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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용서의 권세 (마 9:1~8):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고치시며 그의 죄를 사하여 주십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질병이 죄와 연관되어 있다고 믿었으며, 서기관들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죄 사함을 예수님이 선언하자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인자'로서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소외된 자들을 부르신 예수님 (마 9:9~13): 예수님은 당시 사회적 죄인, 매국노, 부정한 자로 취급받던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고 그들과 함께 식사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이 이를 비판하자, 예수님은 호세아 6장 6절("나는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을 인용하며, 자신이 온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온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금식 논쟁과 새 부대의 비유 (마 9:14~17):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은 왜 금식하지 않는지 묻자, 예수님은 신랑이 함께 있는 혼인 잔치집의 비유를 드십니다. 이어 낡은 옷에 새 패치를 대거나 낡은 부대에 새 포도주를 넣을 수 없다는 비유를 통해, 예수님의 가르침과 하나님 나라의 새 언약(구원의 옷, 새 포도주)은 바리새인들의 낡은 율법적 이해(오래된 부대)가 아니라, 이를 온전히 받아들일 새 부대(제자들)에게 담겨야 함을 가르치십니다.
2) 핵심 메시지: "성경의 하나님을 아는가?"
화자(Nate Solah)는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성경/토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박식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성경이 가리키는 ‘하나님의 긍휼과 마음’(God of the scriptures)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성경 지식은 많을지라도, 하나님이 품으신 긍휼과 소외된 자들을 향한 사랑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만드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전합니다.
요청하신 영상 "The Hidden Message Behind New Wine & Old Wineskins REVEALED! | Ep. 14 (Matthew 9:1-17)"의 핵심 내용을 한국어로 요약해 드립니다.
1. 영상 개요
주제: 마태복음 9장 1~17절 본문(중풍병자 치유, 세리 마태의 부름, 금식 논쟁, 그리고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을 통해 예수님이 전하고자 하신 핵심 메시지 해설
진행자: 네이트 솔라 (Nate Solah - Every Word 채널)
2. 주요 내용 요약
① 중풍병자의 치유와 예수님의 권세 [,]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중풍병자를 치유하시며 "네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선언하십니다 [,].
구약 성경(출애굽기, 시편 등)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가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 예수님은 자신이 곧 죄를 사할 권세를 가진 '인자(Son of Man)'임을 나타내십니다 [,].
② 사회적 아웃사이더(세리)를 부르신 예수님 [,]
당시 세리들은 로마의 부역자이자 착취자로 여겨져 사회적으로 극심한 멸시를 받는 죄인이었습니다 [].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비판하지만, 예수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
또한 호세아 6장 6절("나는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을 인용하시며, 하나님은 형식적인 제사나 율법의 행위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긍휼과 사랑을 원하신다고 가르치십니다 [,].
③ 새 포도주와 새 부대의 비유 [,]
요한의 제자들이 금식에 대해 질문했을 때, 예수님은 낡은 옷에 새 조각을 대어 꿰거나 낡은 부대에 새 포도주를 넣을 수 없다는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
이사야서 등의 구약 배경을 볼 때, 새 포도주(예수님의 가르침, 하나님 나라의 선포, 율법의 참된 의미)는 낡은 전통과 자기 의에 갇힌 바리새인들(낡은 부대)에게 담길 수 없음을 뜻합니다 [,]. 대신 예수님이 부르신 제자들이야말로 그 새 포도주를 담을 '새 부대'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
④ 핵심 교훈: 성경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의 차이 []
바리새인들은 율법과 구약 성경에 정통한 전문가들이었지만, 정작 눈앞에 계신 하나님(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경고를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많이 아는 것"과 "말씀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아는 것"은 다를 수 있으며, 진정으로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긍휼을 베푸는 삶이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
영어 내용 전체 번역
자, 이제 우리는 예수님이 새 포도주와 낡은 부대에 대해 하신 가장 혼란스러운 말씀 중 하나에 도달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이 특정한 본문을 읽고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의도하신 바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며 머리를 긁적이곤 합니다.
글쎄요, 이제 더 이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저는 그분이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보여드릴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려는 모든 이들을 위한 충격적인 경고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성경을 꺼내시고 마음을 단단히 먹으세요.
자, 갑니다! 'Every Word'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제 이름은 네이트 솔라(Nate Solah)이고, 오늘은 마태복음 9장 1~17절을 공부합니다. 그 전에, 제게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 이 영상을 좋아요, 구독, 그리고 널리 공유해 주시면 이 사역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아멘.
좋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함께 읽어봅시다. 마태복음 9장 1절입니다.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어떤 서기관들이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모독을 하는도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예수께서 집에서 음식 드실 때에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님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생배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겨 해어짐이 더하게 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이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시고 첫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그분은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왕국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기적을 행하십니다. 그의 명성이 온 시리아에 퍼지고 엄청난 무리가 그를 따릅니다. 그것이 대략 4장 12절부터 장 끝까지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무리를 보시고 제자들과 무리를 산으로 데려가 산상수훈을 선포하십니다. 그것이 마태복음 5~7장입니다. 그 설교의 초점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겸손, 순결, 긍휼과 같은 특정 성품을 나타내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5장 17절에서 자신이 율법(토라)을 올바르게 해석하거나 성취하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의 율법을 대체하시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해석인 마음의 관점에서 그것을 다시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설교를 마치신 후, 예수님은 제자들이 볼 수 있도록 자신의 가르침을 삶으로 실천해 보이셨습니다. 그것이 마태복음 8장의 내용입니다. 제자들이 설교에서 배운 개념들의 실제적 적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9장에서 예수님은 이번 주의 본문 속에서도 자신의 설교를 계속해서 삶으로 실천해 나가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바산 지역에서 귀신 들린 사람들을 고치신 후, 예수님은 자신의 동네(가버나움)로 돌아오십니다. 거기서 중풍병자를 고치시고, 마태를 불러 자신을 따르게 하시며,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을 상대하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짚어볼 만한 몇 가지 주목할 만한 관찰 포인트가 있습니다.
참고로, 이 본문은 누가복음 5장 17~39절에도 몇 가지 추가 세부 사항과 함께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곳도 살펴보셔야 합니다. 실물 성경이 있다면 마태복음 9장 옆에 누가복음 5장을 펼쳐놓고, 누가가 전해주는 추가 세부 사항들을 살펴보세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훨씬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것도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1세기에는 질병과 아픔이 죄와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거 아십니까? 요한복음 5장 14절에서 예수님은 성전에서 한 사람을 만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관점은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11장에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9장에서 행하신 이 기적에서, 예수님은 중요한 교훈을 가르치시기 위해 바로 이 관점을 활용하십니다. 예수님께는 죄를 용서할 권세가 있습니다(이것이 2절과 6절에 나옵니다). 이것이 그가 병을 고치시기 전에 그 사람에게 하신 말씀을 설명해 줍니다. 이제 군중의 다양한 반응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이것을 눈치채셨나요? 중풍병자를 고치시는 기적이 일어난 후, 군중은 예수님에 대한 인식 면에서 기본적으로 갈라집니다. 8절을 보면 무리가 두려워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흥미롭지 않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이 죄를 용서하시는 것을 보고는 흥분이나 희망, 혹은 여타의 긍정적인 감정적 반응을 보이는 대신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분께 경외심을 품은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죄를 용서하시는 것을 듣고 "이 사람이 신성모독을 한다"고 수군거립니다.
그리고 9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를 부르십니다. 바로 마태입니다. 하지만 이 제자는 똘똘하고 잘 차려입은 미래의 바리새인처럼 보이는 대신, 사회적 아웃사이더의 전형인 세리였습니다. 세리는 로마를 대신해 고용된 민간 하청업자들이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들은 특정 도로를 따라 물품을 운반하는 사람들에게 세금과 통행세를 매겼습니다. 이 세관들은 오늘날의 유료 도로 정류장과 비슷해서, 운전하려면 특정 도로를 사용하기 위해 통행료를 내야 했습니다. 세리들은 보통 부패했고, 로마에 실제로 내야 할 세금보다 과도하게 거두어들여 그 차액을 자기 주머니에 챙기곤 했습니다. 요구되는 것보다 더 많은 세금을 청구한다고 해서 거짓말쟁이로 여겨졌을 뿐만 아니라, 로마의 동조자들로 여겨졌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세리를 바라보는 시선은 정말 끔찍한 상황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유형의 인물을 예수님이 자신의 제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1세기 당시 누구에게나 이것은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의로운 자들 중 감히 세리와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며, 제자로 삼는 것은 더더구나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식사 자리에 함께 기대어 앉는 것 자체가 누군가를 부정하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 여기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점이 있습니다. 14절에서, 세례 요한의 제자들 모두가 예수님의 관점을 공유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흥미롭게도 그들은 예수님께 왜 자신들과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만약 예수님의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는다면, 예수님 역시 금식하지 않고 계신다는 암시가 됩니다. 자, 제가 지금 이 시점에서 관찰 내용들을 차곡차곡 늘어놓고 있는데요, 이제 구약성경과의 연관성을 파악하기 시작할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중풍병자를 고치신 이유는 자신의 죄 사함의 권세를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먼저 주목해야 할 점은 오직 야훼(하나님)만 그것을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4장 7절을 보십시오.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할 자는 결단코 면하지 아니하시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 32편 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내 죄를 내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 내 죄악을 자백하였나이다..." 이것은 예레미야 33장과 이사야 43장에도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인자(Son of Man)'라고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독자를 다니엘서 7장 13절로 데려갑니다. 거기서 우리는 인자가 나라와 영광과 권세를 받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인자에게는 자신의 왕국에서 그가 원하는 것을 행할 권세가 주어집니다. 이 말씀들을 소리 내어 말씀하심으로써, 예수님은 성경을 아는 자들에게 그 구절들로 돌아가 자신이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 탐구해 보라고 신호를 보내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후 예수님은 두 번의 비판을 받으십니다. 예수님은 그 비판에 몇 가지 방식으로 대응하시는데, 그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제자로 삼는 사람들의 유형을 중심으로 상호 연결된 일련의 비판들을 다루고 계신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첫 번째 답변에서 예수님은 실제로 호세아 6장 6절을 인용하십니다. 호세아 6장 6절로 가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를 인용하시되, "나는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라는 칠십인역(Septuagint) 버전을 인용하십니다. 예수님은 요점을 전달하기 위해 바로 그 '긍휼'이라는 요소를 활용하기로 결심하십니다. 즉, 예수님은 특정 성품을 지닌 사람들을 원하신다는 것이며, 이는 학생들을 산상수훈으로 곧바로 데려갑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7). 수개월 혹은 수주 전에 우리가 함께 공부했던 그 영상에서 보았듯,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이 구절은 팔복 구조의 중심에 위치합니다. 당시 세리와 죄인들—즉 그 시대의 사회적 아웃사이더들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성품을 나타내고 있다고 예수님이 암시하신 것은, 그 당시 사람들 앞에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황은 더 악화됩니다. 예수님의 두 번째 답변을 보십시오. 그분은 아무도 생배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기운 조각이 옷을 당겨 더 심하게 찢어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옷을 입어야 함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누가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나사렛으로 돌아가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읽으셨습니다. 바로 이사야 61장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듣는 모든 사람에게 그 성경이 응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4:21). 이사야 61장에서 흥미로운 점은, 끝까지 읽어보면 주께서 자기 백성과 영원한 언약을 맺으실 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61장 8절을 보십시오. "무릇 나 여호와는 정의를 사랑하며...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을 것이라." 또한 이사야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불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6절에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0절에서 이 사람들은 새 옷을 받게 됩니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그림을 보게 됩니다. 누군가 구원의 새 옷을 입고 있으며, 신랑이 제사장처럼 아름다운 관으로 단장하고 신부가 보석으로 단장하듯 하는 모습입니다. 즉, 신랑과 신부가 함께 결혼을 축하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9장 15절과 16절에서 암시하고 계신 내용이라고 믿습니다.
제 말에 잘 따라오고 계신가요? 이제 예수님은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넣을 수 없고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훨씬 더 복잡한 비유이지만, 저는 예수님께서 다시 한번 이사야를 가리키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이스라엘이 하나의 포도나무, 더 구체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심으신 포도주 포도원으로 이해되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사야 5장 7절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사야 27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언젠가 이스라엘을 구속하여 포도주 포도원이 되게 하시고 온 세상이 그 열매로 유익을 얻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엘 3장 18절 같은 다른 종말론적 본문들을 연결해 보면, 그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물론 우리 크리스천들은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 자신이 참포도나무이시며, 그분을 떠나서는 우리가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가르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모든 연결점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바리새인이나 세례 요한의 제자들처럼 생기지 않은 아웃사이더들(세리 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제자로 삼는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사야에서 오는 '구원의 옷'과 포도원의 '새 포도주'를 언급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새 포도주—즉 예수님의 가르침, 하나님 나라의 선포, 율법의 올바른 해석이라는 그 새 포도주는, 그분이 택하신 제자들이라는 새 부대에 담겨야 합니다.
지도자들은 율법에 대한 자신들의 낡은 이해를 선호하기 때문에, 바리새인들과 같은 낡은 부대에 담길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5장을 펼쳐보면 39절의 마지막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실제로 명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이 본문에서 보는 바이며, 생배 조각, 낡은 옷, 새 포도주, 새 부대에 대해 말씀하실 때 예수님이 의도하신 바입니다.
물론 제 생각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본문, 특히 이사야와의 연관성을 치열하게 고민해 볼 때 이것이 제게는 가장 타당하게 다가옵니다. 많은 교훈들이 있습니다만, 마태복음 9장 11~13절에 구체적으로 일어난 일에 초점을 맞춰봅시다. 앞서 언급했듯, 세리들은 보통 부패했고 자기 동족에게 거짓말쟁이자 배신자로 여겨졌습니다. 바빌로니아 탈무드에 따르면 세리들은 살인자나 강도와 동급으로 여겨졌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랍비들은 세리들을 회당에서 출교시켰고, 법정에서 증인 자격을 박탈했으며, 성전 곳간에서 돈을 환전하는 것조차 할 수 없게 했습니다. 이들은 모든 기준으로 볼 때 사회적 아웃사이더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세리를 제자로 택하셨고, 그와 율법을 범한 그의 친구들과 함께 먹고 교제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은 아웃사이더들을 위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을 안다면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순간 예수님께 도전하고 있는 바리새인들도 이것을 알아야 했습니다. 신명기 10장 19절, 시편 147편 2절, 이사야 56장 7~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아웃사이더들을 위하실 뿐만 아니라, 그분의 나라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처럼 되기를 구하는 자들에 의해 전파됩니다. 이것이 산상수훈의 핵심이었습니다. 마태복음 5장 20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너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낫지 못하면 결코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이 더 뛰어난 의라는 것은 더 많은 물리적 행동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의가 그들의 내면 깊숙이 파고들어 마음을 변화시킬 만큼 내부에서 더 위대하게 역사하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바리새인들과 대조되는 예수님의 의의 본보기를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시간조차 내지 않던 이들—즉 아웃사이더, 부패한 세리, 율법을 어긴 이들과 시간을 보내십니다. 기타 연주에 빗대어 비유하자면, 예수님은 이 주제를 계속해서 반복해서 연주하고 계십니다. 기억하십시오. 바리새인들은 타나크(구약성경)에 대해 엄청나게 해박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나머지 사람들에게 타나크를 가르치는 교사들이었기에, 예수님께서 지적하시는 바를 마땅히 알았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하나님이 아웃사이더들과 시간을 보내시는지 완전히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이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실수는 사실 예수님의 모든 제자들을 위한 교훈입니다. 이 말씀이 마음에 박히면 여러분도 충격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 교훈은 바로 이것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의 '성경'을 아는 것은 가능하다.
11절에서 "어찌하여 당신의 선생님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라고 예수님께 묻는 이들을 통해, 이 진리가 마음에 스며들도록 해보겠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지식을 지니고 있지 않음을 스스로 증명해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이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 호세아 6장 6절을 인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훌륭한 교사들로서 그들은 이미 이것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사실 호세아의 나머지 구절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이 번제보다 자신을 알기를 원하신다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이 단순히 머리만 쓰는 하나님의 율법에만 전문가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필요로 하는 하나님 사랑하기에도 전문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들이 둘 다 행했다면 그들도 하나님의 긍휼한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이러한 긍휼한 마음이 있었다면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선한 눈으로 세상을 보았을 것입니다(마태복음 6:22의 '아인 토바'를 기억하십니까?). 그들은 예수님이 이 세리와 죄인들에게서 보셨던 잠재력을 보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베풀 기회를 알아차렸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보셨는데, 왜 그들은 보지 못했을까요?
그 이유는—여기서 다시 한번 교훈이 나옵니다—그들은 하나님의 성경은 알았으나, 성경의 하나님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토라의 전문가들이라 자처하는 이들이 육신의 몸으로 바로 눈앞에 서 계신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은 어떻게 된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예수님은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진리를 깊이 새겨보면, 이 교훈이 시간을 초월하여 오늘날 우리의 공동체 속에서도 여전히 적용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성경의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의 성경을 아는 사람들이 존재할까요? 제 생각엔 그렇습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이제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입니다. 영상의 끝에 다다랐지만, 이것이 여러분의 성경 공부의 끝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남은 한 주 동안 계속해서 말씀을 묵상하며 이 공부를 힘있게 마치십시오. 이 말씀이 여러분의 삶에 어떻게 직접 적용되는지 고민해 보고 행동으로 옮기며,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나눠주세요. 음 오신 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성경 읽기표를 받아 함께 따라가시기를 바랍니다.
자,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제가 여러분과 함께 말씀을 읽기 위해 'Logos'를 사용한다는 것 잊지 마세요. 아직 로고스를 써보지 않으셨다면 꼭 한번 써보시기를 권합니다. 여러분께 큰 축복이 될 것입니다. [logos.com/wisdisciple](https://logos.com/wisdisciple)로 가시면 지금 제 특별 할인 혜택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원어 성경을 배우는 데 관심이 있으시다면, 제가 'Biblingo'와 파트너십을 맺었습니다. 비블링고는 아주 재미있고 교육적인 방식으로 성경 원어를 가르쳐 줄 것입니다. 결제할 때 할인 코드 wise disciple 10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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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약: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1)]
1. 갈등의 출발점과 비본질적인 문제
인간관계와 갈등: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생각과 배경의 차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갈등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전쟁이나 혼수 문제처럼 본질이 아닌 부수적이고 비본질적인 문제로 다툼이 일어납니다.
바리새인들과의 충돌: 본문의 핵심 갈등은 '금식'이라는 종교적 행위에서 비롯됩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열심히 금식하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유대주의자들이 시비를 겁니다.
2. 종교적 열심의 변질과 자기 의(義)
금식의 본질 상실: 본래 1년에 한 번 있던 금식이 바리새인들 시기에 이르러 일주일에 두 번씩 하는 종교적 열심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자기 과시와 정죄: 문제는 이 열심이 자신의 의(義)와 특권 의식이 되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점입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할수록 교만해지고 날카로워진다면 이는 잘못된 세팅입니다.
동기의 중요성: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동기) 하느냐’입니다. 모든 수고와 헌신의 자리에는 내 공로가 아니라 ‘십자가’가 남아 있어야 합니다.
3.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새로운 시대
잔칫집과 같은 기쁨: 예수님은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은 기뻐하는 날이며, 금식할 때가 아님을 말씀하셨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기쁨)가 떨어졌던 유대교의 어두운 상황 속에서, 예수님의 오심은 참된 기쁨과 회복의 새 시대를 열어주었습니다.
본질과 비본질의 구분: 금식 자체는 나쁘지 않으나, 비본질적인 규정에 매여 정작 본질인 그리스도를 놓치면 율법의 무거운 짐에 짓눌리게 됩니다.
4. 변화(Transformation) vs 변질(Degeneration)
나로부터의 개혁: 우리는 타인의 신앙이나 행동을 판단하기 전에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십자가를 통과한 은혜: 십자가를 진정으로 통과한 사람은 "나 같은 죄인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른 사람을 향해 더 너그러워지며 품는 자로 변화됩니다.
결론: 주님은 우리에게 무거운 종교적 규칙을 지우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고 자유케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나의 자랑이나 공로가 드러나는 '변질'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형상이 드러나는 참된 '변화'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FNODNOuuMI&pp=ygUY7IOI7Iig7J2AIOyDiOu2gOuMgOyXkCAy
직전 설교(금식 논쟁을 통한 형식주의 지적)에 이어 본문 후반부인 '생옷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비유'와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넣어야 하는 비유'(막 2:21-22)를 중심으로 전개된 핵심 내용을 요약해 드립니다.
[설교 요약: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Ⅱ]
1.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의 충돌 (비유의 배경)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단순히 기존 종교 체제(유대교, 바리새주의)에 약간의 수정을 가하거나 기존 시스템에 새 요소를 얹는 차원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히 새로운 시대(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으며, 이는 낡은 체제와 타협할 수 없는 전면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합니다.
2. 생옷 조각과 낡은 옷의 비유 (마가복음 2:21)
"생옷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겨서 헤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의미: 낡은 율법주의적 사고와 전통(낡은 옷)에 복음의 생명력(새 옷 조각)을 억지로 꿰맞추려 하면 둘 다 망가지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본질은 외면한 채 옛 습관이나 율법적인 형식 위에 복음을 덧입히려고 하면, 오히려 내면의 갈등과 신앙적 파탄이 가중됩니다.
3.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마가복음 2:22)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넣지 않나니 만일 그리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낡은 부대의 특징: 굳어지고 경직되어 있어서 새로운 생명력의 팽창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립니다. 고착화된 종교적 전통, 형식주의, 자기 의(義)가 바로 낡은 부대입니다.
새 부대의 특징: 부드럽고 유연하며, 성령의 새로운 역사와 은혜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적용: 예수님이 주시는 새로운 은혜와 생명의 복음(새 포도주)을 담기 위해서는 우리의 완악하고 굳은 마음이 먼저 성령의 역사로 부드러워져야(새 부대가 되어야) 합니다.
4. 결론 및 도전
형식과 전통에 갇혀 있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나의 고집, 율법적인 잣대, 굳어 있는 종교적 틀(낡은 부대)을 내려놓고, 매 순간 주님의 은혜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새 부대’ 같은 심령으로 살아갈 때 진정한 신앙의 부흥과 변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설교 요약: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1. 설교의 배경: 금식 논쟁과 형식주의
바리새인들의 비판: 세리 마태가 예수를 부르고 잔치를 베푼 자리에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금식일임에도 금식하지 않고 먹고 마신다는 점을 문제 삼아 시비를 겁니다.
금식의 본질 변질: 본래 성경적 금식은 1년에 단 하루(대속제일)에 행하며 지난날의 죄를 회개하고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본질이었습니다. 그러나 경건을 과시하려는 유대인들은 장날(사람이 많이 모이는 월·목요일)에 금식 티를 내며 타인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도구로 변질시켰습니다.
2. 신앙은 '잔치'와 같다
예수님은 신랑과 함께 있는 혼인집 손님들이 금식할 수 없듯, 신앙생활이란 무겁고 억눌린 짐이 아니라 '잔치와 같이 기쁘고 즐거운 것'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신부인 성도가 신랑 되신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때 진정한 감사의 기쁨이 넘쳐나게 됩니다.
3.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그릇과 내용의 관계)
예수님은 두 가지 비유를 통해 복음(새로운 것)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를 설명하십니다.
바느질 비유 (옷의 조화, 눅 5:36): 낡은 옷에 새로운 조각을 대어 꿰매면 더 찢어지듯, 낡은 생각과 율법 위에 복음을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면 파탄이 납니다.
가죽 부대 비유 (눅 5:37-38):
새 포도주 = 폭발적인 능력을 지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낡은 가죽 부대 = 율법에 찌들어 굳어진 이스라엘 사람들의 고정관념과 사고방식
새 가죽 부대 = 복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수용할 수 있는 부드럽고 유연한 마음가짐
발효되며 팽창하는 새 포도주(복음)를 담으려면 굳어진 생각과 '내가 의롭다'는 교만을 내려놓고 마음이 '새 부대'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4. 기독교의 본질과 세 가지 자세 (좌행참, 坐行站)
황명환 목사님은 기독교의 특징과 성도가 취해야 할 태도를 세 가지로 요약합니다.
앉으라 (Sit): 자격 없는 죄인을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은혜의 자리에 먼저 앉으라.
행하라 (Walk): 조건 없는 사랑을 먼저 받았으므로, 세상과 이웃을 향해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하라.
서라 (Stand): 악의 실체에 맞서 물러서지 말고, 성령의 도우심과 기도의 권세로 끝까지 싸워 이기라.
5. 결론
복음 자체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나의 고정관념과 낡은 틀(낡은 부대)을 고집하면 복음의 폭발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복음의 합당한 '새 부대'가 되어, 내가 강해지고 세상을 변화시키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관련 동영상 링크: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황명환 목사)
[설교 요약: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1. 배경: 종교 지도자들과의 갈등과 금식 문제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와 죄인들의 집에 함께 앉아 식사하시는 모습을 보고 바리새파 사람들은 의문을 품고 비판합니다.
당시 바리새파 사람들은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금식과 율법의 교리에만 갇혀 있었으며, '죄인들'을 정죄하기 바빴습니다.
2. '낡은 것'과 '새것'의 의미 (생베 조각과 새 포도주)
예수님께서 비유하신 생베 조각과 새 포도주는 그 자체로 새롭고 귀한 가치(복음, 은혜)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아직 세속의 때가 다 빠지지 않은 초신자나 연약한 영혼들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반면 낡은 옷과 낡은 가죽 부대는 유대교의 율법주의나 오래된 종교적 전통, 그리고 완고한 기성 성도들의 사고방식을 뜻합니다.
3. 예수님의 진정한 마음: 낡은 부대와 새 사람 모두를 향한 배려
예수님은 낡은 가죽 부대(기성 전통)를 무조건 파괴하고 버리려 하신 것이 아니라, 팽창하는 새 포도주(복음과 새로운 영혼들)를 담았을 때 둘 다 터져버리지 않기를 염려하셨습니다.
즉, 아직 성숙하지 못한 초신자나 세상의 물든 사람들을 빠르게 정죄하거나 윽박지르기보다, 사랑으로 오래 참고 기다려주는 온전한 태도가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4. 우리가 가져야 할 '새 부대'의 자세
먼저 믿은 성도들과 교회가 율법적 잣대와 편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세상의 관습을 전혀 모르는 불신자나 초신자, 연약한 이들까지도 품을 수 있는 열린 마음과 넓은 그릇(새 부대)을 갖추는 것이 진정한 신앙의 부흥이자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하용조 목사의 [마가복음 강해 6강] 잘못된 신앙 (마가복음 2:18~28) 설교 영상의 주요 핵심 내용을 요약해 드립니다.
[설교 요약: 잘못된 신앙]
1. 진짜 신앙과 가짜(종교적) 신앙의 차이
가짜 신앙은 형식과 껍데기만 남고 내용과 생명력,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없는 상태를 말하며, 이는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잃게 만듭니다.
신약 성경이 말하는 진짜 신앙(참된 그리스도인)의 핵심 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랑과 용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
성령 충만과 전도: 성령을 받고 복음을 전하는 것
공동체: 약자들이 위로받고 함께 세워져 가는 것
2. 금식 논쟁: 형식적 율법주의 vs 은혜의 신앙
당시 바리새파 사람들과 요한의 제자들은 율법적이고 형식적인 날짜와 규례에 따라 '금식'을 철저히 지키는 것을 신앙의 척도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신랑(예수님)과 함께 있는 혼인 잔치 자리에 축제가 벌어졌는데 금식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진정한 금식은 겉포장이나 날짜 지키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억눌린 자를 풀어주고 굶주린 자를 먹이는 영적 본질과 사랑의 실천에 있습니다.
3.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낡은 사고의 탈피)
예수님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비유를 통해, 이기적이고 율법적인 자기 중심적 사고방식(낡은 부대)으로는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와 변화를 담을 수 없음을 지적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해도 내 고집과 옛 성품, 남을 정죄하는 태도가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낡은 틀에 갇힌 종교 생활일 뿐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생각과 성품, 태도가 새롭게 변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4. 안식일 논쟁: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님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사 자르는 것을 두고 율법의 잣대로 비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다윗이 배고플 때 진설병을 먹었던 일을 언급하시며 결정적인 선언을 하십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즉, 율법이나 종교적 제도가 인간을 억압하거나 인권을 무시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것이 진정한 신앙입니다.
먼저 저는 6편의 동영상을 기본적으로 한 두 번 들어보았습니다. 하루가 걸리는 일이기도 하고 이틀이 걸릴수도 있습니다. 이분들의 놀라운 통찰력에 이분들의 글을 읽을수록 놀랍니다. 그리고 이분들이 이 주제에 대해서 얼마나 깊이 이해를 하시고 또 성도들에서 쉽게 설명하시려고 노력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아마도 이 부분에 대해서 5분께서 이분들의 표현보다 훨씬 깊이 더 많이 새 포도주와 새 부대의 의미를 이해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이분들의 탁월한 설교를 통해서 저도 제가 생각하는 바를 더욱 굳게 믿게 되고 정리하게 됩니다. 추석에 이렇게 시간을 보냈고 다시 시작을 합니다.
먼저 새 술과 부대는 먹을 수 있는 혹은 마실 수 있는 음식 혹은 음료입니다. 그리고 부대는 이 음식이나 음료를 담은 그릇입니다. 당연히 낡은 술과 즉 묵은 술과 혹은 오래 된 술과 낡은 옛 부대가 있습니다. 그런데 술이라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부대라는 점에서도 같습니다. 단지 새 것이나 낡은 것이냐 차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이미 새 술은 예수님 혹은 그분의 가르침과 교훈 혹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것, 혹은 율법의 새로운 가르침이라 미국의 설교자는 설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낡은 부대는 바리새인을 비롯한 당시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말하고 새 부대는 예수님의 제자들이라 설명했습니다. 당연히 옛 술은 율법에 대한 옛 이해로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를 한국의 목사님께서 공통적으로 새 포도주는 복음 혹은 은혜의 복음으로 봅니다. 그리고 옛 술을 유대교의 완고한 전통주의, 이기주의, 율법에 찌들어 굳어진 이스라엘 사람들의 고정관념과 사고방식, 본질이 아닌 비본질 적인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부대는 당연하게 이 옛 술을 담은 그릇 즉 당시의 유대인으로 볼 것입니다. 그리고 해결책으로 한국의 목사님께서 공통적으로 아래와 같이 설명합니다.
적용: 예수님이 주시는 새로운 은혜와 생명의 복음(새 포도주)을 담기 위해서는 우리의 완악하고 굳은 마음이 먼저 성령의 역사로 부드러워져야(새 부대가 되어야) 합니다.(수영로 이 규현 목사님)
발효되며 팽창하는 새 포도주(복음)를 담으려면 굳어진 생각과 '내가 의롭다'는 교만을 내려놓고 마음이 '새 부대'로 변화되어야 합니다.(수서 교회 황 명환 목사님)
먼저 믿은 성도들과 교회가 율법적 잣대와 편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세상의 관습을 전혀 모르는 불신자나 초신자, 연약한 이들까지도 품을 수 있는 열린 마음과 넓은 그릇(새 부대)을 갖추는 것이 진정한 신앙의 부흥이자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공동체의 모습( 만나 교회 이 병삼 목사님)
예수님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비유를 통해, 이기적이고 율법적인 자기 중심적 사고방식(낡은 부대)으로는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와 변화를 담을 수 없음을 지적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해도 내 고집과 옛 성품, 남을 정죄하는 태도가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낡은 틀에 갇힌 종교 생활일 뿐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생각과 성품, 태도가 새롭게 변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온누리 교회 하용조 목사님)
옛 포도주 혹은 새 포도주는 율법이나 복음이냐로 쉽게 접근하려고 할 수도 있는데 한 분도 이렇게 접근하시는 분이 없는 것이 너무나 다행입니다. 미국의 목사님은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vs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이해로 나누어 봅니다. 그리고 새 술이나 옛 술을 담는 그릇, 부대를 사람의 마음혹은 사람 그 자체를 보고 있습니다. 술은 분명하게 음식이기도 하면서 약으로도 쓰이고 음식을 썩지 않게 보관도 하게 합니다. 그래서 술이란 기본 성격은 옛 술이나 새 술은 같습니다. 그런데 새 술은 폭발력이 있습니다. 새 술이기에 그렇습니다. 발효가 되는 가운데 가스가 발생하고 폭발합니다. 그리고 이 술을 담는 그릇 혹은 이 술을 먹는 마시는 존재가 사람 혹은 마음으로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합당하다고 합니다. 폭발성이 있어서 옛 부대에 담으면 팽창할 때 그 기운을 감당하지 못하고 폭발해서 부대도 술도 다 버리게 되니 반드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율법이 문제가 있다는 표현을 아무도 쓰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옛 것이라고 해서 모두가 쓸모가 없어서 버리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의미는 절대로 없습니다. 우리는 옛 사람과 옛 포도주가 진정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반드시 이해를 해야 이 문제가 풀립니다. 예수님 오셨을 때 2000년 전으로 돌아갑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속국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북 이스라엘이 B.C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하고 남 유대도 B.C 586년에 멸망하고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의 통치를 거치면서 로마로 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떠둘이 생활이 나라가 없이 약 2000년을 더 지속이 되고 1948년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세웁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이며 다른 나라에 없는 율법을 주시고 성막과 성전을 주시면서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죄를 지으면 짐승의 피로 용서를 받는 모든 민족 중에서 특권을 지닌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시면서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시면서 일방적인 아닌 이스라엘 민족의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서 계약을 맺습니다. 그 계약의 중심이 율법의 준수입니다. 법대로 살면 축복하시니 아멘합니다. 법대로 살지 않으면 저주가 온다 하시니 아멘합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율법을 중심으로 계약을 맺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교제를 하십니다. 그렇게 약 1000년을 구약의 역사대로 때론 잘 믿어 축복이 임하고 때론 불순종에서 타국의 종이 되는 삶을 반복하다가 다윗 때 하나님의 뜻대로 왕으로부터 백성까지 법을 잘 지키니 온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로 하나님께서 성장을 시켜 주십니다. 60만 군대에 경제력이 금으로 방패를 만듭니다. 이 경제력과 군사력이면 온 지구의 모든 나라를 한 번에 다 점령하고 남을 군사력입니다. 그런데 다윗 왕은 하나님께 정해주신 국경을 잘 지키면서 이 부를 약 400조원 이상을 드려서 성전을 지을 준비를 하고 왕궁을 세웁니다. 그리고 주변의 나라가 겁이 나니 알아서 조공을 바치는데 그의 아들 솔로몬 대에 자신의 딸과 금과 은 보물을 바칩니다..
그리고 솔로몬의 타락으로 나라가 분열이 되고 계속 악을 행하니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서 경고하고 권면합니다. 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하나님께서 위와 같이 이 나라를 멸망케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여전히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타국의 노예로 살면서 자국의 종교적인 전통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다양한 종파가 나름대로 자율권을 지니고 로마 시대에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있으면서 로마 총독의 통치를 또한 받았습니다. 즉 율법을 중심으로 유대인들이 제사장이나 율법학자 혹은 바리새인이 지도자가 되어 유대인을 통치하면서 궁극적으로는 로마 총독의 통치를 받는데 로마의 12표법등입니다. 이를 빌라도 사형에 해당한다고 예수님을 고소하니 로마법으로 절대로 사형을 언도 할 수가 없었는데 이들 유대인의 주장대로 사형을 허락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로마라는 큰 국가의 통치도 받아야 했고 유대인의 율법의 통치도 또한 존중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 유대인 지도자와 예수님의 충돌을 잘 압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의 법에 의해서 로마 총독의 사형 선고로 십자가가를 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맞서신 대상은 바리새인이나 혹은 율법학자만 아니라 거대한 당대 최고의 권력을 지닌 로마와도 싸워야 하셨던 것입니다. 당시 전 세계 인구는 약 2억 명으로 추산이 되고 로마인구는 약 6000만 명이었고 이스라엘인은 600-700만이 되었는데 예수님께서는 홀로 이들과 맞서신 것입니다. 전능하신 분께서 모든 권력을 권세를 다 내려놓고 연약한 사람의 한계로 오셔서 죄인과 같이 사시면서 죄인이 되셨으니 이것이 새 포도주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피를 흘리심니다. 이전에 이스라엘은 죄를 지으면 흠 없는 양을 잡아서 속죄를 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께서 직접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죽으십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함입니다. 복음이며 새 포도주가 됩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만찬을 하시면서 떡과 포도주를 주시면서 자신의 살과 피라고 하시면서 먹고 마시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새 포도주가 되시며 예수님의 보혈이 새 포도주가 되시며 예수님의 죽으심이 새 포도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복음입니다. 이스라엘 홀로 마시는 것이 아니로 온 세상의 모든 죄인이 다 마시며 믿고 죄 사함을 받는 복음입니다. 작은 지금 인구 2500만 명이 아니라 100배의 죄인이 믿는 폭발력을 가진 새 포도주입니다. 짐승의 피로 오직 택한 백성 이스라엘만 죄의 용서를 받던 구약의 율법과 비교해서 피는 같으나 짐승의 피와 폭발력이 다른 하나님의 아들의 보혈의 피가 온 인류를 구원하는 능력의 보혈입니다. 폭발입니다. 누룩과 같이 부풀어지는 복음이며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입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직접 오셔서 전하신 하나님의 나라의 일과 율법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이 다 새 포도주로 이스라엘이란 작은 그릇으로 담을 수가 없습니다. 옛 사람 이스라엘 바리새인이나 율법학자가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을 담습니다. 그리고 이들에 세운 교회가 담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세운 교회가 모여서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서 담습니다.
새 포도주를 담는 그릇이 즉 새 부대는 어떻게 되어야 합니까? 우선 옛 그릇에 해당하는 당시 유대인은 자신이 이해한 율법으로 예수님을 정죄합니다. 예수님도 그분의 말씀도 담지 못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고 있는 율법에 대해서 다시 설명을 하십니다. 이를 미국 목사님께서 율법의 새로운 설명이라 했습니다. 새 부대가 되는 법이 바로 우리가 해야 되는 일입니다. 새 술은 복음이라 혹은 하나님의 나라의 것이라 혹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이라 혹은 율법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 설명이 됩니다. 그런데 이 복음을 담는 우리는 어떻게 되어야 합니까? 우리도 역시 이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사람입니다. 도리어 유대인이 더 하나님에 대해서 다양하게 잘 압니다.
유대인과 똑같은 우리가 새 부대가 되는 과정은 바로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에 잘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를 용서받고 의롭게 된다는 단순 하게가 아닌, 이 과정은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따라서 우리도 이와 똑같이 행하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죄인을 부르려 오셨다고 합니다. 우리는 죄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먼저 우리가 죄인임을 자각하고 고백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의인이라 믿는 사람은 예수님께 적합하지 않습니다. 당시의 옛 부대에 해당하는 이스라엘 지도자의 태도를 봅니다. 바리새인 율법학자 제사장들입니다. 이들은 율법을 잘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선생이라 부르고 일반 이스라엘 사람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계층입니다. 특권층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같은 로마의 압제하에 노예와 같은 삶을 살지만 이들은 유대인 중에서 지도자들입니다. 로마도 이를 묵인합니다. 이들은 모세 오경 613 조문을 너무나 잘 알고 외고 그리고 다양한 해석을 통해서 이해합니다. 그리고 장로의 유전이라 해서 전통적으로 전해오는 관습도 잘 압니다. 이 지식으로 이들이 선생이 되고 지도자가 되어 로마 압제하에서도 특권을 누립니다. 경제적인 권력적인 특권을 다 누렸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 율법대로 자신이 산다고 믿고 이 법을 모르고 지키지 않는 자신의 동족을 죄인이라 정죄합니다. 그리고 택함을 받은 민족이니 타 민족은 이방인이라 합니다. 로마인은 타 민족을 야만인으로 보고 유대인은 이방인으로 보고 자신을 우월하게 생각합니다. 이들이 죄에 대한 자각이 없기에 예수님을 믿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고 새 포도주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기회는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부르려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려 오셨다고 하고 예수님 앞서 오신 세례 요한도 회개를 촉구합니다. 모두가 죄인이니 회개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모든 인생을 향해서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자신을 죄인으로 자각하고 인정하고 죄의 용서를 받고자 하는 사람이 새 포도주를 마실 수가 있습니다. 담을 수가 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죄를 용서할 권세를 지닌 분으로 인정하고 나아옵니다. 그들은 모두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고 압니다. 이는 성령께서 이들에게 감동하셔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 죄인이 어찌 섭니까? 제사장이 성막에서 하나님을 뵈올 때 심정입니다. 몸과 마음을 깨끗게 해야 합니다. 먼저 회개를 해야 합니다. 회개는 자신의 죄을 인정하고 죄악된 삶을 인정하고 이에서 돌이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베드로등의 제자는 배도 버립니다. 그물도 버립니다. 잡은 고기도 버립니다. 가족도 버립니다. 모든 죄악된 곳에서 떠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가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웁니다. 그리고 물로 그분의 이름의 세례를 받습니다. 제자가 되어 예수님의 파송으로 복음 즉 예수님을 전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매달리십니다. 그리고 운명하시고 장사하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십니다. 이를 제자들이 다 보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의미도 압니다. 피 흘리심이 없으면 죄 사함도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나무에 달리셔서 우리 모두의 저주를 다 지십니다. 우리의 가계로부터 오는 저주가 다 끊어졌습니다. 조상의 죄로 인한 벌이 없습니다. 4대의 저주 혹은 벌이 예수님을 믿으므로 끊어졌습니다. 따라서 유전성 병이다 성품이 어떻다 하는 말이 예수를 믿는 사람에겐 어울리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사복음서의 내용입니다.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의 명령을 또 보아야 복음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부활을 본 제자들이 곧 바로 세상으로 가서 예수님의 부활과 구세주이심을 증거하고자 하는 열망이 끓어 올랐지만 막습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이제 성령을 기다렸다고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고 증인이 되라고 하십니다. 이 부분이 우리 모두가 거쳐할 새 포도주의 단계입니다. 한 분의 성도도 빠짐없이 거쳐야 합니다.
이 중요한 일에 기초가 없는 분은 자격이 없습니다. 회개가 그 기초입니다. 회개가 없는 분은 죄의 문제가 그대로 있기에 그 열매가 합당하게 열리지 않습니다. 미안하지만 회개가 없이 공부로 목사가 되고 대형 교회 목사가 되어 수천 수만의 성도에게 성경을 가르칠 수가 있습니다. 바리새인이나 율법학자와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없습니다. 반드시 회개를 먼저 해야 하고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의 세례를 받아야 이전에 지은 죄가 용서가 있습니다. 그리고 깨끗해진 심령에 거룩하신 하나님 성령께서 오셔서 내주하십니다. 이것이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의 내용이며 모든 서신서는 이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하시는 일이 성도를 거듭나게 하십니다. 새롭게 창조를 하십니다. 마음이 부드럽게 하십니다. 앞에서 모든 한국의 유명한 목사님께서 강조하신 마음의 변화입니다. 이는 우리가 노력으로 스스로 하는 것이 절대로 절대로 아닙니다. 그렇다면 유대인이 1000년을 경험한 내용대로 실패 할 것입니다. 이 실패를 이미 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인류 구원은 먼저 사랑이신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독생자를 주십니다. 죽음으로 내 모십니다. 이를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순종하십니다. 너무나 무거운 온 인류의 죄의 짐을 지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죄를 용서받은 사람에게 성령께서 오셔서 꽉 도장을 찍습니다. 성령의 인 도장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사람의 마음이 부드럽게 됩니다. 거듭남이라 하는데 인간이 노력으로 되는 과정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냥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오셔서 사람을 전능하신 능력으로 겉은 그대로 두고 속을 새롭게 창조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부드럽게 된 사람이 새 부대가 되어서 이런 복음의 내용을 담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단지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다 하십니다. 성경 말씀의 증거를 봅니다.
행 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성령을 받는 가장 기본적이 원칙입니다. 예외도 있습니다. 고넬료는 이런 과정이 없이 먼저 성령이 오시고 나중에 세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요한의 세례만 아는 사람도 사도들의 인도로 성령을 받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이렇게 물 세례만 알고 불 세레를 모르는 사람들이 사도들에 의해서 다시 성령을 받는 장면이 여러 번 기록이 되었습니다. 저는 회개하고 예수님의 이름의 세례를 5년 뒤에 받고 그 다음 해 신림동 선민 교회에서 박기수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실 때 예수님께서 성전을 가득 채우시며 오셔서 불을 주셨습니다. 행시 1차를 붙고 2차 준비에 정신이 없던 사람에게 한 번도 생각도 못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쉬지 않고 전도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기적도 수도 없이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부드럽게 되는 원리를 에스겔은 예언했습니다.
겔 36: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역시 물세례와 성령세례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의롭게 살고자 몸부림을 쳐도 아무리 부드럽게 되어 새 포도주가 되고자 애를 써도 한계가 있습니다. 절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도 못하고 성도도 못할 일을 목사가 목이 터져라 외쳐도 무슨 일이 생깁니까? 자신도 못하고 성도도 못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이를 너무나 잘 아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이 흙으로 손수 빚어서 만드시고 성령께서 오심으로 생령이 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죄로 물이 들어서 진리를 분별도 못합니다. 이 인간이 성경을 이해하고 성경대로 살고자 해도 불가능합니다. 이스라엘 1000년의 역사가 이를 증명합니다. 그래서 새 영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선물이 필요한 것입니다. 선택이 아닙니다. 필수입니다. 성령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그분의 능력으로 사람을 바꿉니다. 거듭나게 하십니다. 모든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를 성령을 선물로 받으므로 체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모든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사람이 성령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저도 2000년이 지나서 똑같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증거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똑같이 성령을 받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제 글이 이 성령을 받은 증거입니다. 제가 이 모든 동영상의 목사님 보다 잘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제 안의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저는 적습니다. 반드시 반드시 천 번 만 번 저는 이를 똑같이 외칠 것입니다. 제 오천만의 로마서에 수도 없이 강조를 했습니다. 절대로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노력으로 마음이 넓어지고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마음이 율법을 지키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오심으로 되는 것입니다.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재 창조로 거듭나게 하심으로 우리는 그냥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안에 성령과 육의 갈등은 언제나 있고 우리는 이를 극복해야 합니다. 이 놀라운 축복의 시작이요 기초가 회개입니다. 회개가 없으면 성령이 없이 자신의 노력으로 성경도 이해하고 실천도 해야 합니다. 새 부대가 되는 길을 설명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십니다.
둘째로 새 포도주가 무엇인가 즉 복음이란 무엇인가 입니다. 모두가 아시는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는 복음입니다. 복음은 예수님, 그분의 보혈과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부활과 승천 통치이고 최후의 심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입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율법이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왕이 되신 예수님, 그분의 백성인 성도, 그리고 모두가 지켜야 하는 율법, 그리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사는 영토가 이 땅에 세워지는 하나님의 나라의 구성 요소입니다. 복음의 의미를 인간의 구원의 의미로 보다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 보는 시각은 새로운 시각이라고도 보는 데 분명하게 미국 목사님께서는 새 포도주를 하나님 나라의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그 중에서 율법에 대해서 같이 은혜를 나눕니다. 가장 논란도 많고 가장 어렵고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새 포도주를 하나님의 나라의 것으로 보고 설명을 하고자 하면 하나님의 나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율법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복음의 이해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즉 복음은 개인의 측면도 있지만 율법과 같이 공동체를 위한 것이며 이 공동체는 가족과 교회와 그리고 국가를 다 포용하는데 그 국가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천국 복음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 하신 그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미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다 이루어진 곳이고 이 땅에서 우리가 세워야 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건설 중에 있습니다. 이 나라의 건설을 위한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구원의 측면에서 국가를 세우는 측면을 포괄하는 복음의 의미를 우리는 탐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특별히 이 나라에 대한 말씀이 아주 많습니다. 개인 구원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은 것까지 가야 함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앞에서 제가 옛 술과 새 술을 율법과 복음으로 보지 않는 것에 대해서 너무나 잘 하는 일이라 설명을 드렸습니다. 미국 목사는 율법에 대한 새로운 설명을 새 포도주라 말씀하셨습니다. 막무가내로 율법이 옛 술이다 하는 분이 없어서 너무나 다행입니다. 절대로 옛 술에 대해서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목사님께서는 유대인의 굳은 관습, 관행이라 했습니다. 사고 방식이라 했습니다. 올바른 표현입니다. 옛 술은 즉 낡은 포도주는 절대로 율법을 표현하는 말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지닌 율법에 대한 낡은 이해입니다. 이는 당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율법에 대한 이해이기도 합니다. 복음 즉 새 포도주는 이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이기도 합니다. 즉 율법의 본래의 의미에 대한 이해이기도 합니다. 한 목사님께서 본질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랑이라고 말씀해도 저는 올바르다고 봅니다. 즉 옛 술을 율법에 대한 이스라엘의 이해 혹은 낡은 사고 방식 혹은 유대인의 굳은 관습 관행으로 보는 시각은 지극히 올바릅니다. 절대로 율법은 낡거나 혹은 옛 것이 될 수가 없는 하나님의 나라의 근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율법은 모세 오경으로 모든 성경 중에서 너무나 중요하며 찬양의 대상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밝히셨으니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이해하던 옛 술의 내용이 아니라 도리어 새 포도주의 내용을 이해를 해야 합니다. 율법은 새 포도주의 너무나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실로 율법은 복음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왜 그런지 지금 차근 차근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이해를 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율법에 대해서 유대인에게 설명하는 내용을 그대로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유대인 보다 더 율법을 모든 성도는 훨씬 더 정확하게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누리는 특권 중의 특권이 4000년 율법을 연구하고 지키려고 애를 쓴 유대인보다 겨우 100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의 모든 크리스천이 유대인보다 율법을 더욱 더 정확하게 이해를 한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누리는 특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의가 바리새인보다 못하면 절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어떤 분은 단순하게 믿으니 의롭게 된 우리가 무조건 유대인보다 더 의로운 수 밖에 없다고 속단하나 이는 주의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의롭게 믿고 여기고 살다가 심판대에서 그 의가 인정이 되지 않으면 일생의 수고가 다 날라갑니다. 이렇게 위험하게 사시렵니까? 믿으니 의롭다는 명제는 정말로 깊이 깊이 묵상을 하고 잘 이해를 해야 되는 구절로 아직도 천주교와 개신교가 논쟁을 하는 구절입니다. 누군가는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서 율법을 이해하면 당시 유대인들이 가졌던 한계와 문제를 극복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율법 하나만 갖고 예수님도 믿지 않고 성령의 도우심도 없는 유대인이 가진 율법의 이해에 대한 한계를 극복하고 율법을 유대인 보다 더 잘 완성하고 굳게 세우고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룰 다 이루기 위해서 삼위 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우리 죄인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 구원의 목적에 대해서 바로 이해를 하셔야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믿지 않는 세상의 사람과 같이 잘 먹고 잘 사는 문제에서 자유하게 되는 것이고 우리의 소유를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을 위해서 주변의 가난한 이웃과 가난한 믿음의 형제에게 다 나누어 주는 일이 너무나 쉽고 즐겁게 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구약의 하나님으로 때론 이스라엘 땅에도 오시고 아브라함과 같이 사람에게도 오시지만 율법을 주시고 율법대로 살게 하십니다. 그리고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오셔서 즉 임마누엘 하셔서 우리의 죄를 감당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으니 우리 주 예수님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독생자가 되십니다. 그리고 또 아예 성령께서는 회개하고 그분의 이름의 물셰를 받고 죄가 용서가 된 성도의 심령에 내주하십니다. 이스라엘이 누리는 선택과 보호와 비교가 되지 않는 영적인 축복이 모든 신약의 성도에게 있으니 복음이 폭발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하지 못한 율법의 완성을 해야 하고 가능하며 우리의 의가 절대로 바리새인보다 못하면 아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진실로 넉넉하게 우리는 이스라엘의 의를 이기면서 이들을 부럽게 해야 되는 놀라운 존재이니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다 그렇습니다. 할렐루야!!
율법을 가장 잘 아시고 율법을 만드시고 모세에게 주시고 이스라엘이 1000년 동안 어떻게 지키는 지를 다 보신 분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구약의 율법은 이스라엘이 죄에서 구원을 받는 법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고 이웃을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구체적으로 하라는 규정 248 규정, 하지 말라는 규정 365규정으로 정했으니 모세 오경입니다. 그리고 이를 다시 조금 간단하게 10계명으로 줄여서 설명하셨습니다. 이를 당시의 지도자가 물으니 명쾌하게 가장 큰 두 계명으로 설명하셨습니다. 즉 율법은 사랑을 위한 규정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위한 법입니다. 그리고 또 말씀으로 설명하셨습니다. 율법의 정신이 사랑과 정의와 신실함이다고 마태복음 23: 23절로 말씀 하셨으니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와 신실함이 그대로 율법에 나타나니 율법을 통해서 사랑이신 하나님, 정의로우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를 이규현 목사님께서는 본질로 표현 하신 것으로 봅니다. 하용조 목사님께서는 진짜 신앙이며 사랑과 용서로 표현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과 전도라는 함축적으로 복음을 잘 정리하셨고 공동체를 위한 복음이라 말씀하셨으니 완벽한 설명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수서교회 황목사님께서는 성도가 놓치기 쉬운 정의로운 삶에 대해서 너무나 강조를 하셨으니 우리 주께서도 천국 복음을 전하실 때 하늘 나라에 대해서 정의롭게 사는 사람에 대해서 두 번이나 8복 중에서 강조를 하셨습니다. 진실로 정의롭게 성도는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는 정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불의가 없는 나라입니다. 불의를 미워하고 싫어하고 척결하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이 너무나 한국에 약합니다. 황목사님의 강조는 너무나 적절하며 모든 성도가 따라야 할 귀한 말씀으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수서 교회는 특별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그리고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는 목자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댓글을 아주 금했습니다. 오직 너의의 의가 바리새인보다 못하면 결코 천국에 가지 못한다란 말씀으로 설교를 하신 한국 유일의 목사님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당시 유대의 지도자들이 자신은 율법을 잘 배우고 잘 지켜서 의인이라 굳게 믿었고 지도자로 군림하며 특권도 누리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들과 가장 크게 대립하고 충돌하고 다투고 종국에는 이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답니다. 왜 이들은 죽도록 율법을 어릴 때 부터 잘 배워서 율법대로 살고자 하고 율법을 가르치기까지 하는데 도리어 책망을 받고 예수님과 원수가 됩니까? 절대로 흠이 없으시고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주신 법이 문제가 없습니다. 이를 믿어야 복음도 성립되고 율법이 헌법이 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들이 율법에 따라서 정죄한 죄인에게로 갑니다. 그리고 의인을 부르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려고 오신 것이라 합니다. 이 긴장, 이 전투, 이 갈등이 이해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직접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절대로 율법을 폐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려 오셨다고 하셨고 율법을 조문 조문 잘 지키면서 이렇게 살도록 가르치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로 영원히 살고 율법의 조문 조문을 잘 지키지도 않고 그렇게 살도록 가르치지 않는 사람은 천국에 가기는 가나 지극히 작은 자로 영원토록 산다고 하셨고 율법을 이렇게 지키면서 사는 바리새인보다 의롭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천국에 가지도 못한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조문 조문도 잘 지켜야 하는 것이 맞고 그보다 중한 사랑과 정의와 신실함에 대한 규정도 잘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이십니다. 명령이십니다.
당시의 율법학자 바리새인이 같은 로마의 압제에 눌리는 동족을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며 이 법을 대하고 잘가르치고 실천을 했다면 절대로 예수님의 책망을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나라가 없는 모두가 괴로운 상태에서 이들은 도리어 동족을 율법을 가진 지식으로 등을 처먹고 살고 로마엔 아부를 하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제를 체험했는데 약 36년 동안에 일본을 등에 업고 동족을 괴롭힌 사람이 수도 없이 많고 이 권력에 빌붙어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도리어 동족을 일본인보다 더 괴롭힌 것과 같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도 악합니다. 그래서 당시의 죄인으로 낙인이 찍히고 약하고 병들고 가난한 사람은 소망이 없었습니다. 이들이 율법대로 살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느 정도 자치권이 부여가 된 유대인 세계에서 이들 지배 계층 동족 유대인이 너무나 악하게 살면서 이들을 힘들게 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보신 예수님께서 율법을 지녔다고 하면서 사랑과 정의외 신실함은 저버리고 가난하고, 약하고 못 배운 유대인을 학대하는 지도자를 위선자야 사탄의 자녀들아 하고 책망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가난하고, 약하고, 병든 사람, 고아와 과부는 나라도 없이 동족의 악한 지배를 받고 사니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돌보신 것입니다. 이들은 이들 바리새인 율법학자에 의해서 죄인으로 낙인이 찍힌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가난해도 죄인, 병들어도 죄인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넘치는 세상, 불의가 발을 붙이지 못하는 세상, 그래서 서로 믿고 살고, 평화와 기쁨이 넘치는 세상에 너무나 적합하고 위대한 법 율법이 이렇게 못난 사람들에 의해서 완전히 해이가 되어 있던 세상! 이스라엘에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실로 이스라엘 전체가 큰 회개가 필요한 때에 예수님께서 오신 것이고 나라가 망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한 번 택하신 민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사랑하시는데 직접 오셔서 진리를 전하시면서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2026년 한국입니다. 한국은 군사 경제 세계 5위 국가입니다. 그런데 가난하고 병들고 자살하고 결혼도 못하고 독거하면서 사는 사람이 많고 헬 조선이란 칭호도 얻었습니다. 10만 명의 성경을 잘 아는 신 구약을 잘 아는 목사가 있습니다. 너도 나도 동영상으로 매주 진리를 쏟아냅니다. 그리고 1500 백만 명의 천주교 개신교 성도가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오시면 긍휼과 자비의 분이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고아와 과부, 자살하는 사람, 독거하는 사람에게 분명하게 먼저 가실 것입니다. 대형 교회 목사!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사람들에게 가십니까? 수백억 수천억의 재산을 갖고 이들을 철저하게 외면하는 장로에게 가십니까? 그리고 복음은 빛을 잃고 세상은 교회를 비난하고 성장은 멈추고 세상과 교인이 분별이 없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신 구약을 다 가지고 너무나 멋진 하나님의 나라!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서 정의롭고 평안하며 사랑이 넘치는 기쁨이 넘치는 나라를 만들고도 남아야 하는 한국이 왜 이렇습니까? 율법이 왜곡이 되듯이 복음도 새 포도주도 이들 목사나 장로가 왜곡하지 않았습니까? 자살자가 한 명도 없어야 하는데 하루에 40명씩 일년에 만 명이 넘게 죽습니다. 젊은이는 결혼을 포기하고 자녀도 낳지 않습니다. 노인은 99% 양로원에서 홀로 죽습니다. 절대로 예수님께서 이런 지옥을 만들기 위해서 자신의 피를 흘리고 성도를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누가 문제입니까? 무엇이 문제입니까? 2000년이란 충분한 시간을 주고 성경을 배울 시간도 주었는데 왜 이렇게 세상이 흘러갑니까? 성도 150만 명만 5000만 명 중에서 올바로 살면 한국이 절대로 이렇게 되지 않고 모두가 잘 살수가 있는데 이렇게 악하고 악한 세상이 되었습니까? 이는 율법에 대한 왜곡이 2000년 전에 일어났듯이 복음에 대한 왜곡이 일어났기에 그렇습니다. 이를 다음 글에서 함께 고민하면서 풀어보도록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야 하는 복음이 개인의 복을 받는 일이 복음이라 보고 올인 했기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를 풀어서 다음에 설명을 드립니다. 이미 오천만의 로마서 1300편의 글에 모두 설명을 다 드린 내용입니다. 이제 저나 여러분이나 복음이 천국 복음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복음임을 속히 이해를 해야 이 문제가 풀립니다.정권이 바뀌어도 이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으면 큰 소용이 없습니다. 이 귀하고 위대한 일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에 대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배우는 일에 대해서 세우는 일에 대해서 동참해 주시고 후원해 주시고 하나가 되기를 바랍니다. 국민은행 831-24-0224-378 김정관 입니다.
정말로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 불가능합니다. 오직 성경만 개인적인 인간적인 노력으로 공부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거대한 세계적인 각성이 필요한 일입니다. 하나님 나라 복음의 세계적인 이해가 일어나야 되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2000년 대를 맞아서 온 세계적으로 가장 중점을 두고 행하시는 일입니다. 부디 관심을 갖고 올바로 가시길 바랍니다.
새 포조주와 새 부대에서 예수님과 거듭난 성도들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고 하나님의 나라의 큰 측면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더욱 깊이 이 주제를 이해하게 되니 짧은 글로 절대 설명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다시 이어서 설명을 드릴 것입니다.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어찌합니까? 세월이 가도 한국은 불의가 판을 칩니다. 우리가 고쳐야 하는 빛이요 소금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희망을 걸고 살아야 합니다. 부디 성령을 받은 성도가 하나가 되게 하시고 이들을 복을 주시기 바랍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에 충분하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고 나누고 베풀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데 연구하고 시설을 사용하게 복에 복을 더하소서! 미국이 전도와 선교를 통해서 세계 최강이 되었듯이 하나님의 나라를 배우고 세우려고 하는 저를 포함해서 모든 성도가 복을 받고 가정이 복을 받고 교회가 복을 받고 나라가 복을 받아 이 세상을 고치고 다가오는 세상에서 중심이 되게 하소서! 주여! 속히 정의롭게 살면서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자 하는 모든 성도를 30배, 60배, 100배로 축복하시고 건강하게 하시고 가정과 회사에서 머리가 되게 하시며 이들이 절대로 낭패를 당하지 말게 하소서! 속히 하나님의 나라가 이땅에 임하게 강하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