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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반도 일주여행(3) <2011.5.21~31> 몬테네그로/알바니아/마케도니아 편
<5월25일> 몬테네그로
세계문화유산 도시 - 코토르 크로아티아의 진주라고 불리는 두브로니크의 감동을 뒤로 한채 다음 여정인 몬테네그로 코토르를 향해 달린다. 거기 가서 현지가이드와 함께 점심을 먹고 오후 관광을 하게 되어 있다. 이름도 생소한 나라. 그러나 유고연방의 일원이었고 세계문화유산에 빛나는 코토르가 있는 몬테네그로는 모든 여행객들의 동경의 대상이다. 코토르는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서 마치 타임캡슐을 타고 과거로 회귀하는 상상을 해본다. 또 지진이 잦은 지역이라 세계위험문화유산지역으로 등재되기도 한 지역이다.
몬테네그로는 유고 연방국가중 가장 늦게 독립한 나라이다. 연방국가중 네나라가 독립하고 나서 세르비아에서 독립을 못하고 신유고연방으로 남았다가 최근인 2006년에야 겨우 독립할 수 있었다. 몬테네그로라는 말은 "몬테= 산, 네그로= 검은"의 뜻으로 알 수 있듯이 검은산이라는 뜻이다. 산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짙은 검은색으로 금새 이 나라의 이름의 연유를 알게 된다. 몬테네그로는 총인구 62만명의 소국이다. 인구 62만명 중 43%가 몬테네그로인이고 32%가 세르비아인이다. 제1종교는 그리스정교이고 다음은 이스람교,로만카토릭 순이다. 우리가 찾는 코토르는 항구도시이다. 통화는 유러화를 사용한다
몬테네그로는 불가리아제국에 이어 베네치아공국,오스만터키, 그뒤 오스트리아,헝거리의 지배를 받다가 2차대전시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는 등 수없이 외세에 휘말렸다. 1945년 유고연방에 가입하였다가 분리되는 것도 가장 늦게 2006년에야 완전 독립을 이루었다. 아직 미비한 점이 많다고 한다.
몬테네그로로 가는 길은 백두산 천지 모양의 호수 같은 둘레를 계속 돌아서 간다. 호수가 아니다. 바다가 깊숙히 들어와 만을 이루고 있다. 아드리아해를 끼고 해안가에는 별장들이 많이 보였고 바다 가운데 자그만 섬에도 별장을 지어 시선을 끌었다. 코토르스키만을 돌아 건너편이 코토르 란다. 파란 바다물을 보며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하는 기분으로 제법 긴 거리를 달린다. 일행중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하여 조그만 상점 옆에 정차 했는데 4명이 4유러를 줘야만 했다고--소변 잠시 보는데 6천원을 주고 보니 너무 하다고 불평. 한국 같은 나라도 없나 보다. 10분 정도 가면 된다던 목적지는 30분이 지나도 차가 설줄을 모른다. 역시 소변이 급한 일행이 하는 말 "역시 하느님을 제외하곤 아무도 못믿겠다" 고 하여 한바탕 웃었다. 여행 중에 가장 골치 아픈 것이 소변 보는 일이다. 마치 전염병 같다. 옆사람이 소변 마렵다면 같이 전염이 되는 것 같다. 2시간마다 차가 서는데도 늘 도중에 한번 더 서게 되니--
코토르 성벽은 험하고 높은 바위산(로브첸산:1749m)에 세워져 있다. 성벽 넘어는 세르비아이다. 낮은 도시 주변은 해자로 둘러져저 있고 앞면은 바다를 면하고 있어 천연요새로 침략에 대한 방어를 하고 있다. 성벽의 길이는 4.5km에 달한다. 바다에는 큰 크루즈 배들이 정박하고 있었다. 아마도 관광하는 외국손님들이 많은가 보다. 현지 가이드와 함께 코토르 시가지의 광장을 중심으로 성트리폰 성당,성누가교회,가장 오래되었다는 초기기독교 정교회를 둘러 보았다. 그레차 광장에 위치한 성누가교회는 로마,비잔틴,코토르 양식이 고루 갖추어져 있고 원래는 카토릭교회였으나 동방정교로 바뀌어 카토릭과 동방정교가 같이 사용하는 특이한 교회이다. 교회 내부 바닥에는 코토르 시민의 무덤이 있다. 큰 지진이 일어나서 많은 건물이 파괴 되었으나 성누가교회만은 그대로 보존 되었다고 한다.
성트리폰교회는 1162년 코토르의 수호자인 성트리폰을 기리기 위해 프레스코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1979년 대지진으로 파괴되어 다시 재건한 성당이다. 14세기 성화 등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코토르 특유의 양식은 천정에는 아무 것도 없으면서도 벽에는 화려한 장식을 하고 있다. 좀처럼 보기 힘든 가로막대가 두개인 십자가가 교회 첨탑에 보인다.
25분간 자유시간을 주었다. 우리는 골목골목을 누비며 상가며 카페며 성당을 기웃거렸다. 비록 지배의 연속으로 슬픈 역사를 가졌지만 시민들은 활기차고 관광과 무역의 항구도시로서 번잡스런 풍경이었다. 지진이 많은 나라라 이 것 또한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현지 가이드 말로는 올해 한국팀을 6번째 맞는다고 한다. 아마도 전체적으로 10여팀이 될 것이라니 아직 한국의 해외 관광객에게는 좀 생소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점차 많은 한국인들의 관광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
몬테네그로 다음 목표지는 알바니아 이다. 알바니아 수도인 티라너까지 가야한다. 숙소가 티라너에 있으니-- 아드리아도 마지막이라고 잠자지 말고 차창너머로 바다구경을 열심히 하라고-- 과연 알바니아로 가는 길은 험준했다. 도무지 이정표도 없고 S자로 꼬불꼬불한산길을 넘는다. 근 6시가 가까울 무렵 알바니아 국경으로 들어섰다. 지루한 기다림 끝이라 기쁨의 박수가 터진다. 인터넷의 속도가 늦어 입국수속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하니 할말이 없다. 알바니아는 좋게 말해 가장 자연적인 곳이었다. 도로포장이 안된 곳이 많아 터덜거리는 버스로 속이 울렁거리고--
인솔자는 가까운 곳을 보지 말고 먼 경치를 보는 게 좋다고 강조한다. 먼지나고 터덜거리는 거 생각말고 먼 산의 자연 풍경을 보란다. 쌍두독수리의 나라답게 산세나 지형이 웅장하다. 미개발되고 낙후되었지만 순박하고 자연 그대로의 나라라 좋은 점이 많다고--아스팔트 길이 나오니 또 박수가 터진다. 스쿠드라 라는 인구 25만의 도시를 지난다. 차들이 모두 벤츠차이다 택시도 버스도 모두 벤츠차이다.이상해서 물었더니 독일이 고물차를 알바니아에 팔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버스 차장은 남자로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에 과연 후진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밤늦게 숙소에 도착했다. 참 피곤한 날이었다. 여행은 고생한 만큼 기억이 많이 남는 법이다. 비록 고생은 되었지만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바다를 옆으로 끼고 해안도로를 돌아 코토르를 향해 간다. 몬테네그로- 검은 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산색이 짙푸르다. 바다 안의 자그만 섬에도 별장들이 있다. 성 안으로 매표소 앞에는 관광객이 많다. 1200년 역사를 가진 코토르 성곽 밖은 해자로 둘러처져 있고 높은 산을 따라 성곽을 쌓았다. 거리카페가 있고 성누가교회가 보인다. 성누가교회 가장 오래된 성당 성당 내부 골목길 상점가/만난의 장소 시계탑 우물 유적/크르즈 선박들 식당가가 있는 광장 알바니아 산하
알바니아
아름다운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에서 하루밤을 보냈다. 티라나 시내관광으로 부터 오늘 일정이 시작된다. 정식 명칭은 알바니아공화국(Republic of Albania)이며, 알바니아인(人)은 '슈키퍼리아'(독수리의 나라)라고 부른다. 발칸 제국 중에서 작은 나라의 하나로, 동쪽으로 마케도니아, 남쪽으로 그리스, 서쪽으로 아드리아해(海), 북쪽으로 몬테네그로, 북동쪽으로는 세르비아의 코소보메토히야 자치주, 남서쪽으로 이오니아해에 면한다. 알바니아계 주민이 90%에 달하는 세르비아의 코소보메토히야 자치주를 둘러싸고 1998년의 코소보 사태 등 알바니아와 세르비아 양국 간에는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1479년 투르크령이 되었다가 1908~1912년의 범민족적 독립운동의 결과로 1912년 11월 독립을 선언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공산국이 수립되었지만,1992년 민주주의 국가로 바뀌었다. 360여만 알바니아 인구 중 이곳 티라나에 38만명이 거주한다. 티라나는 알바니아의 정치.경제.문화. 행정의 중심으로 현재는 민주공화국으로 대통령 중심제이다. 과거 공산주의 색채가 남아 경찰의 파워도 세고 도심 행정기관은 사진촬영도 불가하다. 알바니아는 그리스와 함께 오스만터키의 지배를 가장 오랫동안 받아온 나라이다. 너무 긴(412년간) 지배를 받아 국민들 스스로가 식민지였다는 의식을 못할정도라니--그래서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고 한다. 알바니아는 일리리아 사람으로 남슬라브와는 다르다. 그리스인을 닮았다. 그래서인지 인물들이 좋다. 인류학자들은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가장 미인이 많다고 평가한다.또 이들은 색감이뛰어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파트도 원색에 가까운 색을,또는 파스텔톤을 사용하여 건축한다.
티라나 관광이 시작되었다. 해외여행객들에겐 늘 방향의 길잡이 되는 건물이 있게 마련이다. 티라나 시내 중심에 있는 시계탑(clock tower 38m)이 우뚝하게 서 있다. 근처에 티라나대학이 있었다. 이 대학은 인문대학의 심리학과 자연계의 화학과가 유명한 대학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화학공장,도자기,약품공장이 많다고--우리의 광화문 광장 같은 넓은 광장이 나왔다. 광장에는 높이 선 기마동상이 시선을 끈다. 오스만터키로부터의 해방을 이끈 독립투사의 동상이다. 도시의 도로가 넓고 건물도 크다. 모두 공산주의의 영향이라고 한다.
역시 오스만터키의 영향으로 모스크가 많다. 동방정교 교회도 많다. 러시아가 지었다는 오페라하우스도 명물 중의 하나이다.엔버호자 정권이 무너지고 그의 동상이 철거된 자리에는 국립역사박물관이 세워져 있었다. 길거리에는 히잡과 차돌을 한 여인이 많았다. 의외로 매연이 심하다. 독일에서 수입한 폐차해야 할 차들이 매연을 뿌리기 때문이란다.
명동거리 같은 번화가에서 자유시간을 갖고 다음 목표인 마케도니아의 오호리드를 향해 출발했다. 오호리드 까지는 150km. 3시간반 예정이란다. 산을 넘으며 산위에 쌓아놓은 여러 성을 보면서 과연 오스만터키가 성을 쌓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터키의 에베소(셀축)성을 쌓은 시기와 같다고 한다. 앨바산 소도시를 지나가고 있다. 휴게실에서 잠시 쉬고 강을 끼고 산악지대를 넘어 계속 달린다. 오후 2시가 가까워질 무렵 마케도니아에 입국했다. 이제 국경을 지날때면 의례 박수가 터진다. 인원이 적어서 망정이지 많을 경우 시간이 많이 걸려 짜증이 나게 된다.
차창에 비친 알바니아 티라나 도심 시내버스/숙소 호텔 택시도 벤츠다. 티라나 중심지
티라나대학
티라나 최고의 명물 시계탑(38m)
정부청사(행정수반실)
시내 한복판의 광화문 같은 광장/모스크도 국립박물관도 보인다.
모스크
오페라하우스
동방정교(알바니아정교)교회
알바니아 영웅 스칸데르버그 동상 시내 곳곳에 동상이 많다.
티라나대학 건너편은 굉장히 큰 시민공원이 있다.
히잡과 차돌을 한 여인들
아파트촌
차창 밖으로 보이는 구릉지대의 전원주택들
높은 산위에도 성곽이 -오스만터키 당시에 쌓은 성곽
산을 넘어 꼬불꼬불 S자 길을 따라 아찔한 스릴을 느끼며 - 공업도시가 보인다. 굴뚝에 연기-
해발 2천m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마케도니아
휴양도시 오호리드의 산책 마케도니아는 발칸반도 중부에 있는 나라이다. 구(舊)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6개 공화국 가운데 하나였으나, 1989년 동유럽을 휩쓴 공산정권 붕괴의 소용돌이를 틈타 1991년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하였다. 그리스와 국명 문제로 다툼이 계속되자 1995년부터 외교적으로는 마케도니아 구 유고슬라비아 공화국(Former Yugoslav Republic of Macedonia, 약칭 FYROM)으로 불리기도 한다. 북쪽으로 세르비아, 동쪽으로 불가리아, 남쪽으로 그리스, 서쪽으로는 알바니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1998년 세르비아에 코소보 사태가 일어났을 때 알바니아계 난민을 대거 받아들였다.
우리가 찾는 도시 오호리드는 마케도니아와 알바니아의 국경지대 남서부에 위치한 인구 55,000명의 소도시이다. 오흐리드호(湖)의 북동쪽 연안에 있다. 9세기 후반에 불가리아인에게 정복되어 슬라브인에 대한 선교(宣敎)의 거점이 되었다. 중기 이후의 비잔틴 미술이 많이 남아 있는 도시로 유명하다. 마케도니아 주요 휴양지의 하나이며, 고기잡이와 자동차부품·진주가공 등의 제조업이 이루어진다. 10~11세기에 축성한 요새의 잔해가 남아 있으며, 성소피아 대성당(11세기)·성클레멘스 성당(1295) 등 많은 성당이 있으나, 오스만 제국 통치시대(1398~1912)에 대부분 이슬람교사원으로 개조되었다. 아름다운 오호리드 호수의 감상은 뒤로 미루고 성소피아,크레멘토,성요한 까르네오 성당을 찾아 언덕위로 걸어 오른다. 장미와 예쁜 꽃장식으로 단장된 주택들이 관광객들의 환호를 받는다.
정감있는 골목을 산책하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마케도니아 커피가 유명하다고 제법 커피매니아 행세를 하는 일행이 은근히 뽐낸다. 여인들의 수다는 여기 와서도 여전하다. 작은 언덕을 오르며 유명한 네개의 성당을 볼 수 있었다. 워낙 믿음이 강하여 오스만터키 시절에도 동방정교가 유지되고 6~8세기의 로마 건축양식이 남아 있다. 먼저 나온 성당은 11세기에 건축한 성소피아 성당이었다. 그리고 13세기의 세인트메리성당, 지금 복원이 한창인 클리멘트교회를 거쳐 마지막 찾은 곳은 요한 까네오 성당이다.
영화 "Before the rain"의 촬영장소로 전세계적으로 이름난 곳이다. 교회에서 내려다 보이는 오호리드 호수의 풍경은 그림같다. 쉽게 그림같다고 했지만 글로도,말로도 표현이 어렵다. 과연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어떻게 잘 표현해야 실제에 가까울까? 사진으로는 제대로 표현이 안된다. 필력 부족을 항상 느끼게 된다. 까네오 성당을 구경하고 원래는 오던길로 돌아오게 되어 있었는데 성당 아래로 바로내려가 배를 타고 가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인당 불과 1유러씩만 지불하면-- 과연 훌륭한 선택이었다. 배를 타고 보는 언덕위의 성당,호수에 떠있는 배들, 호수변의 풍경들이 너무 아름답다.
배에서 내려 오호리드 호수변을 산책했다 오호리드 호수는 전 유럽에서도 물 깊이가 가장 깊은 곳으로 이름나 있다. 스위스의 호수들이 100m인데 비해 250m나 된다고 한다. 20만년 전에 생성된호수로 여름은 물론 사시사철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권삼윤씨의 얘기가 또 나왔다. 많은 여행지 중에서 어디가 가장 좋던가요? 라고 물으니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더니 어디가 가장 쉬기 좋은 곳이라면 바로 오호리드 입니다. 라고 했다고 한다. 호수를 산책하며 까네오 성당에 들러 1주일간 이 곳에서 쉰다면 분명 몸과 마음이 정화되리라--
패키지 여행은 늘 쫒기듯 바쁘다. 다음 행선지로 가야 한다. 마케도니아의 수도인 스코페로- 융단같은 마케도니아의 숲,곳곳에 보이는 벌꿀통,시원한 계곡물 버스를 타고 가며 문득 한국의 강원도 첩첩산중을 여행하는 기분이다. 음악CD를 들으며--
인류사상 가장 크게 세계를 지배한 나라는 몽골제국 그리고 로마제국 그 다음으로 마케도니아를 꼽을 수 있다. 인솔자의 설명이 계속된다. 2000년을 맞으며 타임지가 뽑은 가장 위대한 인물로 1위가 징기스칸, 2위가 알렉산더 대왕이었다. 마틴루터는 5위. 알렉산더 대왕의 일대기가 화려하게 소개된다. 전쟁 시에는 언제나 선봉에 서며 알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모시고 플라톤을 제자로 둔 철학자이기도 하여 그야말로 문무를 겸비한 위대한 인물이었다. 당시 무적의 페르시아 다리우스2세를 치고 동방진출을 꿈꾸며 '나의 목표는 인도'라고 갈파한 알렉산더대왕. 그는 죽을 때 "나의 오른 팔을 관 밖으로 내놓고 장례를 치루라"고 유언을 했다고 한다. 빈 손으로 떠난다는 말이리라.
마케도니아라는 대 강국을 이룩했던 알렉산더대왕- 근세에 와서 '마케도니아'라는 국가명을 두고 그리스가 정면으로 반대함으로 대분쟁이 일어났었다. 엄밀히 말하면 알렉산더 대왕시와는 민족이 다르다. 당시는 그리스계의 라틴족인데 반해 지금의 마케도니아 민족은 남슬라브계이다. 2400년전의 이름을 사이에 두고 사용,불가의 쟁점이 된 것이다. 1995년부터 외교적으로는 마케도니아 구 유고슬라비아 공화국(Former Yugoslav Republic of Macedonia, 약칭 FYROM)으로 불리기도 한다. 오후 8시가 가까운 시간에 수도 스코페의 콘티넨탈 호텔에 도착했다. 내일 스코페 관광이 시작된다.
<5월27일 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 시내관광과 마리아테레사 집을 방문하다. 스코페는 인구 50만의 마케도니아 수도이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는 돌다리 하나로 구분된다. 이 돌다리는 스코페(Skopje)의 상징으로 손꼽힌다. 바르다르 강(Вардар, Vardar River)을 가로질러 각각 신·구시가지를 대표하는 마케도니아 광장(Плоштад Македонија, Macedonia Square)과 스코페 재래시장(Стара Чаршија, Old Bazaar)을 잇는다. 15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마케도니아인들이 자랑하는 것 중에 알렉산더대왕과 마더 테레사 그리고 키릴문자가 있다. 키릴형제는 슬라브족에 대한 선교사업에 공을 세웠으며 선교를 위해 키릴문자를 발명했다. 로마카토릭교회와 정교회에서 모두 성인으로 추대되어 성 키릴로스/성메토디우스라고 불린다. 키릴문자는 바로 성 키릴로스가 고안한 현재 러시아 글자의 모체가 된 문자이다. 돌다리 옆 신시가지 쪽에 키릴형제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그해 무스타파파스하(Mustapha pasha) 사원이 건립되었는데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힌다. 무스타파의 동상도 이곳에 서 있다. 돌다리 옆에는 많은 영웅들의 동상들이 서 있고 사랑을 언약하는 조각상도 있다. 부부팀들은 빠짐없이 기념사진을 찍게 마련이다. 또 명동 같은 거리에는 희한한 여러 모양의 조각상이 시선을 끈다. 구 시가지 재래시장에는 역시 풍부한 과일이 가장 탐난다. 값도 싸고 맛이 좋다.
자유시간 후에 우리는 이 나라의 자랑으로 여기는 마더 테레사 기념관으로 갔다. 마케도니아 스코페에서 태어나고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테레사 수녀를 기리기 위해 정부에서 세운 기념관이다. 테레사 수녀의 생가를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설계하였고 내부는 박물관, 갤러리 등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테레사 수녀의 유물 등을 볼 수 있었다. 성인의 반열에 오른 마더 테레사 수녀는 전인류가 존경하는 분이다.
스코페의 유명한 깔레요새는 차창으로 보는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웅장하고 높은 성이 요새임에 틀림없다. 깔레라는 말은 터키말로 "성"을 의미한다. 터키 여행시 하얀 목화처럼 보이는 성- "파묵깔레"가 떠오른다.그곳에서 발 온천욕을 한 기억이 새롭다.스코페 요새는 석회암으로 지어지고 라틴 어가 새겨진 것을 보아, 518년 지진으로 무너진 고대 로마 도시 스쿠피(Scupi; Skupi)의 유적일 것으로 추측한다. 유적을 기반으로 유스티니아누스 1세(Justinian I) 때 재건하고, 10세기~11세기에 확대 건설하여 완성하였을 것이라고 한다. 1963년 지진으로 일부 무너졌다. 2006년 말, 정부 지원 발굴과 연구가 시작되었다. 1963년 대지진 때는 3000여명의 사상자와 엄청남 피해가 있었다고 한다. 이제 국경을 넘어 불가리아 소피아로 향해 차는 달린다. 멀리 높은 산위에 십자가가 보인다. 이 십자가는 1991년 전쟁의 종식과 화합을 위해 새워졌다고 하는데 지금은 관광객들의 시선을 끄는 명물이 되었다. 오후부터 보게되는 불가리아는 관광객들에게는 가장 선호하는 나라이다. 워낙 관광명소가 많기 때문이다.
휴양관광도시 오호리드에 도착 인테리어가 멋있는 이 집에서 점심을 먹고- 예쁜 돌담길이 정겹다 꽃장식이 예쁜 집과 골목을 올라서 성당으로- 성 소피아 성당 옷과 장식품 가게 세인트 메리교회 복원이 한창인 크레멘토 교회 유적 발굴작업 성 요한 까네오 성당 가는 길 그림처럼 아름답게 언덕 위에 서 있는 성 요한 까네오 성당/비포더레인의 주 무대이다. 성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호수 풍경 까네오 성당에서 내려가는 길에는 예쁜 꽃들이 많았다. 생각치도 않았던 배 유람을 하게 되고 오호리드 호수변의 주택들 오호리드 호수변 산책로 첨탑이 두개인 모스크 우리가 묵은 컨티넨탈호텔 스코페의 시내버스 키릴문자를 발명한 키릴형제 동상 스코페의 명물 돌다리와 기마상 일행들이 돌다리를 건너보고 있다. 먹음직한 재래시장의 과일들/필자는 체리를 특히 좋아한다.
유명한 스코페 돌다리 사랑의 조각상 앞에서 신시가지에는 재미있는 조각상이 많다. 아름다운 건축물로 유명한 이슬람 정교회 정교회 성당 내부 마더테레사 동상 마더 테레사 기념관 기념관 내부 테레사의 봉사사진과 지진 파괴전의 기념관 스코페 깔레 요새 멀리 산위에 화합을 위해 세운 십자가가 명물이 되었다.
다음은 불가리아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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