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는 거짓말쟁이예요
아빠는 화물을 심고
먼바다를 건너
섬마을까지 배달하는 일을 한답니다
그래서 한 달에
한두 번 보기가 힘들다고
말하는 딸은
오늘은 제 생일이라
꼭집에 온다고
약속을 했어요
집에 오고 싶어도
바람이 불고 파도가 쳐서
육지로 나오질 못한
아빠의 하얀 거짓말은
오늘도 시작되려나 봅니다
"미안 딸"
이젠 목이 긴 기다림에 지친
수빈이가
하얀 거짓말쟁이
아빠를 믿어줄리 없습니다
하지만
속내 깊은 딸은 안답니다
아빠는 딸인 저에게만
거짓말을 한다는 걸요
"피곤하지 않다"
돈 많이 벌었다
운전하는 게 힘들지 않다"
밉다 곱다 해도 정은 묻어나고
힘들어도 늘 미소 짓는
그런 아빠를 정말 사랑하기에
오늘도
집으로 오기를 기도한다는 딸은
햇살 좋은 날
말짱하게 말린 몸으로 오는
그런 아빠를 따라 다니면서
햄버거도 챙겨주고
다리도 주물러 주고 싶은데
엄마는
"넌 엄마 아빠를 따라 뱃속에서
모태 여행을 많이 다녔으니
이제 공부나 열심히 하세요"
라고 말해 속상하답니다
등에 매단 지울 없는 외로움을
해질녘 더 환해지는 햇살처럼
행복한 주름살을 매단
아빠의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
어디서든 영상통화로
딸의 근황을 묻는 아빠는
사람 사이만한
아랫목이 또 있냐는 듯
딸만 보면 환하게
웃음부터 짓는답니다
세월 뜸 들여
깊은맛내는 된장처럼
오늘 분의 사랑을 다 써야
하루를 끝내는
아빠와 딸에겐
"보고픔" 이란 게
감추고 참는다고 엽어지는게
아닌가 봅니다
아빠가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과 뭔가
심각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담도암 3기"
오한과 열 때문에
일을 할 수가 없어 온 것인데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입니다
당장 안 하면
생명을 장담 못한다며
수술을 권하는 의사 선생님
직장동료의 도움으로
천신만고 끝에
수술비를 마련한 아빠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아내에게 전화를 합니다
"응 나야"
"여보 식사는 하셨어요?"
"응.. 회사에 일이 많아
당분간은 못 들어갈 것 같애
마지막 숨소리라도
듣고 싶어서인가
시리도록 환했던 시간을
어쩌면 다시 못 볼 거라는 불안감이
지난 시간을 따라 번져서일까
허접한 안부를 묻고
끊어진 전화기에서 들리는
뚜 뚜 뚜
동일한 기계음을
한참을 귀에다 대고선
내려놓지 못하는 아빠는
암 환자 명단에
스스로 무거운 이름을 올린 뒤
수술대에 오르기 위해
대기 하면서
전화기만 매만지다
간호사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전화벨이 울립니다
아내다!
뭐라고 말해야지?
바쁘다고 말하고 그냥 끊어버릴까?
수화기 너머
다급한 목소리가 귓전을 울리며
"여보 수빈 아빠
수빈이가 수 ... 빈이가...
학교에서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왔는데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래
지금 수술 들어가야 한대
여보 돈도 없는데 어떡해
원무과에서 입원 수속을 마치고
수술실 앞에 가슴 졸이고 있는
아내에게 다가서는 남편
"여보 돈도 없었을 텐데
어디서 났어?"
응... 친구한테 빌려서
걱정마 천천히 갚으래'
급한 일 때문에
지방에 가야기에
수빈이 잘 챙기라며
아빠는 그 자리를 떠나지만
아내는
서로의 겨울인걸 알기에
남편이 남긴 말이
폐부에 멈춰
좀처럼 식지않고 있었다
햇살에 널고 다림질을 해도
변할리 없는
시간이 더 흐른 후
"딸의 병실은 512호실'
아빠는 입원 사실을 숨긴 채
수술을 포기하고
약과 링거에만의지한 채
시간만 보내고 있습니다
이렇게라도
딸과 아내를 볼 수 있다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 말하는 아빠는
"아빠 힘들지 ?
병원에 오면 내가
파스 붙여줄게 얼렁와"
딸이 보낸
문자 메시지를 보고 또 보며
자투리 삶이라도 좋으니
파스 한 장으로
이 아픔을 덮어버릴 수 있기를
바래보고 또 바래봅니다
병원 기둥에 숨어서
옥상공원에 앉아있는
아내와 딸을 훔쳐보고 있습니다
"수... 빈아"
이 세 글자가
이리도 멀게 느껴지는 말이었던가?
한 그루 나무처럼
겉모습은 철 따라 변해도
속마음은
변하지 않는 사람으로
자라라는 그 한마디도
파도가 지나간
배의 자국을 지우듯
바람이 지워 버리고 맙니다
"아빠 언제 와?"
"응 회사 일이 바쁘시대"
낯선 집 담 너머 나는 소리처럼
들려오는
아내와 딸의 얘기 소리지만
영원히 이대로
고목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아빠는
늦은 밤 수빈이의 병실을 찾습니다
병간호에 지쳐
탈진으로 쓰러진 아내가
통증에 시달리다
잠이 든 딸과 함께
환자끼리 서로가 서로를
병 간호 해가며
버티고 있는 모습을 보며
흐느끼는 울음에
혹 잠이 갈까
병실을 나와버립니다
눈물은
아내와 딸이 잠든
머리맡에 놓아두고서.
아빠는
밤새 통증에 시달려
거동조차 힘들어진 것 같습니다
회진 때마다
의사는 수술하지 않고 버티는
아빠가 이해되질 않는지
고개만 가로 저었다
나가 버립니다
이제 아빠에게
시간이 많이 남은 것 같지 않습니다
하루걸러 오던 통증이
매분 마다 오기 시작하니까요
'내가 눈을 감으면 이걸로 끝이겠지"
참 어렵다.
사랑한다는 게..."라는
말만 되뇌이며
시린 아픔이준
숫한밤이 지나간
오늘은 수빈이가
퇴원하는 날입니다
수빈이는 많이 밝아진 모습입니다
멀리서 아빠는 지켜보면서
입가엔 행복한 주름살을 띄우다
다시 통증에
미간을 찌푸리고 맙니다
'수빈아 퇴원 축하해'
"응아빠 수빈이 이제 약 잘 먹고 하면 학교도 가도 된대"
"아빤 일이 많아 당분간은 못 가 미안해"
"아빠 밥 거르지 말고
꼭 챙겨 먹고 사랑해 아빠"
"응 나두"
꾸역꾸역 참아왔던 고통을
애써 외면 하면서
어젯 밤 나눈
딸과의 전화를 곱씹으며
한참을 눈물 흘린 아빠는
수빈이가 사라져
점이 될 때까지
넋 놓고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딸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성한 곳 하나 없는
살과 뼛속으로 저며오는
이아픔을
오늘은 용서하고 싶다고 말하는
아빠가
행복과 마주하는 날은 언제일까?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
이 아픔이 줄어들까?
그 누가
아빠는 울 곳이 없기때문에
슬픈 사람이라 말했나?'
이별을 쓸어 담은
아빠의 어깨 위에
세상을 돌다 온 바람만이
일고 있었습니다
삶의 끝에서
알게 된
이 슬픔에 배어든 사랑앞에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 걷지 않으면 안 되는
아빠가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셋이서 밥 먹을 때였다며... "
아무리 애써도
귀가하지 못한
아빠의 마지막 한마디는
'사랑해"였습니다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카페 게시글
$ 우리들의 이야기
아빠의 하얀거짓말
추웅처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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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07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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