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잠자기를 좋아하고 많이 자는 게으름뱅이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디에 기인합니까? 예. 사실 인간이 일을 전혀 그만둘 수 없다는 데에 기인합니다. 인간은 일을 절대로 중지할 수가 없습니다. 게으름뱅이가 너무 조금 일을 해서 잠을 잘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게으름뱅이라 하더라도 어쨌든 간에 온종일 다리를 움직이고. 어떻게든 팔을 이리저리 흔들어 대기 마련입니다. 게으름뱅이도 뭔가를 합니다. 게으름뱅이가 부지런한 사람보다 사실 일을 덜 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무의미한 것을 할 뿐입니다. 부지런한 사람은 외부 세계를 향해서 자신의 활동에 의미를 결부시킵니다. 그것이 바로 다른 점입니다. 게으름뱅이가 하듯이 무의미한 활동은 의미 있 는 활동보다 더 많이 잠을 자게 합니다. 의미 있는 활동은 우리를 정신 속에서 그저 헤엄을 치도록 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을 하면서 의미 있게 움직이는 동안 그 정신을 점차적으로 우리 내부로 이끌어 들이기 때문입니다. 의미 있는 일에 손을 내뻗으면서 우리 자신을 정신에 연결합니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정신과 함께 일을 하기 때문에 정신이 나중에 다시금 잠 속에서 너무 과도하게 무의식적으로 일을 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게으름뱅이도 역시 활동 한다는 사실을 보면 인간이 활동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 간이 어느 정도로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의미 있게 활동하는 것 이 단어들이 어린이를 교육하는 사람이 되려는 우리를 관철해야만 합니다. 그럼 언제 인간은 무의미하게 활동합니 까? 무의미하게 활동한다 함은 그 활동이 단지 자신의 신체가 요구 하는 만큼만 활동한다는 것입니다. 의미 있게 활동한다는 것은 그 저 자신의 신체가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이 요구하는 것 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어린이에게서 우리는 이 점을 고려해야 합 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어린이의 외적인 신체 활동을 그저 신체적 인 것에 치중하는 쪽으로. 어린이들이 신체적으로 어떤 운동을 해야 하는지를 묻게 되는 그런 물리적 체조 쪽으로 점점 더 바꿀 수도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어린이의 외적인 움직임을 의미 있는 움직임. 의미로 관통된 움직임으로 유도해서 그 움직임이 정신 속 에서 헤엄을 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항하는 방향을 따르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신체 운동을 오이리트미로 발달시킵니다. 어린이에게 단순한 신체적인 운동을 더 많이 시킬수 록, 어린이가 더욱더 과도한 수면 증세를 발달시키고, 더욱더 비만 하게 될 경향을 전개하도록 오도하는 것입니다. 신체적인 것을 향한 이 움직임을 더 번갈아 가면서 시키면 ㅡ인간은 리듬 속에서 살아야만 하기 때문에 이런 신체적인 움직임을 완전히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ㅡ 이 신체적인 활동을 다시금 의미로 가득 찬 운동으로, 즉 모든 움직임이 소리를 표현하고 의미를 지니는 오이리트미로 더욱더 회귀시킬 수 있다면, 에를 들어서 각 움직임이 하나의 소리를 표현하고 각 움직임이 하나의 의미에 상응하는 오이리트미와 같은 의미로 가득찬 움직임으로 더욱더 회귀시킬 수 있다면, 다시 말해서 체조를 오이리트미와 번갈아서 실행토록 할 수 있다면 잠과 깨어남에 대한 욕구 간에 더욱더 조화를 가저오게 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의지의 면에서 외적인 면에서 역시 어린이의 삶을 더욱더 일상적으로 유지하게 됩니다. 체조를 점차적으로 단지 신체만 따르는 무의미한 활동으로 만든 것은 물질적인 시대의 수반 현상이었습니다. 그저 무의미한 움직임이나 단순히 신체에서 발췌한 움직임이 영향을 미치도록 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 반대가 되는 의미와 모순까지 더해서 체조를 스포츠로까지 고양시키고자 하는 것은 인간을 물질적으로 사고하는 인간으로까지뿐만 아니라 동물적으로 느끼는 인간으로까지 하락시키려는 노력에 상응합니다. 지 나친 스포츠 활동은 실질적인 다위니즘입니다. 이론적인 다위니즘이라고 불리는 것은 인간이 동물에서 유래한다고 주장합니다. 실질 적인 다위니즘은 스포츠이며, 인간을 다시금 동물로 회귀시키기 위한 윤리 강령을 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이런 사실들을 이렇게 과격하제걱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 니다. 오늘날의 교육자는 이런 사실들을 이해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교육자는 맡겨진 아이들을 단순히 가르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으로 그리고 전체 인류에 영향을 미처서, 인간을 실제로 점차적으로 동물화되도록 작용하는 것들이 점점 더 많이 생기지 않도 록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금욕주의가 아닙니다. 이 것은 실제적인 통찰의 객관성에서 얻어진 것이며, 다른 자연 과학적 인식과 전혀 다름없이 전적으로 진실한 것입니다.
ㅡ인보앎 13강
교사의 역할이 단순히 가르치는 것에도 미치지 못하고
점차적으로 아이들을 잠시 맡는,
요즘 말로 바쁜 부모들 대신 '행복하게ㅡ혹은 큰 사고없이 안전하고 문제없게' 한 시절을 CARE하는 것이 여기는 시대에
다시 한 번 교사의 역할들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가끔 아이들을, 부모님들을 만나다 보면
내가 교육ㅡ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단지 사람을 만나는 일을 넘어
(아이 혹은 어른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이 사회, 이 시대라는
거대한 벽과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 높고 거대한 벽 앞에서
주눅이 든다기 보다는,
무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나
숨부터 턱.하고 막힌달까?
어쩌겠나...
앞은 벽이요, 뒤는 심연이니
진퇴양란...
가만히 앉아 책이나 읽자하니
읽어갈수록 슈타이너아자씨는 더 많은 것을 바라시고... (슈타이너 미워~🤨)
그 바라는 것에 또 고개가 끄덕여지니
계속 나아갈 수밖에.
닭알이 되어 부딪히기보단
담쟁이의 '잡초스러움'으로 벽을 넘어야지 타고 균열을 내야지. . .
첫댓글 그저께 <인.보.앎> 개정 번역 시작해쓰여. 이제는 하주현쌤이 교정을 보기로 했기 때문에 출판에 속도가 좀 붙어서리 내년에 <특수 교육학 강의> 나온 후 이 책의 개정판이 나올 거 가트요. ^^
오~ 하고 후딱 달려갔더니 게시판은 아직 안 열렸네요. . .
하주현 누나는 더 바빠지겠군요. ^^
근데 제 식성은 교정 안 본,
날 것을 더 좋아합니다. ㅋㅋ
더 바빠지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 과제를 떠맡은 하주현 누나에게 감사하세요.
네 개의 눈이 더 많이 본다고, 교정하기 때문에 밝혀지는 번역 오류가 더러 있어요.
그리고 이상하게 교정했다 하면, 왜 이렇게 이해할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원문에서 제가 읽어낸 의도를 더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다시 쓰게 되고, 그러면서 더 나은 문장이 나오는 경우 많아요.
@최혜경 네엡.
(오늘은 투덜이 버젼인줄 어찌 아시고~궁시렁 궁시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