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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달콤 씁쓸 원문보기 글쓴이: 행복한 나무
장례식장 입구에 뜨든~! 나타난 무당스님.
우리 가족은 무당스님의 숨은 노예였지만
실제로 뵌 건 그 때가 처음이었어.
나이는 40대 초반.
수수한 승복 차림에, 평범한 여승이셨어.
그런데 파르라니 깎은 머리가 너무너무 동그랗고 예뻐서
나도 모르게 자꾸 눈이 가더라.
삭발머리가 그렇게 예쁜 사람은 홍석천 이후 처음이야.
사실은 아제아제바라아제의 강수연 이후 처음이야. 라고 썼다가 고쳤어.
나이 어리신 엽호판러님들은 누구? 뭐? 하실 게 뻔해섴ㅋㅋㅋ사모하는 레떼님은 알아들으시겠지만ㅋㅋㅋㅋㅋㅋ네네. 이제 고만. 사심 판질.
스님은 먼저 할머니 영정에 향을 하나 올리고
잠시 기도를 하시다가
울 아부지와 인사를 하셨어.
아부지는 담담하게 인사를 받으셨지만
실은 노여워하고 계셨다는 거 나 알아.
왜냐면 난 아버지의 가장 귀여운 막내딸이라서 아부지 맘 속에 쏙 들어갔다 온 것처럼 안 것은 물론 아니고, 문상객이 영정에 절할 때 상주가 아이고아이고 곡을 해야 하는데, 이제껏 잘하시던 아부지가 안하시고 스님을 째려보고 계셨었거든.
스님은 다 알고 왔다며 괜찮다며
아버지 손을 잡고 토닥토닥해주셨어.
그러자.. 호랑이처럼 뛰쳐오르기 직전이었던 아버지의 기가
거짓말처럼 스르르르르... 가라앉았어.
일단 벌겋게 달아올랐던 얼굴색이 돌아오셨으니까.
그리고 스님은 아버지와 엄마, 고모들, 고모부들, 큰오빠와 막내오빠, 나.. 이렇게
직계 가족들만 잠깐 따로 보자고 하셨어.
장례식장 안 쪽에 가족들 쉬는 작은 방이 있었는데
그 방으로 다 모였지.
올케언니는 4살 조카가 흐물흐물 잠이 들려고 하던 참이라
낄 수 없었지. 나중에 그러는데 궁금해서 미추어버리는 줄 알았댘ㅋㅋㅋㅋ
좁은 방에 우리 가족이 주춤주춤 자리를 잡고 앉자
스님이 이야기를 시작했어.
주로 아버지를 상대로 얘기하셨고 우린 듣기만 했지만
뭐,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였다고나.
일단,
5~6년 전에 돌아가셨던 큰할머니는
문중 선산의 산신이 되셨대. 헉쓰.
그 얌전하고 조용하신 우리 할머니가??
그 이유는, 그치. 지금 막 무릎쳤지?? 맞아.
할머니 묘자리가 선산의 주인 자리였쟈나.
원래는 대종손인 할아버지 자리였던 거기 말야.
붉은 적토산에서 노란 황금토가 나오고,
앞은 지평선가지 탁 트이고 뒤로는 졸졸 샘물이 흐르며
왼쪽으로는 청룡의 기상이, 오른쪽으로는 백호가 으르렁ㅋㅋㅋㅋ미안ㅋㅋㅋㅋ 왕손이 나실 기셐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문중의 선산이라는게, 좀 그렇대.
산이 그다지 크고 깊진 않아도,
조상들의 영가가 모인 곳이라 산의 기운이 크대.
그런 산의 주인이 되신 거야. 울 할머니가.
그런데 문제는 우리 할아버지.
명당에서 1미터도 안되게 떨어진 자리니
거기도 사실 준 명당인데,
할머니가 산의 주인이 되신 이상 명당이고 뭐고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시키는 데로 해야 하는 거래.
그래서... 할아버지는 거기 못 계시고...
산 아래 쪽에서 문지기를... 하고 계신대...
왜냐면... 큰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노여움이 크셨었대...
이유는 뭐... 그런거지. 뭐.
스무살 꽃다운 나이에 시집와서,
남편이라고 몇 년에 한 번씩 손님처럼 왔다갔다 하다가
이제 조국도 해방되고, 금쪽같은 아들이랑 남편이랑
오순도순 살아보겠구나~! 얏호 했는데
어디서 꽃 같은 둘째 부인을 데려왔으니
아무리 일제강점기의 순둥이 같은 여자라도
속에서 열불이 안 났겠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워낙 마초마초시다 보니
그런 내색을 감히 내보일 수도 없었고,
게다가 둘째 부인은 야들야들 애교가 넘치고
형님 형님~ 우리 형님 이래가며 부비부비하니
미운데 미워할 수도 없고,
긴긴 겨울밤이면 창호지 문살에 비친
두 사람 그림자를 바라보며
어린 아들을 도닥도닥 재웠고
아침이면 그 방에서 나온 요강도 비워주고,
밤새 지저분해진(응?) 이불호청도 뜯어 빨아주고 그랬대.
어흐흐흑.
그런데 스님은 이런 이야기를 마치,
자기 얘기처럼 술술술술 늘어놓는거야.
우리는 조금은 기가 막혔고, 조금은 슬펐고,
조금은 아버지 눈치가 보였는데
막상 아버지는 얼굴이 각시탈처럼 돼서
아 네. 그렇군요. 네. 저런. 같은
영혼없는 리액션만 하고 계셨지.
여차하면 일어나서 나갈 기세. ㅋㅋㅋㅋ
아. 요강 부분에서는 좀 움찔. 하셨어.
나중에 말씀해 주셨는데
어릴 적에 큰할머니가 작은 할머니 방에서 나온
사기요강을 들고 가서 비우는 걸 보신 적이 있었대.
어린 나이였지만, 왠지 분하고 화가 나서
아무도 몰래 사기 요강을 발로 뻥~! 차서 깨뜨렸대.
그리고 시침 뚝. 고양이가 그랬나? 하고. 이런 귀요밐ㅋㅋㅋㅋ
그런데 큰 할머니가 다음번 장에 가서
이번엔 스뎅으로 된 요강을 사오셨다곸ㅋㅋㅋㅋ나 그 스뎅 요강 알앜ㅋㅋㅋㅋ
나 어릴 적에 시골 가면 밤에 무서워서
변소 못가고 할머니가 요강 꺼내주셨거든.
그 요강이 그 요강이었어. 와.. 나보다 나이가 더 많다니.
매일밤 깔고 앉은게 미안해졌어.
스님 얘기를 들으며 내 넋은
둥실둥실 안드로메다로 떠나고 있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어.
“... 하여 작은 어머니를 선산에 모시면,
이 집 남자들에게 큰 해가 옵니다.
3년 안에 사위들 다 쓰러지시고,
장주 분도 목숨은 건지겠지만 무사하진 못하십니다.”
헉, 나 주먹 나갈 뻔했쟈나.
옆에서 우리 큰 오빠도 부르르 떨드라.
막내오빠는 전화로 얘기를 들었었나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 와 진심 때려주고 싶더라.
엄마랑 고모들은 울기 시작했고,
아버지의 각시탈도 하얗게 변했고.
“그게 다가 아닙니다.
지금은 큰 어머니가 그래도 정신이 있어서
자손들을 돌보시지만,
여기서 더 화를 돋구면 악귀가 되실 겁니다.
그러면..”
와라락!
아부지가 스님의 멱살을 잡았어.
“너..너.. 이...미..”
차마 욕은 못하셨지만
아부지는 정말 눈이 빨개지셨어.
우리는 쫘악~! 아버지에게 달라붙어서
스님을 떼어냈어.
길게 썼지만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야. 한 2~3초?? 콱! 척! 착! 같은 느낌?
그때 엄마가 울부짖었어.
“00 아부지! 자꾸 그러지만 말고 얘기 좀 들어봐요!
서방님들이 잘못된 대잖아!
지금 스님 말이 틀린게 없잖아! 왜 이래요!”
고모들도 엉엉 울부짖기 시작하셨어.
초상집이었기 망정이지 아오.
아부지는 다시 철푸덕 앉으셨어.
그리고 스님에게 고함을 치셨어.
“도대체 하고 싶은 얘기가 뭡니까!
전 작은 어머니를 꼭 선산에 모실 겁니다.
작은 어머니는 그럴 자격이 있어요!”
스님도 마주 소리질렀어. 배틀!
“그걸 작은 어머님이 원하지 않으십니다!!
지금도 여기 계세요. 울고 계시다고요!
아들 다칠까봐! 사위들 다칠까봐!!”
“어..어머니가 여기 계시다고...?”
“그래요! 그리고 거기에 들어가면 작은 어머님은
영영 이 가문에 얽히게 되는 거에요.
작은 어머님은 마음 편하게 사신 줄 아세요?
남의 남자 꿰차고 살면서, 본처 옆에서
어떤 여자가 마음 편하겠습니까??
아들 귀한 집에 소실로 들어와서
딸만 내리 셋 낳고 어떤 심정으로 살았는지 아세요?
이 집에서 이제 벗어나고 싶으시댑니다!”
아.. 나 또 눈물 나려고 해.
그 때도 저 얘기 듣고 눈물 터져서 아주 혼났는데.
우리 할머니들.. 행복해 보이셨는데...
두 분이 도란도란 자매처럼 늙어가시는 모습이
너무 이쁘고 귀여웠는데.
인간극장에서 주인공으로 찍자는 섭외도 들어왔었는데...
두 분 다.. 마음 한편은... 아프셨구나...
할아버지는... 왜 그러셨을까... 왜...
두 여자를 모두 힘들게 하셨을까...
아버지가 허옇게 질려서 아무 말도 못하자
스님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안되겠네요. 갑시다.
내, 지금 큰어머니 상태가 어떤지
가서 직접 봐야겠소.”
하며 밖으로 나가셨어.
우리도 우르르.. 따라나갔고.
그때 시간이 새벽 3~4 시쯤??
잠깐 이야기를 나눈 거 같은데 어느새 그렇더라고.
손님들도 아직 많고 집안 어르신들도
어안이 벙벙해 하셨지만 아웃오브 안중.
스님은 막내 오빠 차에 타고,
나머지 가족들도 각각 차에 나눠타고,
줄줄이 선산으로 향했어.
발인을 아침 9시에 하기로 해서,
채 다섯시간도 안 남은 때였지
거기서 무려 한시간을 차로 달렸엌ㅋㅋㅋ아놬ㅋㅋㅋ깡촌ㅋㅋㅋㅋ
선산에 도착하니,
희부염하게 날이 밝고 있었어.
산 입구에는 사람들이 사유지에 못 들어가게 막아놓은 문이 있는데,
그 앞에서 모였어.
아버지가 차에서 내리고, 우리도 줄줄이 내리고,
막내 오빠는 좀 늦게 도착했는데,
스님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산을 향해 깊~이 배꼽 합장을 하고 고개를 드는데
그런데 정말, 큰할머니와 할아버지 묘가 있는 쪽을
정확히 올려다보시는 거야.
“저기 큰 어머니가 계시네요.”
아버지는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셨어.
짐작가쟈나. 우리 아부지는,
큰할머니에게 참 애틋한 아들이었다고.
“어..어머니가?? 어떠신데요??”
“옥색 치마 저고리를 입으셨고,
머리숱이 별로 없는데 쪽을 찌고 계시네요.
눈이 작은데 얼굴에 살이 없어서 눈꺼풀이 많이 쳐졌네요.
광대뼈가 높고, 입은 작고.”
“어..어머니!”
와... 본 적도 없는 사람을 어찌 저리 묘사해.
아버지는 무릎을 털썩 꿇으셨어.
“지금 어머님은 화가 많이 나 계세요. 여기서 더 못올라가요”
“화가...요?”
“어머님은 지금 그냥 영가가 아니라 산신님이세요. 그런데
산신님이 화가 많이 나 있으니 이 산에 동물이며 식물들도
다 겁먹고 있어요. 지금 올라가면 위험할 거에요.”
“어머니... 어머니!”
아버지는 목 놓아 울기 시작하셨어. 애써 부정하려고 했던,
스님의 이야기들이 그제야 가슴에 와서 박히셨던 거야.
“어머니! 그렇게 힘드셨습니까! 죄송합니다!
아들이 몰라드려서 죄송합니다! 어머니.... 어머니...”
엄마도 고모들도 고모부들도... 오빠들도 나도...
결국 네 살짜리 애기를 들쳐업고 따라온 큰올케도
엉엉 울었어.
스님은 아버지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셨어.
“일단 돌아갑시다. 장주가 이러면
어머니 마음이 더 아픕니다.
그 화가 아버님하고 작은 어머님에게 갈 겁니다.
일단 돌아갔다가 어머니 뜻대로 하고
나중에 다시 오라고 하시네요.”
오빠들이 아부지를 부축하고..
나랑 올케는 엄마를 부축하고... 돌아서려는데
스님이 다시 산을 향해 합장을 깊게 하시고
반쯤 돌아서서 옆에 누군가에게 또 합장을 길게 하셨어.
물론 그 자리엔 아무도 없었지.
아버지가 혹시나 싶어
“스님, 지금 누구에게 인사하십니까” 하니
“예. 한 열살 정도 되는 어린 소녀 영가가
어머님하고 여기를 왔다갔다 하면서
말을 전해주고 있거든요.
아마 장주님의 동기신거 같은데...
장주님을 무척 애틋하게 여기시네요.”
아버지는 뜨악한 표정이셨어.
“동기간이요? 저는 외동입니다만.
작은 어머니 쪽으로 여동생이 셋 있지만
같은 태의 동기는 없습니다.”
스님은 조금 당황한 낯빛이었어.
“그렇습니까? 장주님이 모르시는 동기가 있나봅니다.
나중에 확인하시지요.”
헛. 뭐지? 이 기분은ㅋㅋㅋㅋㅋ 스님 돌팔잌ㅋㅋㅋ 딱 들켰엌ㅋㅋㅋㅋ
갑자기 영화가 끝나고 엔딩스크롤이 올라가면서
극장 안에 불이 켜진 기분이었어.
그동안의 신뢰가 와르르 무너진 것 같달까?
꿈을 꾸다가 깬 것 같기도 하고,
우리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다시 장례식장으로 돌아왔어.
아버지는 고모부들과 함께 ‘예정대로 발인을 할까 그래도 스님 말을 한번 믿어볼까 아니 돌팔인데 저거 정신 빠진 아들놈이 술술 정보를 다 흘린거 같은데 아니 그래도...’를 무한루프를 타셨지만, 발인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어.
그런데, 판 1에서,
할아버지가 묘자리 맘대로 쓰겠다고 땡깡하셨을 때,
우리 아부지를 위로했던 집안 어르신 한분이 있다고 했잖아??
... 기억 안난다고?... 그렇지 뭐.
판이 좀 지루해서 그래. 어흑. 난 팔만 빠질 뿐이고. 어흑.
근데 그 분이 아부지한테 오셔서
‘슬슬 발인 준비를 하자꾸나’ 등의 말씀을 하시려는데
아부지가 갑자기 물으신거야
“아재요. 혹시 나한테 나 모르는 동기가 있습니까?”
어르신은 흠칫 놀라셨어.
“응? 자네가 동기가 어딨나.
대종손에 자네 하나라 우리가 얼마나 근심걱정 했는데.”
“그렇지요? 네 알겠습니다.”
하고 아버지가 돌아서는데,
어르신이 혼잣말처럼 말씀하셨어.
“그 태어나자마자 죽은 아 말하는가?”
뜨등~!
알고보니, 아버지 위로 누님이 한 분 계셨는데,
할머니가 시집살이를 호되게 하는 바람에
뱃속에서 잘못돼서 태어나자마자 돌아가셨대.
그것도.. 큰할머니에겐 너무나 한 이었던 거야.
실은... 잘못되서 태어났는데.. 할머니의 시할머니..
나에겐 고조할머니가... 태어난 지 하루된 아기를
엎어 뉘워서 재웠대...
무슨 말인지 알거야.. 응.. 아... 할머니...
그리하야! 일은 급선회를 해서,
발인은 전격 취소!
작은 할머니는 근처에 있는 화장터로 모셔서 화장을 했어.
이런 법도는 없다! 며 집안 어르신들의 토할 것 같은 반대가 있었지만
아부지는 밀어붙이셨어.
우리 아부지, 한다면 했던 남자의 아들. ㅋㅋㅋㅋ
그리고 어느 교회의 수목장에 유골을 뿌렸어.
할머니가 그걸 원하셨다고 스님이 전해주셨어.
휴우.
약간의 뒷 이야기가 더 있긴 한데,
나, 이야기를 쓰면서 조금 울어서, 머리가 아파.
중간에, 어쩔수 없이 이야기가 어두워졌지.. 미안.
어두운 가족사이기도 하고.
아버지가 엄청 서럽게 우셨던 거 떠올리고,
너무 귀여웠던 우리 할머니들 떠올리니까
또 가슴이 먹먹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