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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강해 - 로마서 15-1-13 - 하나됨의 기적 - 유기성목사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로마서 15장 1절부터 13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믿음이 약한 사람들의 약점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에게 좋을 대로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이웃의 마음에 들게 행동하면서 유익을 주고 덕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자기에게 좋을 대로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님을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떨어졌다 한 것과 같습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것은 우리에게 교훈을 주려고 한 것이며, 성경이 주는 인내와 위로로서 우리로 하여금 소망을 가지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인내심과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같은 생각을 품게 하시고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려고 여러분을 받아들이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서로 받아들이십시오.
내가 말하는 것은 이러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드러내시려고 할례를 받은 사람의 종이 되셨으니, 그것은 하나님께서 조상에게 주신 약속들을 확증하시고 이방 사람들도 긍휼히 여기심을 받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려고 한 것입니다.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주님께 찬양을 드리며 주님의 이름을 찬미합니다 한 것과 같습니다.
또 이방 사람들아 주님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여라 하였으며, 또 모든 이방 사람들은 주님을 찬양하여라.
모든 백성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사야가 말하기를 이세의 뿌리에서 싹이 나서 이방 사람을 다스리기가 일어날 것이니 이방 사람은 그에게 소망을 둘 것이다 하였습니다.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믿음에서 오는 모든 기쁨과 평화를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주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여러분에게 차고 넘치기를 바랍니다.
이제 로마서 강의도 거의 마무리가 되어 갑니다. 로마서 15장은 내용상으로 실제적으로는 로마서의 거의 마지막 결론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에 편지를 할 때 꼭 하고 싶었던 내용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이 로마서 15장에 나옵니다.
그것은 복음으로 하나된 교회 공동체가 세상에서 담대하게 주의 복음을 전하는 것 이것이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에 해주고 싶었던 메시지였습니다.
그래서 이 로마서 15장에는 복음으로 하나 된 교회 공동체에 대한 사도 바울의 메시지가 나옵니다.
오늘도 여러분에게 드릴 설교의 주제는 하나 된 교회 공동체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이 주제로 제가 설교한 내용을 그동안에 여러 번 들으셨을 겁니다.
오늘 그 내용을 여러분에게 또다시 본문의 말씀에 의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교회가 하나 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주제로 설교를 할 때마다 제 마음을 누르고 있는 두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하나는 꼭 하나 되어야 되냐
교회가 꼭 하나 돼야 되나 두 번째는 어떻게 하나 될 수가 있나 어떻게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 있는데 어떻게 하나 되라고만 하나 이 두 가지 생각이 제 마음을 누르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서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이 정말 교회 공동체는 하나가 되어야 된다고 하는 것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세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꼭 하나 돼야 되나요? 하나 되지 않고도 얼마든지 그냥 잘 살아왔잖아요.
솔직히 싸운 적도 있고 꼭 의견이 하나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예배를 쉰 적도 없고 여전히 전도는 되고 있고 그렇잖아요.
그동안 우리가 교회 생활 쭉 해봤지만 하나 된 교회 찾아보기가 오히려 어렵잖아요.
늘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어디든지 좀 다툼도 있고 의견 대립도 있는 거죠.
그리고 하나 된 교회는 어떤 때는 좀 문제가 많은 교회인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목사님이나 장로님이 독재하는 교회 하나된 교회죠.
거기는 뭐 마음에 안 들면 떠나라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남아 있는 분들은 계속 하나지 뭐 이단은 진짜 하나잖아요.
일사불란하잖아요. 그러니까 하나 되는 것이 꼭 좋은 건가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 있을 수 있어요.
그리고 교회 안에 여러 의견이 있는 것은 건강한 거잖아요.
어떤 안에 대해서 반대 의견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살아있는 공동체라는 뜻이잖아요.
그런 뜻에서 보면 꼭 다 하나가 돼야 되나요? 그런 생각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교회 공동체가 아니라면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민주적인 사회잖아요. 누구든지 자기 의견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죠.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교회 공동체라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거예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이제 얼마 전에 제자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시다가 하나님께 기도하셨어요.
예수님이 기도하셨다는 내용은 성경에 여러 군데 나오지만 예수님이 무슨 내용으로 기도하셨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성경에 기록된 곳이 흔치 않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7장에는 아주 길게 나옵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정확하게 기록이 다 되어 있어요.
근데 예수님이 뭐라고 기도하셨는지 아십니까? 요한복음 17장 20절부터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내가 비 없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오.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여러분 교회가 굳이 하나가 되지 않아도 되는 거라면 예수님의 이 기도를 설명할 방법이 없어요.
예수님은 어쩌면 이렇게 간절히 제자들이 하나가 되기를 그렇게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을까요?
교회 공동체가 하나가 되는 것은 우리 주님의 소원이에요.
우리 주님의 간절한 기도입니다. 하루는 6.25 전쟁에 대한 의견이 전혀 다른 두 교인을 하루에 이렇게 따로 만난 적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다르게 생각하지 6.25 전쟁이 뭐 그렇게 먼 옛날 이야기도 아닌데 실제로 전쟁을 겪은 사람이 아직도 있는데 그 전쟁에 대한 의견이 완전히 반대예요.
한 교회 교인이에요. 우리 교회 교인이에요. 만약에 6.25 전쟁 때였다면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을 것 같아요.
그런 일이 지금 우리 교회 안에 있는 거예요. 그다음 새벽에 나가서 교회에서 기도하는데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에 정말 통곡을 하게 되더라고요.
하나님 정말 우리가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분명히 해주셔서 우리가 한 교회 공동체인데 우리가 정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그런 기도가 나오더라고. 여러분 통일이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올 거라고 다들 그렇게 예측하고 있는데 통일이 되면 좋을까요?
우리 사회를 보면 두려움이 생깁니다. 우리가 준비 안 된 상태에서 해방을 맞이하고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전쟁이 일어났잖아요.
통일이 되고 난 다음에 마음이 하나가 안 되는 이 문제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그것도 한 교회 같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안에 이 정도라면 그날 새벽에 정말 몸부림을 치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정말 두려운 일입니다. 때는 다가오는 것 같은데 아직도 우리는 이 정도이니 그런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는 서로 마음이 서로 안 맞는 것에 대해서 크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이 안 맞는 것이 어떤 상황이 그렇게 전개되면 무서운 분열로
결과가 맺어질 수 있어요. 가정이 깨어지고 교회가 깨어지는 일이 남의 일이 아닙니다.
마음이 하나가 안 되는 일은 마귀가 노리고 있는 거예요.
마귀가 또 그렇게 만들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안타깝게도 늘 그랬잖아.
늘 교회는 그렇지 늘 싸우기도 하고 서로 의견이 안 맞기도 했던 것이 늘 교회였잖아요.
꼭 하나 되어야 돼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다. 프랭크 루박이 권능의 통로에서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들 대부분 지옥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천국이 임하여 지옥을 몰아내기 전까지 우리가 지옥에 있다는 것을 모른다.
여러분 익숙하니까 괜찮은 거 아닙니다. 늘 그랬었기 때문에 여전히 그래도 된다는 것도 아니에요.
우리는 아직까지 진짜를 못 보고 있는지 모르는 거예요.
제가 전도사로서 처음 목회를 시작했을 때 지방의회에 참석을 했는데 싸움이 생겼어요.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지방의 대표신데 무슨 싸울 일이 있을까 싶은데
서로 마이크를 막 뺏어가면서 소리를 지르고 얼굴이 뻘겋게 되고 그러면서 싸우는 것이 너무너무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더 마음 아픈 것은 그렇게 싸우다가 추도 예배 순서가 되니까 다 같이 찬송을 부르는 겁니다.
그건 정말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어요.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예배가 끝나고 또다시 싸우는 거예요.
여러분 익숙한 것이 무서운 겁니다. 그랬었지 뭐 교회에서 늘 싸울 수도 있는 거지 뭐 잘해보자고 싸우는 거 아니겠어요?
어떻게 의견이 다 똑같을 수 있어요? 이렇게 받아들이니까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하나 되지 않아도 괜찮지 뭐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건가 하는 거죠.
6절 말씀에 보면 우리가 한마음일 때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곧 예배를 받으신다는 뜻이죠.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명심하셔야 돼요.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부부 싸움 할 수 있죠. 그런데 예배드려야 돼요.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돼요. 그러면 해결해야 돼요.
어떻게 부부가 서로 마음이 갈라진 채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냐 말입니다.
토요일 어제 교회 일 하다가 서로 다툴 수도 있어요.
의견이 안 맞을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러나 오늘 주일 예배를 드려야 돼요.
그래서 어젯밤에 오늘 아침에 새벽이라도 해결해야 됩니다.
해결이 안 될 것 같으면 무조건 내가 잘못한 거예요.
무조건 용서해 주세요. 어떻게 예배를 못 드릴 마음으로 주일을 맞이하겠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향하여 가지고 계신 마음이에요.
그러면 과연 교회 하나 될 수 있는 겁니까? 하나 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하더라도 100이면 사람의 마음이 100이 다 다르고, 천이면 마음이 천이 다 다른데
어떻게 교회가 하나가 될 수 있냐 말이 목사님 그건 너무 무리한 요구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여기에 믿음의 역사가 필요한 겁니다.
우리 생각으로는 도무지 될 것 같지 않은 일입니다.
아니 교인들이 어떻게 계속 하나가 될 수 있겠어요?
그러나 여러분 하나가 되는 일은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이에요. 우리가 할 수 없다고 주님도 못 하십니까?
주님은 하실 수 있지 이런 믿음이 필요해요. 우리의 가정도 우리의 교회도 똑같습니다.
주님은 하실 수 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님의 역사라고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13장 14절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오늘도 예배 끝나면 이 세 가지로 여러분을 축복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 축복 중에 하나가 성령의 교통하심입니다.
우리 안에 오신 성령께서 내 옆 사람의 아내도 오시고,
내 안에 오신 성령께서 내 배우자 안에도 계시고, 그래서 그 성령님은 우리를 하나 되도록 교통하신다.
우리를 연합하게 하신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세 가지 축복 기도 중에 하나입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것. 에베소서 4장 3절 4절에 보면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우리를 하나 되게 이미 하셨어요.
그래서 오늘 이렇게 교회에 나오신 겁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께서 여러분을 이렇게 예배 자리로 인도하셔서 우리가 오늘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거예요.
이건 성령님께서 하신 겁니다. 우리가 할 일이 있어요.
지키는 거예요.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는.
그래서 사도바울이 이 로마서 15장에서 우리에게 몇 가지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1절 말씀에 보면
믿음이 강한 우리는 믿음이 약한 사람들의 약점을 돌봐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교인들끼리 싸우는 그 중에 하나가 이 복음이나 진리에 대한 싸움이 있습니다.
내가 옳다 너가 옳다 한국 교회는 그것 때문에 많은 교파 분열이 일어났습니다.
옳다 그르다 이렇게 본 거예요. 옳다 그르다 당신들과는 같이 할 수 없어.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세요. 옳다 그르다 아닙니다.
믿음이 더 강하고 약하고의 차이는 믿음이 더 강하고 약하고의 차이지 옳다 그르다 아니라는 거죠.
실제로 우리가 교회 생활을 같이 하다 보면 어떻게 예수 믿는 사람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예수 믿으면서 저런 생각할 수 있을까 생각할 수 있어요.
근데 그게 믿음이 약한 거라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나는 믿음이 강한 거죠.
그러면 믿음이 강한 사람은 믿음이 약한 사람을 어떻게 해야 되죠?
돌봐야 하는 겁니다. 여러분 약한 사람을 보면 돌보잖아요.
어린아이를 보면 돌봐주잖아요. 우리가 이렇게만 하면 교회 안에서
믿음 때문에 서로 싸우고 갈라지지 않아도 된단 말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가 아주 말씀을 잘 전하는 아볼로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아볼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설교는 했지만 아직까지 요한의 세례밖에는 알지 못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골라는 사도바울로부터 양육을 받았기 때문에 십자가의 복음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아볼로에게 공개적으로 면박을 주거나 항의를 하거나 따지거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볼로를 청해서 진정한 복음이 무엇인지 아볼로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아볼로가 그 이야기를 듣고 그렇군요. 그게 십자가 복음이군요.
그렇지 않아도 내가 그런 게 궁금했었습니다. 그다음부터 아볼로는 강력한 말씀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가 그렇게 섬겨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믿음이 강한 자는 믿음이 약한 자를 섬겨야 하는 겁니다.
그게 성령의 하나됨을 지키는 거예요.
우리는 로마서 15장 1절에 하반절에 우리는 자기에게 좋을 대로만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은 자기에게 좋을 대로 하는 사람 아닙니다.
항상 기준은 상대방입니다. 상대방 2절 말씀에 우리는 저마다 자기 이웃의 마음에 들게 행동하면서 유익을 주고 덕을 세워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이고 교회 공동체를 하나 되게 만드는 비밀이에요.
사도행전 6장에 보면 초대교회에 큰 시험이 생겼습니다.
초대 교회가 자기 재산을 다 교회에다 바치고 교회는 그 바진 재산을 팔아서 음식을 식량을 사서 가난한 사람에게 다 나눠주었습니다.
구제사에게 굉장히 크게 일어났죠. 그런데 이 구제 사역 때문에 시험이 생겼습니다.
히브리파 과부들, 헬라파 과부들이 있는데 헬라파 과부들에게 식량 나눠주는 일이 차등이 빚어지게 됐다고 해서 시험이 생긴 거죠.
예루살렘 교회는 대부분 히브리파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헬라파 사람들은 외국에서 살다가
외지에 온 사람들입니다. 소수의 사람들입니다.
아마 그것 때문에 헬라파 사람들에게 좀 소홀히 하게 된 일이 생긴 모양입니다.
근데 교회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냐고 하는 게 문제예요.
교회는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의논하다가 결정하기를 일곱 집사를 세웁시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구제 사역을 맡깁시다. 그런데 그 일곱 집사가 다 헬라파 사람들이에요.
멋있잖아요. 이게 교회거든요. 헬라파 사람들을 뽑아가지고 그 사람들이 구제를 맡도록 하면 헬라파 과부들의 불만이 없어지지 않겠느냐 그러나 실제로 저도 목회를 하지만 이렇게 결정하기가 참 어려운 게 교회거든요.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하는 겁니다.
내 쪽에서 항상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 쪽에서 생각하는 거예요.
언제나 그러면 시험될 일이 없어요. 사도바울이 이렇게 권한 것은 이것이 주님의 마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3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도 자기에게 좋을 대로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님을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떨어졌다 한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자기 자신을 위한 삶 아니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려고 사람이 되셨고, 우리를 구원하려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어요.
예수님은 항상 우리를 위해서만 사셨어요. 그렇게 하시고도 비방을 다 받으셨어요.
우리는 그 예수님을 영접한 겁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의 생명이고 우리의 주님이세요.
그러니 예수 믿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자기를 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항상 남을 위하는 사람, 어떤 사람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입니다.
7절에 보면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려고 여러분을 받아들이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서로 받아들이십시오.
초대교회 당시에 교회의 가장 큰 숙제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연합의 문제였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은 도무지 하나가 될 수 없는 부류의 사람입니다.
지금까지도 하나가 안 되잖아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
근데 초대 교회 안에 유대인도 예수를 믿고 이방인들도 예수를 믿고 교회 안에 같이 들어왔습니다.
이걸 어떻게 풀 수 있을까요? 교회는 풀었어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어요.
이게 초대 교회의 능력이었어요.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구원하려고 유대인들의 종이 되셨다.
그랬어. 8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드러내시려고 할례를 받은 사람의 종이 되셨다.
예수님은 유대인 구원하려고 유대인들의 종이 되셨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또 예수님은 이방인들을 구원하려고 이방인들도 받아들이셨어요.
9절에 이방 사람들도 긍휼히 여기심을 받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유대인, 이방인 가리지 않으시고 다 품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당연히 유대인 이방인 나 하나가 되는 거죠.
예수님 안에서 그래서 10절 11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계획이 드러났는데 이게 교회의 영광이에요.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함께 하나님께 찬양하고 영광을 돌린 예배하는 일이 여러분 우리는 다 같은 민족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이방인 문제가 크게 심각하지 않습니다.
그러고도 이렇게 싸움이 많은 것은 참 부끄러운 일이죠.
민족이 서로 다른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도 하나가 되는 게 교회인데, 그러나 우리 안에 여전히 사람이 갈등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도 있고 돈이 적은 사람도 사는 지역에 따라서도 다르고 많이 배운 사람도 있고 적게 배운 사람도 있고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고 나이가 든 사람도 있고 젊은 사람도 있고 또 정치적인 견해가 또 다르고 우리도 사실 갈라질 이후로 따지면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안에서는 다 하나가 됩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여당, 야당도 없습니다.
진보주의자, 보수주의자 다 예수님 안에 다 있습니다.
남자 여자 지방 출신, 고향 공부를 많이 하고 적게 한 사람
다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하나 된 교회가 가능한 거지.
예수님께서 그렇게 만드시니까 여러분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셔서 여러분의 죄가 다 사함 받았음을 믿어지십니까?
기적이에요. 이건 성령께서 그렇게 하신 겁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죽으셨는데 내 죄가 사 받았다고 믿어집니까?
성령께서 하신 거예요.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여러분의 옛 사람도 같이 죽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이 여러분의 생명이 되셨다.
예수님과 우리는 이렇게 하나가 되었다. 이게 믿어지십니까?
이게 기적이에요. 어떻게 그게 믿어집니까? 성령님의 역사죠.
여러분 각각 사람이 천차만별인데 그런 사람들이 모여도 교회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그게 믿어지십니까? 믿어지시는 게 기적이죠. 성령의 역사죠.
성령이 역사하시면 교회가 하나 되는 게 믿어져요.
하나 되어야 한다고 분명히 또 깨달아집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어 교회가 아무리 교회라도 그렇지 그러신 분들은 성령의 역사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머리로는 아마 죽을 때까지도 이해가 안 되고 믿어지지 않습니다.
근데 성령께서 그게 믿어지게 하세요. 지금 수요기도회 때 이제 세 번째 요한계시록 특강을 해주시는 이필찬 교수님이 강의를 하시다가 예수님께서 밥을 같이 먹자고 하는 말씀을 하신 적이 몇 번 있으세요?
그건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셨죠.
성만찬이라고 합니다. 또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고기잡이하러 다시 돌아갔을 때 그때 그 베드로를 만나러 가십니다.
그리고는 떡을 구워놓고 고기가 있으면 좀 가져와라.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그 베드로를 부르세요. 베드로와 예수님이 다시 하나가 되어지는 과정에서 밥을 같이 먹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시기를 원하셔서 문을 두드리시는데 우리 마음에 들어오셔서 뭐 하시려고 들어오시죠 밥 같이 먹잖아요.
밥 같이 그는 나와 더불어 먹고, 나는 그와 더불어 먹으리라.
예수님은 밥 먹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 같아.
근데 왜 그러시는지에 대해서 이필창 교수님이 아주 기가 막힌 말씀을 하셨어.
예수님이 밥을 같이 먹자고 하는 것은 우리가 한 몸이다.
그런 뜻이라는 걸 유대인들은 식사를 아무하고나 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음식 규정이 굉장히 까다롭습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 사람들 이방 민족들하고는 밥을 같이 먹으면 음식 규례를 어길 수밖에 없게 돼요.
그래서 그들은 항상 가족들하고 그리고 정말 믿을 수 있는 친구들하고만 그렇게 밥을 먹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밥을 같이 먹자고 하는 것은 당신과 나는 한 가족이다.
한 몸이다. 그런 뜻이라는 여러분들은 늘 주님의 식탁에 초대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들어오신 이유가 밥을 같이 먹자.
너와 나는 한 몸이라는 그걸 계속 확인시켜 주시기 위해서 성찬을 하잖아.
성찬할 때마다 이것은 너에게 주는 내 살이라 이것은 너에게 주는 내 피라.
그래서 우리는 주님과 내가 하나구나 여전히 하나구나 하는 것을 계속 확인하잖아요.
이 은혜가 놀라운 거예요. 주님과 우리 사이가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받은 자인 겁니다.
그런데 성찬은 주님과 우리 사이에 하나 됨만 확인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같은 떡을 먹는 우리 모두가 다 한몸이라는 어찌 주님과 나만 하나가 됩니까?
같은 성찬을 받은 내 옆자리에 있는 이 사람도 주님과 한 몸이지 그러니까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하나가 되는 거예요.
우리가 예수님을 진짜 제대로 믿으면 하나가 안 될 수가 없어요.
2006년 9월에 우리 목사님들과 수련회를 갔습니다.
그때 수련회 때 우리가 함께 기도하고 믿음으로 취하자고 제가 우리 목사님들에게 제안한 것이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한 몸이잖아요.
우리 이 믿음을 분명히 하십시다. 우리는 이제 한 몸입니다.
우리가 다 예수 믿는 사람이고 그것도 목사인데 우리 한몸입니다.
우리 교회가 다 한 몸이어야 되는데 목사들이 한 몸이 아니면 어떻게 교인들에게 한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선언은 멋있게 했는데 그때부터 진짜 난감한 거예요.
제가 부목사님을 볼 때마다 저 사람하고 한몸이냐 내가 우리 부목사님들은 더 답답한 것 같아요.
저를 보면서 저 사람하고 내가 한 몸이야. 우리 목사님들도 참 쉽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목사님들끼린데도 한 몸이다. 이걸 믿음으로 받아들이기가 정말 어렵더라니까 어떻게 저 사람하고 내가 한 몸이냐?
여러분 느껴져서 한 몸인 거 아닙니다. 느껴질 때까지 기다림은 평생 한몸인 것을 한 번도 경험 못합니다.
먼저 믿음으로 취해야 돼요. 한 몸이다. 그다음에 하나 되는 경험이 오는 거예요.
선포한 지 10년입니다. 2006년이니까 지금 2010년째예요.
요즘에 우리 목사님들하고 같이 이렇게 목사님들을 보면 이럴 수 있을까 싶어요.
몇 년 전부터 우리 영성일기를 쓰면서 목사님들과 계속 영성일기를 같이 나누고 지냅니다.
계속 주님을 바라봐요. 저도 우리 목사님들도 다 주님을 계속 바라봅니다.
그러니까 어느 순간에 정말 한 몸같이 그렇게 여겨져요.
여러분 하나 됨은 하나 되자고 해서 하나 되는 게 아닙니다.
주님과 한 분이신 그 주님과 나도 그 주님과 하나 되고, 이 사람도 주님과 하나 되고 그래서 주님을 오직 바라보고 살면 하나 되는 기적이 일어나요.
여러분 우리에게 있어서 목적은 하나 됨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그러면 독재도 가능해요. 우리의 목적은 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세요.
우리가 예수님과 온전히 하나 되면 그러면 교회 공동체는 하나가 돼요.
만약에 우리가 하나가 되지 못했다면 이유는 하나예요.
어떤 사람 때문에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하나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 되는 일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정말 믿음과 인내가 필요해요. 그리고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5절 말씀을 한번 봅시다. 인내심과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같은 생각을 품게 하시고 우리가 같은 생각을 품게 되는 일이 하나님의 역사예요.
근데 이것은 인내심이 필요해요.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있어야 같은 생각을 품을 때까지 우리가 그 믿음의 길을 갈 수가 있어요.
제가 이전 교회에서 목회하다가 한 번 교회 안에 큰 싸움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교회 비전을 같이 나누기 위한 중요한 교회의 핵심 사역자들의 모임을 갖는데 거기서 싸움이 벌어졌어요.
제 목회를 찬성하고 따라주는 분들과 제 목회에 대해서 좀 불만을 가지고 계신 우리 장로님 두 분이 계셨는데 그만 서로 의견을 이야기하다가 의견이 조금 심해져서 논쟁이 되고 그러다가 서로 막 윗도리를 벗고 막 치고받고 싸울 이런 태세까지 사태가 벌어졌어요.
제가 그때 얼마나 좌절했는지 모릅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그렇게 두려워했고 그렇게 그런 교회가 되지 않기를 그렇게 원했던 싸우는 교회가 제가 목회하는 교회인 거예요.
저는 목회를 더 이상 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날 밤에 정말 많이 울었어요.
하나님 저는 더 못하겠습니다. 목회할 마음 다 내려놨어요.
근데 그렇게 밤을 새고 새벽 기도 시간이 됐어. 목회를 내려놓더라도 오늘 새벽 기도 인도는 해야 되잖아.
그래서 새벽 기도를 인도해야 되겠다고 터벅터벅 교회를 갔는데 갑자기 마음에 깨달아지는 것이 있어서 이게 마귀의 역사구나.
그렇지 마귀가 역사할 수밖에 없지. 교회가 지금 하나가 되어서 교회가 막 일어나려고 하는데 가만히 있으면 마귀가 아니지 그걸 내가 왜 대비를 못했을까?
마귀가 교묘하게 우리를 이렇게 무너뜨리고 있는 거구나 그게 깨달아졌어요.
그래서 교회의 문을 열고 들어갈 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무슨 일이 있어도 마귀가 원하는 대로는 절대로 안 하겠습니다.
마귀가 원하는 게 있어요. 마귀의 각본이 있어요.
이렇게 교회 안에 서로 의견이 대립되게 만들고 그리고는 서로 미워하게 만들고 싸우게 만들고 그러면 틀림없이 유기성 목사는 사표 쓴다 그럴 거야.
그러면 또 교회는 그것 때문에 더 격하게 싸우고 완전히 교회는 두 쪽 나는 거지.
야 마귀가 마귀 각본이 뻔하게 보이는 거예요. 하나님 절대로 나는 마귀가 쓴 각본대로 안 갈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그만둔다는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죠.
하나님 그럼 또 어떻게 목회해요? 너를 반대하는 그 장로님 하자는 대로 해라.
지금이 너가 죽어야 될 때다. 생각해 보니까 마귀가 역사할 수 없는 길은 뻔해요.
제가 그냥 저를 반대하는 장로님 하자는 대로 다 하면 되는 거예요.
교회 예배 스타일도 바꾸고 제자훈련도 시작하고 교회를 이렇게 바꿔놓은 거 다 원위치로 돌리면 돼요.
그러면 싸울 일도 없는 거죠. 마귀가 뭐 들쑤실 거리가 없는 거죠.
그랬더니 교회가 술렁거리기 또 시작해요.
몇 분들이 저를 찾아오세요? 목사님 굳세어야 됩니다.
흔들리시면 안 됩니다. 목사님 편이 훨씬 많습니다.
우리가 다 목사님 뒤에 있습니다. 목사님 이번 기회에 아예 정리하고 갑시다.
제가 분별을 못 했으면 그때 확 넘어졌을 뻔했어요.
이게 또 마귀의 역사구나 마귀는요 참 교묘합니다.
야 이것도 무서운 마귀의 역사구나. 그래서 제가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에게 미움이 사랑으로 변할 때까지는 아무 말씀하지 마십시오.
미움이 사랑으로 변하기 전에 하는 이야기는 전부 마귀에게 속는 이야기입니다.
미움이 사랑으로 바뀔 때까지는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 편에 서십시오.
그렇게 3개월을 보냈어요. 계속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마귀의 해방이 떠나가게 해달라고 처음에는 식당에 가서 보면 의견이 안 맞는 교인들끼리 서로 등지고 먹어요.
밥을. 근데 한 3개월쯤 지나고 보니까 서로 같이 밥 먹고 웃기도 하고 하더라.
이제는 이제는 하나님이 풀어주셨구나.
그래서 장로님들을 다시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장로님 우리 교회가 어떻게 가야 될지 우리 정말 성령께서 하나 되신 마음으로 결정합시다.
한 분이라도 반대하시면 저 안 합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하나 제안했습니다.
만장일치로 만장일치로 다 통과돼서 7가지 교회의 방향이 정해졌어요.
그게 지금 우리 교회의 7가지 방향 그것입니다. 밤 늦은 시간에 7가지 일을 결정했습니다.
그때 그 감격은 얼마나 놀라운지 모릅니다. 장로님들이 서로 끌어안고 수고했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주일에 교우들에게 그걸 발표했어요.
우리 교회는 이 방향으로 갈 겁니다. 그리고 3개월 동안 하지 못했던 성찬을 했습니다.
눈물과 감격의 성찬식이에요. 성찬은 그 자체가 감격입니다.
서로 마음 갈라지고는 할 수 없는 게 성찬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교회가 뜨겁게 부흥되기 시작했어요.
그다음부터 우리 속에 마음이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이 우리가 영혼을 품지 못하는 이유예요.
우리가 하나 되기 시작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게 되고 그리고 구원을 받습니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제가 만약에 그때 하나 돼야 된다 무조건 하나는 지켜야 된다.
하나는 주님의 마음을 깨닫지 못했었다고 한다면 저는 지금 제가 잊지 못했을 거예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는요 참 다양한 교인들이 모여 있습니다.
어떤 특별한 어떤 계층의 교인들만 우리 교인들이 되어지지 않아요.
경제력도 학력도 고향도 사는 위치도 정치적인 견해도 정말 다양한 분들이 모여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에게 굉장히 또한 위험한 일이기도 해요.
한 번 문제가 생기면 크게 휘둘릴 수도 있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에게 정말 간곡하게 주의 말씀으로 권합니다.
하나 됨을 훈련해야 됩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다 주 예수님을 바라보고 사는 겁니다.
주님과 여러분이 진정으로 연합되는 거예요. 여러분 정말 약속하십시다.
우리는 소유 때문에 누가 더 많이 가졌고, 적게 가진 것 때문에 많이 배웠고, 적게 배운 것 때문에 고향이 어디인 것 때문에, 정치적인 견해가 어떤 것 때문에 나이가 많고 적은 것 때문에 남자이고 여자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갈라지지 않습니다.
예수님 그분은 한 분이십니까? 여러분 가정도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 됨을 먼저 지켜야 됩니다. 그다음에 하나님이 풀어가시는 문제가 있는 먼저 갈라지고 난 다음에는 길이 없어요.
하나가 되어서 기쁨과 평화가 충만한 가정과 교회 공동체가 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악한 세상을 이기는 소망입니다.
13절 말씀을 읽고 같이 기도합시다.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믿음에서 오는 모든 기쁨과 평화를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해주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여러분에게 차고 넘치기를 바랍니다.
아멘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제 마음의 심령에 그리고 우리의 가정에 그리고 우리 교회 공동체에 하나가 되어서 기쁨과 평화가 충만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해 주시옵소서 그 소망을 붙들고 나가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겠습니다.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신 하나님,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 저희들이 좋은 경험이 많이 없습니다.
가정도 교회도 늘 싸우는 걸 보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이 점에 대해서 영 자신이 없어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으로 주신 것, 성령의 감동으로 우리에게 하나님 역사하신 것은 너무나 크고 뜨거운 것입니다.
하나 되는 가정 공동체 정말 하나 되는 교회 공동체가 가능하다는 반드시 그리 되어야 된다는 예수님과 하나가 된 것처럼 우리가 가정을 이루고 교회를 이룰 때에 하나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주님의 역사를 인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의 마음의 심령에 확신 위에 확신을 더하시고 그리고 하나 된 공동체에 대한 분명한 눈을 열어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하나 되어서 기쁨과 평화가 충만한 그런 가정과 교회 공동체를 향한 소망을 우리에게 주시옵소서 이 민족의 통일이 바로 눈앞에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하나 되는 것에 대해서 너무나 훈련되어 있지 못합니다.
교회가 이 일을 감당하길 원합니다. 하나 된 거룩한 교회가 일어나서 우리 민족의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고 회복하고 화해시키고 이 민족의 진정한 통일을 이루는 역사를 주시기 원합니다.
그래서 북한에 있는 동포들을 정말 구원해내는 역사를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이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 앞에 마음으로 감사하여 예물을 복원하는 성도들에게 복을 주소서.
주님 주의 손을 이 예배를 드리는 모든 성도들 머리 머리 위에 얹어주소서 저들의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를 부으소서 저들이 화해자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해주소서, 베풀어주고 도와주고 사랑하고 그렇게 살게 해주소서 육신의 질병도 주님 고치소서, 마음의 상한 것도 치료하소서 가정 안에 깨어진 것이 다 회복되게 하소서.
성도들의 기업의 현장에, 일터의 현장에 하나님 함께해 주셔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복을 주시옵소서.
하나님 오늘 저희들이
노성천 목사님 가정을 중국으로 보냅니다. 하나님 그저 한 사람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열망을 품고 기도하는 특별한 은혜의 시간이 되게 해 주시기 원합니다.
선교사님들 위해 오늘도 같이 해 주소서, 특히 핍박을 당하고 있는 지역에서 하나님, 위험한 형편 가운데서 사역하는 주의 종들과 그 교회를 지켜주소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믿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