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순수성을 존중하는 “스테판 말라르메”
스테판 말라르메(1842~1898)는 샤를 보들레르(1821~1867)에 이어 프랑스 상징주의 시를 개척한 시인으로 시인 샤를 보들레르의 영향 아래 시작(詩作) 활동을 시작했다. 연구자들은 말라르메의 시 세계를 보들레르적인 우울과 이상, 현실에 대한 염증과 도피를 다룬 전기(前期)와 보들레르를 벗어나 독자적인 시풍을 구축하게 된 후기(後期)로 구분한다.
말라르메는 맨 처음 보들레르처럼 현실도피의 이상세계를 시적 주제로 삼았다. 그러나 두 시인이 지향하는 이상세계는 차츰 분리되고 구분된다. 보들레르가『악의 꽃』을 통해 독자의 감정에 호소하는 현실도피를 추구했다면, 말라르메는 이상적인 세계의 본질을 지성적으로 탐색해나갔다. 특히『에로디아드』는, 말라르메가 ‘탈(脫) 보들레르’를 선언하면서 그의 문우, 앙리 카잘리스(1840~1909, 프랑스의 의사이자 상징주의 시인)에게 보낸 편지글에도 나타나 있듯이, 그의 필생의 야심작이다. 그의 시론을 정립해나가는 과정이 된다.
「난 이제 이렇게 결연히 작업 중이라네. 마침내 나는 ‘에로디아드’를 시작했네. 무시무시한 일일세. 왜냐하면 필시 대단히 새로운 미학으로부터 생겨나는 언어를 만들어내고 있으니까. 그 새로운 미학이란 바로 이런 걸세: 사물을 그려내지 않고 사물이 발산하는 효과를 그리는 것. 그리하여 거기서는 시가 낱말들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의도로 이뤄지고 모든 언어는 그 감각 앞에서 사라져야만 한다네. 내 뜻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만 만약 내가 성공한다면 내 계획을 인정해주게나. 왜냐하면 난 내 생에서 처음으로 성공하길 원한다네. 여기서 무너진다면 난 영원히 펜을 놓을 걸세.」 - 1846년에 쓴 편지
말라르메는 ‘에로디아드’를 쓰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미학의 언어’를 꿈꿨다. 그러니까, 낭만주의나 고답주의 시인들처럼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에 싣지 않고 영상이나 음악에 의해 암시를 구하는 방식이었다. 애초에 이 작품을 희곡으로 구상했던 말라르메는 에로디아드와 그녀의 유모 사이의 대화 형식으로 시를 전개 시킨다. 그는 이 작품의 소재를 ‘구약성서’에서 가져왔지만, 여기에 역사나 사회 그리고 일상적 현실을 개입시키지 않고 오직 시인 자신의 이상적 시를 추구해나간다. 그 이유는 “‘역사’가 의미하는 진부한 일상의 영감들은 ‘숨 막히는’ 우연의 단편들일 뿐, 필연의 절대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 세계가 ‘오직 한 권밖에 없는 책’에 도달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이 책은 우주를 향하여 그리고 우주에 의해서 작성된다고 했다. 그런데 이 책은 내부의 질서만 존재할 뿐, 바깥이 없다는 것이다. 말라르메는 시를 통해서만 거기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여기엔 말라르메의 세계관이 개입되어 있다. 그는 인간이 아무리 숭고하고 신성한 것을 꿈꾸고 노래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절대 진리’인 ‘허무(Rien)’ 앞에서의 ‘영광스런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불행하게도 시구들을 이 정도까지 천착하면서 나는 나를 절망에 몰아넣은 두 가지 심연을 발견했네. 그 하나는 내가 불교를 알지도 못하고 도달해버린 무인데 난 아직 너무 비탄에 빠져서 이 시의 진실성을 확신할 수도 없고 너무 고통스런 생각 때문에 포기해버린 그 작업에 다시 착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네. (중략) 내가 발견한 또 하나는 내 가슴의 공허라네.」
「그리고 진실인 무(無) 앞에서 이 영광스런 거짓말들을 선언하면서, 나는 물질의 그 광경을 내게 부여하고 싶소. 이러한 것이 내 서정적 책자의 설계도이며 아마도 그 제목은 거짓의 영광 아니면 영광스러운 거짓이 될 거요.」
위의 두 편지글은 말라르메가 1866년 카잘리스(1840~1909)에게 보낸 것이다. 이 글을 통해 말라르메는 ‘에로디아드’를 쓰는 도중 “두 개의 심연에 마주쳤다”고 말하면서, ‘시는 영광스런 거짓말’이라는 정의를 내렸다. 그는 ‘에로디아드’를 집필하면서 시어의 본질을 집요하게 탐문 했는데, 그 결과 ‘무(néant)’와 ‘공허(vide)’라는 두 개의 심연 같은 절망에 빠지고 만다.
결국 말라르메는 언어를 통해 바라보는 현실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그 공허 속에 완벽한 형태의 본질이 숨어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시인이 할 일은 바로 그 본질을 감지하여 구체화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할 때 시인은 이미 존재하는 현실을 시의 형태로 바꾸어 기술하는 단순한 운문 작가 이상의 존재가 된다는 것이었다.
「순수한 작품이란 필연적으로 화자로서의 시인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며, 시인은 낱말들에게 주도권을 양도한다. 낱말들은 하나하나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충돌함으로써 동원상태(動員狀態)에 놓인다. 낱말들은 마치 보석들 위에 길게 뻗어 있는 허상의 불빛처럼 그 상호 간의 반영으로 점화된다.」
그러니까 시어를 사용하는 시인은 사라지고 낱말들이 서로 움직여서 시를 쓴다는 얘기다. 따라서 말라르메는 ‘낱말들이 상호 작용하여 원래의 의미와 다른 뉘앙스를 전하는 시’를 지향했던 것이다. 그는 철저하게 개인의 감정과 영감을 배제하고 언어의 우발적 충돌에 의지해서 시를 썼다. 말라르메는 사물이나 표상보다도 언어 자체의 작용을 중시했고, 오직 그가 사용하는 언어의 뉘앙스에 의해서만 판독되는 시를 썼다. 따라서 그의 시는 ‘전대미문의 난해함’을 지니고 있다. 그는 고의적으로 이해되고 해명되는 시를 거부했다. 시를 통해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전달하기보다 작품 고유(固有)의 다의성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는 시를 쓰는 ‘정신의 순수성’을 추구하려는 노력이기도 했다.
이처럼 말라르메는 평생토록 언어의 본질을 고민했다. 시의 언어가 과연 의미의 순수성을 지니고 있는가? 잡다한 감정의 결합에서 울려 나오는 ‘빈말’이 아닌가? 그는 이러한 ‘무’를 이 세계의 본질인 ‘절대적 존재’로 인식하고 ‘무’와 ‘언어’의 관계를 치열하게 탐색했다. 따라서 말라르메에게 있어서 시는 “절대의 영역과 언어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됐던 것이다.
그는 시인의 개인적 감성을 배제 시킨 채 사물과 현상의 ‘순수관념’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말라르메는 “모든 것은 허망하고, 오직 하나 남게 되는 미(美), 그것이 바로 시”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시에서 시인 개인을 소멸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시인은 비(非) 개인, 무인칭(無人稱)으로 존재해야 하며, 시라는 ‘정신적 우주’만 영원 속을 떠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의 순수개념, 즉 순수관념은 플라톤의 이데아(Idea)를 연상시키는데, 이데아는 순수 지성의 산물이지만 말라르메의 시어가 노리는 ‘순수관념’은 인간이 접하는 물질적 감각이나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다. 그는 물질 너머의 순수관념을 추구했고, 따라서 그의 시는 ‘절대의 책’이자 ‘절대의 무’를 향한 순수관념의 덩어리였다.
‘절대의 책’이란 애당초 불가능한 기획이었고 추상적 가설이었다. 그러니까 “모든 시는 미완성이며 실패작이고, 예정된 실패작”인 셈이다. 말라르메는 이런 시를 쓰는 시인의 모습을 아래의 ‘백조’에 담아두었다. 이 시는 작품 제목이 없는, ‘순결하고, 강인하고, 아름다운’으로 시작되는 소네트이다. 말라르메의 시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순결하고, 강인하고, 아름다운 자는 오늘
달아난 적 없는 비상의 투명한 빙하가
서릿발 아래 들려 있는 이 망각의 단단한 호수를
취한 날갯짓 한번으로 찢어줄 것인가.
지난날의 백조는 회상한다, 모습은 장려하나
불모의 겨울 권태가 번쩍이며 빛났을 때
살아야 할 영역을 노래하지 않은 까닭으로
희망도 없이 스스로를 해방하는 제 신세를.
공간을 부인하는 새에게 공간이 떠맡긴
그 하얀 단말마야 목을 한껏 빼어 흔들어버린다 해도,
그러나 아니다 날개깃이 붙잡혀 있는 이 땅의 공포는.
제 순수한 빛이 이 자리에 지정하는 허깨비,
그는 무익한 유적의 삶에서 백조가 걸쳐 입는 모멸의 차가운 꿈에 스스로를 붙박는다.
이 작품의 ‘백조’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백조’는 은유이며 상징이다. 즉 말라르메 자신이거나 시인의 운명을 말해주는 ‘표상’일 것이다. 그의 날개깃은 이 땅에 붙잡혀 있고, 이젠 ‘허깨비’와 같은 존재가 되어 아무런 쓸모가 없는 ‘유적의 삶’에 갇혀 있다. 이러한 백조야말로 ‘불가능의 시’를 쓰다가 죽어가는 시인이 아닐까? 이 ‘빙하’와 ‘서릿발’과 ‘하얀 단말마’의 풍경 속에선 ‘취한 날개’와 ‘찢겨 지는 호수’ 그리고 ‘한껏 빼어서 흔드는 목’을 기대할 수 없다. 이처럼 모든 시인의 시 쓰기는 ‘덧없는 날갯짓’이며 ‘모든 시는 실패작’이라는 게 말라르메의 시론이며, 이 시는 말라르메의 메타 시(meta-poem)이다.
말라르메는 “한 사물을 거명하게 되면 그 시에 있어서의 즐거움의 4분의 3을 망치게 된다. 향유의 본질은 점차적인 드러냄에 있으며, 시의 목표는 사물을 암시하는 것에 있다.”고 했다. 말라르메는 고의적으로 이해되고 해명되는 시를 거부했고, 작품 고유의 다의성을 지키기 위한 ‘정신적 순수성으로서의 시’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말라르메는 짧게는 20년, 길게는 30년에 걸쳐서 시 한 편을 완성하기도 했는데, 최초로 구상했던 테마를 다양하게 변형시키기 위해서였다. 말라르메는 시 창작의 정신을 “알 수 없는 기다림이 떨고 진동하는 중심부”라고 보았다.
따라서 그의 시 쓰기는 ‘알 수 없는 기다림’을 향해 나아가는 ‘미완성의 시 쓰기’였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시 쓰기가 더욱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좌절의 무한한 깊이 속에 시가 살아 있다고 생각한 말라르메는 결국 시를 ‘오지(奧地)의 건축물’로 여기게 된다. 시인은 대중과의 소통을 거부하며, 오직 그의 언어와 함께 은둔하며 홀로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와 동시에 그는 마지막 발표작인 ‘주사위 던지기’를 통해 현대 시의 진정한 창조 정신을 보여주었다.
「글자의 완전한 확장인 책은 글자로부터 곧바로 운동성을 이끌어 내야하며 공간을 지닌 책은 상응을 통해 픽션을 공고히 한다고 할 하나의 놀이를 제정해야 한다.」
폴 발레리(1871~1945, 20세기 전반 프랑스의 시인·비평가·사상가)에 따르면, 이 작품은 말라르메가 비로소 이룩해낸 “순수한 긍지의 장식”이며, 새롭게 창안해낸 시 쓰기였다. 이 시의 “주사위 던지기는 결코 우연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구절은 시는 언어의 우발적 충돌에 의해 시작되지만, 결코 우연이라고 말할 수 없는 사유의 필연성을 발견해내라는 의미로 읽힌다. 모리스 블랑쇼(1907~2003, 프랑스의 소설가·평론가)는 말라르메의 언어관을 이렇게 말했다. 즉 “언어는 어떤 의미로 정해지고 고착되어 표명되는 것이 아니라 나타나고 사라지는 운동 사이에서 존속하는 관계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다.
모리스 블랑쇼의 지적처럼, 말라르메는 작품을 썼다가 지우는 행위를 창조라고 생각했고, 섬광처럼 스쳐 간 인상의 음영을 즐기는 시 쓰기를 행했다.
말라르메는 시골 중·고등학교 영어 교사로 일생을 평범하고 검소하게 살았다. 그러면서 평생토록 시의 언어를 고뇌하면서 시의 진정한 창조 정신을 체현하려 했고, 그의 집에서 개최한 살롱 ‘화요회(火曜會, 1924년에 성립된 사회주의 사상단체)’의 멤버인 앙드레지드(1869~1951, 문학의 여러 가능성을 실험한 프랑스 소설가), 폴 클로델(1868~1955, 프랑스의 시인, 극작가, 외교관), 폴 발레리(1871~1945, 20세기 전반 프랑스의 시인·비평가·사상가) 등의 작품 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는 56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기 전에 아내와 딸에게 남긴 유서를 통해 “작품들을 태워버려라. 한 장도 쓸모가 없을 테니까. 오직 유일하게 나만이 거기에 있는 것을 끄집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평생토록 시와 함께 은둔했고, 그러한 ‘오지의 건축물’에 자신의 시를 파묻고자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