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지교(百年之交)는 영원히
오늘의(08월 06일) 산행지는 충남 천안시 동남구에 있는 태조산(太祖山,471m)입니다. 태조산은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곳으로 왕자산(王子山)으로도 불리는 천안의 진산(鎭山)입니다. 왕건이 태조산의 250m봉(峰)에 올라 천안을 내려다 보며 수군과 육군을 조율하던 태조 왕건의 혼(魂)이 서린 곳입니다. 천안으로의 산행을 선택한 것은 중고등학교 동기생인 자도야를 만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천안 IC 근처 도솔공원 앞에서 숙박업소를 경영하고 있는 막역한 지기(知己)입니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이곳에 정착한지도 어언 20여년이 되는 것 같습니다. 부동산 이재(理財)에 대한 선견지명(先見之明)의 소유자이기도 합니다. 마음 씀씀이도 넓고 고지식하고 순박(淳朴)하며 법(法)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친구입니다. 그 당시에 수십억을 투자했으니 지금의 자산은 얼마인지는 상상에 맡깁니다. 1호선 천안역에 위짜추 서류바 씨모우 조단서 까토나 등 다섯이 10시 41분에 합류합니다. 중고등학교 동기생들은 백년지기(百年知己)이며 백년지교(百年之交)들입니다. 자도야는 밤 시간대에 근무를 하고 아침부터 정오까지는 취침시간이라고 합니다. 한 시간 정도의 여유시간을 Coffee Shop에서 시원한 팥빙수에 더위를 잠시 날려봅니다. 밖으로 나오니 30℃를 웃도는 폭염이 노객들을 후끈 달구고 있습니다. 30여분을 천안대로를 따라서 만남로에 있는 El Dorado( 황금과 기회가 있는 상상의 나라)로 들어섭니다. 천여평 정도의 대지에 동화 속의 궁전 같은 숙박업소입니다. 지기와 그의 아내가 환한 웃음으로 반갑게 맞이합니다. 자녀들이 어릴 때는 가끔 부부동반 모임도 하던 친숙한 아내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남입니다. 1층은 살림집으로 개조했답니다. 두째 딸과 막내 아들은 모두 출가하여 손주들을 부모 품에 안겨주었습니다. 큰 아들도 오랫만에 만나니 40대 중반의 청년입니다. 아직은 그리 마음에 쏙 드는 신부감이 없는 모양으로 총각입니다. 몇년 전에 두어번 신부감을 소개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삶의 관점이 다르다는 것만 확인한 셈이 되었습니다. 부인은 여전히 밝은 모습이지만 세월은 비켜가지를 못했나 봅니다. 이렇게 말하는 노객도 그 누구도 예외일 수는 자연의 법칙이니까 말입니다. " 우진이 아빠는 왜 그렇게 말랐어요 ? " 우진이 엄마랑 씨모우의 아내도 보고싶답니다. 삼십대 후반에 서로 만나고는 그리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 세월 그 시기야말로 처자식을 위하여 치열하게 삶의 무게에 허덕여야만 했습니다. 지도야의 아내는 동대문시장에서 새벽 의류도매로 젊음을 고스란히 불태워야만 했던 또순이이기도 합니다. " 함(函) ~사세요~~ 함이~`요 ~~~오 오, " 70년대 초반 함을 지고 마포의 밤 골목을 헤매던 추억이 새삼스럽습니다. 지금 여기 궁전 같은 El Dorado 숙박업소의 주인장인 부부의 결혼식(結婚式) 전(前)의 행사입니다. 예로 부터 함(函)에는 채단(采緞)과 혼서지(婚書紙)를 넣어서 신랑이 신부댁에 보내는 풍습입니다. 그 날의 함잡이와 친구 5 ~ 6명이 함께 동행을 했습니다. 너무 많은 시간을 겉 돌며 신부댁 가족들에게 애를 타게 했습니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라 차려놓은 진수성찬도 마다합니다. 함을 팔아 두둑해진 돈봉투로 우리들만의 주연회식(酒宴會食) 장소를 즐기기 위함입니다. 신나게 웃고 떠들며 끝없이 들이키던 짜릿한 알콜의 향취(香臭)는 체취(體臭)가 되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삶의 무게에 짓눌리면서도 내일의 무지개를 꿈꾸던 친구들입니다. " 밤 ~ 깊은들 ~어떠하며, 날이샌들 어떨소냐~ 이~ 술 한잔~ 어서 들고 ~ 흥에 겨워 노래하자 ~ 정에 겨워 ~ 춤도 추자 ~ 관중포숙 만났으니 ~ " 밤새도록 젓가락 장단에 맞추어 춤추며 노래하던 그 날 그 곳 그 자리에 영원히 변치 말자던 관포자교(管鮑之交)의 벗들은 지금은 어디로 갔습니까. 남정철 유승일 임성진 윤여훈 죽마고우(竹馬故友)들 무엇이 그리 바빠서 훌쩍 떠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금쪽 같은 자식들도, 사랑하는 아내도 남겨두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머나 먼길로 가버렸습니다. 세상이 그토록 싫어서인가 아니면 너무 힘들어서 떠났는지는 물어도 아무런 대답이 없습니다. 그 친구들이 오늘 따라 너무 보고 싶고 그립습니다. " 生我者夫母 知我者鮑子也 " "부모는 나를 낳아 주었으며 나를 알아주는 것은 오직 친구 포숙아(鮑叔牙) 뿐이라는 " 포숙의 진심을 뒤늦게 알고 읊은 춘추시대 제(齊)나라 재상(宰相)인 관중(菅仲)의 한 마디가 노객(老客)의 가슴을 저미게 하고 있습니다. 자도야의 아내가 정성껏 차려주는 점심상을 완곡하게 뿌리치며 태조산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El Dorado를 배경으로 모두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스마트폰에 입력하는 것도 잊지 않고 말입니다. 경부고속도로 밑으로 토끼굴을 통과하여 솔바람길로 올라섭니다. 예상대로 산객은 보이지 않고 지기(知己)들만의 오붓한 산행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땀은 온 몸을 휘감으며 발걸음은 무뎌지고 있습니다. 오랫만에 함께 하는 산행이라 자도야가 힘이 부치는 모양입니다. 걷다가 쉬다를 반복하며 준비한 간식으로 잠시 숨을 돌립니다. 해발 250m 즈음에 살려달라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50대가 갓 넘은 남성 산객이 온 몸이 굳어온다는 하소연의 연속입니다. 119 신고를 30여분 전에 했답니다. 보아하니 땀을 과다하게 흘림으로 열사병적(熱射病的)인 증상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한참을 여럿이서 팔다리를 주무릅니다. 이온음료도 보충시킵니다. 계속 큰 소리로 살려달라는 애절한 하소연이 터져나옵니다. 평소에 복용하는 약도 없으며 가슴이 답답하지도 않다는 대답을 명확히 합니다. 걱정 말라고 안심을 시키지만 막무가내입니다. 119대원 네명이 들것을 들고 올라옵니다. 혈압을 체크하고 수액제 주사를 꽂습니다. 그제야 노객들도 다시 산행을 재촉합니다. 조금만 더 오르면 대머리바위가 바로 눈 앞입니다. 포기(抛棄)하고 하산(下山)하자는 지기들의 볼멘소리가 계속됩니다. 태조산공원 청소년 수련관 방향으로 하산합니다. 식수대에서 머리를 적시며 더위를 잠시 잊습니다. 음식점에 들어가자 마자 자도야가 그대로 바닥에 들어눕습니다. 몹씨도 지치고 힘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우리들의 권주가는 변함이 없이 터져나옵니다. 취향대로 소주 맥주 막걸리를 각자 한 병씩 맡은 바 의무이자 권리를 완수합니다. 언제 다시 또 만나자는 약속도 없이 자도야와 아쉬움의 작별의 악수를 나눕니다. 돈도 좋지만 운동도 짬짬이 하면서 체중도 좀 줄였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돈의 노예가 되여서는 아니 되며 운동의 습관화로 건강의 노예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백년지기 우리 모두가 말입니다.
2017년 8월 18일 무 무 최 정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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