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늘 빛나고 있는 별
Text Mt 2,1-2 & 9-10
(1)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 (9)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10)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 뉴스가 나오는 TV를 쳐다보면 한숨만 나오는 한 해를 살았습니다. 앞으로도 크게 개선될 여지가 없어 보여서 답답하기만 한 오늘입니다. 우리의 답답함을 풀어줄 어떤 조치가 취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숨만 가득한 이 세상을 구해줄 무언가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정말 간절한 시국입니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을까요?
오늘부터 대림절, 강림절, 대강절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절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대강절에 이어 오는 성탄절과 함께 ‘성탄 시즌’이 시작된 것입니다. 성탄의 기쁨은 대강절의 기다림 중에 찾아온 기쁨입니다. 희망을 찾아볼 수 없는 세상을 구원하실 분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상황이 대강절이고 기다리던 그분이 오신 것이 성탄절입니다. 오늘 대강절 제 1주일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늘 빛나고 있는 별’이라는 제목의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이 여러분 모두에게 은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2. 대강절은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그 이유를 되새기는 기간입니다. 이 시기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빛입니다. 빛은 어둠 속에서 길을 밝혀주는 존재이자, 희망과 구원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 빛이 오늘 말씀에서는 별로 나타나 있습니다. 본문 1-2절입니다. “(1)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동방에서 예루살렘에 온 박사들의 말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하는 별은 단순한 천체 현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세상에 보내신 구속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상징적인 빛이었습니다. 그 별은 동방의 박사들이 예수님을 찾을 수 있도록 인도한 길잡이였습니다. 또한 그 별은 동방의 박사들뿐만 아니라 어둠 속에서 길을 찾는 모든 사람이 그 길을 발견하게 하는 빛이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등장하는 이 박사들만이 이 별의 이상한 현상을 통하여 예수님을 발견하였습니다. 이 박사들은 별을 연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늘 하늘을 쳐다보면서 별자리의 이동을 확인하고 별자리의 이동에 따른 여러 현상들에 대하여서도 오랜 시간 연구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별을 보고 점을 치는 점성술사일 수도 있고 천체를 연구하면서 천체의 변화가 사람들이 생활하는 지구에 어떤 변화를 불러오는지를 알아내어 농사를 짓거나 일어날 수 있는 재난 등을 예측하는 학자일 수도 있습니다. 확실한 것 한 가지는 그들은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알거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알고 믿는 사람들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나중에, 자기 나라로 돌아갈 때는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에서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것으로 믿어집니다.
이 별은 감추어지지 않은 비밀이었던 셈입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별이었습니다. 찾기만 하면 찾아질 수 있게 하늘 높이 떠 있는 별이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보지 못하는 별이기도 하였습니다. 대강절은 바로 이 별을 기다리는 기간입니다. 없는 별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늘에서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밝게 빛나고 있는 별을 알아채기를 기다리는 기간이라는 뜻입니다. 고통스러운 세상살이에 괴로워하는 대부분 사람이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만 기다리는 메시야가 오셨음을 가리키는 별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메시야가 와서 구원해 줬으면 하고 바랍니다만 그 메시야를 가리키는 별을 보지 못하고서는 고통을 호소만 하고 있습니다. 이미 나타나 있는 별을 보면서도 모르기도 하고, 찾아내지 못하여서 모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께서는 이에 대하여 롬1,19-23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9)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동방 박사들로부터 별에 대한 정보를 듣고서도 헤롯은 자기의 왕위를 위협할 것 같다는 걱정에 예수님을 죽이려 시도하였습니다. 박사들이 약속과 달리 몰래 출국한 것을 알고서는 베들레헴 경내의 두 살 이하 어린 아기들을 다 죽이면서까지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메시야를 거부한 것입니다. 어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정통신앙과 맞지 않는다고 이 정보를 아예 무시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존재하고 있는 삶 속에서 많은 어둠을 경험하고, 때로는 불확실한 미래, 혹은 눈앞에 펼쳐진 고난과 고통 속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알 수 없어 방황을 하면서도 여전히 어둠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리로 안내하는 별은 이미 비추고 있습니다. 미신적 식견으로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불완전한 믿음으로 실수를 반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찾으면 성령께서 도우셔서 별이 가리키는 바를 확실하게 알려주는 말씀을 들을 수 있고 마침내 메시야를 만날 수 있습니다. 기억하셔야 합니다. 진리를 가리키는 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일 뿐입니다. 이 대강절에 진리를 기리켜 빛나고 있는 별을 발견하시길 기도합니다.
3. 9절 말씀을 봅니다. “(9)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박사들은 자기들의 연구한 바에 따라 왕궁이 있는 예루살렘에 가서 왕으로 출생한 이, 곧 ‘왕자’를 배알하기를 청하였습니다. 자기들이 동방에서 발견한 별을 더 이상 따르지 않고 궁궐에 가서 왕자를 찾을 것입니다. 하지만 궁궐에는 왕자가 없었고, 대신 성경학자들로부터 메시야 탄생에 대한 예언을 들었습니다. 그제서야 그들은 자신들의 판단이 틀렸음을 깨닫고서 다시 하늘을 보며 별을 찾으니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들이 궁궐에 들어가 왕자를 찾고 있는 동안에도 하늘에서는 여전히 별이 빛나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 별을 주의하지 않았습니다. 동방에서 본 별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가리킨다고 알았지만 그 왕은 헤롯과 같은 세상의 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왕보다 크신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임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인류와 세상을 구하시려는 구세주이신 분을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천체 현상인 별은 성경 말씀에 의해 해석이 되어야 별의 의미를 바로 알 수 있는 것을 말해줍니다. 빛나고 있는 별이 있을 때, 그 뜻과 의미는 성경에 의해 그 진의가 밝혀진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박사들은 빛나고 있던 별에 대하여 상상 이상의 발견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빛나고 있던 별을 다시 찾아 그 별을 따라 가서 한 왕국의 왕이 아닌 세상의 창조주시며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의 구세주이신 분을 뵐 수 있었고 믿게 되었습니다. 꿈에 나타난 천사들이 헤롯에게로 가지 말고 그냥 돌아가라는 말을 듣고서 그들이 찾은 별은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서 세상에 임재하셨다는 믿음에 더 큰 확신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별은 단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빛만이 아닙니다. 빛나는 별은 우리가 따라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표지이기도 합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그 별을 따라가며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들이 찾았던 것은 단지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그들이 믿고 따르기를 원하는 구속자, 구원자였습니다. 별을 따라가는 것은 예수님을 찾고, 그분의 뜻을 따르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믿고 살아가는 여정입니다.
우리는 대강절 동안, 예수님을 찾기 위한 여정을 다시 한번 더 시작해야 합니다. 세상은 많은 유혹과 장애물들로 가득 차 있지만, 하나님께서 여전히 진리의 길로 인도하시는 빛을 찾고 그 길을 청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빌2,5 말씀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합니다. 고전11,1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하였고, 엡5,1은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라 하였습니다.
여러분, 행여 자신들의 지식으로 내린 결론을 따라가다가 낭패를 당했습니까? 진리를 가리키는 별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눈을 들어 진리를 가리키는 별을 보시고 이제는 자기 경험이나 지식이라는 함정에 빠졌던 데서 여전히 빛나고 있는 별을 따라 나서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살전1,6)라는 말씀이 가르쳐주는 대로 주님을 본받고 있는 사도들을 본받았고 궁극적으로는 주님을 본받는 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주님을 바라보지 않다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다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바라보며 건짐을 받은 베드로처럼 다시 별로 빛나시는 주님을 찾고 그 빛을 따르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4. 마지막으로 10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박사들은 잃어버렸던 별을 다시 발견하였을 때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였다고 했습니다. 대강절의 별은 단지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순간의 빛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이후로 그 빛은 여전히 계속해서 빛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며, 그 빛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 속에서 여전히 우리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대강절은 예수님의 첫 번째 오심을 기념하는 시간을 넘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그분이 다시 오실 때까지 그 빛을 따라 살아가겠다는 결단의 시간입니다. 그 빛은 변하지 않으며, 언제나 우리를 인도하는 길잡이가 됩니다.
예수님은 단지 한 번 태어나셔서 세상에 빛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삶 속에서 언제나 지속적으로 빛을 비춰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를 때, 그의 빛은 우리의 삶 속에서 계속해서 나타나며, 우리의 일상적인 순간마다 새롭게 바쳐집니다. 이 빛은 단지 특정한 시간이나 장소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에 존재합니다. 우리가 기쁨 속에 있을 때나, 고난 속에 있을 때, 우리의 삶의 모든 환경 속에서 그 빛은 늘 우리와 함께하며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 빛은 항상 변함없이 우리에게 주어지며,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의지할 때 비로소 진정한 평안과 소망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기쁨이 별을 다시 찾고서 기뻐하고 기뻐했던 동박 박사들의 기쁨이었습니다. 대강절 기간 동안 우리도 그 빛을 다시 한번 마음속 깊이 받아들이고, 그 빛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발견하는 기쁨을 즐거워하는 대강절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늘 빛나고 있는 별이 주는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