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사랑 6월의 이야기
(2018)
이제는 완전히 여름의 달이 되어 버린 유월
수은주는 벌써 30도를 찍는 것을 당연하다는 듯
위용을 뽐내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이나 아픈분들이 계신 집에서는 이 여름을
어떻게 넘나 하고 또 걱정되는 달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모 씩씩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하며
새롭게 시작하는 유월입니다..
6월에 나누고 싶은 이야기
매년 5월 하순부터 6월 초순까지 열리는 테니스
세계 선수권대회가 있다..
US오픈, 호주오픈, 윔블던대회 와 함께 세계 4대 메이저
대회중의 하나인 프랑스오픈 테니스대회가 그것 이다.
오늘은 프랑스오픈대회의 명칭과 유래에 대해서
소개해 볼까 한다.
일반인들에게는 프랑스오픈으로 소개되지만
이 대회의 공식명칭은 좀 다르다..
‘Les Internationaux de France de Roland Garros’
‘프랑스 롤랑 가로스 국제대회’ 라는 뜻이다.
이것을 줄여서 ‘롤랑 가로스’대회라고 한다..
그래서 프랑스 오픈대회 홈페이지에 가면 롤랑가로스
로 표기되고 대회로고도 기념품도 다 롤랑 가로스로
표기 되어있다.
(롤랑 가로스의 제1 경기장 필립 샤트리에)
이쯤 되면 본론이 나온다..
오늘은 바로 ‘롤랑 가로스’에 대해 이야기 하려한다..
프랑스 출신 세계적인 작가 중 한명으로
하늘을 사랑했고 비행기를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
2차대전시 굳이 비행사를 자원해서 조국을 정찰
하던 중 실종 되어 버린 ...
지금도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베스트 셀러
어린왕자를 쓴 ‘생떽쥐베리’가 그 사람이다...
그렇게 비행기를 사랑하다 끝내 비행기를 타고
가다 어디론가 증발 되어 버린....
어쩌면 그 ‘생떽쥐베리’의 원조랄까 롤 모델이랄까
하는 사람이 바로 롤랑 가로스이다....
(롤랑 가로스와 그의 비행기)
롤랑 가로스(1888~1918)는 마다가스카르섬 옆의
작은 섬에서 태어났다.
파리에서 공부했으며 대학원에서 평생의 친구인
에밀 레저를 만난다..
비행기를 사랑했던 롤랑 가로스는 19세 때 처음
비행을 시작했다
그 후 1913년 세계 최초로 대서양을 한번도 쉬지
않고 넘어가는 무착륙비행을 성공하였다....
그리고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프랑스
공군에 입대해 서부전선에 투입된다..
그해 8월 그는 독일 전선을 날며 독일 비행기를
파괴시키므로 세계 최초로 비행전투를 한 사람으로 기록된다.
처음에는 정찰용이었던 비행기들이 처음으로
조종석 앞에 기관총을 장착하여 전투기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사용한 이가 바로 롤랑 가로스였다.
1915년 그는 자신이 근무했던 곳에서 새로 개발한
비행기를 타고 독일기 3대를 격추 시켰지만 끝내
적의 총에 맞고 추락하여 독일군 포로가 된다..
허나 그는 3년 후 포로수용소를 탈출한다..
그대로 그냥 전역하면 될 일이었다..
허나 롤랑 가로스는 다시 공군에 자원 입대한다.
그리고 1918년 부지에르 전투에 참전해 결국
전사하고 만다..
그때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한 달 전..
그의 30번째 생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지금 파리 군사 박물관에는 롤랑 가로스 중위의
군모와 군복이 소장 되어 있다..
그리고 1928년 프랑스에서는 자국에서 열리는
국제 대회의 경기장을 파리 외곽에 건설하면서
그 세계적인 규모의 테니스 대회의 이름과 대회장의
명칭을 바꾸게 되는데
그때 그 명칭을 국가유공자면서 국민적 전쟁영웅인
롤랑 가로스라고 붙이자고 주장한 이가 있었다..
그 경기장 건설의 감독관이었던 사람으로 그가 바로
롤랑 가로스의 단짝 친구였던 ‘에밀 로저’였다..
그렇게 해서 세계4대 테니스대회의 하나인
롤랑 가로스가 탄생 했다..
(프랑스 오픈 테니스 대회 공식로고)
세계최초의 전투비행사.
세계최초의 대서양 무착륙 비행사
하늘을 사랑했고 비행기를 사랑했고 나는 것을
좋아했던 롤랑 가로스는 지금 그의 이름을 딴
고향의 비행장과 또 그의 이름을 딴 세계 최고의
테니스 대회의 하나로 영원히 기억 되고 있다..
올해는 흙신 나달이 11번째 우승을 위해 칼을
갈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의 정현 선수는 아쉽게도
발목부상으로 참가를 못하였다..
‘프리다가’ 내 삶에 가져다준 가장 큰 변화는
지금과 같은 평온함이었다.
지금도 열정에 휩싸일 때가 있지만 나의 열정은
전처럼 산만하지도 절박하지도 않다.
나의 열정은 이처럼 현실에 두 발 딛고 평온하기
때문에 훨씬 더 강렬하다.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 화가 프리다 칼로를 그린 영화 ‘프리다’역을
맡아 연기한 후
배우 셀마 헤이엑이 한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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