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군의 하나님, 우리에게 돌아오십시오.
하늘에서 내려다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보살펴주십시오.
[시편 80:14]
시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인도하심을 '이집트에서 포도나누 한 그루를 뽑아내어 약속의 땅에 심은 것'으로 비유한다.
그 포도나무는 잘 자라서,
뿌리를 깊이 내리고,
거대한 백향목 마져도 능가할만큼 큰 나무가 되었고,
그 그늘이 산을 가리고(10),
가지는 바다까지 넝쿨은 강까지(11) 미치며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
하지만,
이제는 황폐해져서
지나가는 이들이 포도를 함부로 따먹고,
멧돼지와 산짐승들이 포도원을 망가뜨리고 들짐승이 포도를 먹는다.
이스라엘은 이웃의 시빗거리로 전락했고, 원수들로부터 비웃음을 당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런 상황에서 시인은
주님께서 몸소 굳세게 키우신 햇가지를 보살펴(15)달라고 기도한다.
'햇가지',
여기에만 희망이 있다.
포도의 꽃은 햇가지만 피어나므로 열매도 햇가지에서만 열린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얼굴을 돌려버리셨다.
아니, 그들이 하나님에게로부터 얼굴을 돌려버렸다.
그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았고, 우상을 숭배했다.
하나님이 그들을 벌하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덤을 파고 무덤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무덤 속,
깊은 죽음과 어둠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치지만 그들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인간의 모든 노력이 끝난 곳에서 새로운 희망이 시작된다.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인간은 자기가 그 운명을 바꾸려고 끊임없이 시도했을 것이다.
"하나님, 만군의 하나님, 돌아오소서!
주님의 복되고 환한 얼굴빛 비춰주소서.
그러면 우리가 구원을 받겠나이다(15)."
시인은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하고 있다.
열심을 다해 자신에게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보려 했지만,
자기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음을 안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인간의 책임에 대해서 혹은 인간이 해야할 일을 하나님이 대신해달라고 간구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얼굴을 돌리신 적이 없으시다.
우리가 그의 얼굴을 외면했을 뿐이고,
우리가 그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 순간부터 그분의 얼굴은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분의 얼굴을 보려면,
그분이 얼굴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을 향해 얼굴을 돌려야 한다.
돌이킴, 회개(metanoia)의 의미를 묵상하라.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바라보고 계실 뿐이다.
우리를 고통 속으로 밀어넣으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고통 속에서 부르짖을 때,
우리의 얼굴이 하나님을 향할 때,
도우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이 얼굴을 돌리신 것이 아니라,
내가 얼굴을 돌려 하나님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을 대면하지 않고 자기의 힘만으로 살고자하는 인간이 어찌 이 세상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어떤 이들은 그 절망의 끝자락에서 하나님에게로 돌리지만,
어떤 이들은 끝내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자기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