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백성의 마음
(수 8:32-35)
32. 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 33.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 함이라 34. 그 후에 여호수아가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35. 모세가 명령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자들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행하는 거류민들 앞에서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나도 없었더라
오늘은 "천국백성의 마음"이라는 제목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의 것이라 했던 말씀처럼 천국백성에게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벗어야 할 마음의 껍질이 있다면 몇 겹이나 될까요? 아마 수십 수백 겹도 더 될 것입니다.
가재 게 새우 같은 갑각류는 크는 과정에서 탈피를 수없이 반복합니다. 성장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있어도 되겠지만 몸이 커가기 때문에 탈피는 불가피한 일입니다. 어류들이 탈피하지 못하면 죽는 일도 발생합니다. 우리는 구경이지만 그들로서는 생과 사를 넘나드는 순간입니다. 몸은 커 가는데 벗지 못하면 죽는 것입니다. 혹은 벗었는데 속히 단단해지지 못해 물렁거리면 공격을 받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 믿음도 성장하려면 우리 생각이 수없이 바뀌어야 합니다. 말씀의 생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바뀐 후에는 속히 견고해져야지 견고하지 못하면 죽습니다. 어떤 사람을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 사람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옛날 옳지도 않은 그 케케묵은 이야기를 지금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깜짝 놀랐는데 그 사람의 믿음은 조금도 진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발산에서 제사한 후에 그 돌제단에 율법을 기록하고 또 낭독하면서 그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하면서 맹세하는 장면입니다. 당시에는 음향기가 없었기에 앞에서 한 마디하면 옆 사람이 그것을 받아서 그대로 외치고 또 다른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다시 외치고 또 다시 외치며 메아리쳐 가는 그 영광스런 광경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한 것은 한 말씀도 잊지 않고 그 말씀을 생명으로 알겠다는 약속입니다. 이처럼 천국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속에 새기고 또 새기고, 그 말씀을 붙들고 또 붙들고, 지키고 또 지키며 날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말씀 떠나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국백성으로서 합당한 마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내 생각과 주장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신27:2에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는 날에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라” 4절에도 “이 돌들을 에발 산에 세우고 그 위에 석회를 바를 것이며” 그랬습니다. 글을 쓰려면 돌들이 완전히 감추어져 평평한 벽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 생각과 주장도 이렇게 감추어져야 합니다. 석회 바른 벽처럼 하얀 백지처럼 어린이의 마음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에 합당한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이 내 생각과 내 주장이 우리에게 달라붙어 얼마나 괴롭히는지 그 주장이 우리를 복 받지 못하게 합니다. 원수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석고 미련한 생각이 원수입니다. 그래서 롬8:5-8에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했습니다.
그것을 내려놓으려면 순종하든지 그렇지 못한다면 고난을 통해서 깨닫거나 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히5:8-9에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고난이 필요했다는 건 아니지만 그 모습으로 우리의 모본이 되셨습니다.
2. 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32절에 "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 석회로 하나 된 돌에 율법을 기록했습니다. 율법을 기록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에 깊이 새기라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넘어진 것은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지 못해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말씀에 살고 말씀에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잠3:1-4에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마음에 새기려면 시1:2의 말씀처럼 늘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서 고후3:3에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했습니다.
시19:7-11에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했습니다. 이렇게 새긴 사람만이 좌우로 흔들리지 않고 복된 길을 갈 수 있습니다.
3. 말씀에 대한 생사의 각성이 있어야 합니다.
33-35절에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 함이라 그 후에 여호수아가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모세가 명령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자들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행하는 거류민들 앞에서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나도 없었더라”
이 언약이 얼마나 중요했으면 아직 가나안을 정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적진 깊숙이 들어가 이 언약을 맺을까요? 생사의 각오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베트남에 파병된 해병대가 자빈박 전투에서 크게 당한 것도 아군 관할인 안전지대인 줄 알고 통과하다가 월맹군의 매복에 걸렸습니다. 그 후 자빈동 전투에서 몇 배로 갚지만 이스라엘은 완전 적지였습니다.
그리고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거류민까지 함께 언약했을까요? 이런 과정 없이 기업 주면 진짜 속된 말로 개판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 있는 사람들을 일군 세워야지 믿음 없는 사람 큰 직분 주면 그 교회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정신 차려 신앙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이 언약은 가나안의 주인으로서 사느냐? 쫓기느냐? 축복이냐? 저주냐? 하는 생과 사의 언약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중심으로 좌우로 절반은 축복의 산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저주의 산인 에발 산 앞에 서서 맹세하면서 말씀대로 살면 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어느 편에 설 건가?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25:31-33에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하셨습니다.
율법 강조가 아니라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내 심령이 죽는다는 각성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레위 제사장들처럼 말씀의 칼날을 잘 준비해야 합니다. 말2:5-6에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을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그의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의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함과 정직함으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했습니다.
여호수아가 낭독한 말씀은 신명기 27-28장의 말씀이었습니다. 27장은 예를 들면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말하되 아멘 할지니라,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그의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15-17절) 이처럼 각 항목마다 아멘으로 맹세했습니다.
그리고 28장에는 그 말씀을 지키는 자와 거역하는 자가 받을 결과에 대한 것입니다. 조금만 읽어드리면 신28:1-2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했습니다.
그런데 14구절이 축복의 말씀이고, 54절은 저주의 말씀입니다. 저주가 훨씬 많지만 영문에서 부정+부정은 긍정인 것과 같이 저주를 강조한 것은 한 사람도 저주 받지 말고 축복 받으라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그래서 본문 33절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대로" 했다고 했습니다.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신30:15-16에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하면서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19-20절)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마음에 인간의 생각이 가득하다면 석회를 바르듯 무가치하고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 대신 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깊이 새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누가 미혹하고 손짓한다 해도 나는 말씀 떠나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하나님의 말씀 붙들어 천국의 기업을 이 땅에서부터 온전히 누릴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