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대’는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땅은 누구의 것인가요? 토지사유제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의 상식으로는 등기부에 나와 있는 소유주의 것입니다. 그럼 질문을 ‘땅은 본래 누구의 것이어야 하나요?’로 바꾸면 어떤 답이 나올까요?
좋은 사회제도를 모색하려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익숙한 제도는 당연한 제도이고, 당연하니까 좋은 제도라고까지 여기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버릇은 도움이 안 됩니다. 익숙한 것이 좋은 것이라면 나쁜 제도를 고친다는 의미의 개혁이란 있을 수 없으니까요.
그럼 익숙하지 않은 상황을 한번 생각해볼까요? 좋은 사회를 꿈꾸는 다섯 가구가 무인도에 가서 새로운 세상을 개척하려고 합니다. 토머스 모어의 유명한 책 『유토피아』에 나오듯이 다섯 가구가 공동체 생활을 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가구별로 땅을 배정하여 살기로 합의했습니다. 무인도의 토지를 조사해보니, 그림과 표처럼, 연평균 100가마를 생산할 수 있는 1등급 토지는 네 필지밖에 없고 나머지는 연평균 생산이 90가마 이하라고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토지 등급(생산) | 토지 배정 |
1등급(100가마/년) | 1진A | 1진B | 1진C | 1진D |
2등급( 90가마/년) | 1진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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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등급( 80가마/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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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등급( 70가마/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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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표의 출처: 김윤상 (2006) 『알기 쉬운 토지공개념: 지공주의 해설』, 개정판, 경북대학교출판부, 32, 33면. (그림: 최진혁)
공정하게 추첨하여 토지를 배정하는 안이 우선 떠오를 것입니다. 그러나 추첨은 토지취득의 기회균등은 보장되지만, 토질이 열등한 필지를 배정받게 될 어느 한 가구는 계속 불리한 생활을 하게 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럼, 주기적으로 추첨을 새로 하면 어떨까요? 자신에게 배정된 토지가 몇 년 뒤에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다고 예상하면 좋은 주택을 짓거나 경작지의 토질을 높이는 행위를 꺼리겠지요. 즉, 형평성은 있어도 경제효율 면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추첨으로 새로 배정받는 주인이 전 주인에게 주택과 토질개선의 대가를 지불하는 제도를 두면 어떨까요? 하지만, 전 주인의 토지개량 방식이 새 주인의 마음에 안 든다면 제도가 원만하게 굴러가지 않겠지요.
자, 이제 무인도의 가구 수가 증가하는 상황도 생각해볼까요. 다른 지역에서 새로 이민해 올 수도 있고 기존 가구에서 분리되어 새 가구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때, 1진으로 도착하여 이미 정착한 다섯 가구를 포함한 전 주민을 대상으로 다시 추첨하여 배정하는 방법과 새로운 가구에게만 비어있는 열등토지를 배정하는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어느 방법이든, 첫 다섯 가구의 경우와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며 그 정도는 더 심각하겠지요. 이런 문제는 인구가 불어날수록 더 악화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주기적인 추첨-재배정을 하지 않고 토지 거래를 당사자의 자유의사에 맡깁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우등토지 소유자가 열등토지 소유자에 비해 유리한 정도에 상응하는 금전 또는 물자를 사회에 납부하여 공동기금을 조성하고 이 기금을 모든 주민을 위해 공평하게 사용한다는 조건입니다. 이렇게 하면 배정받는 토지의 등급과 무관하게 모든 토지 소유자의 경제적 손익이 동일하게 되고, 경제효율에도 문제가 안 생깁니다.
여기에서, 경제학 용어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어느 필지가 다른 필지에 비해 유리한 정도를 ‘지대’라고 합니다. 다섯 가구 중 네 가구는 1등급 토지에, 한 가구는 2등급 토지에 정착한다면, 1등급 토지에서 연간 10가마의 지대가 발생하고 사회 전체의 연간 총지대는 40가마가 됩니다. 인구가 불어나서 3등급 토지까지 정착이 이루어진다면 1등급 토지의 지대는 20가마로 상승하고 2등급 토지에서도 10가마의 지대가 새로 발생하며, 사회 전체의 연간 총지대는 120가마가 됩니다.
위에서는 농업용 토지만을 예로 들었으나 현대처럼 산업화와 도시화가 이루어진 시대에도 지대는 토지소유자의 생산적 행위와 무관합니다. 지대 발생과 변화의 원인은 토지의 자연적 형질 외에 사회경제적 변화, 정부의 조치 등이 있는데 어느 것도 토지소유자의 행위와는 무관합니다. 소유자의 노력 덕에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경우에도 그 상승분은 환수 대상 지대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인구가 불어날수록 지대도 늘어나고 지대를 환수하여 조성하는 공동기금의 규모도 커집니다.
이렇게 지대를 환수하여 공익 목적에 사용하는 제도가 19세기 미국의 토지개혁가인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가 제안한 land value taxation입니다. 직역하면 ‘토지가치세제’인데 필자는 ‘지대조세제’라는 번역어를 더 선호합니다. ‘토지가치’라고 하면 흔히 ‘지대’가 아닌 ‘지가’ 즉 매매가격을 연상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필자는 이런 제도의 밑바닥에 깔린 사상을 ‘지공주의’(地公主義)라고 부릅니다. 토지공개념의 두 글자인 ‘지공’에 ‘주의’를 붙인 용어로서, 토지를 포함한 자연은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사상입니다.
세상에는 인간이 생산한 인공물과 인간의 행위와 무관하게 천부된 자연물이 있습니다. ‘인공물은 생산자의 것으로, 자연물은 우리 모두의 것으로’라는 원리는 정의롭기도 하고 효율적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에는 토지사유제가 보편화되어 있어 너무나 상식적인 이런 원리가 무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글머리에서, 좋은 사회제도를 모색하려면 ‘익숙한 것 → 당연한 것 → 좋은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고 했지요.
지공주의 또는 지대조세제를 도입하면 당연히 부동산 투기가 사라집니다. 단지 토지를 소유한다는 이유만으로 생기는 이익은 모두 사회에 환수되기 때문입니다, 이 원리를 토지를 포함한 자연 전체에 적용하면 천연자원의 낭비를 막고, 환경오염과 기후위기 방지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지대로 조성하는 공동기금에 대해서는 모든 국민이 동등한 지분을 가집니다. 그러므로, 이를 복지제도의 재원으로 삼으면 ‘개미가 베짱이를 먹여 살리는 복지’가 아니라 누구나 자기 돈으로 자기 삶을 보장하는 복지가 됩니다. 우리가 고정관념을 버리고 원론으로 돌아가면 이런 놀라운 잠재력을 가진 제도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2023.7.19. <좋은나무> (기윤실) 게재
https://cemk.org/31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