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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아프리카를 향한 마음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 5:14~15)
기독교 역사를 빛내는 존재들이 있다. 아프리카의 오지를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한 용감한 선교사 데이비드 리빙스턴(1813~73)도 그런 인물이다. 1841년, 케이프타운에 도착한 그는 곧 ‘현지인 일꾼들’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자 북쪽으로 향했다. 3년 뒤에는 사자에게 공격받아 다치기도 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1845년 1월 2일, 리빙스턴은 로버트 모펏의 장녀 메리 모펏과 결혼했다. 메리 모펏은 1862년에 사망할 때까지 리빙스턴의 수많은 여정에 함께했다.” 그러나 “아프리카 사역에 몰두한 리빙스턴에게 아내와 딸은 우선순위에서 두 번째로 밀려났다.”
30년 넘게 아프리카에 애정을 쏟으며 봉사한 리빙스턴은 1873년 5월 1일, 방웨울루 호수(오늘날의 잠비아) 남동쪽에서 말라리아와 이질로 숨을 거뒀다. 그를 충실히 따랐던 추마와 수시는 근처 나무 아래에 리빙스턴의 심장만 따로 묻었고 시신은 오늘날의 탄자니아에 있는 바가모요 지역을 거쳐 지금은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됐다. 그러나 그의 심장은 그의 마음이 머물렀던 아프리카에 여전히 남아 있다.
리빙스턴은 선교지를 찾아 나서고 씨앗을 뿌리는 데 성공했지만 곧바로 개종과 회심을 이끌어 내지는 못했다.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의 활동과 열매는 차곡차곡 쌓인다. 우리는 언젠가 변화가 생기리라는 마음으로 일했다. 이후의 선교사들은 설교할 때마다 회심자를 열매로 거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개척자와 조력자이다.”
리빙스턴은 아프리카에서 봉사한 세월을 절대 후회하지 않았다. “내가 아프리카에 삶을 너무 많이 할애하고 희생했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결코 갚을 수 없는 큰 빚을 진 하나님께 조금 돌려 드린 것을 두고 ‘희생’이라 부를 수는 없다.”라고 그는 담대하게 진술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희생하셨다. 우리도 복음이 필요한 곳을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 하지 않겠는가?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국연합회 세계선교본부
한국 교회가 받은 축복을 나누는 일에 기쁨으로 참여하도록
5월 2일
반체제 문화의 도전
“마지막 때에 어려운 시기가 닥쳐오리라는 것을 알아 두시오”(딤후 3:1, 공동)
오늘날 문명사회는 도덕적 퇴보와 기술의 진보가 뒤섞인 모순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전혀 놀랄 필요가 없다. 재림 전의 세상은 노아의 때처럼 타락할 것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마 23:37~39). 마지막 때 인류의 모습, 특히 잘못된 모습은 디모데후서 3장 1~7절과 베드로후서 2장 1~22절에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퇴락은 1960~70년대에 더욱 두드러졌는데 소란스러웠던 1968년이 그 절정이었다.
그 당시 파리 낭트 대학교는 학생들과 마찰을 빚고 있었다. 1968년 5월 2일 목요일, 정부는 학교를 폐쇄했고 곧 대규모 집단 시위가 이어졌다. 유사한 사회 정치적 폭동이 프라하, 베를린, 시카고 등 세계 각지에서 벌어졌고 같은 해 마틴 루서 킹,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당하고 공격적인 반전 운동과 함께 인종 차별 반대 운동, 여성 해방 운동이 일어났다.
역사학자들의 평가에 따르면 1968년은 세상을 뒤흔들고 바꿔 버린 해이다. 그런데 1968년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후의 세상은 더 이상 전과 같지 않다.
위태로운 그 시절의 반체제 바람은 지금도 여전히 불고 있고 그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근본적인 종교적 가치와 도덕적 가치는 땅에 떨어졌고 모든 권위가 도전받는다.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는 더 크고 강렬한 도전을 받는다. 지금이야말로 모든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일어나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때이다(마 5:13~16).
“보아라, 흑암이 땅을 덮으며 짙은 어둠이 만민을 덮을 것이나, 여호와께서 네 위에 떠오르시며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날 것이니”(사 60:2, 바른).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는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이것을 우리는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정의권/스즈키 에리코 선교사 부부(일본)
구지카와 교회와 쓰쿠바 학원교회 성도들의 건강과 영적 성장을 위해서
5월 3일
종교적인 조각품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출 25:18)
십계명의 둘째 계명에서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명한다(출 20:4). 이 진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영국 출신의 앨런 콜린스(1928~2016)는 유명 재림교인 조각가이다. 그의 조각상 여러 점이 영국 길퍼드 대성당과 미국 재림교회 대학교들의 캠퍼스에 전시되어 있다. 그중 하나가 1981년 5월 3일, 로마린다 대학에서 선보인 <선한 사마리아인> 동상이다. 유럽으로 떠나는 1874년의 J. N. 앤드루스와 두 자녀를 묘사한 동상도 앤드루스 대학교 파이오니어 메모리얼 교회당 앞에서 1998년 4월 25일 공개됐다.
열두 개의 동상으로 구성된 빅터 이사의 작품 <왕이 오신다>는 2000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대총회에서 소개됐다. 이 작품은 각 대륙을 상징하는 10명이 빛나는 얼굴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회의가 끝나고 그 작품은 메릴랜드주 실버스프링 대총회 로비에 영구 전시됐다.
이러한 조각상이 둘째 계명에 어긋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 금지 계명이 언약궤 안의 돌판 위에 쓰여 있고 언약궤 위에는 금으로 만든 두 그룹 천사의 조각이 놓여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따라서 둘째 계명은 시각적 요소를 모조리 금지하는 게 아니다. 심지어 지성소를 장식하는 데도 그런 요소가 사용되었다. 둘째 계명의 의미는 ‘너를 위한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출 20:4).
모세에게 ‘놋 뱀’을 만들라고 지시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민 21:9). 그러나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이 이것을 숭배 대상으로 여기자 히스기야왕이 부숴 버렸다(왕하 18:4). 대상 자체보다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더 중요하다. 훌륭한 사람이나 유용한 것도 우상이 될 수 있다. 그 근본이 무엇이었든 우상은 모두 제거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시각적 도구는 예수께 집중하는 데 도움과 영감을 주기도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노영/이미진 선교사 부부(대만)
코로나 이후 소그룹 활성화와 예배 회복으로 성령 충만한 교회가 되도록
5월 4일
나의 밧모섬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계 1:9)
절망적인 일이 축복으로 탈바꿈했던 경험이 있는가? 먹구름 사이로 밝게 비치는 햇빛을 본 적 있는가? 더 낫고 값진 경험을 위해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바라던 것을 좌절시키시곤 한다. 1521년 보름스 회의를 마친 마르틴 루터도 이러한 경험을 했다.
4월 18일, 루터는 의회에서 자신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있으며 자신의 주장을 철회할 수 없다고 했다. 8일 뒤 루터와 일행이 집으로 돌아갈 때였다. 그의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게 된 색소니의 현자 프리드리히 선제후는 루터를 보호하기 위한 비밀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5월 3일 저녁, 기마병 4~5명이 루터의 마차를 공격해 루터를 납치했다. 이들은 루터의 옷을 기마복으로 갈아입힌 뒤 아이제나흐 인근의 바르트부르크성으로 루터를 호송해 1521년 5월 4일, 그곳에 도착했다. 루터는 죄수처럼 그곳에 갇혀 있는 동안 남들이 못 알아볼 정도로 머리와 수염이 자랐다. 그는 스스로를 기사 외르크라는 가명으로 불렀다.
루터는 바르트부르크성에 10개월간 갇혀 지냈다. 요한이 계시록을 쓴 장소에 빗대어 루터는 그곳을 ‘나의 밧모섬’이라고 표현했다. 바깥세상과 비텐베르크의 바쁜 삶에서 멀어진 루터는 바르트부르크가 아니었다면 결코 해내지 못했을 일을 이루었다. 11주 만에 신약 성경 전체를 그리스어에서 독일어로 번역한 것이다. 또 도서관도 갈 수 없는 환경에서 여러 권의 책을 썼다. 덕분에 그곳에서 쓴 책은 오로지 성경에만 굳건한 바탕을 두었다.
진정 하나님은 좌절을 축복으로 바꿀 수 있는 분이시다. 멀리 떨어진 밧모섬에서 요한은 계시록을 썼다. 바르트부르크성에 갇힌 루터는 신약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머나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엘렌 화잇은 『시대의 소망』을 집필했다.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의 이끄심을 절대로 의심하지 말라. 우리가 어디로 가든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정효수/김윤주 선교사 부부(튀르키예)
지진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교회가 되도록
5월 5일
핵소 고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하셨음이라”(행 10:38)
1945년 5월 5일, 오키나와에서 맞은 안식일은 보통 날과 달랐다. 일본군은 최후의 요새인 오키나와 마에다 고지를 필사적으로 방어했고 미군이 절벽 위로 올라서면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미군 사령부는 즉각 철수를 명했다. 모두가 그 명령에 따랐지만 단 한 명, 데스먼드 도스만은 예외였다. 도스는 부상병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포화 속으로 뛰어들었고 최소한 75명을 살려 냈다.
며칠 뒤 도스의 발 앞에 일본군의 수류탄이 떨어지고 저격수의 총탄에 맞아 팔을 크게 다쳤다. 고통스러운 출혈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도스는 다른 부상병부터 전장 밖으로 내보냈다. 남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죽음도 불사할 작정이었다. 그 영웅적인 행동의 대가를 그는 평생 치러야 했다. 전쟁에서 걸린 폐결핵 때문에 5년 반 동안 치료받았고 결국 도스는 한쪽 폐와 갈비뼈 5개를 잃었다. 그럼에도 도스의 마음은 평온했다.
비무장 재림교인 의무병이었던 도스는 총기를 사용하지도 소지하지도 않았다. 그는 죽이는 일 대신 살리는 일을 하기로 결심했고 안식일에도 그렇게 했다(마 12:12). 1945년 10월 12일, 도스는 미국 대통령 해리 S. 트루먼에게 명예 훈장을 받았다. 도스는 명예 훈장을 받은 최초의 양심적 비전투 요원이 되었고 여러 포상이 뒤따랐다. 그의 이야기는 부튼 헨던의 책 『뜻밖의 영웅』과 프란시스 M. 도스의 책 『핵소 고지의 기적』에 잘 나와 있다. 그의 놀라운 이야기는 <핵소 고지>라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적군을 많이 죽여야만 전쟁 영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데스먼드 도스처럼 사람을 살리는 일로 영웅이 될 수도 있다. “두루 다니시면서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억눌린 사람들을 모두 고쳐”(행 10:38, 새번역) 주셨던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르고 실천한 덕분에 도스는 영웅이 될 수 있었다. 세상에는 이런 영웅이 더 필요하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지성배/김영란 선교사 부부(파키스탄)
모슬렘에서 개종하여 비밀리에 신앙을 유지는 교인들의 안전을 위해
5월 6일
신앙이 없다면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것일까? 아니면 사람이 신을 만들어 낸 것일까? 이 질문은 심리학자의 오래된 과제이다. 심리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는 1856년 5월 6일, 오스트리아 제국 모라비아의 프라이부르크에 있는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력과 논란을 일으킨 사상가였던 그는 신의 개념과 종교의 본질에 이의를 제기했고 모두가 종교 없이 도덕적 삶을 살아가는 성숙한 사회를 꿈꿨다.
그는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주목해 사람들의 이러한 필요가 투영된 개념이 다름 아닌 신, 다시 말해 ‘엄청나게 추앙받는 존재’라고 풀이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종교는 ‘환상’이며 ‘아이들에게 있는 신경증’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다른 무신론자들이 하나님의 존재와 종교의 의미를 강하게 부정했다면 프로이트는 미숙한 종교를 졸업하고 성숙한 비종교적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매혹적이고 그럴듯한 심리학적 과정을 제시했다.
그러니 토니 캠폴로가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불신의 사도’라 부른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는 또한 “계몽주의의 맹공격으로 종교가 힘을 잃었다면, 급진적이고 새로운 인간 이해 방식으로 인간의 존재와 이유에 대한 종교적 설명들을 전부 순진한 것으로 치부하게 만든 장본인은 프로이트”라고 덧붙였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을 떠나 성장한다는 개념은 에덴동산에서 뱀이 하와에게 건넨 말과 일맥상통한다. 교활한 뱀은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억압적이고 불합리하다면서 훨씬 자유롭고 그럴듯해 보이는 제안을 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라고 말한 것이다.
프로이트는 1939년에 죽었지만 여전히 그의 충실한 제자들은 하나님과 종교를 똑같은 방식으로 평가한다. 어쩌면 여러분도 ‘유치한 종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심리적 압박을 느낄지 모른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충성하는 삶을 결코 부끄럽게 여기지 말라(눅 9:23~26).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손만식/어은숙 선교사 부부(필리핀)
함께 동역하는 평신도 사역자들의 영성과 그들을 위한 후원을 위해
5월 7일
즐거운 경배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시 95:1)
1824년 5월 7일에 당신이 오스트리아 빈에 있다고 상상해 보라. 아무런 설명도 없이 친구가 당신을 캐른트네르토르 극장으로 데려간다. 콘서트홀에 들어서자마자 큰 행사를 앞둔 사람들의 들뜬 마음과 부푼 기대가 느껴진다. 오케스트라의 규모도 평소보다 더 웅장하다. 시간이 되자 지휘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9번 교향곡을 시연하기 위해 무대에 오른 이는 다름 아닌 그 위대한 루드비히 판 베토벤이다. 어떤 이들은 교향곡에 합창과 독창을 넣었다고 베토벤을 비판하기도 했다. 마지막 악장이 그렇게 되어 있었다.
당시 베토벤은 청력을 완전히 잃은 상태여서 자신의 곡이 연주되는 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고 숨은 지휘자 미하엘 움라우프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연주자들과 비밀스레 호흡을 맞추며 연주를 진행했다. 연주자들보다 몇 마디 뒤처진 베토벤은 공연이 끝나고도 계속해서 지휘했다. 그 모습을 본 콘트랄토 성악가가 베토벤에게 다가가 주위를 돌아보게 했고 그제야 베토벤은 관객의 열렬한 환호와 박수갈채에 답례했다. 박수 소리는 들을 수 없어도 박수하는 손동작은 볼 수 있었다. 베토벤은 큰 감동에 젖어 눈물을 글썽이며 무대에서 내려갔다.
9번 교향곡의 가사는 유명한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의 작품 <환희의 찬가>(1785)를 참고한 것이다. 그의 작품은 모든 사람이 하나로 연합하는 모습을 담았고 장엄하게 마무리된다.
형제들이여, 하늘의 별들 위에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반드시 계시리.
만인이여, 엎드려 경배하는가?
온 세상이여, 창조주를 믿는가?
하늘에서 그분을 찾아보라.
별들 위 저편에 그분께서 반드시 계시리.
‘기뻐하며 경배하라’라는 가사는 나중에 헨리 반 다이크가 멜로디에 덧붙인 것이다. 오늘날 이 곡은 가장 아름다운 찬송 중 하나로 꼽힌다.
수많은 활동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우리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에서 우러나는 경배의 정신을 쉽사리 잊어버린다. 그러나 시편 95편 1절에서는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라고 초청한다. 찬미 <기뻐하며 경배하라>에서는 창조주께 모든 피조물과 만물이 즐거이 경배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찬송을 알고 있다면 지금 불러 보라. 그리고 오늘 하루 이 찬송을 마음에 새기라. 우리를 창조하고 구원하신 그분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대륙선교회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헌신할 선교사들을 보내 주시도록
5월 8일
왕자와 거지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8)
삶은 반대와 모순으로 가득하다.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계획에 발등을 찍힐 때도 있다. 1937년 5월 8일에 개봉한 영화 <왕자와 거지>처럼 말이다. 수많은 리메이크를 낳은 이 영화는 1881년에 마크 트웨인이 발표한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영화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등장한다. “잉글랜드에서 같은 날 두 아이가 완전히 대조적인 환경에서 태어났다. …거지 톰은 악랄한 범죄자 존 캔디의 아들이었다. …반면 에드워드 튜더는 헨리 8세의 아들로 장차 나라를 물려받을 아이였다. …우연히 마주친 그들은 너무나 닮은 서로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장난 삼아 옷을 바꿔 입었다. 그런데 경비병이…왕자를 거지로 오인해 궁 밖으로 쫓아냈다. 하트퍼드 백작 외에는 그 누구도…톰의 정체를 믿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전부 왕자에게 정신 이상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헨리 8세가 죽자 하트퍼드는 톰에게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정체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리고 후환을 없애고자 근위대장을 협박해” 진짜 에드워드 왕자를 찾아 죽이라고 명한다.
그러나 “기사 마일스 헨든이 에드워드를 지켜 준다. 그는 에드워드를 믿지 않았지만 유쾌한 사람이었다. …헨든의 도움으로 에드워드는 대관식 직전 궁에 들어가 자신의 정체를 밝힐 수 있었다. 에드워드는 국왕 에드워드 6세가 되었고 톰은 그의 보호를 받았다. 하트퍼드는 추방당했고 헨든은 상을 받았다.”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성육신의 개념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바울도 빌립보서 2장 5~11절에서 이 부분을 다루고 있다. 이 놀라운 구절은 하늘에서 죄 많은 세상에 인간으로 오신 그리스도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분은 가난하게 살았고 많은 사람이 그분의 구원을 거절했다. 이야기 속의 왕자와 달리 그리스도는 두 강도와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끊임없이 멸시받았다. 그러나 위풍당당하게 죽음에서 일어나 다시 승천하셨고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의 자리에 앉으셨다(계 19:16).
지극히 낮은 곳으로 임하시고 지극히 높아지신 주님을 찬양하자. 우리는 영원토록 그분의 삶을 배울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류재경/김미현 선교사 부부(북키프로스)
선교지에서 가족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며 살아가도록
5월 9일
두 손의 상처
“어떤 자가 그에게 말하기를 ‘네 두 손에 이 상처들은 무엇이냐?’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이 상처들은 내 친구들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하리라”(슥 13:6, 한글킹)
2013년 5월 9일 자 『애드벤티스트 리뷰』지의 표지에 인상적인 예수님의 그림이 실렸다. 흐린 배경으로 처리된 예수님의 모습 위에는 안경이 놓였고 안경의 렌즈 안쪽만 선명하게 보이는 그림이다. 배경이 된 예수님 그림은 다름 아닌 해리 앤더슨의 작품이다. 예수님의 아름다운 초상을 여러 점 남긴 그는 유능하고 유명한 재림교인 화가였다.
해리 앤더슨(1906~96)은 1906년 8월 11일,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사는 스웨덴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1944년에 재림교인이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리뷰 앤드 헤럴드 출판사를 위해 삽화를 그렸는데 그가 남긴 종교 삽화는 300점이 넘는다. 1945년에 그린 <예수님, 손이 왜 그래요?(What Happened to Your Hand?)>라는 작품이 아마도 가장 유명할 것이다. 현대의 어린이 세 명과 함께 있는 예수님의 그림이다.
현대를 배경으로 삼은 이 그림은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심지어는 출판사의 디자인 팀 직원조차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그러나 한 직원의 경험으로 그들은 깨우침을 얻었고 편견도 사라졌다. 어느 저녁이었다. 집에서 그 직원의 딸이 『아이들의 시간(The Childrens Hour)』이라는 책을 읽다가 해당 그림을 보고 나서 달려와 말했다. “아빠, 나도 예수님 무릎 위에 앉고 싶어요.” 아이들이 예수님을 이해하는 데 현대적 배경의 그림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그는 곧바로 깨달았다.
마지막 심판 때 예수님은 악한 무리에게 “십자가에 못 박혔던 자신의 손을 보여 줄 것”이라고 엘렌 화잇은 진술한다. “그 잔혹한 상징은 영원히 그분과 함께할 것이다. 못 자국 하나하나는 인류의 놀라운 구원 이야기와 구원을 위해 치러진 소중한 희생을 보여 준다”(초기, 179). 지금도 “그분은 우리를 위해 아버지 앞에서 십자가의 상처를 보이신다. 예수님은 이 상처를 영원히 간직하실 것이다”(하늘에, 78).
시온을 향해 주님은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사 49:16)라고 말씀하셨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향한 조건 없는 사랑과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겠다는 약속이 그분의 손에 남아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정지훈/신은주 선교사 부부(미얀마)
미얀마 재림교회 사상 최초의 약사 과정 3기에 많은 청년이 교육받도록
5월 10일
유익한 시련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히 11:34)
1940년 5월 10일 금요일 오후, 독일군이 네덜란드를 침략했다.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총독은 라디오를 통해 네덜란드 식민지 전역의 16세 이상 독일인 남성을 모두 체포하라고 발표했다. 그곳에 파견된 독일 재림교인 선교사 지크프리트 H. 호른(1908~93)도 언제든 체포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날 저녁 오토바이를 타고 교회에 갔고 예수께서 받은 고통에 대해 설교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경찰이 들이닥쳤고 호른은 체포되어 6년 넘게 아내를 볼 수 없었다.
2차 세계 대전 동안 호른은 처음에는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에서, 나중에는 영국령 인도에서 전쟁 포로로 지냈다. 옥에서는 책을 볼 수 있었기에 호른은 성경의 언어를 공부하며 동료 수감자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종전 이후에는 미국으로 이주해 학업을 마쳤다. 잠시 동안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윌리엄 A. 올브라이트 교수에게 배웠고 1951년 시카고 주립대학에서 이집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호른 박사는 앤드루스 신학대학원에서 25년간 고고학과 고대사를 가르쳤고 『재림교회 성경 주석』의 창세기, 출애굽기, 에스라, 느헤미야 등에 여러 기사와 주석을 남겼다. 『재림교회 성경 사전』의 주요 저자이기도 했던 그는 박사 과정을 도입하고 학술지 『앤드루스 대학 세미나리 스터디(Andrews University Seminary Studies)』의 초기 편집자로 일했으며 요르단 텔헤스본 지역의 고고학 발굴을 시작하고 지도했다.
위기가 반드시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쇄신과 새로운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 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참혹한 상황의 피해자로 남지만 어떤 사람은 그 상황을 딛고 일어선다. 수년간 수감 생활을 하면서 호른은 자신의 진로를 다잡았다. 살면서 마주하는 위기를 장애물로만 생각하지 말라. 그것은 디딤돌이 되고 더 밝은 미래로 이끄는 길라잡이가 될 수도 있다.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모든 것을 할 수” 있다(빌 4:13, 쉬운).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고종식/김은아 선교사 부부(아드라 필리핀)
아드라 필리핀에서 진행 중인 다양한 지원 프로젝트가 잘 진행되도록
5월 11일
선지자의 말을 무시하면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사 다시 여호와에게로 돌아오게 하려 하시매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경고하였으나 듣지 아니하니라”(대하 24:19)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충분히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런 문제는 홍수 이전 사람들(히 11:7),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마 23:29~36), 20세기로 접어드는 배틀크리크 요양원의 사람들에게도 나타났다.
1900년 초에 엘렌 화잇은 “특별한 사역을 위해 하나님께서 켈로그 박사를 돌보셨다.”(원고 6, 1900.)고 진술했다. 그러나 켈로그 체제하에서 배틀크리크 요양원은 본래의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1902년 2월 18일, 화재가 요양원을 집어삼켰고 화잇은 이 비극을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했다. 이틀 뒤 화잇은 “배틀크리크 요양원을 맡은 이들에게는 엄숙한 책임이 주어졌다. 배틀크리크에 거대한 기관을 지어야 하겠는가? 아니면 여러 곳을 개척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겠는가?”(원고 76, 1903.)라면서 경고했다.
켈로그 박사와 동료들은 화잇의 말을 무시하고 배틀크리크에 더 큰 요양원을 다시 짓기로 결정했다. 모든 상황이 그들에게 유리한 듯이 보였다. 계획을 지지하는 사람도 많았고 재림교회는 물론 교회 밖의 지역에도 재정적인 이득을 안겨 줄 수 있었다. 켈로그의 책 『살아 있는 성전』의 판매도 기대됐다. 그렇게 1902년 5월 11일, 군중 약 1만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새로운 배틀크리크 요양원의 기초가 놓였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재정 위기까지 닥쳐 계획은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살아 있는 성전』의 출판은 시작부터 말이 많았고 켈로그 박사는 교회의 생각과 지도력에서 점점 멀어졌다. 결국 그는 요양원의 운영권을 독차지했고 1907년 11월 10일, 배틀크리크 교회에서 제명됐다.
노아의 예언에 귀를 기울였다면 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목숨을 구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엘렌 화잇의 권면을 따랐다면 배틀크리크 요양원의 갖가지 말썽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예언의 말씀이 그다지 합리적이거나 효율적이지 않아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이 최선이고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방법임을 잊지 말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오정훈/강유영 선교사 부부(기타 지역)
섬기는 교회가 새로운 활력을 얻어 지역 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도록
5월 12일
등불을 든 여인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눅 10:34)
인생은 자신보다 타인에게 초점을 맞출 때 가치가 있다. “이 세상의 삶은 단 한 번뿐이다. 할 수 있는 한 열심을 다해 꾸준하게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선을 행해야 한다”(부모, 267).
플로렌스 나이팅게일(1820~1910)은 1820년 5월 12일, 이탈리아 플로렌스에서 태어났다. 탄생한 장소가 곧 그의 이름이 되었다. 나이팅게일은 독일 카이저스베르트에서 간호학을 공부한 뒤 런던에서 일을 시작했다. 크림 전쟁(1853~56) 당시에는 자신의 간호 팀과 함께 영국군 야전 병원의 위생 상태를 대대적으로 개선해 사망률을 3분의 1로 낮추었다. 그의 간호 팀은 환자들의 식사를 위한 주방, 청결한 환경을 위한 세탁 시설, 지적 활동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교실과 도서관을 마련했다. 나이팅게일은 쉬지 않고 병사들을 돌봤다. 저녁이 되면 등불을 들고 환자를 보살폈다. 그의 끊임없는 열정에 감동하고 위로받은 병사들은 나이팅게일에게 ‘등불을 든 여인’, ‘크림반도의 천사’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나이팅게일은 열성적인 직업 정신과 헌신적인 사랑을 결합했다. 이러한 계획으로 간호 업무가 향상되었고 그의 노력은 여러 세대에 걸쳐 간호사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 촛불을 들고 나이팅게일 선서문을 낭독하면서 ‘등불을 든 여인’ 나이팅게일을 기념하는 예식은 오늘날까지 간호학과 졸업식의 꽃으로 자리 잡았다.
나이팅게일은 “어떠한 변명을 하지도, 들어주지도 않은 것이 나의 성공 비결”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돌입한다. 놀랍게도 이런 사소한 것들이 겨자씨처럼 싹을 틔우고 뿌리내리는 경우가 많다.”라고 조언했다. 공감과 협동의 결합을 강조하면서 이런 말도 했다. “우호적인 경쟁의 정신 속에서 서로 상대의 성과를 기뻐하면 모두가 상을 얻을 것입니다. 한쪽이 이기면 한쪽이 뒤처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반대로 한쪽이 낙오하면 모두가 뒤처지는 것입니다.”
나이팅게일의 모범을 생각하며 오늘 예수의 빛을 드러내야 하지 않겠는가? 여러분도 누군가의 삶에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서병웅/이정민 선교사 부부(미얀마)
건강센터 운영 및 선교사 훈련을 위해
5월 13일
성모 발현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 1:30~31)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마리아를 택하여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의 어머니로 삼았다고 선언한다(마 1:20~21).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원죄 없는 동정녀 마리아’라는 성경에도 없는 교리를 만들었고, 마리아가 “세상의 삶을 마친 뒤에는 그 몸과 영혼이 승천하여 하늘 영광을 얻었다.”라고 말한다. 이런 가르침 탓에 ‘성모 발현’이라는 초자연적 사건들이 수 세기 동안 받아들여지고 있다.
1917년 5월 13일 일요일은 포르투갈 파티마 근처에서 동정녀 마리아가 세 어린 목동 루시아, 두스, 산투스와 그의 사촌 프란시스쿠, 야신타, 마르투에게 나타났다고 전해지는 여섯 번의 사건 중 처음에 해당하는 날이다. 그날 ‘성모’는 그들에게 매일 묵주 기도를 드리라고 말했다. 두 번째 출현했을 때는 루시아에게 임무를 맡겼는데 순결한 성모의 마음에 헌신해야 한다고 세상에 전하라고 했다. 세 번째 출현 때 아이들은 셀 수 없이 많은 마귀와 인간이 거대한 불구덩이에 빠져 불타는 환상을 보았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런 경고를 받았다. “너희는 가련한 죄인들의 영혼이 어디로 가는지를 보았다. 하나님은 그들을 구하고자 이 세상이 나의 원죄 없는 마음에 헌신하기를 바라신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 대로 사람들이 행한다면 수많은 영혼이 구원을 얻고 평화가 임할 것이란다.”
영혼 불멸과 동정녀 마리아의 중재라는 가톨릭교리를 믿는 사람이라면 마리아의 유령을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리아의 발현 따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죽은 사람은 마리아를 포함하여 부활 때까지 의식이 없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자연적 발현 사건이 늘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를 지켜 줄 안전장치는 동정녀 마리아가 전했다고 추정되는 말이 아니라 성경 진리뿐이다(사 40:8; 계 22:18~19). “마땅히 자기 하나님께 물어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어찌하여 산 사람이 죽은 것에게 묻느냐? 너희는 여호와의 가르침을 따르고, 그가 주시는 증거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 만일 그들이 이 말씀대로 따르지 않는다면, 동트는 것도 보지 못할 것이다”(사 8:19~20, 쉬운). 주님께서 우리를 가짜 경험에서 지켜 주시기를 바란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종훈/조혜정 선교사 부부(네팔)
선교센터에서 훈련받고 있는 학생들이 모든 훈련 과정을 잘 마치도록
5월 14일
어머니날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출 2:9)
어머니의 보살핌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내 모든 것은 어머니께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이 어머니와 함께하기를.”이라고 고백했다. 어머니날 제정에 앞장선 애나 자비스는 1905년 5월 9일에 자신의 어머니 앤을 여의었고 1908년 5월 10일에 자신의 어머니를 비롯한 세상 모든 어머니를 기념하는 추모 행사를 개최했다. 이 행사는 미국 최초의 공식적인 어머니날 행사로 여겨진다.
1914년 5월 9일, 미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매년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정하고 국가 공휴일로 지정했다. “어머니를 향한 대중의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어머니날에는 모든 관공서, 집 등 적절한 곳에 성조기를 게양해야 한다.
성경에 등장하는 모범적인 어머니 중 한 명이 바로 요게벳이다(민 26:59). 약 12년 동안 요게벳은 모세에게 하나님을 가르쳤다.
“요게벳은 모세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진리와 정의를 사랑하는 마음을 불어넣고자 애썼고 모세가 악한 영향력에서 보호받도록 기도했다. 또 모세에게 우상 숭배는 어리석은 짓이자 죄악임을 알려 주었고 오직 홀로 기도를 들으시고 위기마다 도움이 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 머리 숙여 기도하는 법을 일찍부터 가르쳤다.
…모세는 보잘것없는 오두막에서 지내다가 왕궁에 있는 파라오의 딸에게 이끌려 ‘그의 아들이 되었다.’ 그러나 거기서도 모세는 어린 시절에 받은 감화를 잊지 않았다”(부조, 243~244).
그와 같이 우리의 자녀들도 세상의 도전에 맞서도록 준비시켜야 한다.
오늘 5월 14일은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어머니날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세 명의 어머니를 만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자 한다. 먼저 나를 낳고 유년 시절에 보살펴 주신 나의 어머니 프리에다이다. 그다음은 나의 장모님 세니라, 마지막으로 나의 아내이자 세 아이의 어머니 마를리이다. 이 세 사람은 내게 매우 소중한 존재이다. 여러분도 마음속에 떠오르는 어머니에게 특별한 감사를 표해 보라.
이 기도력을 읽는 모든 어머니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기를 또 여러분에게 건강과 기쁨이 함께하고 여러분의 가족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복을 누리시기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국연합회 세계선교본부
북인도 신학교 설립을 위한 후원 자금이 잘 모금되도록
5월 15일
부탄탄연구소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뱀은 누가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인다. 어떤 사람은 뱀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뱀을 무서워한다. 1980년대 후반에 아내와 함께 브라질 상파울루 부탄탄연구소에 방문했다. 부탄탄연구소는 면역 생물학, 생물 약제학 생산 시설로 라틴아메리카는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1901년 2월 23일에 설립됐고 100여 년 동안 수집한 각종 독사와 독도마뱀, 독거미, 독이 든 곤충과 전갈을 연구한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는 파충류, 곤충에게서 추출한 독으로 폐결핵, 광견병, 파상풍, 디프테리아 등 다양한 질병의 백신을 개발한다. 또 독사 해독제도 생산한다. 안타깝게도 2010년 5월 15일, 화재가 발생해 뱀 7만 종과 절지동물 45만 종을 잃었다. 그중에는 전갈, 장님거미류, 다족류 동물도 포함되어 있었다.
해독제를 생산하기 위해 뱀에게서 독을 추출하는 장면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떠올랐다. 죄 없는 예수님은 우리 죄를 짊어지고 우리에게 죄의 해독제를 주셨다(고후 5:21).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죽이던 불 뱀과 쳐다보기만 해도 이스라엘 백성을 살게 해 준 놋 뱀이 이 원리를 잘 설명해 준다(민 21:4~9).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15)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부탄탄연구소의 수많은 뱀을 파멸로 이끈 2010년의 비극은 천년기 이후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존재와 그의 악한 천사가 맞이할 최후를 연상시킨다(계 12:9; 20:7~10). 그날이 오면 에덴에서 처음 약속됐고(창 3:15) 십자가에 재확인되었던(요 12:31), 악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가 마침내 영원히 성취될 것이다. 그리고 죄의 독은 우주에서 완전히 근절되어 다시는 그 누구도 감염시키지 못할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이면주/김영문 선교사 부부(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세울 감화력센터/요양원 건축을 위하여
5월 16일
숭고한 동기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3)
“탁월함은 행동이 아니라 습관”이라고 윌 듀런트는 말했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계속하여 향상시키는 습관이 바로 탁월성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위대한 이탈리아 바이올린 제작자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1644~1737)의 철학이기도 했다. 그가 제작한 악기는 지금도 뛰어난 음색으로 유명하다.
2006년 5월 16일, 뉴욕 경매에서 1707년에 제작된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이 미화 350만 달러에 낙찰됐다. 영국 애슈몰린 박물관에 전시된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의 가치는 미화 1,500만 달러에 달한다.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이토록 값비싼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의 설명에 따르면 수제 악기의 품질은 좋은 목재, 적절한 도구, 최적의 악기 형태, 질 좋은 광택제를 선택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헝가리의 현악기 제작자 티보르 제멜바이스는 “똑같은 나무에서 잘라 낸 조각이라도 나무의 북쪽에서 베어 냈는지 남쪽에서 베어 냈는지에 따라 심지어 기울어진 나무의 아랫부분인지 윗부분인지에 따라 품질이 천지 차이”라고 말했다.
스트라디바리와 같은 칭찬을 받고 싶으면서도 그만큼 노력은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 많다. 값진 삶을 살려면 게을러지려는 성향과 평범함을 극복하고 꾸준히 개선해야 한다.
누군가의 유명한 말처럼 “탁월함이란 보통의 지혜를 뛰어넘는 관심과 보통의 안전 개념을 뛰어넘는 모험과 보통의 가능성을 뛰어넘는 기대를 걸었을 때 나타난다. 탁월함이란 지속적인 가치를 발하는 뛰어난 결실을 얻고자 최상의 기량을 발휘하려는 헌신이다. 향상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최선이 아니면 만족하지 않는 것이 바로 탁월함이다. 탁월함이란 곧 삶의 질적 수준이다.”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데 남달리 뛰어난 사람이 있다. 자신의 위치가 어떻든 관계없이 우리는 계속 향상해야 할 더 숭고한 이유가 있다.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이다. 바울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3)고 말했다. 하나님은 무엇을 하든 완벽하게 하신다. 그분을 세상에 소개하는 우리도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광성/이은정 선교사 부부(대만)
방언의 은사를 더하셔서 힘 있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5월 17일
이스라엘의 절기
“이것이 너희가 그 정한 때에 성회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레 23:4)
사람들은 생일과 성탄절을 가족, 친구들과 축하하고 싶어 한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끝마쳤을 때도 그렇게 한다. 과거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여러 가지 축일을 정하셨다. 축일의 주기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레 23장). 봄 절기에 해당하는 유월절, 무교절, 오순절과 가을 절기인 나팔절, 대속죄일, 초막절이다.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에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에 모여야 했다.
밀러주의자들의 정기 간행물이었던 『사인스 오브 더 타임스』 1843년 5월 17일 자에는 히브리 절기들의 의미 해석과 관계있는 윌리엄 밀러의 특별한 편지가 소개됐다. 밀러는 이 편지에서 봄 절기가 그리스도의 초림을 통해 성취됐으며 가을 절기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하여 성취될 것이라고 암시했다. 봄 절기와 관련해 신약 성경에서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어린양’이자 “우리의 유월절 양”(고전 5:7)으로 죽으셨다고 선언한다. 그분은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고전 15:20)가 되셨다. 또 오순절에는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셨다(행 1:8; 2:1~4).
그와 비슷하게 가을 절기는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마지막 때에 성취되기 시작했다. 나팔절이 곧 다가올 대속죄일을 알렸듯, 재림주의자들은 2,300주야라는 다니엘 8장 14절의 상징적 기간이 1844년에 끝나며 그때 성소가 정결해진다고 선언했다. 결과적으로 초막절은 아직 이르지 않았으며 모든 성도가 하늘에 머무는(계 20장) 천년기 때 성취될 것이다. 이후 그들은 새롭게 된 이 땅에 영원히 거주할 것이다(계 21:1~4).
우리는 대속죄일의 원형에 해당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이 스스로 “괴롭게” 해야 했듯(레 16:29; 23:27) 우리도 우리의 삶을 주님께 온전히 바치고 그분의 임박한 재림을 준비해야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이승진/맹선옥 선교사 부부(일본)
새롭게 도착한 선교지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명을 발견하도록
5월 18일
십일조와 헌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막 12:43~44)
하나님이 십일조와 헌금 제도를 마련하신 세 가지 이유는 이기심을 물리치고 복음 사역을 유지하며 선교를 촉진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교회가 이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때는 ‘더 믿을 만한’ 다른 프로젝트나 사역에 헌금을 직접 보내도 된다고 합리화하는 이들이 있다.
『애드벤트 리뷰 앤드 사바스 헤럴드』 1869년 5월 18일 자에는 ‘십일조 제도’라는 J. N. 앤드루스의 짧은 기사가 실렸다. 여기서 앤드루스는 십일조 제도의 기원과 관련해 “십일조는 레위 지파 제사장직이 아니라 우리가 속해 있는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에서 비롯한 것이다(히 7장).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그와 같이 십일조를 드릴 의무가 있으며 가난한 과부처럼 드리고자 하는 사람은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예수님 당시의 제사장들은 매우 부패한 조직이었다. 예수님은 과부에게 제사장을 후원하지 말라고 하셨을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과부의 행동을 칭찬하셨다(막 12:41~44; 눅 21:1~4). 엘렌 화잇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그분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자기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이들은 자기 행동에 따라 상급을 받을 것이다. 그렇게 드린 재물이 오용되어 하나님의 영광과 영혼 구원을 위해 드린 헌납자의 뜻이 성취되지 않더라도 오롯이 하나님의 영광만을 생각하며 진실한 마음으로 헌신한 그들은 자신의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2증언, 518)라고 진술했다.
또 화잇은 “아무도 자신의 십일조를 자기 판단에 따라서 사용하기 위해 쥐고 있어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변치 않으셨다. 십일조는 여전히 사역자 부양에 사용되어야 한다. 새로운 지역을 개척하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목회 역량이 필요하며 금고에는 재정이 있어야 한다.”(9증언, 247, 250)라고 호소한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지정한 저장고에 십일조와 헌금을 충실하게 드리자(말 3:10).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황자연/데니 홍 선교사 부부(케냐)
병원에 오는 모든 환자가 예수님의 손길과 사랑을 경험하도록
5월 19일
암흑일
“그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막 13:24~25)
사람들은 비가 내리거나 구름 낀 날보다 맑은 날을 좋아한다. 수많은 이교도와 신비주의자가 태양을 별들의 왕이자 세상 빛의 근원으로 숭배했다. 그러나 그와 달리 하나님은 인간 역사의 중요한 순간에 해를 가리셨다. 가령 이집트에 아홉 번째 재앙이 내렸을 때는 사흘간 칠흑 같은 어둠이 계속됐다(출 10:21~23).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도 세 시간 동안 “해가 빛을 잃고” 말았다(눅 23:44~45). 요한계시록의 다섯 번째 천사가 하나님의 진노가 담긴 대접을 이 땅에 쏟을 때도 짐승의 왕국은 “어두워”질 것이다(계 16:10).
예수님은 자신의 재림 전에 있을 말세의 징조를 언급하면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막 13:24~25; 욜 2:31). 이 특별한 징조를 재림교인 저술가들은 1780년 5월 19일의 이른바 암흑일 사건에 적용하고 있으며 엘렌 화잇도 『각 시대의 대쟁투』에서 그렇게 단정했다. 이 현상은 미국 동북부의 여러 주와 캐나다 일부 지역에서 목격됐고 목격자들은 그날 칠흑 같은 어둠이 몰려와 이튿날 아침까지 이어졌다고 증언했다. 밤에는 붉은 달이 떴다. 암흑일을 산불의 연기, 두터운 안개, 구름이 한데 뭉쳐 발생한 사건으로 보는 이도 있다.
만약 암흑일이 자연 현상이라면 과연 마지막 때의 징조라고 할 수 있을까? 요한계시록에서 여섯째 인이 떼어질 때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며”(계 6:12~13)라고 말한 점을 기억하라. 이 예언들은 1755년 11월 1일에 발생한 리스본 대지진과 1833년 11월 13일에 발생한 유성우 현상으로 성취되었고 모두 자연 현상이었다. 따라서 1780년의 암흑이라고 자연 현상이 아니어야 할 이유는 없다.
하나님은 자연 현상과 초자연적 현상을 모두 활용해 우리의 무신경하고 미적지근한 영적 감각을 일깨우신다. 과거에 수없이 그렇게 하셨고 필요하면 오늘날도 그렇게 할 수 있으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이효신/이은화 선교사 부부(아드라 캄보디아)
캄보디아 교회와 아드라 사업의 협력 선교를 위해
5월 20일
그리스도의 신성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골 2:9)
인간은 동전의 한쪽 면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수많은 신학적 토론과 왜곡이 그렇게 발생했다. 그리스도론에 대한 고대 교회의 논쟁은 그 전형적인 사례이다.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하나님인 동시에 인간일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그분은 얼마만큼 신이고 얼마만큼 인간이었을까?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사제였던 아리우스(256~336)는 이 논쟁에 혼란을 부채질했다. 그는 그리스도가 인간보다 나은 존재이지만 신보다 못하다고 여겼다. 또 과거 하나님께서 아들을 창조했고 그 아들이 다른 모든 것을 창조했다고 주장했다. 325년 5월 20일에 공식 개최된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이 ‘아리안파 이설’을 다루었다. 한 달간의 회의 끝에 공의회는 <니케아 신경>이라는 신앙 고백을 발표해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에게서 나셨으며, 아버지에게 만들어지지 않았고, 아버지와 본질에서 같으시다.”라고 확정 지었고 ‘그분이 존재하지 않았던 적이 있다.’라고 주장하는 이들을 파문시켰다.
개혁주의 신앙에 기초한 1647년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에서는 “하나님의 본체는 하나이시며 곧 동시에 삼위이시다. 즉 본체와 능력과 영원성에 있어서 동일하신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시다. 성부는 아무에게서도 나거나 나오지 않으시고, 성자는 성부에게서 영원히 나셨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영원히 나오신다.”라고 진술했다. 그런데 정말 우리 구주 예수님이 ‘성부에게서 영원히 나셨다’고 할 수 있을까?
요한복음 3장 16절의 그리스어 ‘모노게네스’를 킹제임스성경에서는 ‘독생’(유일하게 나신)이라고 부정확하게 번역했는데 ‘유일한’(개정표준역), ‘하나뿐인’(새국제역)이 본래의 뜻에 가깝다. 그리스도는 자기 안에 언제나 생명력을 지니고 계셨기에 자신을 생명의 근원이라고 표현하셨다(요 14:6). 그래서 이사야 9장 6절에서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불리며 바울도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있다고 말했다(골 2:9). 엘렌 화잇도 “그리스도 안에는 빌려 오지도 끌어오지도 않은 본래적인 생명이 있다.”고 밝힌다(소망, 530).
우리 구주는 참으로 놀랍고 전능한 분이시다. 그분은 늘 하나님이시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시 취할 수 있으며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고 우리에게 보증해 주신다(마 28:18, 20). 그분의 보살핌과 지도를 우리는 완전히 신뢰해도 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남형우/배현경 선교사 부부(일본)
동경 한국인교회 이전 및 건축 문제가 잘 해결되도록
5월 21일
교회의 조직
“모세가 이스라엘 무리 중에서 능력 있는 사람들을 택하여 그들을 백성의 우두머리 곧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으매”(출 18:25)
안식일을 준수하는 재림주의자들의 운동이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흩어져 있는 재림 신자 공동체를 결속할 조직 체계가 필요했다. 그러나 지도자들 중에는 영향력 있는 밀러주의 설교가 조지 스토스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이들이 있었다. 스토스는 1844년 2월에 “인간의 손으로 짜 놓은 교회치고 조직된 순간 바벨론이 되지 않는 교회는 없다.”라고 말했다. 이런 생각에 대해 엘렌 화잇은 “조직을 만들면 바벨론으로 전락할까 봐”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조직이 없어서 오히려 수많은 교회가 “철저히 바벨론, 즉 혼란”에 빠졌다고 지적했다(RH, 1861. 8. 27. 101).
조직은 기초적인 3단계에 걸쳐 형성됐다. 첫째는 지역 교회의 조직이다. 안식일을 준수하는 재림주의자 집단은 1840년대 중반에 형성되기 시작했지만 이들 그룹이 집사, 교회 장로, 재무를 선출한 것은 1850년대가 되어서였다. 두 번째 단계는 주(州) 단위 합회의 조직이다. 1861년, 미시간주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최초의 합회가 생겼고 1862년에는 6개 합회가 추가로 조직됐다. 초기 조직 발전의 세 번째 단계는 대총회이며 1863년 5월 21일 미시간주 배틀크리크에서 조직됐다. 20세기 초까지 연합회와 지회는 없었다.
‘체계화된 교회 조직이 아직까지도 필요한가?’라고 묻는 이도 있을 것이다. 엘렌 화잇은 이렇게 언명했다. “우리가 조직 없이도 잘 지낼 수 있다는 생각을 아무도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깊은 연구와 수많은 기도 끝에 하나님께서 이 조직을 세우라고 대답하셨음을 깨달았습니다. 이 교회는 그분의 지시에 따라 큰 희생과 갈등을 견뎌 내며 세워졌습니다. 우리 형제 중 아무도 이 조직을 해체해야 한다는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상상도 못한 사태가 벌어질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선언합니다. 이 교회는 흔들림 없이 굳건하고 확실하게 서 있어야 합니다”(복음, 27~28).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교린/이미화 선교사 부부(아랍 에미리트)
아랍 에미리트에 거주하는 방글라데시인들과 파키스탄인들을 위해 교회가 세워지도록
5월 22일
존 위클리프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10:22)
참다운 그리스도인 영웅들은 모진 억압을 받으면서도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에 조건 없이 충성했다. 옥스퍼드 신학대학 교수였던 존 위클리프(1320~84) 역시 우리에게 그런 감동을 선사한다. 위클리프는 그리스도의 주권, 성경의 권위, 은혜에 의해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담대하게 주장했다. 그의 가르침이 못마땅했던 교황 그레고리우스 11세는 1377년 5월 22일, 다섯 교서를 내렸고 위클리프가 “잘못된 거짓 명제와 결론을 조장하고, 이교적인 타락을 만끽하고, 교회 전체와 심지어 세속 정부의 지위마저 약화하고 전복하려고 한다.”고 단죄했다.
교황의 교서에 대응해 위클리프는 이렇게 진술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건전한(즉 진실한 정통)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합니다. 숨이 붙어 있는 한 율법을 담대히 밝히고 옹호하겠습니다. 저는 목숨을 걸고 저의 확신을 변호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저의 결론은 성경과 경건한 박사들을 따른 것이며 만약 제 결론이 믿음에 반하는 것이라면 기꺼이 철회하겠습니다.”
1415년 5월 4일 콘스탄츠 공의회에서는 이미 고인이 된 위클리프를 파문했고 그의 책을 금서로 지정했다. 또 그의 책을 불사르고 그의 유해를 매장지에서 꺼내도록 했다. 이 명령은 교황 마르티노 5세에 의해 1428년에 시행됐다. 위클리프가 세상을 떠난 지 이미 43년이나 지난 뒤였다. 여러 교회 당직자들 앞에서 러터워스 묘지에 있는 그의 유해가 파헤쳐지고 불태워졌고 그 재는 근처의 스위프트 개울에 버려졌다. 누군가는 위클리프의 옛 묘비에다가 ‘악마의 도구, 교회의 적,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린 자’라고 써 놓았다.
1655년 처음 출간된 『영국 교회사』에서 토머스 풀러는 이렇게 기록했다. “스위프트 개울은 그의 재를 에이번강으로 흘려보냈고, 에이번강은 세번강으로, 세번강은 작은 바다로, 작은 바다는 대양으로 재를 날랐다. 위클리프의 교리는 그 잿가루처럼 전 세계로 퍼졌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 놀라운 진리의 유산이 우리에게도 전달됐다. 위클리프처럼 믿음의 값비싼 대가를 치르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와 똑같은 헌신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끝까지 그의 횃불을 전달하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최봉길/최경미 선교사 부부(에티오피아)
낯선 선교지에서 세 자녀가 잘 적응하여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5월 23일
놀라워라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사 55:12)
회심은 그리스도와 함께할 때 겪는 심오하고 놀라운 경험이다. 사탄과 그의 추종자조차 회심의 개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찰스 웨슬리(1707~88)는 1738년 5월 21일 일요일에 그 놀라운 회심을 경험했다. 그는 “이제 나는 하나님과 평화롭게 지내며 사랑 많은 그리스도를 소망하며 즐거움을 느낀다.”라고 고백했다.
새로워진 그의 마음에서는 자신의 영적 순례에 관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1738년 5월 23일 화요일 일기에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그리스도의 보호하심 아래 깨어났고 나 자신을 포기하고 영혼과 몸을 그분께 드렸다. 9시에 나의 회심을 찬양으로 표현했다. 그러다가 우쭐해질까 봐 중단했다. 브레이 씨가 찾아와 사탄에 맞서 계속하라고 격려해 주었다. 그리스도께 함께해 달라고 기도드렸고 결국 찬양을 끝마칠 수 있었다.”
당시 부른 찬미가 무엇인지 찰스 웨슬리는 밝히지 않았지만 <주 보혈로 날 사심은>이라는 찬미일 것이 분명하다. 이 놀라운 찬양은 어떻게 죄 많은 인간이 그리스도의 의에 힘입어 의로워지고 영원한 보좌로 담대히 나아가는지를 다정하게 알려 준다. 이 찬양의 1절 가사는 다음과 같다.
주 보혈로 날 사심은 그 뜻이 깊고 크셔라
상하심과 죽으심이 날 위한 주의 큰 사랑
놀라워라 그 사랑이 날 위해 죽으신 사랑
놀라워라 그 큰 사랑 날 위해 베푼 주 사랑
구약 시편에는 글쓴이의 영적 경험을 드러내는 기도문이 많다. 여러분도 <주 보혈로 날 사심은> 또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다른 찬미를 골라 그 내용을 음미하며 그 내용으로 기도와 찬양을 드려 보면 어떨까? 매일 반복되는 수많은 활동 속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정남웅/심은정 선교사 부부(대만)
신좡 행복국제교회 제자 훈련과 영적 성장을 위해
5월 24일
맨해튼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 13:44)
매일 관광객 13만 7,000여 명이 맨해튼섬을 방문한다. 여러분이 그중 하나라고 상상해 보라. 뉴욕의 심장 맨해튼은 전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으로 여겨진다. 경제학이나 국제 정세에 관심이 있다면 UN 본부와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두 주식 거래소인 뉴욕 증권 거래소와 나스닥 주식 시장을 방문해 보라. 개인적 관심사에 상관없이 타임스퀘어, 브로드웨이, 센트럴 파크,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은 누구나 가 보고 싶어 하는 장소이다. 맨해튼의 집값은 제곱피트당 1,400달러(제곱미터당 1만 5,000달러)가 넘는다.
맨해튼이라는 이름은 ‘수많은 언덕이 있는 섬’이라는 뜻이다. 원래는 델라웨어족 원주민의 소유였다. 그러나 몇몇 자료에 의하면 1626년 5월 24일, 페터르 미나위트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위해 60길더를 주고 맨해튼섬을 구입했다. 어떤 역사가들의 계산에 따르면 섬 전체를 24달러 정도에 구입한 것이다. 물가 상승률을 감안해도 현 시가로 미화 1,000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이 섬이 얼마나 비싼 곳이 될지 미나위트는 짐작조차 못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감추인 보화의 비유(마 13:44)에서 하늘 왕국은 맨해튼을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자산을 합친 것보다도 훨씬 값진 곳이라고 하셨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세상 재물을 하나도 소유하면 안 된다는 것이 비유의 가르침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있지만 큰 잔치의 비유를 보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땅이나 소를 사느냐 마느냐, 결혼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님을 알 수 있다(눅 14:15~24). 진짜 문제는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왕국을 얻기 위한 조건 없는 헌신을 대체해 버리느냐 마느냐이다.
페터르 미나위트가 맨해튼에 투자했듯 우리도 주어진 달란트를 하나님의 사업에 활용해야 한다.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을 때라도 말이다(마 25:14~30). 하나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그분께 맡기라.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북한선교부
98개 교회 재건 프로젝트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진행되도록
5월 25일
기도의 힘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14:14)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가장 귀한 복을 받게 해 주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성경에는 기도와 상관없이 받는 은혜도 소개되어 있지만(마 5:45) 대부분의 복은 깨끗한 마음으로 구하는 자의 몫이다(잠 28:9). 그리스도 역시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면서 이점을 강조하셨다(요 14:14).
조지 뮐러(1805~98)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데 남달리 탁월했다. 독일에서 태어난 그는 나이 스물셋에 런던으로 가 유대인 선교를 시작했다. 그러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1832년 5월 25일, 영국 브리스틀로 이주했고 그곳에 애슐리 다운 고아원을 세워 일평생 고아 1만 24명을 보살폈다. 또 학교 117곳을 개설해 12만여 어린이에게 그리스도인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다. 고아원의 운영은 전적으로 기도에 의존했고 뮐러는 단 한 번도 금전적인 요구를 하지 않았다. 그는 5만 번이 넘는 기도를 전부 기록으로 남겼고 모든 기도가 응답받았다고 밝혔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일화가 있다. 아이들 300명이 학교에 갈 채비를 마친 어느 아침, 먹을 것이 떨어져 식사를 준비할 수 없었다. 뮐러는 아이들에게 빈 탁자 앞에 앉아 감사 기도를 드리라고 말했고 기도가 끝나자 제빵사가 문을 두드렸다. 제빵사는 아이들이 모두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신선한 빵을 가지고 왔다. 또 우유 배달원의 수레가 고아원 앞에서 망가져 큰 통에 담긴 우유 10통이 아이들의 몫이 되었다.
뮐러가 미국으로 향하는 배에 탔을 때의 일이다. 뮐러는 그 주 토요일 오후 퀘벡에서 약속이 있다고 선장에게 말했다. 선장은 안개가 짙어 시간 안에 도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자 뮐러는 “내 눈은 안개 상태보다 내 삶을 모두 주관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 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뮐러가 기도를 드리자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안개가 걷혔고 선장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뮐러는 기도의 삶을 살았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언제나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기도를 응답받을 수는 없지만 그분은 진실한 기도를 외면하는 법이 없으시다. 그분을 믿어 보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기노혁/윤재나 선교사 부부(튀르키예)
튀르키예에 살고 있는 이란 난민들의 믿음 성장을 위해
5월 26일
마음의 종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종교란 단순히 특정 교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만이 아니다. 예배 시간이나 기도회에서 이따금 감정을 표현하는 것 그 이상이다. 참된 회심의 경험이 있어야 매일 그리스도께 조건 없이 헌신할 수 있다. 참된 회심이란 세상에 대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얻고 말씀을 통해 그분이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다스리시게 하는 것이다.
이런 헌신의 삶을 강조한 사람이 바로 경건파로 이름을 떨친 모라비아 교회 주교 니콜라우스 폰 친첸도르프(1700~60)이다. 1700년 5월 26일, 독일 드레스덴에서 태어난 그는 건조한 루터교 신학에 불만을 느끼고 마음의 종교를 주장했다.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도 여기에 큰 영향을 받았다.
사도 바울처럼 친첸도르프도 예수께 삶을 바쳤다(갈 2:20). 모라비아 교회의 부흥 운동가로 활동하던 그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희생과 구원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린양의 피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분은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죄를 지었다 해도 그것은 모두 그리스도의 보혈의 바다에 잠겼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찬양하던 친첸도르프는 수동적이고 외떨어진 종교를 용납할 수 없었다. 그는 “공동체 없이는 교회도 없다.”라고 주장했고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으로 선교열에 불탔다. 친첸도르프는 이런 말도 남겼다고 전해진다. “선교는 사실 간단합니다. 마음에 그리스도가 있는 사람은 선교사이며 마음에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은 선교지입니다.”
친첸도르프의 말을 되새기며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우리를 위해 고난당하신 그리스도께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가? 여러분에게 종교란 그리스도와 함께하며 진정으로 삶을 바꿔 놓는 경험이 아니라 지적 활동에 가까울 수도 있다. 현재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 여러분은 혼자가 아님을 잊지 말라. 그리스도께서는 값을 치르고 우리를 사셨고 우리는 그분을 위해 살면서 그분을 위해 일해야 한다. 그분은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을 인도하실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양희원/현아름 선교사 부부(대만)
한국 문화 교실을 통한 지역 사회 선교가 활성화 되도록
5월 27일
하나님의 오케스트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엡 3:10)
현재 여러분이 다니고 있는 교회의 상황을 어디에 빗대면 가장 정확할까? 예를 들어 바울은 교회를 인간의 몸으로, 교회 구성원을 각종 신체 기관에 비유했다(고전 12:12~31). 어떤 이들은 교회를 몸 아픈 환자가 많이 모여 있는 영적인 병원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나의 친구 하나는 교회가 세븐일레븐 편의점 같다고 했다. 교인들이 일곱째 날 열한 시에만 교회에 온다는 것이다.
교회의 정체성이 퇴색하던 시절에 장 칼뱅(1509~64)은 스위스 제네바의 교회, 교육계, 정치계의 개혁을 이끌었다. 독일에 루터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칼뱅이 있었다. 칼뱅은 1564년 5월 27일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효율적인 교회 조직이라는 뜻깊은 기독교 유산을 남겼다.
칼뱅의 가장 영감적인 비유는 교회를 오케스트라에 빗댄 것이다. 시편 135편 13~14절의 주석에서 그는 “온 세상이 하나님의 선하심, 정의, 능력을 보여 주는 극장이라면 교회는 오케스트라, 즉 가장 눈에 잘 띄는 부분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실수록, 그분의 은혜가 더 친근하고 겸손하게 전달될수록 우리는 거기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라고 말했다.
이 진술의 의미를 곱씹어 보라. 여러분의 교회가 정말 오케스트라라고 상상해 보라. 악기들은 잘 조율되어 있는가? 모든 단원이 같은 곡을 같은 음정에 맞추어 연주하는가? 연주되는 음악에 관객들은 어떠한 인상을 받을까? “교회는 눈에 보이는 복음”이라고 마크 데버는 말했다. 여러분의 교회는 어떠한 복음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가?
지역 교회는 지역 사회를 위한 하나님의 오케스트라이다. 최고의 음악을 가장 아름답게 연주하기 위해 구체적인 전략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나님께 합당한 것은 우리의 최선뿐임을 잊지 말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이기원/이용숙 선교사 부부(대만)
루조우교회가 현재 복음 센터에서 교회로 승격할 수 있도록
5월 28일
즐거움의 힘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잠 17:22)
오늘날 소셜 미디어에서 가장 인기 있는 특수 문자는 스마일이다. 문자를 보낼 때 이모티콘의 사용은 거의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모티콘만 웃고 마음은 쓰릴 때도 많다. 단순히 웃는 얼굴만 메시지로 보내는 데 그치지 않고 마음도 즐겁게 가꾸어야 한다. 기쁨을 표현하면 외모도 밝아질 뿐 아니라 몸과 마음도 건강해진다(잠 15:13; 17:22).
헌터 도허티 애덤스는 미국의 인기 많은 의사이자 강사, 사회 운동가이다. 패치 애덤스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그는 1945년 5월 28일 워싱턴 D.C.에서 태어났다. 십 대 시절에 그는 사람들의 탐심, 돈 욕심, 사회적 불평등에 혼란을 느꼈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자 그는 사회 활동에 참여하고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 특히 어린 환자의 고통을 덜어 주는 데 힘썼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애덤스는 게준트하이트 병원을 설립했다. 게준트하이트는 무료 지역 병원으로 환자에게 공감하고 재담, 놀이 등의 활동에 집중하는 기관이다. 그의 혁신적인 의료 활동은 1998년에 <패치 아담스>라는 영화로 소개되기도 했다.
“우리 몸에는 카테콜아민, 엔도르핀 등 기운을 북돋고 기분 좋게 만드는 호르몬이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웃을 때 이들을 포함한 호르몬 분비가 촉진됩니다. 동시에 코르티솔 분비와 침강 속도는 저하되면서 면역 반응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또 혈중 산소 농도가 상승하고 폐의 잔여 공기도 감소합니다. 웃으면 처음에는 혈압과 함께 심박 수가 상승하지만 곧 동맥이 안정을 되찾으며 심박 수와 혈압을 낮추어 줍니다. 말초 순환을 촉진하며 피부 표면 온도가 상승하는 효과도 있습니다.”라고 애덤스는 설명한다. 그는 또 외로운 사람에게는 “친구만 한 약이 없습니다.”라고 덧붙인다.
사람은 친하지 않아도 웃길 수 있고 별 관심이 없어도 웃어 줄 수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미소는 천 마디 말의 가치가 있지만 한 마디 말로 천 명의 미소를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 자신을 위해서만 살지 않고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한다면 세상은 좀 더 나은 곳이 될 것이다. 냉정하고 경쟁이 치열한 세상에서 우리는 즐거워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주변 사람에게 동정을 베풀어야 한다. 한 번의 미소는 영혼에 불을 밝혀 주고 우정은 그 불빛을 계속 유지해 준다. 보다 즐겁고 살가운 사람이 되어 보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강병주/김윤숙 선교사 부부(대만)
신주 금성교회의 평신도 리더십 강화를 위해
5월 29일
산꼭대기에서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 121:1~2)
눈과 얼음에 뒤덮인 높은 산을 즐겨 오르는 사람을 알피니스트라고 부른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 에베레스트는 오랫동안 최고의 도전 장소였다. 에베레스트 정상의 높이는 해발 8,848m이며 등반 과정도 매우 위험하다. 얼어붙는 추위와 깎아지른 절벽, 깊은 크레바스 외에도 등산가들은 고산병으로 고생한다.
초기에 에베레스트 등반을 시도했던 이들은 중도 포기했거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1953년 5월 29일 오전 11시 30분, 7주에 걸친 등반 끝에 뉴질랜드 등산가 에드먼드 힐러리와 그의 네팔인 가이드 텐징 노르가이가 에베레스트의 정상을 밟았다. 그러나 산소가 희박해 두 사람은 세계 최고봉에 15분밖에 서 있지 못했다. 그들은 경치를 즐겼고 사진도 남겼다. 내려오는 길에 원정대의 다른 뉴질랜드인을 향해 힐러리는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이봐 조지, 우리가 해냈다고.”
산과 등산에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배운다. 사회적 사다리를 오르고 있다면 ‘높이 오를수록 바람은 더욱 거세진다.’는 격언을 명심해야 한다. 높은 산꼭대기는 외로운 곳이다. 정직하고 실력 있는 지도자라도 오해와 비난과 반대에 부딪힌다는 사실을 광야의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의 경험에서 알 수 있다. 성공적인 지도자는 창의적이어야 하지만 혁신에는 반대가 따른다.
영적인 관점에서 살펴보자. 유다 시대에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 이방신의 산당이 세워졌던 때가 있다(왕상 14:23). 그런데 시편 121편 1~2절에서 글쓴이는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라고 묻고 나서는 산이 아니라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 도움이 온다고 말한다. 큰 산은 장엄하고 위험하지만 그 자체로는 아무 능력도 없는 존재다. 오직 “접시 저울로 산들을, 막대 저울로 언덕들을 달아” 본 그분만이 우리의 절박한 필요를 채워 주신다(사 40:12).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께 그대의 모든 문제를 맡기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배진성/정해옥 선교사 부부(인도)
인도 교회의 미래를 위해 하나님의 훌륭한 일꾼들이 잘 준비되도록
5월 30일
카타 라고소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롬 1:16)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대총회 총회는 전 세계의 대표, 특별 초청 손님, 방문객이 모이는 독특한 행사이다. 1936년과 1954년 대총회 총회는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됐는데 둘 다 카타 라고소의 발표가 큰 인기를 끌었다. 남태평양 솔로몬 제도의 대표로 참석한 카타 라고소는 안수 목사이자 대회장으로 활동했다.
1936년 5월 30일, 라고소는 회중에게 자신과 교인들이 원래는 이교 문화에 깊게 빠져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들은 “죄로 물든 삶을 살았고 악한 생각만 했다.” 악령을 숭배했고 수많은 악습에 빠져 살았고 인간 사냥을 비롯한 난폭한 행위를 저질렀다. 하지만 25년 전 재림교인 선교사 G. F. 존스가 자신들의 섬에 찾아온 뒤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은 “이교 문화의 굴레를 벗어던졌다.” 그리고 완전히 변화되어 식생활과 위생도 바뀌었다.
라고소는 이렇게 말했다.
“놀라운 복음이 전해진 덕분에 우리는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아갑니다. 영광의 메시지를 받아들인 사람 가운데 이전의 우상 숭배와 이교 문화로 되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이 자리에서 저는 분명히 밝힙니다.
저희 부족 5,000명은 곧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 기별을 여러분과 함께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들 중 100여 명은 동족을 위해 목회자, 교사, 부서 직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복음은 단순히 놀라운 이론이 아니다. 복음은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다. 엘렌 화잇은 그리스도의 자비와 풍성한 은혜에 힘입어 일어나는 회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탄이 제아무리 승리를 호언장담하며 악의 무리를 총동원하여 하나님과 그 율법에 대항해도 자기의 궤변과 속임수로는 변화를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그에게 그 변화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목사, 18). 각 시대에 걸쳐 수많은 영혼이 놀라운 은혜에 힘입어 변화를 경험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갈 우리에게도 이 변화의 능력이 필요하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PCM(캠퍼스 선교사 운동)
파송된 선교사들을 통해 많은 젊은이가 하나님을 발견하도록
5월 31일
현이 끊어져도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하느니라”(수 1:9)
뛰어난 음악 연주를 위해 필요한 세 가지는 악보와 악기와 연주자의 기량이다. 악기가 아무리 좋아도 연주자의 실력이 안 좋으면 소용없다. 반대로 평범한 악기라도 거장을 만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니콜로 파가니니(1782~1840)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이다. 파가니니가 역사상 가장 유명한 바이올린의 거장이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다. 1794년 5월 31일, 파가니니는 고향 제노바에서 11살 나이로 데뷔했다. 그는 마르팡 증후군을 앓았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덕분에 손가락이 길고 유연해 참신하고 어려운 기교를 선보일 수 있었다. 파가니니는 갖가지 장난으로 청중을 즐겁게 했다. 한번은 자신의 곡 <마녀의 춤>을 연주하며 가위로 바이올린 현 3개를 끊은 뒤 남은 하나로 연주를 이어 갔다. 어쨌든 그의 놀라운 연주는 늘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파가니니와 견줄 만큼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고 큰 성공을 거두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형편은 현이 끊어진 파가니니의 바이올린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자신의 약점과 한계만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 과연 나를 사용하실지 의심도 든다. 한술 더 뜨는 남들의 지적에 자존감은 더욱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파가니니의 경우와 같이 정말 중요한 것은 바이올린에 현이 몇 가닥이나 남아 있느냐가 아니라 누가 그 바이올린을 켜느냐이다. 남아 있는 현이 한 가닥뿐이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실 수 있다. 현이 모조리 끊어졌다면 하나님은 새 줄로 갈아 끼우신다. 훌륭한 연주를 위해서는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그분이 우리 삶에서 뜻을 이루시도록 하는 길밖에 없다. 그런 다음 자신의 모든 업적에 대해 하나님께 영예와 영광을 돌리라. 오늘도 하나님은 약속하신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하느니라”(수 1:9).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정성용/장유진 선교사 부부(인도네시아)
동인도네시아 1000명선교사 분원이 하나님의 등대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