文宗, 시문(詩文)을
열고닫는 시초를 연 사람))
이라는 격찬(覡讚)을
받기도 했다.
그림(畵)에도
재주(재능)가 매우 뛰어나
장안의
절(寺刹, 승가람마, 사찰)
자은사(慈恩寺)에 그린
벽화(壁畵)
백묘화(白描畵,
흰 고양이 그림)와
금벽청록(金碧靑綠)의
풍경을 그린 산수화(山水畵)가
절찬(節讚, 절대적 찬사)을
받기도 하였다.
벼슬(관직)이
상서우승(尙書右丞)이었을 때
세상과 운명(運命)을 달리하고
사망(死亡)하였으므로
왕우승(王右丞)
이라고도 불리우며
저서(著書)로는
《왕우승문집(王右丞文集)》
10권(10券)이 남아 있다.
당시의
고승(高僧大德, 祖師)들과
교유(交流)가 넓었으며
특히
중국 선종(禪宗)
육조 혜능(第 6代 祖師 慧能)의
제자(弟子)이며
육조혜능(六祖慧能)의
설법(說法)을 책(冊)으로 엮어
편찬(編撰)한
[육조단경(祖壇經)] 저자(著者)
하택신회(荷澤神會,
685~760) 선사(禪師)를
의지(依支)해서
참선(명상, 參禪,
修行修行)을 하기도 했다.
불교(佛敎)
경전(經典)에도 해박(解博)한
지식(知識)을 갖고 있었으며
행서(行書)를 빠르게 쓰는
속사(速寫)를 하기 위하여
짜임새와
필획(筆劃)을 생략하여
곡선(曲線) 위주로 흘려 쓰는
한자서체(漢字書體)
초서(草書)에도
매우 능(能)했다고
전(傳)한다
"
ㅡㅡㅡㅡㅡㅡㅡ
※
원문을
해석함에 있어서
지극히 개인적 견해(見解)와
해석(解釋)으로
오역(誤譯)
오판(誤判)한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언제든지
글 내용 가운데
잘못 된 부분은 옳고 바르게
지적(指摘)해 주시고
새로운 가르침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램해 본다.
- 마음그릇 心椀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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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 다음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