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들어가며
어느덧 2023년도 막바지에 접어들었습니다.
다들 올 한 해 동안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 일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에는 좋은 기억을 남긴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며, 또한 기분 좋은 경험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경험도 있을 것입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경험한 일에는 기쁨으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지만,
아닌 경우에는 쉽사리 감사가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왜 이런 일들이 우리 인생에 필요할까요?
오늘 살펴볼 말씀은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바울의 고백은 우리가 품은 질문에 좋은 답을 줍니다. 말씀으로 깨달음을 얻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 즐거이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 속으로
1. 바울은 “우리가 알거니와”라는 말로 28절을 시작합니다.
그가 아는 것은 무엇입니까? (28절)
2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바울이 아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모든 것’에는 좋은 사람과의 만남이나 좋지 않은 사람과의 만남,
좋은 일을 경험하는 것이나 좋지 않은 일을 경험하는 것 모두가 포함될 겁니다.
그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퍼즐을 맞춰본 적이 있습니까?
바탕 그림을 다양한 모습의 작은 조각들로 나눈 후에 그 조각들을 모양대로 맞추어서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 퍼즐입니다.
퍼즐 조각들은 정말 다양한 모양입니다.
물론 색깔과 무늬도 다양합니다.
대개 퍼즐의 배경 그림에는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함께 들어 있는데,
어두운 부분에 해당하는 조각들은 당연히 어두운 색깔입니다.
또, 밝은 부분에 해당하는 조각들의 색깔은 밝습니다. 하나의 퍼즐을 완성하려면 모든 조각이 다 필요합니다.
색이 어둡다 해서 버릴 수 없습니다.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뺄 수 없습니다. 다 필요합니다.
사는 동안 겪는 수많은 일, 수많은 사람과의 만남을 내 인생이라는 퍼즐의 조각들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어떤 사람과의 만남, 어떤 일들은 밝은 색입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과의 만남이나 일들은 어두운 색입니다.
보기만 해도 답답하고 힘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것도 버릴 수 없습니다.
내 인생이라는 퍼즐을 완성하려면 그 모든 것이 다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나무 무늬에서 옹이 자국을 본 적이 있습니까? 옹이는 원래 나무에 생긴 상처입니다.
옹이는 나무에게 상처가 났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런데 옹이는 나무 무늬를 더 예쁘고 아름답게 만듭니다.
옹이가 없다면 나무 무늬는 밋밋할 겁니다.
옹이가 있기 때문에 나무 무늬는 더 예뻐집니다.
우리 삶에도 상처가 있습니다. 어떤 만남은 상처를 남깁니다.
어떤 일로 인해 우리 내면에 상처가 생깁니다. 그런데, 퍼즐 같은 우리 인생을 맞추어 가시는
하나님은 그런 상처들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무늬로 삼으십니다.
마치 옹이 자국이 나무를 더 예쁘고 아름답게 하듯이,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도 그렇게 사용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밝은 조각도 어두운 조각도 다 사용하셔서 내 인생을 맞추고 계십니다.
내 인생의 바탕 그림을 그리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인생의 조각들을 맞추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 놀랍고 정교한 솜씨로 우리 인생을 멋지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들어 가실 겁니다.
그것이 바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이 가지는 의미입니다.
‘섭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섭리는
“하나님이 우리 삶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일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셔서 마침내 뜻을 이루시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합력시켜 선을 이루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은 섭리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퍼즐 같은 내 인생을 맞추어 가고 계신다는 것을, 하나님은 지금도 모든 것을 합력시켜 선을 이루어가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고 확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력시켜 선을 이루시는 것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28a절)
28a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는 곧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구원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한 것입니다.
사랑은 신뢰를 포함합니다.
사랑하면 신뢰합니다.
신뢰가 있어야 참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과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것은 어떤 관계일까요?
하나님이 우리 삶 속에 섭리하셔서 모든 것을 합력시켜 선을 이루시지만,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때로는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은 반드시 하나님을 신뢰할 것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어떻게 인내할 수 있으며 어떻게 버텨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력시켜 선을 이룰 때까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을 신뢰하여 모든 것을 이기고 버텨서 마침내 하나님의 선이 이루어지는 것을,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력시켜 선을 이루시는 것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섭리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요셉의 경우를 생각하고 답해 보십시오. (창 45:3-5)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애굽 왕 바로는 어떻게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앉힐 생각을 했을까요?
외국인 노예 출신인데다가 조금 전까지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총리로 앉히는 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했겠습니까?
그런데도 바로가 요셉을 총리로 삼은 것은 단지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몽해 주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요셉은 단지 7년 풍년과 7년 흉년을 예견만 한 것이 아니라,
7년 풍년 동안 어떻게 해야 7년 흉년을 극복할 수 있는지 말해 주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정책까지 제안한 것입니다.
바로는 그런 요셉의 제안을 듣고 감복하여 요셉을 총리로 삼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어떻게 그런 정책을 제안할 수 있었을까요?
최소한 2년 이상을 감옥에서 지낸 사람이 말입니다.
그것은 요셉이 갇혀 있던 감옥이 일반적인 감옥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갇힌 감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습니다(창 39:20).
그 감옥에서 요셉은 간수장의 호의로 죄수들을 돌보았는데, 그 감옥에 갇힌 죄수들은 왕의 죄수,
즉 정치범이나 국사범들로서 바로와 애굽을 너무나 잘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요셉은 그들을 돌보면서 바로에 대해서, 또 애굽의 정치, 사회, 문화, 경제, 농업 등에 대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시간이 있었기에 감옥에서 갓 나와도 바로가 감동할 만한 정책을 제안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바로의 술 맡은 자가 감옥에서 나가자마자 요셉을 감옥에서 빼내 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바로의 꿈을 해몽할 사람을 찾았을 때 요셉을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유의 몸이 된 요셉이 고향을 향해 즉시 떠났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술 맡은 자가 이 년 동안 요셉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기에 요셉은 감옥에 있었고
꿈을 해몽해 줄 사람을 찾았을 때 바로 불려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노예로 팔아넘긴 것,
요셉이 바로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가정에서 노예로 일한 것,
안주인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힌 것 등이 모두 요셉이 총리가 되는 일에 사용된 퍼즐 조각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합력시켜 요셉을 총리가 되게 하셨고,
그로 인해 요셉은 애굽 사람들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가족들의 생명까지 지킬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형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 45:3-5).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라는 말 속에
요셉이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잘 드러납니다.
이처럼 요셉이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라는 말은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그것은 요셉이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으로 자신을 애굽에 팔아넘긴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을 가지면 사람들을 용서하고 너그럽게 대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이나 그런 사람들이 행한 일들까지 합력시켜 선을 이루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려움 앞에서 쉽게 좌절하지 않습니다.
그런 어려움도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한 퍼즐 조각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합력시켜
선을 이루어가는 하나님의 손길로 인한 감사가 넘칩니다.
우리 모두 섭리하시는 하나님,
모든 것을 합력시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가집시다.
아무리 삶이 힘들고 어려워도 그 믿음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넉넉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고 감사하며 살아가기 바랍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야.” 혹은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였어.”라고 생각되는 일이 있습니까? 있다면 나누어 보십시오.
올해 겪은 일이나 만난 사람 가운데 돌아보니 감사 제목이 된 것이 있다면 나누어 보십시오.
한 주간의 실천/ 내 삶 속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정리하기
마무리하며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세상살이는 온통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합력시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섭리의 하나님이 계시기에
성도는 불평과 원망이 아니라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믿는 성도가 진실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올 한 해
내 삶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깊이 감사하며 남은 인생도 하나님의 인도를 기대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찬송: 73장 내 눈을 들어 두루 살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