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따르릉.
전화벨이 요란히 울렸다.
나는 집을 떠나, 아버지 곁을 떠나 미래를 향해 조심스럽게 살고 있었다. 대학은 나에게 다른 의미를 부여했고 미래에 작가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의 전화벨 소리가 유난히 시끄럽다. 나는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나 전화기를 들었다.
" 제이슨 아버지다. 잘 있었니. 아버지는 요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버지중의 한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폴이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너도 함께 기뻐해라."
기뻐하는 내 목소리가 시작되기도 전에 한 옥타브 높은 아버지의 들뜬 목소리는 전화기 저편에서 이미 사라졌다.
" 네, 아버지 기뻐하고말고요. 아버지의 기쁨이 얼마나 클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폴과 제이슨이 어릴 때 낚아 올린 제 팔뚝 보다 더 큰 잉어를 보시고 저희 둘을 한꺼번에 안아 하늘 높이 들어 올려 기뻐하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겁쟁이인 제가 자전거를 혼자 타던 날 아버지는 손뼉 치며 기뻐하셨습니다. 제가 넘어져 울다가 뚝 그치면 빙긋이 미소 짓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니 서슴지 마시고 미래가 찬란히 열린 폴에 대해 마음껏 기뻐하십시오."
나는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리며 붙들고 있던 전화를 내려놓았다. 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리고 다이얼을 돌렸다. 신호가 오랫동안 가고 있다. 한참 만에 잠에 취한 폴의 목소리가 저쪽 수화기를 타고 들려왔다.
" 폴, 변호사합격을 축하해."
" 으응, 고맙다. 근데 너 누구냐?"
" 제이슨이야. 네 동생 제이슨이야."
" 여-어 미래의 작가님. 새벽부터 웬일이야. 나한테서 멀어진지가 벌써 몇 년째지. 삼년? 사년? 이제야 나를 찾다니. 하나밖에 없는 네 형을 말이야."
" 너에게서 멀어진 건 내가 아니야."
" 그럼 나란 말인가. 이 자식 말이 이상하네. 내가 너를 얼마나 위해 줬니. 그거 너 몰
라?"
짐짓 화 난 폴의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생생하게 들려왔다.
폴과 나는 오랫동안 서로가 소식을 끊고 지내왔다. 나는 의식적으로 그를 멀리했다. 그러나 바람결에 들려오는 폴의 소식은 언제나 나를 주눅 들게 했다.
" 폴 그게 아니야. 쓸데없이 허비해 버린, 생각하기도 싫은 과거에서 벗어나 보려고 모든 것을 멀리 했을 뿐이야. 그래서....."
" 이 자식, 갈수록 태산이네. 변명 하지 마. 생각하기도 싫은 과거라니? 내가 너에게 얼마나 타일렀니. 한 번도 넌 내말을 듣지 않았잖아. 이제 와서 과거타령이야. 너의 과거가 꼭 나 때문인 것처럼 들리는데 내 생각이 잘못 된 거냐?"
" 폴 나는 네가 아니잖아. 나는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 누군 타고 나는 줄 아니? 나는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해 괴롭도록 노력했어. 너 아직도 날 모르겠니?"
" 알아. 잘 알아."
나는 폴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기를 가만히 내려놓았다. 그랬다. 폴은 대단히 참을성이 많았다. 적성에 맞지 않는 과목도 밤을 새워 공부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학교 뒤편에 있는 커다란 호수에 노를 저어 보트를 타고 호수 끝에서 호수 끝까지 갔다 온 학생은 폴 밖에 없었다. 몇몇 악동들은 희미한 가로등이 하나 켜진 선착장에 모여앉아 마리화나를 피우며 폴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웃도 보이지 않는 시골의 새카만 어둠속에 하나밖에 없는 희미한 가로등은 겨우 우리 몇몇의 악동들을 비추어 주었고, 주위는 호수의 숨소리만이 들리는 듯 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폴을 기다렸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폴은 상기된 얼굴로 어둠속에서 나타났다. 우리들은 히죽히죽 웃으며 폴에게 마리화나를 권했다.
" 난 아까 피웠어. 더 이상 할 생각 없어."
폴은 단호히 거절했다. 나는 마약기운에 연신 히죽거리면서도 그런 폴이 경이로워 두려운 생각마저 들었었다.
나는 망연히 의자에 앉아 아침 햇빛 속에 떠도는 미세한 먼지들을 바라보았다. 담배연기를 내뿜어 햇빛 속으로 밀어 넣었다. 담배연기는 햇빛에 금방 녹아버리고, 나는 계속 저장이라도 하듯 담배연기를 햇빛 속에 내뿜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 작가가 되기 위해 대륙의 동쪽에서 서쪽 끝에 있는 학교로 옮겼다. 나는 목마르듯 학교생활에 빠져 들었고 세월이 나를 성숙하게 만들었다.
나는 내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내 이야기 속에는 언제나 폴이 주인공이었다.*