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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唯不可識(부유불가식) : 대저 그 깊이를 가히 알 수 없으나
故强爲之容(고강위지용) : 억지로 그 면모를 헤아리자면,
豫焉若冬涉川(예언약동섭천) : 조심스러움(豫)이 한겨울 개울 건너는 듯하고,
猶兮若畏四隣(유혜약외사린) : 머뭇거림(猶)이 사방을 두려워하는 듯하고,
儼兮其若容(엄혜기약용) : 의젓함(儼)이 손님과 같고,
渙兮若氷之將釋(환혜약빙지장석) : 맺힘 없이 풀어짐(渙)이 얼음이 녹아내리는 듯하고,
敦兮其若樸(돈혜기약박) : 도타움에 있어서는 통나무 같고 ,
曠兮其若谷(광혜기약곡) : 넓게 트여 있음(曠)이 골짜기 같고,
混兮其若濁(혼혜기약탁) : 섞여 있음(混)이 탁한 흙탕물 같으리라.
孰 能濁以靜之 徐淸(숙능탁이정지서청) : 어느 누가 (흙탕물같이) 탁하게 있으면서도(濁), 고요함(靜)으로 점차 맑아지게 할 수 있을 것인가?
孰 能安以久動之 徐生(숙능안이구동지서생) : 어느 누가 가만히 있으면서도(安), 그를 장구히 움직이게 함(久動)으로 점차 생동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保此道者(보차도자) : 도를 지닌 사람은
不欲盈(불욕영) : 가득 채우기를 원하지 않는다.
夫唯不盈(부유불영) : 대저 가득 채우지 않기에,
故能蔽不新成(고능폐불신성) : 고로 능히 덮어두고 새롭게 이루지 않으리라.
(preser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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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도를 잘 행하는 사람은
미묘하고 통달하여
그 깊이를 감히 알 수가 없다.
대저 그 깊이를 가히 알 수 없으나 억지로 그 면모를 헤아리자면,
조심스러움(豫)이 한겨울 개울 건너는 듯하고,
머뭇거림(猶)이 사방을 두려워하는 듯하고,
의젓함(儼)이 손님과 같고,
맺힘 없이 풀어짐(渙)이 얼음이 녹아내리는 듯하고,
도타움(敦)이 통나무 같고,
넓게 트여 있음(曠)이 골짜기 같고,
섞여 있음(混)이 탁한 흙탕물 같으리라.
어느 누가 (흙탕물같이) 탁하게 있으면서도(濁),
그를 고요하게 함(靜)으로 점차 맑아지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어느 누가 가만히 있으면서도(安),
그를 장구히 움직이게 함(久動)으로 점차 생동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도를 지닌 사람은 가득 채우기를 원하지 않는다.
대저 가득 채우지 않기에,
고로 능히 덮어두고 새롭게 이루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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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강남 역>
도를 체득한 훌륭한 옛사람은
미묘현통하여 그 깊이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 깊이를] 알 수 없으니
드러난 모습을 가지고 억지로 형용을 하라 한다면
겨울에 강을 거너듯 주춤거리고,
사방의 이웃 대하듯 주춤거리고,
손님처럼 어려워하고,
녹으려는 얼음처럼 맺힘이 없고,
다듬지 않은 통나무처럼 소박하고,
계곡처럼 트이고,
흙탕물처럼 탁합니다.
탁한 것을 고요히 하여 점점 맑아지게 할 수 있는 이
누구겠습니다까?
가만히 있던 것을 움직여 점점 생동하게 할 수 있는 이
누구겠습니까?
도를 체득한 사람은 채워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채워지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멸망하지 않고 영원히 새로워집니다.
<노바당 역>
도를 체득한 훌륭한 옛사람은
그 깊이를 알 수 없다
그 깊이를 알 수 없으니
드러난 모습을 가지고 억지로 형용을 하라 한다면
겨울에 강을 건너듯 머뭇거리고
사방의 이웃을 대하듯 주춤거리고
손님처러 어려워하고
녹으려는 얼름처럼 맺힘이 없고
다듬지 않은 통나무처럼 소박하고
계곡처럼 트이고
흙탕물처럼 탁하다
누가 탁한 것을 고요히 하여 점점 맑아지게 할 수 있을까
누가 능히 가만히 있던 것을 움직여 점점 생동하게 할 수 있을까
도를 체득한 사람은
채워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채워지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멸망하지 않고 영원히 새로워진다
<임채우 역>
15 도를 얻은 이는
옛날에 도를 얻은 이는
미묘하고 그윽히 통달하여,
그 깊이를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지만 억지로 말해보자면
마치 살언 겨울강을 건너듯 조심하고,
사방에서 쳐들어오는 적을 경계하듯 신중하며,
찾아온 손님처럼 엄숙하다가도,
얼음이 녹듯이 푸근하고,
다듬지 않은 통나무처럼 질박하며,
계곡같이 비고,
혼탁한 듯 세속에 섞여 있다.
누가 능히 혼탁하게 섞여 있음으로써 천천히 맑게 할 수 있으며,
누가 능히 가만히 놓아둠으로써 서서히 살아나게 할 수 있겠는가?
이 도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그득 채우려고 하지 않으니,
무릇 채우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덮어둘 뿐 새로 만들지 않는다.
<James Legge 역>
1. The skilful masters (of the Tao) in old times, with a subtle and exquisite penetration, comprehended its mysteries, and were deep (also) so as to elude men's knowledge. As they were thus beyond men's knowledge, I will make an effort to describe of what sort they appeared to be.
2. Shrinking looked they like those who wade through a stream in winter; irresolute like those who are afraid of all around them; grave like a guest (in awe of his host); evanescent like ice that is melting away; unpretentious like wood that has not been fashioned into anything; vacant like a valley, and dull like muddy water.
3. Who can (make) the muddy water (clear)? Let it be still, and it will gradually become clear. Who can secure the condition of rest? Let movement go on, and the condition of rest will gradually arise.
4. They who preserve this method of the Tao do not wish to be full (of themselves). It is through their not being full of themselves that they can afford to seem worn and not appear new and complete.
<Lin Derek 역>
The Tao masters of antiquity
Subtle wonders through mystery
Depths that cannot be discerned
Because one cannot discern them
Therefore one is forced to describe the appearance
Hesitant, like crossing a wintry river
Cautious, like fearing four neighbors
Solemn, like a guest
Loose, like ice about to melt
Genuine, like plain wood
Open, like a valley
Opaque, like muddy water
Who can be muddled yet desist
In stillness gradually become clear?
Who can be serene yet persist
In motion gradually come alive?
One who holds this Tao does not wish to be overfilled
Because one is not overfilled
Therefore one can preserve and not create anew
<장 도연 역>
제15장 道人은 신비로운 통찰력이 있어서 그 깊이를 알 수 없다
옛날에 道를 터득한 선인들은
견해가 미묘하고 통찰력이 있어서
그 마음의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 모습을 가까스로
형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마치 겨울에 시냇물을 건너듯 신중하고
사방을 경계하는 모습은 적을 두려워하듯 하며
경건하고 엄숙한 모습은 초대받은 손님과 같고
순박한 마음은 마치 봄날에 얼음 녹듯 따스하며
산중의 텅 빈 골짜기에서
이것저것 구별하지 않고 포용하는 자세는
마치 흙탕물과 같다.
누가 능히 혼탁한 세월을 평정하여
마음을 물처럼 맑게 할 수 있으며
누가 능히 장구히 움직여
서서히 평온하게 살릴 수 있겠는가?
도를 터득한 사람들은
가득 채우려 하지 않는다.
가득 채우려 하지 않기에
낡아지지 않아 새로이 이룰 필요가 없다.
<왕필 노자주 / 임채우 역>
옛날에 도를 얻은 이는 미묘하고 그윽히 통달했으니, 깊이를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으므로 억지로 형용하자면 마치 겨울에 개울을 건널 때 머뭇거리는 것과 같고,
古之善爲士者, 微妙玄通, 深不可識. 夫唯不可識, 故强爲之容. 豫焉若冬涉川,
<주석>
‘선위사자’(善爲士者)는 『백서노자』에는 ‘선위도자’(善爲道者)로 되어 있다. 부혁본(傅奕本)에는 백서본과 동일하게 되어 있고, 하상공주(河上公注)에도 ‘득도지군’(得道之君)으로 설명한 것으로 보면 원본이 도(道)였을 가능성이 높다.
겨울에 개울을 건널 때에 망설이면서 건너려는 것 같기도 하고 건너지 않으려는 것 같기도 하여, 그 사정을 알 수 없는 모습이다.
冬之涉川, 豫然若欲度, 若不欲度, 其情不可得見之貌也.
사방의 침입을 두려워하는 듯 신중하고,
猶兮若畏四鄰,
사방에서 중앙의 군주를 함께 공격해오니 신중하게 경계하면서 어느 쪽을 향해서 상대할지 모른다. 뛰어난 덕을 지닌 사람은 낌새를 챌 수 없고, 의향을 알 수가 없음이 또한 이와 같다.
四隣合攻中央之主, 猶然不知所趣向者也. 上德之人, 其端兆不可覩, [意]趣不可見, 亦猶此也.
그 모습이 손님처럼 엄숙하며, 얼음이 녹듯이 풀어지고, 다듬지 않은 통나무처럼 진실하며, 계곡같이 비고, 탁한 듯이 섞여 있다.
<주석>
장석창과 백서본을 따라 ‘용’(容)을 ‘객’(客)의 오자로 보았다.
儼兮其若容, 渙兮若氷之將釋, 敦兮其若樸, 曠兮其若谷, 混兮其若濁.
<주석>
‘용’(容)이 『백서노자』에는 ‘객’(客)으로 되어 있다. 장석창(蔣錫昌)은 형체가 비슷해서 ‘객’(客)자를 ‘용’(容)자로 잘못 쓰게 된 것이며, ‘객’(客)은 그 뒤의 ‘석’(釋)ㆍ‘박’(樸)ㆍ‘곡’(谷)ㆍ‘탁’(濁)과 압운(押韻)이 된다고 했다.
무릇 여기서 무엇무엇 같다고 한 것은 다 그 모습을 나타내거나 이름 지을 수 없음을 말한다.
凡此諸若, 皆言其容象不可得而形名也.
누가 능히 탁함으로써 고요히 해서 차츰차츰 맑게 할 수 있으며(혹은 탁함을 고요함으로 서서히 맑히며), 누가 편안함으로써 계속 움직여서 서서히 살릴 수 있겠는가?
孰能濁以靜之徐淸? 孰能安以久動之徐生?
저 어둠으로 사물을 다스리면 밝아지게 되고, 혼탁함으로써 사물을 고요히 가라앉히면 맑아지며, 편안함으로써 사물을 움직이게 하면 되살아나게 된다. 이는 스스로 그러한 도이다. ‘누가 할 수 있겠는가’라는 것은 그 어려움을 말한 것이며, ‘서서히’(徐)란 세밀하고 신중한 것이다.
<주석>
즉 하나하나 잘잘못을 따지고 밝히는 방식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척 덮어두고 가만가만 다스리고, 갑자기 맑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 탁하게 뒤섞인 채 천천히 가라앉히는 방식으로 맑게 해나간다는 말이다.
夫晦以理物 則得明, 濁以靜物 則得淸, 安以動物 則得生. 此自然之道也. 孰能者, 言其難也. 徐者, 詳愼也.
<주석>
『주역』 「명이ㆍ대상전」(明夷ㆍ大象傳)에 “어둠을 이용해서 밝게 한다”(用晦以明)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이 도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그득 채우려고 하지 않으니,
保此道者不欲盈,
채우면 반드시 넘치게 된다.
盈必溢也.
무릇 채우지 않기 때문에 능히 덮어둘 뿐(혹은 해지더라도) 새로 만들지 않는다.
夫唯不盈, 故能蔽不新成.
<주석>
“夫唯不盈, 故能蔽不新成”이 『백서노자』에는 “夫唯不欲盈, 故能==/不成”으로 되어 있고, 초간본에는 이 부분이 삭제되어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하상공(河上公)은 이 구절을 그대로 받아들여 “교만하지 않은 이는 능히 해진 것을 받아들이고 새로 짓지 않는다. 해진 것은 빛나고 번쩍거림이 가려진 것이요, 새로 지은 것은 공명을 귀히 여긴다”라고 주석했다. 그러나 이 구절에는 ‘폐’(蔽)를 ‘폐’(弊) 혹은 ‘폐’(敝)로 보아야 한다는 설이 있고, ‘불’(不)을 ‘복’(復)으로 보아야 한다거나 혹은 빼야 한다는 등 이설이 분분하다. 장석창은 왕필이나 하상공의 주석을 참고하여 ‘신성’(新成)이란 64장의 ‘기성’(幾成)의 뜻과 비슷하고, 41장의 대기만성(大器晩成)이나 45장의 대성약결(大成若缺)의 의미와 상반되는 것으로 ‘마구 만들어낸다’ 혹은 ‘조급하게 짓는다’는 의미로서 전체적으로 “성인은 교만하지 않아서 지혜를 감춘 채 억지로 마구 이루려 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한다.(장석창, 『노자교고』(老子校詁), 97∼99쪽 참조)
폐(蔽)는 덮는다는 뜻이다.
蔽, 覆蓋也
<Stefan Stenudd 역>
Ancient masters of excellence had a subtle essence,
And a depth too profound to comprehend.
Because they were impossible to comprehend,
I will try to describe them by their appearance.
Cautious, like crossing a river in the winter.
Wary, as if surrounded by strangers.
Dignified, like a guest.
Yielding, like ice about to melt.
Simple, like uncarved wood.
Open, like a valley.
Obscure, like muddy waters.
Who can wait in stillness while the mud settles?
Who can rest until the moment of action?
He who holds on to the Way seeks no excess.
Since he lacks excess,
He can grow old in no need to be renewed.
Ancient Excellence
In the Eastern tradition as well as many other cultures around the world, the past has been regarded as superior to the present. The ancestors were supposed to be wiser and nobler, their society more advanced, and their lives richer in every way.
Our present Western style society is practically unique in having the reversed perspective, which probably started with the scientific revolution in the 17 th century. Through history, the most common sentiment has been that the past was superior, the more distant the better, and the future had little more to offer than decay.
Lao Tzu also supported this view, as can be seen in this chapter. He believed that ancient man was closer to Tao, the Way, and therefore lived a wiser, more harmonious life. As people gradually deviated from Tao, their lives became more chaotic and burdened. He wanted his readers to return to Tao, thereby recreating the blessed world of old.
His perspective was no mystery, considering that the most precious and impressive things around him were preserved from past times. So were the palaces and most glorious works of art, so was agriculture and other skills to make life pleasant, and so were the books written with the most profound wisdom and poetic refinement.
Anyone in the days of Lao Tzu would marvel at the heritage from past centuries, and see few equally great contributions by his own generation. It made sense to regard the past as the golden era.
Imitate the Past
Still, Lao Tzu’s intent is not to glorify the past, but to teach the present. He wants his readers to learn from the example of the ancient sages. We may not comprehend their wisdom fully, but when copying their behavior we learn by doing. Behaving wisely promotes wisdom.
Aristotle would have called it mimesis , imitation. The ancient Greeks were aware of human learning largely being done by imitation. Children imitate their parents. This is how most of the human knowledge and experience is passed on.
So, what is the behavior of the ancient sages that we should copy? In this and other chapters, Lao Tzu makes it clear: The role model is practically the reverse of splendid royalty. Instead of luxury and elevation, the sage should seek a humble place, simplicity, and calm.
The sage should rather wait than spring into action, not to make shortsighted mistakes. He should be modest, not to provoke envy. He should be thoughtful and cautious even about things that others regard as insignificant. The stronger his power, the softer his use of it.
This way, the sage is close to the nature of Tao, thereby understanding its workings. It’s the Way of living close to nature, or more precisely: close to the natural.
These days, we seem to seek the very opposite. We long for fame and glory, but forget that the more this is bestowed on us, the less the chances are that we can prove worthy of it. Others will not praise us in their hearts, but say: “That could just as well be me.”
A society that glorifies some of its citizens promotes envy, competition, and calamity – unfortunately also stupidity. If we make superficial things our quests, we only find what we searched for, which is superficiality. To reach the profound, we must do away with distractions of that kind. Otherwise the mud never settles, and we never see clearly.
The ancient masters, according to Lao Tzu, knew to renounce nonsense, until only the essence remained. Nowadays, we are probably farther from that than ever before. In that sense, Lao Tzu might be right about the golden era of mankind being in the distant past.
<사봉 역>
古之善爲士者(고지선위사자)
옛날에 도를 잘 깨달은 사람은
微妙玄通(미묘현통)
미묘하고 현통하여
深不可識(심불가식)
그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夫唯不可識(부유불가식)
비록 제대로 알 수는 없지만
故强爲之容(고강위지용)
억지로라도 그 모습을 그려보면
豫兮若冬涉川(예혜약동섭천)
조심스럽기는 얼어붙은 겨울 강을 건너는 것 같고
猶兮若畏四隣(유혜약외사린)
신중하기는 사방을 경계하는 것 같다.
儼兮其若客(엄혜기약객)
몸가짐은 엄숙하여 초대받은 손님 같고,
渙兮若氷之將釋(환혜약빙지장석)
집착하지 않기는 녹아내리는 봄날의 얼음 같다.
敦兮其若樸(돈혜기약박)
순박한 모습은 나무 등걸처럼 투박하고,
曠兮其若谷(광혜기약곡)
비운 마음은 깊은 계곡 같다.
混兮其若濁(혼혜기약탁)
서로 어울리기는 흙탕물 같아
孰能濁以靜之徐淸(숙능탁이정지서철)
누구든 탁한 것을 가라앉혀 맑게 할 수 있고,
孰能安人動之徐生(숙능안이동지서생)
누구든 가만히 있는 것을 흔들어서 되살아나게 할 수 있다.
保此道者(보차도자)
이 도를 깨달은 사람은
不欲盈(불욕영)
채우고자 하지 않으니
夫唯不盈(부차도자)
절대 가득 채우는 일이 없다.
故能蔽而新成(고능폐이신성)
능히 낡은 것을 감수할 뿐 새롭게 만들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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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경 역>
옛날에 도를 잘 행한 사람은
미묘하고 그윽히 통달했으니
깊고 깊어 기록할 수 없었다.
오직 기록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억지로 그를 형용하니
머뭇거림은 마치 겨울에 강을 건너는 것 같고
망설임은 마치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엄숙하기는 마치 손님이 된 듯하고
넉넉하기는 마치 얼음이 녹는 듯하며
질박하고 두텁기는 마치 통나무와 같고
흐릿하기는 마치 탁한 물과 같고
드넓기는 마치 골짜기와 같다고 한다
혼탁하면서도 고요히 하여 서서히 맑아지며
편안해하면서도 움직여서 서서히 살아나니
이런 도를 간직한 사람은
채워짐을 원하지 않는다
오직 채워짐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가리고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古之善爲道者, 微妙玄達, 深不可志. 夫唯不可志, 故强爲之容曰: 與呵其若冬涉水, 猶呵其若畏四隣, 嚴呵其若客, 渙呵其若凌釋, 敦呵其若樸, 混呵其若濁, 曠呵其若谷. 濁而靜之徐淸, 安以動之徐生. 保此道者, 不欲盈. 夫唯不欲盈, 是以能弊而不成.
[네이버 지식백과] 옛날에 도를 잘 행한 사람은 미묘하고 그윽히 통달했으니 [古之善爲道者, 微妙玄達] (노자(삶의 기술, 늙은이의 노래), 2003. 6. 30., 김홍경)
<Lin Yu Tang 역>
The wise ones of old had subtle wisdom and depth of
understanding,
So profound that they could not be understood.
And because they could not be understood,
Perforce must they be so described:
Cautious, like crossing a wintry stream,
Irresolute, like one fearing danger all around,
Grave, like one acting as guest.
Self-effacing, like ice beginning to melt.
Genuine, like a piece of undressed wood,
Open-minded, like a valley,
And mixing freely, like murky water.
Who can find repose in a muddy world?
By lying still, it becomes clear.
Who can maintain his calm for long?
By activity, it comes back to life.
He who embraces this Tao
Guards against being over-full.
Because he guards against being over-full
He is beyond wearing out and renew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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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章
다만 선인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번역 차이가 적지 않은데
이는 한문문법 때문도 아니고 형이상학적인 이유도 아니고
한자가 어려운 때문도 아닌 듯 하다
예를 들어, 선인을 형용함에 있어 흙탕물 같이 탁하다 하는 인간의 어떤 면모에 대해서 이견이 생기는 것이다
한겨울 개울 건너는 듯한 면모, 골짜기 같은 면모, 얼음 녹아내리는 듯한 면모, 주변을 두려워하는 면모, 손님같은 면모에 대하여
비록 그를 뜻하는 한자가 각기 있음에도 그 차이가 다양하다
노자의 우주관이 나쁘게 얘기하면 좀 카이오스적이고
노자의 가치관이 탈공자적, 탈가치관적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분명할 것이니
노자의 선을 행하는 사람 역시
역시 그러한 테두리에서 그려질 것이다
무위적 무지적 자연적 복귀적인 무어랄까 주변인적인 어떤 면모
마지막 자구에서는 그 정도가 좀 심한 듯
蔽(폐)라는 글자를 두고, 1) 유지한다 2) 낡음을 두고 3) 낡음을 없애고 그 외에도 다양하고
이렇다 보니
故能蔽不新成(고능폐불신성) 자구 전체를 두고서는, 그야말로 중구난방 오리무중
우리가 그리 높이 받드는 이 책에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게 이렇게 많았나 하는 게 놀라울 뿐이다
누가 맞고 틀리고를 따질 것이 아니라 이런 우왕좌왕을 넘어서는 것이 급선무인데
용빼는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니
어쨌든,
계속 음미하도록 하자
谷 도덕경 비교
(6장)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15장) 故强爲之容, 豫焉若冬涉川, 猶兮若畏四隣, 儼兮其若容, 渙兮若氷之將釋, 敦兮其若樸, 曠兮其若谷, 混兮其若濁
(28장) 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樸
(32장) 譬道之在天下, 猶川谷之於江海
(39장) 昔之得一者, 天得一以淸, 地得一以寧, 神得一以靈, 谷得一以盈, 萬物得一以生, 侯王得一以爲天下貞 / 谷無以盈, 將恐竭
(41장) 故建言有之, 明道若昧, 進道若退, 夷道若纇, 上德若谷, 大白若辱, 廣德若不足, 建德若偸, 質眞若渝, 大方無隅, 大器晩成, 大音希聲, 大象無形
(66장) 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 以其善下之, 故能爲百谷王
生 도덕경 비교
(2장)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較,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 / 生而不有, 爲而不恃, 功成而弗居, 夫唯弗居, 是以不去
(7장) 以其不自生, 故能長生
(10장) 生之畜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15장) 孰能濁以靜之徐淸, 孰能安以久動之徐生
(25장) 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료兮,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30장) 以道佐人主者, 不以兵强天下, 其事好還, 師之所處, 荊棘生焉, 大軍之後, 必有凶年
(34장) 大道氾兮, 其可左右, 萬物恃之而生而不辭, 功成不名有, 衣養萬物而不爲主, 常無欲, 可名於小, 萬物歸焉, 而不爲主, 可名爲大, 以其終不自爲大, 故能成其大
(39장) 昔之得一者, 天得一以淸, 地得一以寧, 神得一以靈, 谷得一以盈, 萬物得一以生, 侯王得一以爲天下貞 / 萬物無以生, 將恐滅
(40장)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46장) 天下有道, 卻走馬以糞, 天下無道, 戎馬生於郊
(47장) 出生入死 生之徒十有三, 死之徒十有三, 人之生, 動之死地, 亦十有三, 夫何故, 以其生生之厚
(50장) 蓋聞善攝生者, 陸行不遇시虎, 入軍不被甲兵, 시無所投其角, 虎無所措其爪, 兵無所容其刃, 夫何故, 以其無死地.
(51장) 道生之, 德畜之 /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元德
(55장) 益生曰祥, 心使氣曰强, 物壯則老, 謂之不道, 不道早已
(59장) 是謂深根固柢, 長生久視之道
(64장) 合抱之木, 生於毫末
(72장) 民不畏威, 則大威至, 無押其所居, 無厭其所生
(75장) 民之輕死, 以其上求生之厚, 是以輕死, 夫唯無以生爲者, 是賢於貴生
(76장) 人之生也柔弱, 其死也堅强, 萬物草木之生也柔脆, 其死也枯槁, 故堅强者死之徒, 柔弱者生之徒, 是以兵强則不勝, 木强則兵, 强大處下, 柔弱處上
樸 도덕경 비교
(15장) 敦兮其若樸
(19장) 故令有所屬, 見素抱樸, 少私寡欲
(28장) 復歸於樸, 樸散則爲器. 聖人用之, 則爲官長, 故大制不割
(32장) 道常無名, 樸雖小, 天下莫能臣也
(37장) 吾將鎭之以無名之樸, 無名之樸, 夫亦將無欲
(57장) 我無欲而民自樸
盈 도덕경 비교
(4장) 道沖而用之, 或不盈
(9장) 持而盈之, 不如其已
(15장) 保此道者, 不欲盈, 夫唯不盈, 故能蔽不新成
(22장) 曲則全, 枉則直, 窪則盈, 幣則新, 少則得, 多則惑
(39장) 天得一以淸, 地得一以寧, 神得一以靈, 谷得一以盈, 萬物得一以生, 侯王得一以爲天下貞 / 谷無以盈, 將恐竭
(45장) 大盈若沖, 其用不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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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이 명권 http://cafe.daum.net/koreanashram/8IoM/22
15장, 탁이정(濁以靜)과 맑히는 영성
1) 때로는 탁 트인 계곡처럼, 때로는 흙탕물처럼
예부터 훌륭한 선비(道人)는 미묘하고 현통하여 그 깊이를 알 수 없다.
대저 오로지 그 깊이를 알 수 없으니 억지로 그 모습을 다음과 같이 형용한다.
머뭇거리누나,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것 같이
주춤거리누나,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는 것 같이
정중하도다, 손님과 같이
흩어지누나, 얼음이 막 녹아 없어지듯이
진실하구나, 그것이 질박한 통나무처럼
탁 트였도다, 그것이 계곡과 같이
혼탁하여라, 그것이 흙탕물처럼.
古之善爲士子, 微妙玄通, 深不可識, 夫唯不可識, 故强爲之容.
豫焉, 若冬涉川, 猶兮, 若畏四隣, 儼兮, 其若客, 渙兮, 若冰之將釋, 敦兮, 其若樸, 曠兮, 其若谷, 混兮, 其若濁.
깊은 진리의 세계는 외모로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오히려 외모로 사물이나 사건을 판단하다가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괜한 오해를 사기도 하여 인간관계가 서먹서먹 해지는 경우도 왕왕 있다. 반듯한 인간관계는 군더더기가 없고 깔끔해서 좋다. 그러나 자칫 사물 사건을 너무 매끄럽게 처리하다 보면, 인관관계에서 정서적인 감정적 손실을 가져오기 쉽다. 그런 점에서 실리를 좆아 약삭빠르고 민첩하게 생활하는 현대인의 경우보다, 도인(道人)의 행동은 무엇인가 어리석고 둔탁해 보이기까지 한다.
도인의 행동은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가? 앞서 본 바와 같이, 머뭇거리거나 주춤거리고, 정중하면서도 통나무 같이 진실하고, 얼음이 녹아 흩어지듯 경쾌하기도 하고 탁 트인 계곡처럼 시원하기도 하면서도 때로는 흙탕물처럼 탁하기도 하지만 끝내 흙탕물을 서서히 맑히고 만다. 머뭇거리거나 주춤거린다는 뜻은 무엇인가? 매사에 신중하여 조심스런 면이 있다는 뜻도 되겠지만, 무슨 일에건 잘난체하고 선뜻 나서지 않는다는 일면도 있을 것이다. 머뭇거리고 주춤거리는 것이 일을 앞에 두고 물러서거나 회피한다는 뜻은 더욱 아니다. 유교적으로 표현하자면, 예(禮)에 해당하는 바, 사양지심(辭讓之心) 정도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도(道)의 행위가 이렇게 소극적일 수만은 없다. 손님처럼 정중하게 행동 할뿐 아니라, 얼음이 녹듯 막힘이 없이 행동한다. 이른바 활연관통(豁然貫通)한 삶이기에 그 모습이 탁 트인 계곡같이 넓고 훤하다. 그런가하면 도의 모습은 도무지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현묘하기에 때로는 그 모습이 흙탕물 속에 감추어져 있기도 한다. 오히려 흙탕물과 하나가 되니, 도의 모습은 도대체 그 종적을 알아보기가 힘든 것이다. 도가 흙탕물처럼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우리의 상식을 뛰어 넘는 듯 하는 문제지만, 이 문제는 앞선 4장에서 본 바와 같이, ‘빛을 누그러뜨리고 먼지와 하나가 되는’ 이른바 ‘화광동진(和光同塵)’의 경우와도 같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도는 먼지와 하나가 되면서도 먼지 자체가 아니듯이, 결코 도는 흙탕물 그 자체는 아니다. 오히려 흙탕물에 안주하지 않고 흙탕물을 맑힌다.
그리스도교적으로 말하자면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가 진흙과 같은 인간들과 함께 거하며 살았지만 진흙 그 자체는 아니었던 바와 같다. 이는 또 불교에서 말하는 연꽃의 비유와도 맥을 같이한다. 연꽃이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연꽃이 진흙과 동일시 될 수 없는 이치와도 같다.
2) 탁이정(濁以靜)과 안이동(安以動)의 세계
누가 능히 혼탁한 것을(혹은 탁함으로써) 고요이하여 서서히 맑게 할 수 있겠는가?
누가 능히 가만히 있는 것을(혹은 편안함으로써) 오래 움직여 생동하게 할 수 있겠는가?
이 도(道)를 간직한 사람은 채우려고 하지 않는다.
대저 오로지 채우려고 하지 않기에
능히 자기를 은폐하면서 새롭게 이루려 하지 않는다.
孰能濁以靜之徐淸. 孰能安以久動之徐生. 保此道者不欲盈, 夫唯不盈, 故能蔽不新成.
탁이정(濁以靜)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가 가능하다. 하나는 ‘탁함(濁)’을 수단으로 보아 내리 읽어 가는 식으로 ‘탁함으로써’ 고요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탁함’을 목적으로 보아 뒤에서 읽어 오는 식으로 ‘탁함을’ 고요히 함으로써 맑게 한다는 것이다. 어느 것으로도 해석이 무방하지만, 전자는 보다 적극적인 의미가 있다. 이를테면 스스로 탁함을 택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 가야한다는 논리라고도 할까? 혼탁한 세계를 맑히려면 혼탁한 세계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깨끗한 옷을 입어도 먼지와 흙탕물에 더러워지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언제나 더러운 가운데서도 그 더러움을 맑혀 간다는 점이 도의 탁월함이다. 역사 속의 모든 위대한 영성의 사람은 진흙 속에서 꽃을 피워 낸 사람들이다. 그 꽃은 죽음과 증오와 전쟁의 땅에서 생명과 사랑과 평화의 꽃으로 피어난다.
‘안이동(安以動)’에 대한 해석 또한 두 가지로 가능하다. 하나는 ‘편안함(安)’을 수단으로 보아 ‘편안히 함으로써’ 움직이게 하여 생기를 불어 넣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편안함’ 또는 ‘가만히 있는 것(安)’을 목적어로 보아 오래 움직이게 함으로써(久動) 서서히 생기를 불어 넣는다는 뜻이 있다. 아무래도 전자의 해석이 보다 적극적인 듯싶다. 굳어진 마음을 생동하게 하는 방편이 ‘편안히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유약한 것이 강하고 단단한 것을 이긴다(柔弱勝剛强)는 노자의 교훈과 맥락을 같이 함을 알 수 있다.
이같이 매사에 편안함을 기조로 하여 살아가는 사람은 욕심이 앞서지 않기에 사리사욕을 내세우지도 않고,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하지 않기에(夫唯不盈) 오히려 편안히 자신을 은폐하면서 새롭게 이루려고 욕심 부리지도 않는다(故能蔽不新成). 자신을 은폐한다는 것은 나서지 않는 겸손을 말한다. 새롭게 이루려 하지 않는다(不新成) 함은 일체의 창조적 행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려고 하지 않지만 하지 않음이 없는’ 즉,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의 차원이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성서에서 ‘해아래 새것이 없다’는 전도자(傳道者)의 말처럼, 하나님의 창조의 행위 외의 일체는 사실 ‘발견(發見)’에 불과하다. 인간이 달나라에 가는 것도 하나의 발견의 연속에 있다. 발견은 인간을 겸손하게 한다. 발견을 통해 놀람이 있고, 놀람을 통해 생명력이 충만해진다. 그러므로 ‘안이동’의 세계는 발견의 세계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도 발견에 있다. 가만히 앉아서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려보라. 은혜를 발견하는 만큼 생명이 충일할 것이다.
스스로 탁류(濁流)처럼 되어, 탁류 속에 거하지만 끝내 탁류가 되지 않고 맑은 샘이 되게 하는 것이나, 끊임없이 지칠 줄 모르게 인내하면서 편암함을 가지고 굳고 완고한 세대를 변화시켜 서서히 생기를 불어 넣을 수 있는 것(安以久動之徐生)은 오직 스스로 탁류 속에 들어가 탁류를 맑히고자 하는 맑은 영성의 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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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之善爲道者, 微妙玄達] (노자(삶의 기술, 늙은이의 노래), 2003. 6. 30., 김홍경)
옛날에 도를 잘 행한 사람은 미묘하고 그윽히 통달했으니 깊고 깊어 기록할 수 없었다
古之善爲道者, 微妙玄達, 深不可志
부혁본을 제외한 모든 통행본에는 '도(道)'가 '사(士)'로 되어 있고, 초간문도 통행본과 같다. '사'일 경우에도 도를 행하는 선비를 가리키므로 의미는 같다. '달(達)'은 모든 통행본에는 '통(通)'으로 되어 있다. 백서와 초간문은 모두 '달'이다. 이 두 글자의 뜻도 같다. '지(志)'는 범응원본(測)을 제외한 모든 통행본에 '지(識)'로 되어 있다. 백서와 초간문은 모두 '지(志: 기록하다)'이다. 통행본의 글자를 기록한다는 의미로 보아 '지'로 읽을지 아니면 안다는 뜻으로 보아 '식'으로 읽을지 논란이 있었는데, 백서 및 초간문을 참고하면 '지'다.
그러므로 초간문은 어떤 경우에는 백서와 같고 통행본과 다르며, 어떤 경우에는 백서와 다르고 통행본과 같다. 잠정적으로 초간문을 백서보다 앞선 자료라고 판단한다면 통행본 『노자』가 나오기까지는 우선 초간문 같은 자료를 『노자』로 만드는 대대적인 편집 작업이 있었고, 그 초벌 『노자』를 윤문해서 좀더 세련되게 만드는 과정 그리고 『노자』가 전파되면서 지역적 특성이나 도사 집단 같은 특정 집단의 필요 또는 전파자 개인의 취향 등에 따라 『노자』가 조금씩 변형되는 과정이 있었다. 이 변화가 일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초간문과 백서 그리고 통행본 『노자』의 상관 관계도 일정하지 않다. 물론 초간문은 전체적으로 통행본보다 백서에 훨씬 가깝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초간문과 통행본이 서로 같은데 백서만 다른 경우, 백서와 통행본의 차이가 지금 문장에서처럼 가벼운 것이라면 크게 문제가 안 된다. 곧 백서의 '도(道)'라는 글자는 『노자』를 손질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누구에 의해서든 '사(士)'라는 글자로 바뀔 수 있다. 왜냐하면 해설 앞부분에 인용한 『여씨춘추』의 글에서도 그렇듯이 중국 고전에는 어떠어떠한 선비〔士〕는 어떻다는 식의 서술 또는 묘사가 많이 등장하고, 지금 『노자』도 역시 그런 모범적인 인격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초간문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도 '도'라는 글자는 '사'라는 글자로 바뀔 수 있다.
하지만 통행본이 백서와는 다르고 초간문과 같은데, 그 동일함이 초간문을 참고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가령 밑에 나오는 "혼탁하면서도 고요히 하여 서서히 맑아지며, 편안해하면서도 움직여서 서서히 살아난다"는 문장의 경우가 그렇다. 초간문에는 이 문장 앞에 "누가 능히……할 수 있겠는가〔孰能〕"라는 말이 붙어 있다. 통행본의 경우에도 고환본 등 일부 판본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판본에 이 말이 붙어 있다. 반면 백서 갑·을본에는 모두 이 말이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백서의 '도'가 '사'로 바뀌는 경우와는 다르다. 한마디로 무언가를 참고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문장이 변형되지는 않는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한 조건은 여러 가지다. 우선 아주 일찍부터 여러 『노자』 판본이 있었고, 백서는 그 중의 하나라는 가정이다. 그렇다면 통행본 중 어떤 것은 백서와는 다른 판본을 참고하여 확정되었을 것이다. 초간문, 백서, 통행본의 동이 문제는 대단히 복잡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연구자는 이렇게 생각함으로써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는 맹점이 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일찍부터 존재했다는 여러 개의 다른 판본은 또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다. 『노자』를 동시에 여러 사람이 만들었다는 허황된 상상을 하지 않는다면 최초의 『노자』는 하나다. 이 하나의 『노자』가 여러 다른 판본의 『노자』로 만들어졌다면 그 계기가 있을 것이다. 그 계기는 무엇인가?
이 질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금 우리는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최초의 『노자』가 어떻게 여러 개의 초기 판본으로 갈라졌는가 하는 질문은 왜 통행본은 경우에 따라 백서와 다른가 하는 질문과 그 내용 면에서 완전히 같다. 통행본이 백서와는 다른 어떤 자료에 영향받아 백서와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만약 그런 게 있다면 백서와 다른 어떤 초기의 판본은 또 어떤 자료, 당연히 백서와는 다른 자료에 영향받아 백서와 달라진다. 곧 아주 일찍부터 여러 『노자』 판본이 있었기 때문에 백서와 통행본은 경우에 따라 서로 다르다는 견해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좀더 앞선 시기의 문제로 환원하고 있을 뿐이다.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의 『노자』가 여러 판본의 『노자』로 갈라질 때 상호 간의 차이를 낳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하게 된 계기 또는 자료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판본이 달랐다는 것은 '거지 논리'이고, 중요한 것은 그 자료가 무엇인가를 밝히는 일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이제까지 우리의 증거는 최초의 『노자』인 백서와 『노자』의 원시 자료인 초간문밖에 없다. 나는 서문에서 백서 시대에는 백서 외의 다른 판본이 없다고 주장했다. 만약 그렇다면 초간문 같은 자료가 백서 이후에도 계속 유포되었고, 백서 『노자』를 변형시키는 과정에서 계속 참고되었다고 보는 수밖에 없다. 아니면 초간문의 원형이 되는 또 다른 자료, 가령 전대의 어록집 같은 것이 있어서 그것이 전해져 내려왔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노자』를 편집하는 데 사용되었던 자료가 『노자』가 만들어진 이후에도 전승되어서 여러 다른 판본의 『노자』가 만들어지는 데 개입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자료 중에 어떤 것이 있는지 그 전모를 알지 못한다. 아마도 초간문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초간문으로도 해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제시할 수 있는 증거는 초간문밖에 없다. 초간문은 그런 자료 중의 하나이거나 그와 관련 있는 자료다. 증거를 놓고 볼 때는 이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어떤 이는 백서가 초간문 같은 자료에 간섭되어 여러 개의 판본으로 갈라져 나갔다는 설명은 받아들이지 않고, 최초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노자』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자료에 간섭되어 백서를 비롯한 여러 개의 판본으로 갈라져 나왔다는 설명만을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둘은 결국 같은 설명이다. 모두 원본 『노자』가 어떤 자료에 간섭되어 여러 개의 『노자』로 갈라졌다고 말한다. 차이가 있다면 후자의 설명이 『노자』의 연대를 좀더 끌어올린다는 것뿐이다.
소철에 따르면 "조잡함이 다한 뒤에 은미해지고〔微〕, 은미함이 극에 달하면 오묘해지며〔妙〕, 오묘함이 극에 달하면 그윽해지니〔玄〕 그윽하면 통하지 않는 것이 없다〔通: 達〕." 논리적인 설명은 아니지만 참고할 수 있겠다.
오직 기록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억지로 그를 형용하니
夫唯不可志, 故强爲之容曰
"오직 기록할 수 없었기 때문에"라는 구절은 초간문에는 없다. 반면 모든 통행본에는 백서와 마찬가지로 이 구절이 있다.
『노자』에서 '부유(夫唯)'는 앞의 명제에 대한 부연 설명을 이끌면서 등장하는 허두이다. '시이(是以)'라든가 '고(故)' 등과 같은 역할이다. 이런 연결어를 사용하면 두 문장이 마치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데, 그렇게 보이려고 하는 의도가 명확히 드러나기 때문에 지금은 이런 접속사로 연결된 두 문장은 원래 다른 문장이었다고 본다.
마서륜에 따르면 '용(容)'은 '송(頌)'의 옛날 글자를 줄여 쓴 글자로 서로 통한다. 통행본에는 모두 '용(容)'으로 되어 있지만 초간문에서는 '송(頌)'이다. 그러므로 마서륜의 견해가 옳았던 셈이다. 이런 경우는 글자가 시대의 추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한 것이다.
머뭇거림은 마치 겨울에 강을 건너는 것 같고, 망설임은 마치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與呵其若冬涉水, 猶呵其若畏四隣
'여(與)'는 대부분 '예(豫)'로 되어 있다. '유예(猶豫)'는 머뭇거린다 또는 망설인다는 뜻의 옛말인데, 이것이 기본형이고, '유여(猶與)' '여유(與猶)' '예유(豫猶)' '이유(夷猶)' 등 같은 뜻을 지닌 여러 형태의 성어(成語)가 있다.
여기에서 '예(豫: 與)'나 '유(猶)'는 모두 짐승을 가리킨다는 설이 있다. 그럴 경우 '예'는 코끼리다. 여기에는 이설이 없다. 그렇지만 '유'는 개를 가리킨다는 설과 원숭이를 가리킨다는 설이 있다. 『안씨가훈』 「서증」은 이 두 가지 설을 모두 소개한다. 『시자(尸子)』에 따르면 다섯 자 되는 개를 '유'라고 하고, 『설문』에서도 농서 지방에서는 개를 '유'라고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서증」은 사람이 개를 데리고 어디를 갈 때 개는 앞에 먼저 가서 사람을 기다리다가 또 뒤로 와서 사람을 맞이하고, 또다시 앞으로 가고 하는 일을 반복하기 때문에 그 모습이 머뭇거리는 것 같아서 '유'가 머뭇거린다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반면 「서증」은 『이아』에 의거하여 '유'는 나무를 잘 타는 짐승으로 사람 소리를 들으면 나무를 오르락내리락 하기 때문에 그 모습이 머뭇거리는 것 같아서 머뭇거린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는 설도 소개한다. 이런 설과는 달리 왕념손은 이것이 동물 이름이 아니라 음으로 연용되는 말이라고 하였다(『독서잡지』). 하지만 본문에서는 이 두 글자를 연용하지 않고 분리하여 사용하고 있으므로 코끼리와 개(원숭이)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옳은 듯하다. 옛주도 거의 모두 동물 이름으로 보고 있다. 그럴 경우 눈에 띄는 것은 '유'가 농서 지방, 곧 진나라 지방의 사투리라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마치 겨울에 강을 건너는 것 같다"는 말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말은 『시』 「소아·소민」의 "전전긍긍하여 마치 깊은 연못가에 이른 듯, 마치 엷은 얼음을 밟고 있는 듯한다"는 말을 연상시킨다. 『주역』의 수(需)·동인(同人)·고(蠱)·대축(大畜)·이(頤)·익(益)·환(渙)·중부(中孚)·미제(未濟) 괘에도 "큰 강물을 건넌다"는 말이 있다. 그런 것을 보면 큰 물을 건너는 것은 고대 중국인에게 대단히 인상 깊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노자가 만약 초나라 사람, 곧 『노자』가 초나라 문화의 소산이라면 "겨울에 강을 건너는 것 같다"는 비유는 쉽게 나오기 힘들다. 초나라는 겨울에도 따듯한 양자강 유역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런 표현은 겨울에 얼음이 어는 강을 경험할 수 있는 지방에서 나왔을 것이다.
'사린(四隣)'은 사방의 이웃이라는 뜻이다. 이웃은 이웃 사람도 될 수 있고(하상공), 이웃나라도 될 수 있다. 왕필은 "사방의 이웃이 합공하면 중앙 지역의 임금은 머뭇거리면서 갈 바를 모르게 된다"고 하여 이웃나라로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약간 엉뚱하지만 고환본에 인용된 왕주(王注)2)에서는 생노병사를 가리킨다고 보기도 하였다.
엄숙하기는 마치 손님이 된 듯하고, 넉넉하기는 마치 얼음이 녹는 듯하며, 질박하고 두텁기는 마치 통나무와 같고, 흐릿하기는 마치 탁한 물과 같고, 드넓기는 마치 골짜기와 같다고 한다
嚴呵其若客, 渙呵其若凌釋, 敦呵其若樸, 混呵其若濁, 曠呵其若谷
여기에서 '엄(嚴)'은 '엄(儼)'과 통하는 글자다. 단정하고 씩씩한 모습이다(성현영). '환(渙)'은 원래 풀어져서 흩어지는 것을 의미하는데(하상공), 여기에서는 그 태도가 넉넉하고 여유있는 것을 가리킨다(임희일). '능(凌)'은 얼음을 뜻한다(위계붕). '돈(敦)'은 질박하고 두터운 것이다.
"흐릿하기는 마치 탁한 물과 같다"는 말은 "빛을 누그러뜨리고 먼지와 함께한다(4·56)"는 말과 통한다. "지혜를 가리고 빛을 감추어서 마음대로 듣고 살피지 못하도록 한 것이 마치 물이 혼탁한 것과 같으니 들여다볼 길이 없게 하는 것"이다(고환). "드넓기는 마치 골짜기와 같다"는 말은 "뛰어난 덕은 골짜기와 같다(41)"는 말과 통한다.
『문자』 「상인」의 해설도 참조할 만하다. 그에 따르면 "머뭇거림은 마치 겨울에 강을 건너는 것 같다"는 것은 감히 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망설임은 마치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는 것은 스스로 다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엄숙하기는 마치 손님이 된 듯하다"는 것은 겸손하고 공경한 것이다. "넉넉하기는 마치 얼음이 녹는 듯하다"는 것은 감히 쌓아두지 않는 것이다. "질박하고 두텁기는 마치 통나무와 같다"는 것은 모나게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흐릿하기는 마치 탁한 물과 같다"는 것은 감히 맑고 밝게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드넓기는 마치 골짜기와 같다"는 것은 감히 가득 채우지 않는 것이다.
앞에서 해설한 문장과 지금 여기 문장은 모두 "옛날에는 도를 잘 행한 사람"에 대한 묘사인데, 이미 "기록할 수 없고" "억지로 형용한다"고 하였으므로 '마치 그렇다〔若〕'는 말을 써서 꼭 그런 것이 아님을 밝혔다(왕필). 그러므로 그 뜻을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는 없다. 모두가 『노자』가 다른 곳에서 묘사하고 있는 성인의 이미지를 복사한 것이다.
그런데 고힐강이 지적했듯이 이 문장들은 득도한 사람을 묘사하는 『여씨춘추』의 문장과 내용이나 기법에서 매우 비슷하다.
도를 얻은 선비는 귀하기로 천자가 되었어도 교만하지 않고, 부유하기로 천하를 소유할 만하면서도 방종하지 않으며, 비천하기로 베옷을 입었으면서도 낙담하지 않고, 가난하기로 의식이 부족하면서도 근심하지 않는다. 정성스러워 진실로 도를 가졌고, 깨달아 의심이 없고 행동에 이유가 있으며……머뭇거리면서 스스로 옳다고 하지 않고, 드넓어 지혜와 생각을 쓰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아득하여 세속의 비방과 명예를 가볍게 여긴다(「신대람·하현」).
또 「사용론·사용」에는 묘사하는 인격의 내용은 약간 다르지만 유사한 기법을 사용하는 문장도 있다.
그러므로 군자의 모습은 순수하기가 곤륜산의 옥과 같고, 곧바르기가 언덕 위의 나무 같다. 순후하여 행동을 삼가고 교화를 두려워하면서 자만하지 않고, 부지런하여 취사(取捨)를 태만히 하지 않으면서 마음은 극히 소박하다.
이런 형식의 문장은 『초사』에서도 많이 보이고, 『순자』 「부」에서도 많이 보인다. 단지 『순자』나 『초사』는 모두 어조사로 '혜(兮)'를 쓰는 데 비해 지금 백서 『노자』는 일률적으로 '가(呵)'를 쓰고 있으며, 초간문은 '호(
: 乎)'를 사용한다. 이 점은 이미 앞에서 서술했다(다음 참조). 아마도 전국 말기에 개인이 시문을 지어 사람들에게 알리는 풍조가 나타나면서 크게 유행한 표현 기법이 아닌가 한다.
혼탁하면서도 고요히 하여 서서히 맑아지며, 편안해하면서도 움직여서 서서히 살아나니
濁而靜之徐淸, 安以動之徐生
앞에서 말한 것처럼 초간문에는 이 두 구절 앞에 "누가……할 수 있는가〔孰能〕"라는 말이 더 붙어 있고, 통행본도 대개 그렇다. 그렇게 반문할 때도 "옛날에 도를 잘 행한 사람"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뜻이므로 의미상으로는 생략되어도 좋다.
본문의 해석에는 여러 다른 견해가 있다. 특히 '안(安)'은 세속의 안락함을 의미한다는 견해도 있고(임희일·소철), 본문처럼 행동하는 사람의 편안한 심적 상태를 가리킨다는 견해도 있다. 대부분은 후자로 해설한다. 여혜경은 "사람들은 모두 똑똑하고 밝기를〔昭昭〕 원하니 누가 혼탁함을 가지고 고요함을 견지함으로써 서서히 맑아질 수 있는가. 서서히 맑아지면 비추지 않는 것이 없다. 사람들은 모두 앞서기를 원하니 누가 편안함으로 움직여서 서서히 살아날 수 있겠는가. 서서히 살아나면 그로부터 나오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였고, 오징은 "앞의 혼탁하다는 말을 받아서 누가 탁해질 수 있는가 하고 자문하였으니 혼탁하다는 것은 움직일 때의 일이다. 움직인 뒤에 고요히 하면 서서히 맑아진다. 또 고요하다는 말을 받아서 누가 편안해할 수 있는가 하고 자문하였으니 편안한 것은 고요할 때의 일이다. 고요히 한 뒤에 움직이면 서서히 살아난다"고 하였다. 모두 참고할 만하다.
이런 도를 간직한 사람은 채워짐을 원하지 않는다. 오직 채워짐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가리고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保此道者, 不欲盈. 夫唯不欲盈, 是以能弊而不成
"이런 도를 간직한 사람은 채워짐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은 "굳게 잡아서 가득 채우는 것은 채우기를 그만두는 것보다 못하다(9)"는 말과 상호 참고하면 쉽게 이해된다. 왕필은 "가득 차면 반드시 넘친다"는 간단한 주해를 남겼다.
'폐(蔽: 왕필본)'는 '폐(敝: 부혁본)' 또는 '폐(弊: 고환본)'로 되어 있는 판본이 대부분이고, 그 경우 옛것〔故〕이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통행본에서는 대개 마지막 구절이 "……새로운 것을 이루려고 하지 않는다〔不新成〕"고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해석할 여지가 더 많았다. 그렇게 해석해도 이 글 전체의 뜻과 어울린다. 하지만 왕필은 "폐(蔽)란 덮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하상공도 "폐(蔽)란 빛을 가리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도응훈」에서도 이 문장을 공자의 지만(持滿)의 도리(가득 찬 것을 유지하는 도리)와 연결하여 설명한다. 본문처럼 해석하는 것이 더 나을 듯하다.
초간문에는 "오직 채워짐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가리고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글이 없다. 아마도 나중에 첨가된 글일 것이다.
도를 얻은 선비는
귀하기로 천자가 되었어도 교만하지 않고
부유하기로 천하를 소유할 만하면서도 방종하지 않으며
비천하기로 베옷을 입었으면서도 낙담하지 않고
가난하기로 의식이 부족하면서도 근심하지 않는다
―『여씨춘추』 「신대람·하현」
[古之善爲道者, 微妙玄達] (노자(삶의 기술, 늙은이의 노래), 2003. 6. 30., 김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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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The Wisdom of Laotse - Lin Yu Tang
15. THE WISE ONES OF OLD
The wise ones of old had subtle wisdom and depth of
understanding,
So profound that they could not be understood.
And because they could not be understood,
Perforce must they be so described:
Cautious, like crossing a wintry stream,
Irresolute, like one fearing danger all around,
Grave, like one acting as guest.
Self-effacing, like ice beginning to melt.
Genuine, like a piece of undressed wood,
Open-minded, like a valley,
And mixing freely, like murky water.
Who can find repose in a muddy world?
By lying still, it becomes clear.
Who can maintain his calm for long?
By activity, it comes back to life.
He who embraces this Tao
Guards against being over-full.
Because he guards against being over-full
He is beyond wearing out and renewal.
Because the eternal principle of life, Tao, works silently
and affarently without action in the way that spring
comes round every year, because Tao does not claim
credit for its individual acts and is content to be silent,
it hecomes the image for the Taoist sage.
15.1. THE DEMEANOR OF THE PURE MAN. The pure men of
old slept without dreams, and waked up without worries.
They ate with indifference to flavor, and drew deep
breaths. For true men draw breath from their heels; the
vulgar only from their throats. Out of the crooked, words
are retched up like vomit. When men's attachments are
deep, their divine endowments are shallow.
The pure men of old did not know what it was to love
life or to hate death. They did not rejoice in birth, nor
strive to put off dissolution. Unconcerned they came
and unconcerned they went. That was all. They did not
forget whence it was they had sprung; neither did they
seek to inquire their return thither. Cheerfully they
accepted life, waiting patiently for their restoration (the
end). This is what is called not to allow the mind to lead
one astray from Tao, and not to supplement the natural
by human means. Such a one may be called a pure man.
Such men are free in mind and calm in demeanor,
with high foreheads. Sometimes disconsolate like autumn,
and sometimes warm like spring, their joys and sorrows
are in direct touch with, the four seasons, in harmony with
all creation, and none know the limit thereof...
The pure men of old appeared of toweirng stature and
yet could not topple down. They behaved as though
wanting in themselves, but without looking up to others.
Naturally independent of mind, they were not sever. Living
in unconstrained freedom, yet they did not try
to show off. They appeared to smile as if pleased and
to move only in natural response to surroundig . Their
serenity flowed from the store of goodness within. In social
relationships, they kept to their inner character. Briad-
minded, they appeared great; towermg they seemed
beyond control. Continuously abiding. they seemed like
doors kept shut; absent-minded, they seemed to forget
speech. (2: 4)
As seen aheady in selection 8.1, Chuangtse uses water
as symbol of spiritual calm which is described as "the
nature of water at its best," and as a symhol of Tao itself
which alternates between perfect tranquility and periodic
motion. "When the body is kept hustling about without
stop, it becomes fatigued. When the mind is overworked
without stop, it becomes worried, and worry causes ex-
haustion. The nature of water is that it becomes clear
when left alone, and becomes still when undisturbed . .
it is the symbol of heavenly virtue.
15 2. CONFUCIUS ON WATER,. Confucius says, "A man
cannot see his own image in flowing water but sees it in
water which is at rest. Only that which remains at rest
itself can become the resting-place for all those which
wish to seek rest." (2:1)
From The Wisdom of Laotse - Lin Yu T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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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노자 선양회 글
<출처> http://cafe.daum.net/Noja/7FYd/468?q=%E9%81%93%E8%80%85%20%E4%B8%8D%E6%AC%B2%E7%9B%88
통행본기준15장은 죽간에 이렇게 새겨져 있습니다.
道를 보존(保存)하는 자는 가득 채우려고 하지 않는다
長古之善爲士者, 必微溺玄達, 深不可志.
장고지선위사자, 필미익현달, 심부가지.
오랜 옛날 훌륭한 도사(道士)들은
곱게 가늘어 묘하고 그윽한 신비에 통달(通達)하여
깊고 먼 능력을 지식으로는 헤아릴 수 없다
※ 세상에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승(僧)이나 신부·목사 또는 도사 등이
그들에게 전해진 문자가 잠겨 있는 책인 불경(佛經)이나 성경(聖經) 또는 도덕경(道德經) 등을 통해 교육을 받거나 읽어서 얻어진 지식만으로는 진리(眞理)를 제대로 터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아직 세상의 욕망이란 늪에 실족(失足)하여 허우적거리면서도 다른 사람의 영혼을 건져 주겠다며
하늘의 뜻을 빙자하여 사람들을 미혹(미혹)시키는 종교가들과 거짓 先知者들이 수두룩하다. 그들도 나약한 인간들이라 저지른 실수라고 구차하게 변명을 늘어놓지 말고 이제는 별 수 없는 평범한 보통의 사람임을 悔改하고 돌아와 살면 좋으련만 여전히 신(神)의 대리인처럼 자처한다
‘하늘의 도는 사사로운 친애함이 없지만 항상 착한 사람과 함께 하는(79)' 관계로 착한 마음을 지니고 맑고 순수하게 살면서 명상과 기도와 좌선을 등을 통해 영혼이 하늘의 뜻을 느껴 알아 내가 하늘이 되고 하느님이 나와 하나될 때 꿈과 환상 또는 유체이탈(幽體離脫) 등 하늘의 영험(靈驗)한 능력을 받게도 되는데 그 능력을 이용하여 재물을 탐내거나 결혼까지 한 성직자가 첩(妾)을 두고 자녀를 낳는 등 보통사람들도 저지르지 않는 행동을 스스럼없이 하면서 개인의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채운다면 하늘은 그에게 준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일순간에 폐(廢)하여 버리니 선량한 기운(氣運)은 삽시간( 時間)에 떠나가 없어지고 껍데기뿐인 인간과 조직만 남게 될 것이다
혹시라도 하늘이 준 그런 능력을 가졌다면 힘닿는 대로 남을 돕는데 쓰고 욕심을 버려 흩어지거나 잃어버리지 않도록 경계(警戒)를 단단히 할 일이다
그렇지만 유체이탈 등의 신비한 체험이라는 것도 '도의 꽃과 같은 것이라(38)' 헛된 망상으로 곧 시들어 없어질 것들이니 도(道)를 마음속 깊이 간직하여 떠나 보내지 않음만도 못하다. 그래서 도를 터득하여 하늘의 능력을 받은 사람에 대해 노자께서 표현하기를 '오랜 옛날 훌륭한 도사(道士)들은 곱게 가늘어 묘하고 그윽한 신비에 통달(通達)하여 깊고 먼 능력을 지식으로는 헤아릴 수 없다(15)'고 하였다.
이렇게 도를 터득하여 덕(德)을 얻은 훌륭한 도사가 '(하늘의) 빛을 부드럽게 하여 (세상의) 티끌과 함께 하고자(4)' 이 세상에 덕을 베푸는데 그 덕은 상덕(上德)으로서 '상덕을 가진 자는 스스로 덕이 없다고 하므로 덕이 있고 무위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할뿐이다(38)' 따라서 '스스로 나타내려 하지 않기 때문에 밝게 빛나고 스스로 옳다고 주장하지 않으므로 그 옳은 것이 드러난다. 스스로 자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 공이 있게 되며 스스로 뽐내지 않음으로써 오래 간직되어 간다(22)'
노자 15장「고지선위사자(古之善爲士者)
미묘현달(微妙玄達) 심불가식(心不可識)」
4장「화기광(和其光) 동기진(同其塵)」
22장「불자현고명(不自見故明) 불자시고창(不自恃故彰)
불자벌고유공(不自伐故有功) 불자긍고장(不自矜故長)」
38장「상덕부덕(上德不德) 시이유덕(是以有德)」
「상덕무위(上德無爲) 이무이위(而無以爲)」
「도지화(道之華)」
79장「천도무친(天道無親) 항여선인(恒與善人)」
是以爲之容; 시이위지용;
豫乎! 其若冬涉川 猶乎! 其如畏四隣 예호! 기약동섭천 유호! 기여외사린
儼乎! 其若客 渙乎! 其若釋 엄호! 기약객 환호! 기약석
敦乎! 其如樸 沌乎! 其如濁 돈호! 기여박 돈호! 기여탁
그래서 억지로 형용(形容)해 본다면
머뭇거리기는 겨울에 살얼음이 낀 개울을 건너는 것 같고
우물쭈물하기는 사방의 이웃을 공경하여 어렵게 여기는 듯하며
엄숙하고 의젓하기는 맞이하는 손님과 같다
풀려나가기는 얼음이 녹아 내리는 것 같고
소박하기는 다듬지 않은 통나무와 같으며
확 트이기는 산골짜기 같고
가리지 않기는 흐린물(濁流)과 같다(15)
※ 도를 터득한 훌륭한 道士의 앞에서 말한대로 미묘(微妙)하고 현달(玄達)한 모습을 묘사(描寫)한 글이다.
※ 정약용은 노자의 豫乎! 猶乎!에서 豫를 與로 보고 그의 堂號를 與猶堂으로 지었다. 이것으로 볼 때 茶山선생도 노자를 읽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熟能濁以靜者, 將徐淸. 熟能安以動者, 將徐生.
숙능탁이정자, 장서청. 숙능안이동자, 장서생.
누가 이렇게 흐린 물을 고요하게 정지시켜서 저절로 서서히 맑아지게 하겠으며,
누가 능히 안정시킨 것을 움직임으로써 서서히 (흘러가는 물로) 살아나게 만드는가
※ 도를 얻은 훌륭한 도사(道士)는 '(하늘의 빛 가운데 잇지만) 빛을 부드럽게 하여 (세상의) 티끌과도 함께 한다(4)'고 하더라도 그 빛이 티끌에 묻혀 더럽혀지거나 변하지 않고 '그 맑음이 항상 그대로 존재하는 것 같이(4)'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물면서 '골짜기는 텅 비어 있어(15)' 온 산의 쓰레기와 흙더미를 씻어 내린 물을 너그럽게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 들여 '혼돈가운데 흐린 물을 이루게 되지만(15)' 흐리고 그 탁한 것을 고요히 정지시켜 차차 맑게 하고 가라 앉혀 안정시킨 다음 움직여 물을 살아나게 한다
이것은 도를 깨쳐서 덕을 베푸는 훌륭한 도사가 티끌 같은 혼탁한 세상과 함께 할 때 욕망의 거미줄로 복잡하게 뒤엉킨 세상에서 그들과 어울리면서도 물들지 않고 나아가서 사람들의 마음을 순박하게 안정시켜 순수하게 맑은 심성(心性)을 간직하게 하며 맑은 물처럼 도(道)안에서 살아가게 만든다
노자 15장「숙능탁이정지서청(熟能濁以靜之徐淸)
숙능안이동지서생(熟能安以動之徐生)」
「광혜기약곡(曠兮其若谷) 혼혜기약탁(混兮其若濁)」
4장「화기광(和其光) 동기진(同其塵)
담혜사혹존(湛兮似惑存)」
保此道者, 不欲當盈. 보차도자, 부욕당영.
그러한 道를 보존(保存)하는 자는 가득 채우려고 하지 않는다
※ '도는 (우주와 만물을 담고 있는) 빈 그릇(4)'이지만 세계의 모든 사람이 동시에 누구나 끌어다 쓸 수 있고 '퍼내어 사용하더라도 (모자라지 않으며)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것(4)'과 같이 '도를 보존하는 자도 가득 채우려고 하지 않는다(15)' 왜냐하면 그릇 속에 쌀을 담아 두고 다시 비우지 않으면 더 이상 다른 용도로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道는 '천하는 (만물을 담고 있는) 신비한 기물(器物)이어서 인위적으로 다스릴 수 없는 것이다. 억지로 하고자 하는 자는 실패할 것이고 집착하는 자는 잃을 것이다(29)' 천하의 모든 것에는 어디에나 도가 깃들어 있으며 도가 담긴 천하만물은 다 자연의 법칙에 따르니 인위적으로 어떤 일을 계획하고 다스리는 것은 자연의 도에 어긋나는 일이라 성취되지 않을 것이기에
노자는 '오로지 가득 채우지 않음으로써 능히 헤어진 채로 있으면서도
새로운 것을 이루려하지 않는다(15)'고 한다.
노자 15장「보차도자불욕영(保此道者不慾盈)
부유불영(夫唯不盈) 고능폐불신성(故能蔽不新成)
4장「도충(道沖) 이용지(而用之) 혹불영(惑不盈)」
29장「천하신기(天下神器) 불가위야(不可爲也)
위자패지(爲者敗之) 집자실지(執者失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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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출처 : https://zetawiki.com/wiki/%EB%8F%84%EB%8D%95%EA%B2%BD_15%EC%9E%A5
1 내용
번역원문
옛날에, 도를 잘 행하는자는 꼼꼼하고 묘하며 그윽하고 열린 사람이라 깊이를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으나 억지로 말해본다. 머뭇거리니 겨울개울을 건너는 듯 하고 주저하니 사방을 두려워하는 듯 하다. 준엄하니 손님같고 풀어지니 얼음이 녹으려는 듯 하며 도타우니 통나무같고 비어있으니 계곡같으며 혼란하니 탁한 물과 같다. 누가 혼탁함을 고요히하여 천천히 맑게 할 수 있는가? 누가 편안함을 끊임없이 움직여 천천히 생동하게 할 수 있는가? 이 도를 가진 이는 가득 채우려 하지 않으니, 채우지 아니하여 능히 낡게하고 새로움을 만들지 않는다. | 古之善爲士者, 微妙玄通, 深不可識, 夫唯不可識, 故强爲之容, 豫焉若冬涉川, 猶兮若畏四隣, 儼兮其若容, 渙兮若氷之將釋, 敦兮其若樸, 曠兮其若谷, 混兮其若濁, 孰能濁以靜之徐淸, 孰能安以久動之徐生, 保此道者, 不欲盈, 夫唯不盈, 故能蔽不新成. |
대부분은 그대로 이해하여도 좋으나 마지막 구절은 좀 다릅니다. '채우지 아니하여 능히 낡게하고 새로움을 만들지 않는다.:夫唯不盈故能蔽不新成.'이라고 있는 그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溫故之新'의 고사가 말해주듯 옛 것을 소중히 여기고 함부로 새로운 것을 하려하지 않음을 말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두 글자의 순서만 바꾸면 '채우지 아니하여 더러움을 덮고 새로움을 만든다.:夫唯不盈故能不蔽新成.'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전체적 맥락으로 보아 이것이 더 옳은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자의 전체적 어조가 '하지 않음으로 더 나은 바를 지향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여길 때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 도를 가진 이는 가득 채우려 하지 않으니,:保此道者不欲盈.'라는 구절입니다. 여기에 王弼선배님은 '차면 반드시 넘친다.:盈必溢也.'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過猶不及'이라는 성어도 있지요. 지나치지 않음을 지향하는 것은 왠지 동양적인 정서입니다. 이것을 기계문명이 지향하는 한계추구-이쪽에서는 frontier나 edge등이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죠-와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이죠. 이미 서구 문명의 한계가 충분히 인식되고 있는 지금이야 말로 이러한 지향은 더더욱 빛나리라고 생각합니다. '채우지 아니하여 더러움을 덮고 새로움을 만든다.'라는 구절은 충분한 성찰과 자연친화적인 태도-바로 채우지 않음이지요-를 통하여 새로운 문명을 창출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
2 같이 보기
상편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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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출처 : http://www.ilyoweekl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525
물리학 박사 김선국의 노자(老子) 이야기(15)
[일요주간=김선국 박사] 가톨릭에서는 신을 직접 체험한 사람을 신비주의자라고 한다. 신을 본다는 것이 가능할까? 신을 체험하는 것이 가능할까?
◆ 깨달은 자, 保道者
저번 화에서는 도의 실마리를 얻었으니 여기서는 도를 지닌 자(保道者)에 대해서 설명한다. 5000자의 <도덕경>을 통해 노자는 체계적으로 도와 도를 얻는 방법, 그리고 그 도를 얻은 사람을 설명하고 있다. 물론 그 설명이 너무나 추상적이기에 알아듣기가 쉽지는 않다.
뒤로 갈수록 상세한 이야기들과 특징들에 대해서 나온다. 그의 글 한자 한자가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그의 깊은 마음을 아무도 본 이가 없으니 그저 각자의 수준에 따라서 해석할 뿐이다.
古之善爲士者 (고지선위사자) 옛적 도를 얻은 사람은
微妙玄通 (미묘현통) 미묘현통하여
深不可識 (심불가식) 그 깊이를 알 수 없도다.
夫唯不可識 (부유불가식) 비록 그 깊이를 알 수 없으나
故强爲之容 (고강위지용) 억지로 형용하여 보리라.
도를 깨달은 이를 보고 도가 깊다는 말을 하니 그것은 노자 자신의 상태이다. 도의 실마리를 잡고서 이제 잡은 그 도를 지닌 자신의 상태를 설명한다.
도는 깨닫기도 어렵지만 말로 전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래서 부처는 미소로서 꽃 한송이를 제자에게 전했다. 도가 쉬웠다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이들이 구원을 받고 깨달음을 얻어서 무한한 평화를 얻었겠지만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얻은 이들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도를 얻은 이들의 상태를 묘사하는 노자의 말을 들어보자.
豫焉若冬涉川 (예언약동섭천) 겨울에 강을 건너듯 조심스럽고
猶兮若畏四隣 (유혜약외사린) 이웃을 대하듯이 어려워하며
儼兮其若容 (엄혜기약용) 너그러워서 겸손하고
渙兮若氷之將釋 (환혜약빙지장석) 녹으려는 얼음처럼 유연하여
敦兮其若樸 (돈혜기약박) 통나무처럼 소박하며
曠兮其若谷 (광혜기약곡) 계곡처럼 관대하고
混兮其若濁 (혼혜기약탁) 탁한 듯이 잘 화합한다.
깨달음을 얻으면 세상에 우뚝 서고 세상에서 인정을 받고 거룩한 스승이 되어 유명해지리라고 착각을 한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은 이들은 있는 듯, 없는 듯 겸손하고 관대하며 세상 가운데 섞여 있는 듯하여 오히려 구분하기기 쉽지 않다고 노자는 설명한다.
이것이 노자 자신의 모습이리라. 소박하고 겸손하며 조심스럽고 어려워하며 관대하고 세상에 있는 듯 없는 듯한 모습이 보통의 똑똑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리숙하고 마음씨 좋은 사람이고 순한 사람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러한 모습이 깨달음을 이룬 성인의 모습이다.
오히려 투박해서 경박해 보이기도 하고 가볍고 연약해 보이기까지 하니 세상이 어찌 알아보리오! 그러나 하늘은 알아볼 것이며 그가 남긴 자취는 하늘에서 그 흔적을 거두어 세상 가운데서 사용되도록 할 것이니, 그것은 인연에 따라서 그리 될 일이다. 다만 노자의 가르침이 2500년을 넘어서 지금까지 전해지니 그의 깨달음의 향기가 만세를 이어지는 것이다.
孰能濁以靜之徐淸 (숙능탁이정지서청)
누가 탁한 것을 점점 고요히 하여 맑아지게 할 수 있을까?
孰能安以久動之徐生 (숙능안이구동지서생)
누가 가만히 있는 것을 움직여 점점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
保此道者 不欲盈 (보차도자 불욕영)
도를 지닌 사람은 채워지기를 원하지 않으며
夫唯不盈 (부유불영)
무릇 채워질 것이 없기에
故能蔽不新成 (고능폐불신성)
능히 이루었고 새롭게 할 것이 없다.
깨달음을 이루어서 이미 온 세상의 모든 카르마를 해소하고 세상에 있지만 세상을 초월한 사람은 탁한 듯이 보이지만 그는 탁함과 깨끗함을 이미 초월하였으니 그를 누가 어찌 할 수 있으랴? 이미 모든 세상적 욕망과 할일을 마치고 고요히 안정되어 있는 이를 어찌 움직일 수 있으랴?
노자는 자신의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도를 지닌 이는 더 이상 채울 것도, 새롭게 이룰 것도 없다. 때문에 모든 것을 폐(蔽)하여 덮어버린다. 이런 단계에 도달한 이들은 세상에 나와서 세상을 변혁시키거나 세상에 불을 놓아서 세상을 좋은 곳으로 바꾸려는 생각을 비운다. 그들은 이 세상의 본질을 알기 때문이다.
예수는 유대인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이제 세상에 다시 예수가 온다면 기독교인들에 의해서 박해를 받을 것이다. 예수는 사람들이 그들 마음 속에 천국을 이루기를 원했지만 사람들은 이 땅에서 자신 만의 천국을 이루기를 원한다. 예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
이 세상의 모든 카르마를 넘어선 성인(聖人)은 존재함 그 자체로서 세상에 가르침을 준다. 교불언지교(敎不言之敎), 말하지 않고 가르친다. 그래서 노자는 모든 것을 덮고(蔽) 마지막 5000자를 세상에 남겨놓고 등선(登仙)했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경허스님은 깨달음을 성취한 뒤 말년에 세상을 뒤에 놔두고 삼수갑산의 깊은 마을로 들어가 훈장 노릇하다가 삶을 마감했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자신의 가르침을 펼 수 없었기에 모든 것을 덮고 그곳에서 생을 마친 것이다.
경허스님의 맏제자인 수월스님도 깨달음을 얻고서 핍박받는 조선 민족을 위해서 만주로 간 뒤, 그곳으로 오는 중생들에게 주먹밥을 나누어 주다가 조용히 등선했다.
출처 : 일요주간(http://www.ilyoweek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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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출처 : http://catholicpress.kr/news/view.php?idx=4960
道에 훌륭한 이들은 미묘현통하여 그 깊이를 알 수가 없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까닭에 억지로 모양을 그려보면 신중히 겨울에 개울을 건너는 것과 같고, 삼가 주위를 두려워하는 것과 같고 의젓하여 마치 손님과 같고 부드러워 얼음이 녹으려는 것과 같고, 투박하여 마치 통나무와 같고 품이 넓어서 골짜기 같으며, 밑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워서 흐릿함과 같으니라. 그 누가 탁한 것과 어울리면서 고요함으로써 그것을 천천히 맑게 해 줄 수 있으며, 그 누가 가만히 있으면서 움직임으로써 그것을 천천히 태어나게 하겠느냐? 이 道를 지닌 자는 스스로 채우려고 하지 않으니, 무릇 스스로 차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낡지 않으면서 새 것을 만들지도 않느니라.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 2003. 삼인)
찬양이 아니라 감탄이다.
노자15장은 읽고 읽어도 마치 ‘그 사람’을 두고 하는 말씀과 같다. 성경에서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2,7)는 생명체는 분명 ‘그 사람’이다. 때로는 느린 듯, 약한 듯, 바람이 불면 몸을 낮추었다가 이내 다시 일어나며 자신에게 다가온 것을 그가 그의 자서전에 밝힌 것처럼 <운명>으로 받아들인 사람. 운명 앞에서 순명의 무릎 꿇음을 한 천주교인 문재인 디모테오.
노자는 도道의 모양을 통나무와 같다고 여러 곳에서 말했다. 다듬지 않고 원래의 모습을 간직한 통나무에서 수많은 모양과 쓸모가 나오는 원천이 되듯이 그것은 모든 것의 바탕이며 무색이며 원천이다. 한마디로 무無이며 물水과 같은 것이다. 우리에게는, 현 시대의 한민족에게는 그런 통나무가 절실히 필요했고 이름 지어 부를 수 없는 존재는 지난겨울 거리의 촛불들의 기도에 들어 있던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고,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정녕 그들의 고통을 알고’(탈출3,7) ‘하늘과 땅을 새롭게 창조’(창세1,1) 하였다.
한 사람으로 충분하진 않겠지만
▲ 문재인 대통령(당시 민주통합당 18대 대선후보)이 지난 2012년 24일 서울 신영동 세검정 성당을 방문, 기도하고 있다. (사진제공=문재인 캠프)
이 땅에 천주교가 전래된 이래 검은 그림자, 흰 그림자를 포함해 나이테를 그려가는 동안 숱한 천주교인이 나왔다. 문재인 디모테오 한 사람으로 충분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한국천주교회는 이제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쳐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뒤돌아보라. 민중들이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쳐도 용산에서는 철거민들이 불길 속에서 떼죽음을 당했고, 쌍용자동차 옥상에서는 백주대낮에 노동자들이 개 패듯 폭행을 당하고, 85호 크레인을 비롯해 숱한 굴뚝마다 내려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계속되었으며 끝내 “여기 사람이 있다”고 세월호에서 외쳐도 7시간동안 귀도 눈도 입도 막은 오리무중의 세상이 이어졌다. 이제 변화의 바람, 평화의 바람이 불어오는 이 땅에 “여기 사람이 있다”고 말하려한다. 비바람에 맞선 그를 보호하고, 상처투성이인 그를 감싸주고, 악타구니 모멸 앞에 선 그를 보호하는 것은 눈귀코를 가진 이들의 몫이다.
▲ 지난해 1월, 서울시는 용산참사가 발생했던 시기를 즈음해 용산참사 백서 ‘용산참사, 기억과 성찰’을 발간하고, 작품전을 진행했다. ⓒ 곽찬
독일이 통일될 무렵 록그룹 스콜피언스가 부른 < Wind of Change >란 노래가 있었다. 노래의 가사 말을 다시 되새긴다. “상상이나 했었나요. 우리가 형제처럼 이렇게 가까워질 줄? 우리의 미래가 바람에 실려 와요. 어디에서나 느낄 수 있답니다. 변화의 바람과 함께 말이에요. 우리 미래의 아이들이 변화의 물결 속에서 맘껏 꿈꿀 수 있는 그 곳으로 말이에요. 변화의 바람이 시간을 타고서 불어오고 있어요.”(부분 발췌)
노동절을 맞는 오늘
문재인 디모테오는 끝내 채우려 하지 않는다. 노자 3장에 나온 말씀처럼 “도는 비어 있음으로 작용하여 언제나 차지 않는다. 道沖而用之或不盈(도충이용지혹불영)” 자신에게 1에서 100까지의 기회가 열려 있다 해도 60이거나 70쯤에서 멈출 수 있는 것은 용기이며 동시에 다짐이다. 세상 전부 나의 몫이 아니라는 그런 마음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많은 열매를 문재인 디모테오 혼자 독차지 하려 욕심내지 않고 있음은 분명 그의 지혜로움이다.
채우지 않는 것은 비어있는 것의 시작이다. ‘텅 빈 충만’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느낄 수 있는 길이 아니다. 문재인 디모테오는 나자렛 사람 예수가 “내 아버지께서 언제나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요한5,17)라고 했듯이 그는 채우지 않는 일을 쉼 없이 하고 있다. 언젠가 그에게도 쉼이 찾아오겠지만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그의 숨찬 노동 앞에 맞이하는 오늘, 노동절이다.
▲ ⓒ 곽찬
여기 사람이 있다
한 점을 찍으면
비로소 걸어갈 방향이 보이고
한 사람이 나타나면
비로소 살아갈 삶이 보인다
전쟁이 끝났다는 말
평화가 시작되는 말
형제가 기다린다는 말
오고 갈 수 있다는 말
운명처럼 나타나
숙명처럼 함께 갈
여기 사람이 있다
[필진정보]
김유철 (스테파노) : 한국작가회의 시인,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이며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이다. ‘삶·예술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시집 <천개의 바람> <그대였나요>, 포토포엠에세이 <그림자숨소리>, 연구서 <깨물지 못한 혀> <한 권으로 엮은 예수의 말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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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출처 : http://www.cctimes.kr/news/articleView.html?idxno=341719#08W8
김태종의 함께 읽는 도덕경-땅에서 듣는 하늘의 노래
김태종 <삶터교회목사·생태교육연구소 터 소장>
古之善爲道者(고지선위도자)는 微妙玄通(미묘현통)하여 深不可識(심불가식)하니, 夫唯不可識(부유불가식)이라.
故(고)로 强爲之容(강위지용)하면 豫焉(예언)이라 若冬涉川(약동섭천)이요, 猶兮(유혜)라 若畏四隣(약외사린)이며, 儼兮(엄혜)라 其若客(기약객)하며, 渙兮(환혜)라 若氷之將釋(약빙지장석)이며, 敦兮(돈혜)라 其若樸(기약박)하며, 曠兮(광혜)라 其若谷(기약곡)하며, 混兮(혼혜)라 其若濁(기약탁)이라.
孰能濁以靜之徐淸(숙능탁이정지서청)하며, 孰能安以動之徐生(숙능안이동지서생)하겠는가保此道者(보차도자)는 不欲盈(불욕영)이니 夫唯不盈(부유불영)이라, 故(고)로 能蔽不新成(능폐불신성)이니라.
- 옛적 제대로 사는 이는 깊고 오묘하고 그윽한 깨달음에 이르러 그 깊이를 알 수 없으니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굳이 그 삶을 말한다면 삼감에 있어서 겨울 시내를 건너는 것과 같고, 살핌에 있어서는 사방에 조심해야 할 이웃이 있는 것과 같으며, 의젓하기는 나그네와 같았고, 어질기는 막 풀리려는 얼음과 같았으며, 미덥기는 전혀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이와 같았고, 그윽하기는 골짜기처럼, 풀어짐에는 막 휘저어 놓은 것과 같았다. /누가 뒤엉킨 것을 가라앉혀 깨끗하게 하고, 또 무엇이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을 흔들어 새로운 생명을 낳게 하겠는가 앞에 말한 깨달음을 품은 이는 채우려 하지 않으니, 도대체 채우려는 뜻이 없다. 그러므로 넉넉히 새롭지 않음을 품고 이룬다.
이 장은 무척 까다롭습니다. 다만 큰 테두리에서 전체 도덕경의 흐름을 따라서 읽으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데, 그것은 8장의 上善若水(상선약수)에 나오는 것과 비슷하게 깨달음을 얻어 제대로 사는 사람의 삶은 이러저러하다고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豫(예), 猶(유), 儼(엄), 渙(환), 敦(돈), 曠(광), 混(혼)과 같은 글자들은 그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을 따라 그 의미를 거슬러 찾아보면 쉽게 닿을 수 있지만, 글자 자체가 가진 뜻을 가지고 번역을 하려 들면 오히려 맥락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겁니다.
특히 이 장은 판본에 따라서 글자 차이가 많이 나는데, 그렇기 때문에 분분한 해석들이 있지만, 이 또한 도덕경 전체의 문맥을 따라서 읽어간다면 맥락에서 벗어나는 풀이를 하게 되는 엉뚱한 실수는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까다롭고 복잡한 글을 한 마디로 줄여보는 것은 그런 점에서 필요한 접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나는 ‘부작용이 생기지 않는 삶’이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덕경이 멋진 글이라는 것은 모든 가르침들이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의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지만, 도덕경은 자연과 자연의 관계 안에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의 인간관계를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또 한 번의 이야기를 이렇게 대략 살펴보았는데, 문제는 지식이 아니라 삶이라고 하는 것, 생명은 언어나 지식 너머의 현상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한다면, 삶은 그만큼 더 신중해지지 않겠는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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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63XX67600016
여불위, 呂不韋(?~BC 235)
전국 시대 말 위나라의 대상인으로 진나라의 재상에 올랐다.
장양왕을 진나라의 왕으로 옹립했고, 왕후와 내연 관계로 인해 진시황제의 생부라는 설이 있다.
당대의 학설과 사건, 설화 등을 모은 책 《여씨춘추》를 편찬했다.
천하를 두고 도박을 한 상인
여불위는 전국 시대 위나라 복양(濮陽)의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한나라 수도 양책(陽翟)에서 소금과 비단을 품목으로 장사를 시작한 그는 뛰어난 장사 수완으로 곧 대상인이 되었으며 여러 나라를 왕래하며 상거래했다. 그는 견문이 넓고 식견이 높았다고 한다.
여불위는 조(趙)나라 수도 한단(邯鄲)에서 장사를 하던 시절 그곳에서 인질 생활을 하던 진나라 공자 영이인(嬴異人)을 만나게 되었다. 전국 시대 국가들은 인질을 교환하는 것으로 평화를 유지했는데, 강한 나라에서는 자국에서 중요하지 않은 왕자를, 약한 나라에서는 태자 같은 중요한 인물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에 진나라에서는 영이인을 조나라의 인질로 보낸 것이었다. 영이인은 소양왕의 둘째 아들인 안국군의 아들이었다. 태자도 아닌 안국군의 20명 가까이 되는 아들 중 한 사람, 게다가 안국군의 사랑을 잃은 하희 소생의 아들인 영이인은 당시만 해도 왕위 계승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다.
영이인은 조나라에서도 냉대를 받았으며 생활도 매우 곤궁했다. 그러던 중 진나라에서 태자가 죽고 안국군이 태자가 되었다. 영이인의 위치는 태자의 아들로 격상했으나 그에게는 여전히 배다른 형제가 20여 명이나 있었다. 그러나 여불위는 밭을 팔았을 때는 10배의 이익이 남고, 보석을 거래했을 때는 100배의 이익이 남지만 나라의 주군을 세우면 그 이익을 따질 수 없다고 생각하고, 영이인에게 투자하여 그를 왕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여불위는 먼저 금 500근을 영이인에게 주어 그가 조나라의 인사들과 사귈 수 있도록 하고, 자신은 금 500근으로 조나라의 진귀한 물건을 구입하여 진나라로 향했다. 여불위는 안국군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화양부인을 공략하기로 했다. 그리고 화양부인의 친언니를 통해 그녀와 친분을 맺는 데 성공했다. 여불위는 아들이 없는 화양부인에게 양자를 들여 그를 안국군의 후계자로 삼아 후대의 안정을 꾀하라고 조언했다.
더불어 조나라에 인질로 가 있는 영이인이 매우 어질며 본인은 곤궁한 생활을 하면서도 태자와 화양부인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다고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여불위의 조언에 따라 화양부인은 안국군에게 영이인을 자신의 양자로 들이겠다고 간청했다. 영이인은 화양부인이 초나라 사람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름을 ‘자초(子楚)’로 고친 후 화양부인의 양자가 되어 한순간에 왕위 계승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
안국군은 자초에게 후한 예물을 보내고 여불위에게 그의 보좌를 맡겼다. 여불위의 노력으로 안국군의 후계자가 된 자초는 여유로운 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제후들 사이에서 점점 명성을 쌓아 나갔다.
자초는 한단에서 조희(趙姬)라는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는데, 그녀는 당시 여불위의 애첩으로 미모와 가무가 매우 뛰어났다. 기원전 259년 조희는 아들을 낳았다. 아들의 이름은 영정(嬴政), 훗날 중국 역사상 최초로 천하를 통일하고 진시황제가 되는 인물이었다. 《사기》에는 조희가 자초의 사람이 되기 전에 이미 여불위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고 전한다. 영정이 자초의 아들이 아니고 여불위의 아들일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기원전 251년 소양왕이 죽자 태자 안국군이 효문왕으로 즉위했다. 자초는 태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미 연로했던 효문왕은 즉위 1년 만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로써 기원전 250년, 여불위를 만나기 전까지는 왕이 될 가능성이 전혀 없었던 자초가 장양왕으로 즉위했다. 장양왕은 여불위를 재상으로 임명하고, 문신후에 봉했다. 또한 낙양 땅 10만 호를 하사하여 그의 공을 치하했다.
전국 시대의 청동 사륜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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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47년 장양왕이 세상을 뜨고 아들 영정이 열세 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왕이 어렸기 때문에 영정의 생모인 태후와 승상 여불위가 섭정을 했다. 영정은 여불위를 상국에 임명했으며, ‘중부’라는 존칭을 하사했다. 또한 자신이 친정할 수 있을 때까지 모든 정사를 맡아보게 했다.
재상보다 높은 상국이 된 여불위의 권세가 높아지자 여불위를 찾는 인사들의 수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여불위의 집에 드나드는 문객들의 수만 해도 3천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여불위는 문객들에게 당대의 다양한 학설과 사건, 설화 등을 모아 책을 편찬하게 했다. 이것이 《여씨춘추(呂氏春秋)》다 . 《여씨춘추》는 백과사전식의 서책으로 〈팔람〉, 〈육론〉, 〈십이기〉로 나누어져 있으며, 도가 사상을 비롯하여 유가, 병가(兵家), 농가, 형명가, 종횡가, 묵가, 음양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여불위는 《여씨춘추》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해 《여씨춘추》를 수도 함양의 성벽에 진열하여 《여씨춘추》에서 한 자라도 더하거나 빼는 사람에게는 천금을 주겠다고 호언했다고 한다. 또한 여불위는 참모 이사(李斯)를 영정에게 천거했으며, 동주를 공격하여 주나라를 멸망시키는 등 훗날 영정이 천하를 통일할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기원전 238년 영정은 자신의 생모인 태후와 관련된 불미스러운 사건의 진상을 밝히도록 했다. 태후가 노애라는 환관과 정을 통했는데, 노애는 실제로 환관이 아니라 태후의 정부였고, 이에 더해 노애가 태후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왕으로 세우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노애는 여불위가 태후와의 사적인 관계를 끊고자 태후에게 바친 인물이었다. 여불위는 영정이 진왕으로 즉위했을 당시 태후와 정을 통하는 사이였는데, 영정이 성장함에 따라 그 사실이 발각될 것을 두려워했다. 이에 자신의 식객이었던 노애를 환관으로 가장시켜 태후 곁에 머물게 했던 것이다. 영정이 조사에 착수하자 위기감을 느낀 노애가 먼저 반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노애가 진나라의 정예군을 물리치기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노애는 거열의 극형에 처해지고 삼족이 멸하는 벌을 받았다.
진나라의 지형
진이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관중 분지를 끼고 있어 전략적으로 방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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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은 이 사건을 빌미로 여불위까지 제거하려 했으나 선왕을 보좌한 그의 공이 크고, 빈객과 유세가들이 그를 변호했기 때문에 처벌을 포기했다. 기원전 237년 영정은 상국 여불위를 해임하고 그의 식읍지인 낙양으로 쫓아냈다. 그러나 여불위의 명성은 누그러지지 않고 제후국의 빈객들과 사자들의 발걸음이 계속되었다. 여불위가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진 영정은 기원전 235년 친서와 함께 여불위를 촉(蜀) 땅으로 귀양 보냈다. ‘그대에게 어떤 공이 있어서 진나라는 문신후에 봉하고 10만 호를 주었는가? 그대와 진은 어떤 관계이기에 중부라고 불리고 있는가? 그대는 일가를 이끌고 촉 땅으로 가라.’ 기원전 235년 자신의 정치적 생명이 단절되었음을 느낀 여불위는 독주를 마시고 생을 마감했다. 영정은 여불위의 장례 때 눈물을 흘린 자들을 잡아들여 처형했다고 한다.
여불위는 상인에서 정치가로 변모하면서 세 가지 공을 세웠고 한 가지 과오를 저질렀다. 먼저 그는 후계자 구도가 완성되지 않아 자칫 왕위 쟁탈로 국력을 낭비할 뻔했던 진나라에 자초를 내세워 원만하게 왕위를 승계시켰다. 둘째로 주변국을 정벌함으로써 진나라의 위력을 과시했으며, 셋째로 사농공상을 중시하여 진나라의 문화를 거듭나게 했다. 하지만 여불위는 자신의 부정을 덮고자 태후에게 부정한 사람을 천거하는 일생일대의 치명적인 과오로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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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leeza.tistory.com/37031
효경한글역주, 제10장 『여씨춘추(呂氏春秋)』를 논함 - 모든 다양성을 포용하는 일(一)
모든 다양성을 포용하는 일(一)
이러한 문제에 관하여 『여씨춘추(呂氏春秋)』 스스로가 변론하고 있는 대목을 한번 살펴보자. 「심분람(審分覽)」 「불이(不二)」편에 쓰여 있다.
많은 사람들의 제각기 다른 의견을 다 좇아 나라를 다스리려고 한다면, 나라는 며칠이 안 가서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고 말 것이다.
聽羣衆人議以治國, 國危無日矣.
어떻게 그러하다는 것을 아는가? 노담(老耽)은 유(柔: 노자가 말하는 부드러움)를 귀하게 여기고, 공자는 인(仁)을 귀하게 여기고, 묵적(墨)은 렴(廉: 물질적 생활의 검약)을 귀하게 여기고, 관윤(關尹: 전설적 도가사상가)은 청(淸: 삶의 깨끗한 소박성)을 귀하게 여기고, 자열자(子列子)는 허(虛)를 귀하게 여기고, 진병(陳騈: 전병田騈이라고도 한다)은 제(齊: 생ㆍ사의 한 이치, 제물齊物의 제)를 귀하게 여기고, 양생(陽生: 양주楊朱)은 기(己: 위아爲我의 이기적 주장)를 귀하게 여기고, 손빈(孫矉)은 세(勢)를 귀하게 여기고, 왕료(王廖: 병권모가兵權謀家, 진목공秦穆公을 섬긴 내사료內史廖)는 선(先: 실전에 앞선 계략이 중요하다)을 귀하게 여기고, 아량(兒良: 전국시대의 병가兵家)은 후(後: 계략보다 실전이 중요하다)를 귀하게 여겼다. 이 열 사람을 보라! 모두 제각기 일가를 이룬 천하의 호걸들이다.
何以知其然也? 老耽貴柔, 孔子貴仁, 墨翟貴廉, 關尹貴淸, 子列子貴虛, 陳騈貴齊, 陽生貴己, 孫臏貴勢, 王廖貴先, 兒良貴後. 此十人者, 皆天下之豪士也.
그러나 생각해보자! 싸움에서 왜 징과 북을 두드리는가? 그것은 전투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귀를 통일시켜 행동의 질서를 주기 위함이다. 나라가 법령을 제일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기 위함이다.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도 함부로 기교를 발휘하도록 하지 않으며, 머리가 나쁜 사람이라도 아둔한 상태로 두지 않는 것은 대중의 지력을 하나로 모으려 하기 때문이다. 용기있는 자라고 함부로 나서지 않게 하며 두려워하는 자를 쳐지지 않게 하는 것은 힘을 하나로 모으려 하기 때문이다.
有金鼓, 所以一耳, 必同法令, 所以一心也, 智者不得巧, 愚者不得拙, 所以一衆也, 勇者不得先, 懼者不得後, 所以一力也.
그러므로 하나로 모으면 나라가 다스려지고, 제각기 뿔뿔이 흩어지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 하나로 모아지면 나라가 편안해지고, 제각기 다른 주장을 하면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 대저 만 가지로 다른 다양한 것들을 가지런히 하나로 모으고, 어리석은 자나 지혜로운 자나, 정교한 자나 거친 자나 모두 있는 힘을 다하여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하나의 원천(구멍)에서 나온 것 같이 만드는 것은 성인(聖人)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다.
故一則治, 異則亂, 一則安, 異則危. 夫能齊萬不同, 愚智工拙, 皆盡力竭能, 如出乎一穴者, 其唯聖人矣乎!
지혜는 있으나 아랫사람을 통제할 수 있는 술(術)이 없고, 능력은 있으나 백성을 교화시킬 수 있는 가르침의 방책이 부족한 채, 강압적인 수단으로 속성(速成)만을 강요하고, 관행으로 내려오는 구습(舊習)에만 의지한다면 국가통치의 성공이란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無術之智, 不敎之能, 而恃彊速貫習, 不足以成也.
춘추전국시대의 제자(諸子)들은 모두 자가(自家)의 학설만이 유일한 선이라는 것을 고집하고 타설을 배척하는 것을 논쟁의 핵심과제로 삼았다.
그러나 여기서는 놀라웁게도 학설의 다양성에 대한 관용이 있다. 십가(十家)의 학설을 한 큐에 꿰어 말하는 품새도 이전의 주장과는 사뭇 다르다. 각 학파의 학설의 주요테마를 하나의 단어로 요약해서 말하는 것도 이미 『여씨춘추(呂氏春秋)』의 시대에는 각 학파의 주장이 명료하게 하나의 특징적 개념으로 정리될 만큼 담론화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순자(荀子)에게도 「비십이자(非十二子)」라는 편이 있지만 이것은 열두 사상가를 비난하기 위하여 나열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씨춘추(呂氏春秋)』는 각가의 특징을 비난하기 위하여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다양한 주장을 제각기 특색있는 학설로서 관용하면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다양한 학설을 그들의 주장대로 다 쫓아가는 것은 위국(危國: 나라를 위태롭게 함)의 첩경이다. 문제는 이 다양한 학설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종합하여 하나의 구심체로 끌어모으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多) 속에서 일(一)을 끄집어 내는 것이요, 잡(雜)을 전일(一)한 그 무엇에로 통합시키는 것이다. 일(一)은 타를 배척하는 일이 아니요, 타를 포용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다(多)를 다 소화하여 일(一)로 묶어내는 것, 그것을 ‘제만부동(齊萬不同)’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우지공졸(愚智工拙)’이 모두 ‘진력갈능(盡力竭能)’하게 만드는 것, 그 모든 다양한 재능과 사상이 하나의 광원에서 프리즘을 투과하여 나온 무지개처럼 창공에 펼쳐지게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성인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더 이상 구습(舊習)의 강압(强壓)에 의하여 세계를 지배해서는 새로운 통일제국을 형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주(周)나라는 진(秦) 소왕(昭王) 말년, BC 256년에 공식적으로 종언을 고했으며, 주나라 천자의 상징인 구정(九鼎)이 이미 진나라로 귀속되었다.
그리고 진왕 정(政)은 확고한 통일기반을 마련했으며 육국(六國: 초楚ㆍ연燕ㆍ제齊ㆍ한韓ㆍ위魏ㆍ조趙)의 멸절은 풍전등화와도 같은 가냘픈 운명에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대제국의 탄생을 임박케 하는 진왕 정의 말발굽이 중원의 대지를 뒤흔들기 직전, 진나라의 중부(仲父) 여불위(呂不韋)는 바로 이 『여씨춘추(呂氏春秋)』를 편찬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불위(呂不韋)는 이미 진제국의 탄생을, 정이 태어나기 전부터 예상했고 마스터 플랜을 짰다. 그리고 모든 것이 그 꿈대로 실현되어 갔고, 그 최종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여씨춘추(呂氏春秋)』라는 거대한 서물을 편찬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력으로 인한 통일은 이미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대세를 통찰할 줄 아는 그랜드한 비젼의 사나이 여불위는 지금 춘추ㆍ전국의 제자백가의 외침 속에 전승되어온 다양한 사상의 통일이 없이는, 무력에만 의존하는 제국의 성립은 그 자체가 하나의 가냘픈 풍전등화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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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고班固가 『여씨춘추』를 잡가 류의 작품으로 분류한 이래로 여불위는 잡가의 사상가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실제와 부합하지 않으므로 그의 사상은 역사적 관점에서 재조명해야 한다. 『여씨춘추』는 『황제사경黃帝四經』 및 후대의 『회남자淮南子』 등과 더불어 황로黃老학파에 속한다. 이 책이 비록 여러 사상가의 학설을 널리 채용한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을 마구잡이로 끌어다가 베낀 잡탕은 결코 아니고 어디까지나 초기 도가의 사상을 기본 원칙으로 삼고 각 사상의 장점들을 널리 흡수하여 새로운 학설을 형성한 것이다. 『여씨춘추』는 노자老子를 대표로 하는 초기 도가의 사상을 계승함에 있어서도 역시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 아니라 새롭게 개조하는 작업을 거쳤다. 그래서 여불위를 비롯한 황로학파를 신도가新道家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기 직전에 궁정 내에서 벌어졌던 격렬한 권력 투쟁, 다시 말해서 진왕 영정과 여불위 사이의 투쟁도 역사적으로 분석하면 결국은 여불위를 대표로 하는 신도가 세력과 영정을 대표로 하는 법가 세력 사이의 모순 및 충돌로 귀착된다. 당시에는 진나라의 천하 통일이 필연적인 추세에 있었으므로 통일 후에 어떠한 정치적 전략으로 천하를 다스릴 것인가 하는 것이 통치자 앞에 대두된 현실 문제였다. 이 때문에 진나라 통치 집단 내부에 커다란 두 개의 분파가 생기게 되었는데, 그 하나가 영정을 우두머리로 하는 정치 세력으로서 법가의 군주 전제론을 견지했고, 다른 하나가 여불위를 우두머리로 하는 정치 세력으로서 자연에 순응하고 백성들과 삶을 같이해야 한다는 신도가의 원리를 내세웠다. 여불위가 신도가를 선택한 이유는 진왕과 권력을 나누어 누리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장래 진 제국의 원대한 이익을 도모하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여불위가 대량의 인력과 물력을 동원하여 방대한 저술을 기획한 것은 단지 그의 황로사상에 대한 개인적인 애호에서 출발한 것만은 아니고, 이와 같은 원대한 비전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진 제국의 장기적인 안정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여불위는 당시 전횡을 일삼고 날로 사치스러워지는 진왕을 규제하고 권면해야 할 필요를 절실히 느꼈던 것이니, 이것이 바로 그가 『여씨춘추』를 편찬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였다. 이 점은 『여씨춘추』 「서의序意」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즉 「서의」에 보면 황제가 전욱?頊을 가르치는 구절이 나오는데, 여기에는 『여씨춘추』에 제기된 사상을 규범으로 하여 진왕을 훈계함으로써 그로 하여금 진정으로 백성들의 부모가 되게爲民父母 하려는 의도가 들어 있다. 이 투쟁이 끝내 진왕의 승리와 여불위의 패배로 끝남으로써 신도가는 영락하고 법가의 군주 전제 사상이 일방적으로 정치계에 팽배해져서 진나라 통일 후 통치자들의 정치 강령으로 받들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결국 진 왕조의 운명을 단축시킨 계기가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