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포 더 레인Before the Rain>은 몇 개의 작은 에피소드만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적대적 관계지만 사랑하며, 사랑하는 순간 안타까운 이별을 해야 하고, 떠난 사람은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그 골격을 이룬다. 그렇게만 보면 영화는 너무 진부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에는 누구도 그렇게 단순하게만 볼 수 없는 마력이 숨겨져 있다. 그런 이야기는 결국 이 영화의 표면일 뿐이다.
이 영화는 인간과 사회를 지배하는 근원적인 어떤 법칙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무게를 갖고 있다. 인간은 이해관계 때문에 서로를 증오할 수 있지만 마침내는 서로가 하나라는 것을 인식하고 화해해 나가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배경은 보스니아 내전의 파장에 휩싸여 민족갈등을 겪는 마케도니아의 한 마을이다.
이 영화는 그 자체가 구원의 우화다. 사랑하는 자의 구원은 곧 저주받은 세상의 구원이라는. 이 우화가 가리키는 내전의 진실은 미국 내 인종분규와 우리의 남북분단까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자고 권유한다. 모든 억압과 갈등의 시간·공간은 이 영화가 다시 해체하고, 해석해낸다. “나는 독창적인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란 아주 진부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재구성해내느냐에 따라 생겨난다고 믿는다”는 밀코 만체브스키 감독의 말은 그런 차원에서 의미심장하다. 세상 사물은 각도를 어떻게 바꿔보느냐에 따라 새롭게 규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온갖 오락적 기교가 자본과 기술에 의해 가치판단 되는 영화적 위세 앞에서 이 영화는 발상 전환이 아이디어와 투명한 역사의식만이 관객을 즐겁게 한다는 새로운 공식을 우리 앞에 제시한다.
또 이 영화 한 편에는 소중한 영화적 전통과 유산이 녹아 있다. 타르코프스키, 키에슬로프스키, 베리만의 절망적 세상과 구원의식, 앨트먼과 코언의 물질문명 비판과 풍자, 올리버 스톤과 타란티노의 극적 기교, 쿠스트리차의 마술적 사실주의를 한데 혼합해놓은 듯한 완벽한 영화적 탐색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밀코 만체브스키 감독은 마케도니아의 공화국 출신이다. 그의 영화는 같은 옛 유고 출신 감독인 두산 마카베예프와 에밀 쿠스트리차를 잇는 계보에 들어 있다. 그들의 공통분모는 영화가 단순히 보편적인 오락상품으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현실과 인류의 고통을 표현해내고 극복을 위해 바쳐져야 한다는 인식이다. 민족주의는 파시즘-국수주의로 나아가기도 하며, 혹은 사랑의 실천과 박애의 정신으로도 나아간다.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영화는 그렇게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