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그맨 이경규를 너무나 대중적인 스타로 만들어준 프로그램과 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이경규하면 수식어로 따라다닐 정도로 그를 유명하게 만든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몰래카메라’입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라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한 코너였던 몰래카메라의 진행자 이경규는 이 코너로 자신의 입지를 굳혔으며 당시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메인 MC였던 주병진 및 최수종을 넘어설 정도로 재치와 유연성을 평가받았다고 합니다. 또한, 이 코너에 출연한 사람들은 출연을 계기로 이경규와의 우정이 돈독해지기도 하였는데 1992년 12월 19일에 이경규가 결혼을 할 때 몰래카메라에 당했던 방송인 임백천, 조경철 박사, 가수 유열이 각각 결혼식 사회와 주례, 그리고 축가를 맡기도 하였습니다.
‘몰래카메라’가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는 조금은 허무맹랑하지만 있을 법한 일이 유명인에게 일어나게 되었을 때 그들의 반응이 시청자들에게 큰 재미를 안겨다 주었기 때문입니다. 또, 고통과 고난의 상황을 이겨내고 나서 끝부분에 극한 반전으로 인한 카타르시스를 연애인이나 시청자들에게 안겨다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몰래카메라’를 보면서 저는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에도 ‘몰래카메라’를 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지금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나지 너무나 암담하게 살아가며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해야하기 때문에 하지만 결국은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몰래카메라의 주인공들에게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우리의 일상생활속에서 황당하고 어떻게 할 지 모르는 일들이지만 결국 이 힘든 일이 끝날 때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때 좋은 일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요셉’과 형들의 만남이 꼭 하나님께서 제작하신 몰래카메라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사실, 요셉은 형들을 알고 있고 형들이 곡식을 구하러 자기에게 오게 되었을 때 형들을 놀래키기 위해 요셉 각본의 ‘몰래카메라’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요셉’과 형들의 만남은 벌써 요셉이 어릴 때부터 아니 요셉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하나님께서 만들어놓으신 ‘몰래카메라’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기가막힌 인생드라마, 요셉을 통해서 보여주는 하나님이 만드시는 인생의 몰래카메라가 어떤 것인지 살펴보고 우리 또한 하나님의 유머러스한 인생 각본의 주인공이 되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여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몰래카메라에 등장하는 것 첫 번째는 이기주의의 악역이 등장합니다.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 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바라보고만 있느냐”
4절도 함께 읽겠습니다.
“야곱이 요셉의 아우 베냐민은 그의 형들과 함께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생각에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인생을 살다보면 항상 좋은 사람만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우리에게 좋게 대해주는 것만도 아닙니다. 또 어떤 경우는 가장 친하고 우리를 가장 잘 이해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우리에게 가장 큰 상처와 아픔을 가져다 줄 때도 있습니다.
요셉은 어린 나이에 형들의 버림을 받고 형들의 손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어린 나이에 가족은 사랑으로 뭉쳐진 혈연이라는 사실에 대한 큰 회의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회의감을 가질 내용이 아니라 인생속에서 우리가 언젠가는 경험해야할 진리였던 것입니다. 가족은 사랑이 우선이지만 그럼에도 가족이 우리를 배반할 수도 있고 엄청 가까운 친구도 우리의 인생의 동지이지만 결국 우리를 힘들게 할 때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항상 염두해두고 살 필요가 있는 진리인 것입니다.
요셉은 이미 오래전에 그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 어찌보면 하나님의 섭리이고 놀라운 계획이었는 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요셉의 형제들이 이 사실을 이제 깨닫게 됩니다. 요셉은 이미 십수년전에 깨달았던 것을 요셉의 형제들은 이제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야곱은 가족들과 온 식구들의 굶주림을 보면서 아들들을 책망하며 애굽으로 양식을 구하기 위한 여행을 보냅니다. 혹시나 큰 화를 입을 줄 모르는 험란한 애굽으로의 여행을 보내는 것입니다.
이 일은 선뜻 가고 싶은 여행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1절 후반부를 보십시오.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바라보고만 있느냐?
이 말의 뜻은 “너희들은 지금 가족들이 죽게 되었는데 애굽에 양식이 있다고 하는데 빨리 가서 구해올 생각은 하지않고 서로 눈치만 보며 머리를 굴려 서로 다른 사람을 보내려고 하느냐”라는 뜻일 것입니다.
가고 싶지 않은 여행... 혹여나 화를 당할 여행... 부담감이 가는 여행이라 가기 싫은 형제들이었습니다.
이 여행이 그 만큼 힘든 여행인 것은 4절 말씀에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4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야곱이 요셉의 아우 베냐민은 그의 형들과 함께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생각에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야곱은 열 두 아들 중 요셉을 잃은 이후에 베냐민까지 열 한 명의 아들을 데리고 생계를 꾸려나갔습니다. 그러다 대 흉년을 맞아 애굽으로 양식을 구하기 위해 아들을 보내야할 형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서로 일을 미루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아들 모두를 애굽으로 보낼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막내아들 베냐민은 함께 보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왜일까요? 그 만큼 위험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야곱의 이기적인 생각과 이론 인한 아들들의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등장합니다.
아버지는 예전엔 요셉을 그렇게 챙기더니 이제는 베냐민만 챙긴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나머지 아들들은 ‘아버지에게 별 소중하지 않는 아들이다’라는 생각이 형제들에게 들었을 것입니다.
위험한 일인데 자기들은 다 가야하고 베냐민은 위험하다고 빠지니 이런 불공평이 어디 있냐고 아버지에게 원망을 했을 것입니다.
인생의 몰래카메라에는 불공평과 고통과 고난이 꼭 등장합니다. 우리가 드라마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꼭 대접받고 인정받는 사람이 등장하는가하면 막대함을 받는 불공평한 경우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이런 불공평과 고통, 고난은 우리의 게으름으로 인해서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야곱의 아들들, 요셉의 형제들은 결국 가족의 생계보다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이기주의와 게으름으로 인해 불공평, 고통, 고난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이기주의적인 생각과 나태함, 게으름으로 인해 고통과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좀 더 일찍 움직이고 좀 더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면 그 만큼 불공평과 고통,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우리 인생에서 경험하는 많은 악인들속에서 공정함과 정의를 보여주며 적극적인 인생 개척의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의 하나님의 몰래카메라에 등장하는 것 두 번째는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기가막힌 일들이 일어납니다.
5절과 6절입니다.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양식 사러 간 자 중에 있으니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음이라 /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지난 번에도 살펴보았듯이 요셉의 대처로 인해 전 세계에 가뭄과 흉년이 들었을 때 애굽은 양식이 풍부했던 것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애굽에 비축된 양식은 애굽 백성들만 배를 채울 양이 아니라 전 세계 각처에서 양식을 구하러 온 사람들에게까지 양식을 나눠 줄 수 있는 엄청난 양식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곡식을 매년 아낀다고 하더라도 7년의 대흉년기간에 한 국가가 7년동안 준비한 물량으로 전 세계의 국가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유럽공동체, EU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거의 단일국가수준입니다. 거의 모든 나라가 유로화라는 단일 화폐단위를 쓰고 있고 EU 회원국 회의를 통해 서로 협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10년, 2011년에는 EU공동체에 경제위기가 닥쳐왔습니다.
포르투갈,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에서 시작된 재정위기로 국가 도산의 가능성이 일어나고 국가도산으로 파생될 무질서와 폭력사태를 막기 위해 유럽공동체 국가들은 긴급 재정지원을 통해 채무불이행으로 야기될 국가도산을 막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 이탈리아,스페인에 이어 벨기에, 슬로베니아, 사이프러스,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도 재정적인 위기를 겪게 되면서 어디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할 지 유럽국가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총 27개국이나 회원국으로 구성되어진 EU이기에 한 두 개 나라가 경제적인 위기가 닥쳐왔을 때는 문제를 쉽게 해결했습니다. 하지만, 동시다발적으로 거의 10개국정도가 문제가 일어나니 쉽게 재정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유럽 전체에 경제 위기가 닥쳐오니 경제호황을 누리고 있는 몇 몇 나라의 힘으로는 유럽 전체의 경제를 버텨내기 힘들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애굽이 아무리 잘 대비했다고 하더라도 당시 전 세계로 불리는 지중해연안 모든 국가의 경제를 책임지기란 힘이 들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요셉이 총리로 있던 애굽이 전 세계의 식량문제를 해결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인간의 지혜로 인간의 식량문제를 해결했지만 우리 주님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사... 기적으로 인간의 식량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4장 17절을 펴보십시오. 17절부터 21절까지 교독해서 읽겠습니다.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예수님은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는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그들이 구해온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약 만 이삼천명을 배불리 먹이시는 역사를 보여주셨습니다.
아무리 가진 것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풍족함을 누리고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재력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의 모든 쓸 것과 나의 모든 형편을 아시고 나에게 도움이 되신다는 믿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물론, 그 믿음을 가졌기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방종이요, 오히려 불신앙보다도 더 못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런 믿음없이 인간적인 노력만 하고 악착같이 살아보려고 하다가 하나님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사는 것은 큰 저주의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도우심이 되신다는 믿음으로 인생에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도움을 주시는 것을 체험하는 인생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 하나님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정말 기막힌 좋은 것들을 허락하십니다. 비록 어느 순간에 고통과 절망의 순간이 찾아오지만 그 순간에도 하나님의 기가막힌 해결책을 허락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 하나님의 기막힌 타이밍.. 우리를 도우시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의 하나님의 몰래카메라에 등장하는 세 번째 특징은 항상 준비된 각본대로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7절,8절입니다.
“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을 아나 모르는 체하고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곡물을 사려고 가나안에서 왔나이다 / 요셉은 그의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그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더라”
요셉의 형들이 애굽에 곡식을 구하러 왔다가 애굽총리 관저까지 불려가게 되었습니다. 애굽총리의 관저라고 하지만 사실 이들의 관계에서 따져보면 애굽의 총리관저이기 이전에 동생이 살고 있는 집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애굽에서 총리의 역할을 하고 있고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그에게 절하며 그를 만나 자신들의 고민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애굽이라는 나라가 그 당시 세계 최대 강대국이었기에 애굽의 총리라는 말은 이 세상에 모든 권력을 손에 쥐고 주무를 수 있는 위치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장관만 되더라도 이런 경향을 종종 봅니다.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에서 오는 관리는 우리가 격식에 맞게 대우를 하지만 후진국에서 오는 권력자들은 우리나라에서 푸대접을 받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대통령이나 총리급의 사람들이 오지만 별로 잘 사는 나라가 아닌 경우 장관급이 예우를 표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차관급이나 그 밑의 직원들이 예우를 맡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 오는 것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른 나라에 갈 때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미국이나 중국등에서는 우리나라 대통령이 그 나라에 도착했음에도 대통령이나 주석이 맞이하는 경우보다 실무진이 맞이하고 대통령이나 주석은 관저에 가서나 만나게 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초강대국이라면 우리가 방문하는 나라에서는 우리 대통령을 맞이할 때 최상의 대우, 극진한 대우를 하지 않을 수가 없겠지요.
지금 요셉은 세계 최고의 고위직의 사람이고 요셉보다 더 높은 지위의 인물은 애굽의 바로 왕 밖에 없습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은 요셉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것으로 존경의 표시와 권력에 대한 복종을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속에 나온 이야기속에서 혹시 요셉의 이런 상황을 표현한 그림을 본 적이 없습니까? 바로 요셉이 어릴 적 꾸었던 꿈에 이런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까?
창세기 37장 6절에서 11절 말씀을 찾아서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교독해서 읽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요셉은 이미 오래전에 형제들이 자신에게 무릎을 꿇고 이 땅에서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이 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꿈을 들었을 때 형들이나 아버지는 요셉이 단지 가족들중에 최고로 잘 된 사람이 될 정도로만 이해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서 보니 가족들중에 최고로 잘 된 것은 당연하고 전 세계에서 최고의 권력자로 자리를 매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정말 신기하기 그지 없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이 가족들중에서 제일 좋은 대접을 받게되는 것이 싫어서 요셉을 시기했지만 결국 요셉은 가족들중에 최고가 아닌 전 세계에서 최고가 되는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만약 형들이 동생 요셉이 이 정도의 권력자가 될 줄 알았으면 그렇게 시기하며 질투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미 처음부터 보험든다고 생각하고 어떻게든 한 자리 하려고 요셉에게 잘 보이려고 했을 것입니다.
마치 왕비의 인척들이 왕비를 통해 권력의 대열에 들어오려고 로비를 했던 과거 정치권이나 최근 대통령의 친인척이 권력을 미끼로 비리를 저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우리 인간은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고 사람들을 과소평가하거나 과대평가하여 후일에 큰 화를 당하게 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미리 정하신 각본대로 일을 진행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의 계획은 단 1분, 2분... 하루... 이틀을 두고 계획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시편 111편 7절과 8절을 보십시오. 함께 읽겠습니다.
“그의 손이 하는 일은 진실과 정의이며 그의 법도는 다 확실하니 / 영원무궁토록 정하신 바요 진실과 정의로 행하신 바로다”
우리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영원무궁토록 정하시고 진실과 정의로서 그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계획중에 가장 빛나는 계획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류 구원의 계획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앞에 범죄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여인의 후손을 통해 이 땅을 구원하시고 모든 죄를 사하여주시고 새롭게 하실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완전히 이루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 23절,24절을 보십시오.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우리 예수님의 죽으심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그 뜻대로 일을 진행시키기시위한 계획속에서 이뤄진 일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모르고 불법을 행하는 악한 자들이 그들의 계획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마저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속을 다 아시고 그 일을 하는 그것을 허용하심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신 것입니다.
왜냐면 결국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셔야지 만이 사망과 영원한 형벌의 굴레를 해결하시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속에 사용되어진 악한 사람들의 활동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결국,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의 시나리오작가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의 연출자도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에는 일점일획도 차이가 없으며 전혀 시간적인 오차도 없으십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일이 더디냐고 물어보는 일들속에서 하나님은 그 만큼 기다리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갑자기 일이 진행되는 지 의아해하는 일들속에서 하나님은 그 만큼 빨리 일을 진행시키시며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연출, 하나님 각본의 세상이라는 무대의 연기자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구상안에 다 준비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대로 잘 살아가는 방법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연출하시고 우리의 삶에 대한 모든 계획이 잡혀 있다는 것을 믿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연출자요, 내 인생의 작가가 되시면 내 인생은 무너질 수 없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선한 길로 인도하시며 험란한 인생의 굴레를 이겨낼 힘을 주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작품에 귀한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을까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일을 당할 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지 잘 모를 때가 있습니다. 서두에 제가 말씀드렸던 몰래카메라를 생각해보십시오. 몰래카메라에 걸린 주인공들은 전혀 상상치도 못했던 황당한 일을 당하고 평소 상식적인 선에서는 이해될 수 없는 일들이 진행될 때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잘 해결해나가려고 부던히 노력해가는 모습을 보며 시청자들과 그 내용을 알고 있는 진행자들은 즐거워하기도 하고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결국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는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스토리대로 짜여진 각본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주인공 자신도 참 감당하기 힘들었던 모든 상황들을 다 웃어 넘길 수 있고 하나의 재미있었던 추억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요셉의 마음이 바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에서 자신이 주인공인 것을 알았기에 모든 험란했던 과거의 삶을 즐길 수 있었고 좋은 추억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잘 살 수 있게 된 것도 어찌보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허락하신 험란한 훈련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지금 어찌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기 위해 몰래카메라를 들이대고 상상하기 힘든,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을 허락시는 것일런지 모르겠습니다. 왜 남들은 다 잘되는데 우리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라고 생각하며 지낼 만한 그런 일들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이유가 바로 우리의 미래에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해 우리를 훈련시키는 것일런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몰래카메라의 대본이 끝이 났을 때... 연극의 막이 내려질 때... 모든 인생드라마의 끝장면이 우리에게 보여질 때.... 그 때가 되면 우리는 왜 과거에 그런 일이 일어났는 지를 분명히 알게되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주시는 연단의 의미가 분명히 밝혀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다스리심을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생활의 주권자가 됨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좋은 일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힘든 일... 어려운 일들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이해하고 묵묵히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통해 후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좋은 결과를 받게 될 때에 더 큰 감사를 하나님께 돌려드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