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군에 있는 평강군 마을 정연리
정연리는 일제강점기 평강군 남면에 속한 지역으로 해방직후 공산치하였다가 1953년 휴전되면서 정연리 일부 지역이 남한에 남게 되었다. 1954년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미군정에서 민정으로 이양되었고, 1972년 평강군 남면 정연리가 철원군 갈말읍에 편입되었다. 민북마을 정연리는 1971년 12월 10일 120세대가 연립주택 60동에 입주하였고, 1979년 민북개발사업으로 1가구 2주택 연립주택을 단독주택으로 보수하였다. 일제강점기 마을 바로 앞으로 금강산전철이 지나고 철원과 김화의 중간지역에 정연역이 위치하는데 농토가 기름지고 농산물 수확이 많기에 주변에 상가도 번성해 역 주변만 200여 세대가 모여 살았고, 정연리 전체는 450세대가 분포했다 한다. 정연리는 오래전부터 풍천 임씨가 집성촌을 이루었고 가장 많을 때는 마을 구성원 70~80%가 풍천 임씨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금융조합을 비롯한 각종 기관의 출장소가 나와 있어 주민들의 편리를 도왔다. 정연리는 평강군 소속이지만 경제 및 일반 생활권은 철원군과 아주 밀접했으며 평강군 소재지인 지암리를 가려면 금강산전철을 타고 철원역으로 가서 경원선을 갈아타야만 갈 수 있었다.
정연리 마을 안내판
6.25전쟁 때는 인민군과 국군 미군이 번갈아가며 점령해 그 틈바구니에서 마을주민들의 희생도 많았다. 미군이 진주하며 후방으로 피난시켜 마을을 떠나게 되었고 3일만 갔다 온다는 것이 10여년 이상 떠돌았던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도 고향에 바로 들어올 수 없었고 포천 신철원 토성리 지경리 등지에서 머물며 정연리 농토에 들어가 영농만 할 수 있었으며 갖은 고생 끝에 15년 만인 1971년 12월 10일 재건촌이 세워지면서 고향 마을에 다시 들어갈 수 있었다. 15평 주택에서 두 가구가 함께 살다가 1979년 이길리 주민 68세대가 분가하게 되어 조금 넓은 집에서 살 수 있었다. 1996년 대규모 수해가 발생해 정연리 주민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철원역사문화연구소 김 영 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